매일신문

[이주향의 이야기와 치유의 철학]인생은 연기야, 연기!

수원대 교수

그리스 신화에서 이오는 암소가 되고, 칼리스토는 곰이 되고, 뤼카이온은 이리가 되고, 악타이온은 사슴이 되지요? 사랑에 빠진 제우스는 뻐꾸기도 되고, 황소도 되고, 황금비가 되기도 합니다. 오비디우스는 왜 변신이야기에 주목했을까요? 오비디우스는 그런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를 직접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은 없다고.

모든 것이 변합니다. 변하는 세상, 무상한 세월이 아프신가요? 젊음이 가고, 사랑이 가고, 일이 나를 떠날 때 아무리 그것이 아프더라도 떠난 것을 떠나보내고 변신할 수 있는 '나'는 잘 살고 있는 거지요? 또 마침내 품 안의 자식들이 떠나고, 건강이 떠나고, 배우자가 떠날 때 세월이 당신에게서 빼앗아간 것이 이것의 예고편이지요? 바로 '나'의 죽음입니다.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는 명제는 맹맹하게 들리는데, '나'의 끝날, 나의 죽음은 지독히도 낯설지 않나요? 명상록을 쓰던 시기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끊임없이 자기 '죽음'을 기억했습니다. 그의 지혜의 근원은 바로 죽음에의 기억이었던 거지요.

"죽은 자를 기억하라. 그들이 없다는 것을! 그대는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대는 아직 단순해지지 못했고, 번뇌해탈도 하지 못했으며. 외부로부터 상처를 받지나 않나, 하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마치 남에게 주는 글처럼 쓰고 있지만 아시는 대로 명상록은 황제 자신이 자신에게 쓰고 있는 일기였습니다. 죽은 자를 기억하라. 그들이 없다는 것을!을 읽는데 마음이 출렁 흔들리네요. 지금은 없는 누군가가 기억이 되어 내 마음에 돌을 던진 것입니다. 지금은 없는 누군가 당신의 미래를 상기시면 당신의 마음속에서 출렁거리지 않나요?

신성일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그를 알 리 없지만 내게도 그의 죽음이 뉴스였던 것은 엄앵란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은 기자와의 짤막한 인터뷰 속에 묻어나는 선생님의 태도는 달관 그 자체였습니다. "인생은 연기야, 연기! 인생이 연기인데, 우리는 걱정이 많아. (그래서) 욕심의 노예가 되어서 사는 거야."

연기煙氣라는 건지, 연기緣起라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습니다. 그 말로 그녀는 삶의 실체 없음을 충분히 전달했으니까요.

아내의 장례식에서 춤을 췄다는 장자의 행위가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지평을 열듯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한 긴긴 인연의 남편을 보내는 그녀의 달관의 태도가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바꾼 모양입니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닌 거지요?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죽음을 경멸하지 말라. 죽음은 자연이 원하는 것이므로 이에 만족하라. 태내에 있는 아이가 태어날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 육체라는 외피로부터 영혼이 빠져나가는 시간에 대비하라."

삽화 권수정
삽화 권수정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임을. 사랑도, 명예에도, 재산도 빈손으로 가는 이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죽음은 온전한 빈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언제나 저승사자가 창백하고 무표정하고 어두운 얼굴로 형상화되는 이유는 죽음에 완강히 저항하는 우리의 태도 때문일 겁니다. 죽음은 자연이 원하는 것이라 하고, 자연적인 것은 어떤 것도 나쁘지 않다 하는 아우렐리우스의 경지가 그저 아득할 뿐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숙명인데 우리는 늘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죽음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인 것처럼 죽음을 꺼려합니다. 죽음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늙고 병드는 일이 바로 죽음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 아니겠습니까? 지혜는 삶 속에서 죽음이 보내는 바로 그 편지를 잘 살피는 데서 옵니다.

스승을 아주 존경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스승은 팔순이 넘었는데 그 흔한 임플란트도 하지 않고 늙어가고 있답니다. 왜 그러실까요? 나이 들어 이가 빠지는 것은 나무가 잎을 떨구는 것과 같을 텐데, 지금 그 나이에 튼튼한 이로 바꿔 험한 음식도 마구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싫으시답니다. 부드러운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서 살고 싶으시다네요. 도인이 따로 없다 싶었습니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늙어가고 병들어가는 것을 스스로에게 숨길 수는 없습니다. 가을엔 나무들이 성장하지도, 무성하게 잎을 내지도 않습니다. 그동안 무성했던 잎들을 떨궈내고 이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합니다. 그런 일을 하는 가을의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올해는 특히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눈을 떠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인생의 가을이 아닐까요?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희성의 대사처럼 인생의 가을엔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이 눈이 들고 마음에 들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업적! 업적!을 강조하는 자가 성공한 자일 때 그만 빼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성공이 참 허약도 하다는 걸!

그나저나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대비하지요?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 많은 사람이 되지 말 것이며, 너무 많은 일에 쫓겨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나도 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 많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명상록의 말이 마음에 저려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구시화문(口是禍門:입이 재난의 문이라는 뜻)이라 하겠습니까? 어디 가나 말 많은 사람들이 분위기를 만드니 말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많은 것 같지만 절친을 만드는 것은 말이 아니라 지향성이고 성격이고 믿음입니다.

성취가 중요한 젊은 날은 희망 따라 기대 따라, 열정에 쫓기고, 일에 쫒기고, 말에 쫓기며 성공과 실패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말보다는 침묵이, 열정보다는 관조觀照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나이 들어서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알고 있지만 황제의 말대로 너무 많은 일은 스스로를 망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말을 잘 하고, 일을 잘 하고, 영화를 누리며 잘났다 한들 자기의 욕심을 이기도 못하고, 자기의 업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일 뒤에 숨어 조용히 자기를, 자기의 과거를 관조하지 못하는 인생은 잘 나이 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말을 줄이고 조용히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고독이 진정한 친구가 되고, 황제의 이 말을 고립으로 오해하지 않고 조용한 관조로 이해하며 들을 수 있습니다. "은둔의 장소로는 자기 자신의 영혼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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