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 탐방]어울아트센터 'Vision'전 김철환(12월 8일까지)

김철환 작.
김철환 작.

백화점이 제공하는 미술전시장을 찾아가면 재미있는 광경을 가끔 본다. 그건 공공미술관이나 화랑에선 좀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고급 쇼핑가에 오면 자신이 지체 높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나보다. 어떤 부인들은 사교계의 큰 인물인 마냥 전시공간을 가로지른다. 내가 보기엔 미술을 즐기기보다, 그러고 있는 자기 자신을 즐기는 거다. 백화점에 있는 갤러리나 화장실이나 어차피 그들에겐 같은 편의시설이다. 미술에는 그다지 취미가 없지만 귀빈 대접은 받아야 하는 그 분들은 화장실에 가서는 황금변이라도 보는 걸까? 그럴 리가.

작가 김철환은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들 모아서 자기 작품에 쓴다. 으, 상상만으로도 더럽다. 각질 손발톱 비듬 털이 재료다. 원료 수급이 더딘 점은 있어도, 재료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생각해보자. 내 손발과 눈코입귀와 모든 장기는 내 일부다. 그럼 내가 흘린 콧물과 가래침은 뭔가? 미용실에서 자른 머리카락을 보며 '영원히 안녕'이라고 슬퍼하는 사람이나 상황도 있겠지? 아무튼 우리는 어느 안에 속해있을 땐 괜찮은데 거길 벗어나면 위험하거나 더러운 대상으로 취급한다. 가령 깨끗하게 조리된 밥과 국과 반찬을 입 한 번 대지 않은 채 버릴 목적으로 한 냄비에 부어 담았다. 그 음식물들은 깨끗한가, 더러운가? 인류학자 매리 더글라스가 쓴 '순수와 위험'을 읽으면 우리의 이런 관념을 집요하게 밝히고 설명하니까,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

작가가 '생산물-샤워찌꺼기'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 욕실에서 머리 감고 싱크 구멍마개에 시커멓게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모아서 만든 작품이다. 한 술 더 떠, 작가는 그렇게 비누 때 낀 잔해를 값비싼 진열장 안에 보물처럼 쌓아서 보관한다. 그 고급스러운 형식이 작품의 포인트라는 건 관객들이 대번에 알 수 있다. 비슷한 유형의 작업이 외국에는 꽤 있는데, 가까이 있다는 명목으로 김철환 작가에게 한 번 물어보자. '도대체 왜 이런 더러운 걸 미술이라고 뻔뻔히 내세우는지?' 작가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좀비나 악령이 나오는 공포영화를 볼 땐 그 세상은 그냥 지옥이에요. 영화가 끝나고 밖에 나오면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가 사는 여기가 천국이라고 느낄 거예요.' 세상에 있는 모든 추함을 한 곳에 모아두면 나머지 곳들은 다 아름다워 보인다. 그래서 미술이다.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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