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은 화학적 분비물을 통해서, 동물들은 소리와 표정, 몸동작을 통해서 각자 나름대로 서로 의사전달을 한다. 그러나 자음과 모음을 엮어서 다양하고 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생명체는 오로지 사람뿐이다.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이 세상에서 살다가 떠난 사람, 그리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이들 중에서도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그들이 어떤 세계에 들어서 있는지 대단히 궁금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기에 상상과 믿음으로만 무엇인가를 그려볼 뿐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태어나서 이 세상 삶의 주인공이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제 살아 있는가? 바로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수가 77억 명이나 되는데, 지구촌 위치에 따라 오전이나 오후를 살고 있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이것은 남녀노소, 지식, 지위, 재산 등의 많고 적음, 높낮이에 상관없이 같다.
유아는 유아대로 살아 있고 유치원생, 초·중·고등·대학생, 가정주부, 직장인, 은퇴인 등 각자 나름대로 살아 있다. 알고 있는 지식과 체험한 것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지만 다 같이 현재 이 순간에 살아 있다. 각자 머릿속에 들어있는 온갖 욕구와 생각을 내놓고 이야기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분량이 많고 복잡하여 듣다가 피곤해질 것이고 마침내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하더라도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1조 개의 교세포로 구성된 우리 두뇌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몸 안의 온갖 생명 현상을 주도하고 꿈을 꾸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의 온갖 것들을 인지하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오감에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요한 곳에 혼자 있어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과거의 온갖 추억과 상처들을 회상하다가 미래로 가서 아직 현실이 아닌 온갖 생각과 걱정거리들을 더듬는다. 살아 있는 것은 현재 이 순간인데 생각은 과거와 미래에 더 많이 가 있다. 이것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잡념이 되고 정신을 분산시켜 심하면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종교 이야기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살았을 때 종교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무종교인으로 산 사람들은 종교 없이 살기로 마음먹었겠고 특정 종교 단체의 일원으로 산 사람들은 그들만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할 상태에 있지 않다.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은 궁금하지만 건널 수 없는 한계에 의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는 없다.
필자가 지면이 대단히 제한된 이 칼럼에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강조해가며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사실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은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이 살았던 생각과 삶의 자취를 안고 있다. 그래서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적 요소들이 들어 있고 참된 진리와 주변 진리가 섞여 있으며 진리와는 거리가 먼 불편한 요소들도 들어 있다.
진정성을 가진 성직자와 수도자는 자신이 믿고 전하고자 하는 종교적 진리가 가능한 대로 참된 것이기를 원할 것이다. 일반 신자라 할지라도 주변 진리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진리가 아닌 것과는 거리를 멀리 두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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