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에 백김치와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 겨울로 가는 길이 행복하다. 동지가 지나면 밤보다 낮이 길어질 뿐 아니라 김장김치의 맛도 깊어지니 그 또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귀촌한 지 어언 오 년째, 김장은 너무 일찍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게 나의 발견이다. 몇 번이나 된서리를 맞은 배추가 더 맛나기 때문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사실은 겨울 배추에 맛들인 닭들에게서 배운 지혜이다. 백 포기도 넘는 배추 한 판을 심어 놓고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겨울 내내 밭에 놔둬 보았다. 배추는 생각보다 생존력이 강해서 잘 덮어 놓으면 봄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월동하는 닭에게 배추를 주면 배춧속부터 먼저 파 먹는 걸 보고는 나도 겨우내 배추 겉절이, 배추 전을 심심찮게 해먹는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 맛도 깊어지고 달콤해진다.
나만 아는 지혜인 양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배추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채소지만, 우리처럼 다양하게 즐겨 먹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동의보감에 보면 숭채(배추)는 성질이 서늘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소화를 촉진시키지만, 많이 먹으면 냉병이 생기기에 그것을 생강으로 푼다고 되어 있다. 배추에 대한 허준의 담백한 평가이다. 이처럼 소박한 채소에 갖은 양념과 동물성 재료까지 사용하여 맛과 영양이 풍부한 김장김치를 창조해 온 우리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들께 노벨식품상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
김장 메이커들께 한 가지 건의 드린다면 내년부터는 물이 덜 빠진 11월 물렁 배추보다는 서리 견딘 12월 꼬들 배추로 김장을 해보시는 게 어떠실지요. 지금도 우리 밭에는 배추 수십 포기가 겨울을 나고 있다. 한 달간 집을 비운 동안 옆집 할머니가 잘 덮어 주신 덕분이다. 게다가 김장김치 주신다고 내려오라 하신다. 참 행복하다. 올겨울부터는 김장김치 맛나게 먹은 후에 꼭 생강차를 만들어 가족·이웃과 함께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보고자 한다. 다들 김치와 생강차 잊지 마시고 연말연시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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