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1202년을 기대하며

김종섭(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주)빅아이디어연구소'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 저자

2020년은 뒤집힌 해다. 코로나19로 우리 삶이 뒤집혔다. 소상공인들의 삶이 뒤집혔고 일용직 노동자들의 생활이 뒤집혔다. 실제로 지난 3월 28일, 황금네거리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부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 시도였다. 이렇게 코로나19는 우리 속을 뒤집어 놓았다.

9년 전 처음 창업을 했던 때가 기억났다. 대구에서 광고회사를 창업하겠다고 하니 모두가 반대했다. "대구에 기업이 있냐?" "대구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극히 낮다" 등의 말이었다. 실제로 그때는 광고 제작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버스 광고판, 지하철 광고판을 쓰는 비용만 받았지 그 속의 콘텐츠 제작비는 0원이었다.

광고 대행사에서 매체 비용만 받고 광고는 공짜로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힘들게 광고 유학을 다녀온 내가 한심했다. 향수병을 가득 안고 돌아온 내 고향에서 나는 0원짜리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결국 서울로 가지 않았다. 유학 생활 향수병이 가득했던 나는 한국에 가면 꼭 대구에서 승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결국 대구에 남아 힘든 생존을 이어갔다. "카피라이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 "카피하는 사람이냐? 그럼 복사기 돌리는 사람이냐?"라는 질문에 맞서면서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었다. 나이키의 JUST DO IT 같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고. 그랬더니 그런 글은 자기도 쓸 수 있으니 당장 나가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창업 후 매일이 고비였고 매달이 망할 위기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내 광고를 사지 않았고 우리는 손가락을 빨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짜 손가락을 빨 수는 없지 않은가. 애석하게도 손가락은 열 개뿐이다. 하루에 한 개씩 빨아도 2주가 안 된다. 의뢰하는 사람이 없어도 계속 광고를 만들었다. 세상에 대한 울분, 가진 것이 없는 것에 대한 분통, 지독한 흙수저에 관한 연민을 담은 광고를 말이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그랬더니 웬걸. 엄청난 양의 광고들이 축적되었다. 나는 이것을 '손가락 빨지 않음 효과'라는 단어로 마케팅 사전에 등재하고 싶다. 손가락을 빨지 않고 뭐라도 만들었던 힘은 엄청났다. 작품 수가 많으니 5년 된 회사가 아니라 10년 된 회사로 봐 주셨다. 소규모 회사가 아닌 그 나름 덩치도 있는 회사로 봐 주셨다. 선배들은 대구에 기업이 없으니 창업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관공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규모가 큰 병원 광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창업 7년 차가 되었고 코로나19를 맞이하게 되었다.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을 우리 회사는 체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관공서로부터 마스크 착용에 관한 광고 의뢰가 줄을 이었다. 그렇게 올해가 더 바빴던 것이다. 남들이 대구에서 하지 말라고 할 때 그것을 뒤집어서 생각했다. 그랬더니 우리가 하는 일은 '진짜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모두가 '당연히 광고회사는 서울로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구가 우리에겐 블루오션이었던 것이다.

이 칼럼의 제목은 오타가 아니다. 1202년은 2021년을 뒤집어 놓은 숫자이다. 너무 힘든 세상이기에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뒤집어 보자. 그 속에 우리의 살 길이 있으니까.

김종섭

(주)빅아이디어연구소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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