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종교간 대화 3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이념인 민주주의와 시장원리가 종교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고, 이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어느 특정 종교를 국교로 선포할 수 없고 특별하게 지원할 수도 없는 것이 종교자유를 원칙으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 일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물리적인 힘이나 정치·사회적 조치를 동원한 인위적인 행위로 변혁을 가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종교 간의 차이와 평등을 인정하면서 현존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회질서나 개인의 생활에 부담을 주는 무질서한 가르침이나 의식 또는 집회를 하는 종교단체가 있다면 공공기관이 나서야지 어느 특정 종교단체가 나서서 자신의 이념이나 잣대로 처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특정 종교단체가 먼저 할 일은 다른 종교단체들이 그 나름대로 존재하도록 놔두어야 한다. 종교단체들의 생존과 번성은 사람들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사람들이 지닌 세계관과 정서 그리고 자유의지로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신봉하는 종교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세력을 키워준다면 나에게 기쁜 일이지만 이러한 일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요해서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더라도 통하지 않을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종교간 대화를 하려는 의지는 좋은 것이지만 내가 속한 종교의 신념을 강요하거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종교들을 설득하는 일에 급급해한다면 무리가 따르고 결과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간 대화를 시도할 때에는 교리적인 문제는 가능한 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한 문제를 주제로 삼을 경우에는 선한 의지로 모였을 경우에도 결국 논쟁과 반목만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간 대화의 주제는 환경보호, 평화증진, 사회복지, 인권, 식량문제, 종교간 우정, 빈곤퇴치, 다문화 가정 돕기와 같은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고 보편적이며 구체적인 사항들이 좋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잘 하는 종교는 자신이 진리를 신봉하는 단체임을 스스로 증명할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교묘한 이론으로 결국 사람들을 오도하고 곤란에 빠뜨리며 등쳐먹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사이비란 것을 스스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오늘날 4월 초파일에 몇몇 성당에 석가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12월 성탄절에 몇몇 절에 비슷한 현수막이 걸리며, 가톨릭교회의 성직자가 절을 방문하기도 하고, 스님이 성당을 방문하기도 하는 것은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면서 서로 싸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좀 더 자주 만나 지역사회의 평화와 복지 증진을 위해 함께 활발한 협력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일부 교파는 다른 종교단체의 존재를 인정하기를 주저하면서 자신의 종교단체만이 참된 구원을 중재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회로 오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까지 하곤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개신교 안에서도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외면당하고 신봉자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것과 더불어 종교간 대화와 평화로운 공존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개신교 교파의 수가 많이 증가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나라의 3대 종교단체인 개신교와 가톨릭 그리고 불교가 서로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여 종교 간에 평화를 정착하고 나아가 우리나라에 평화를 정착하는 작업에 일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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