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독일의 문화향유도가 높은 이유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독일 유학 기간 중 시간을 내 아이들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길가에 딸기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딸기농장은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가서 마음껏 딸기를 따서 먹고, 농장에서 제공한 바구니에 담아 나와 집에 가져갈 수도 있도록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입구에서 입장을 거절당했다. 우리 가족이 입장을 원했던 시간이 대략 오후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는데 농장의 영업시간이 오후 6시까지였다. 농장 주인은 "지금 들어가면 충분히 먹고 따서 나올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주인에게 '시간이 짧아도 좋으니 허락해 주면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꼭 입장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꼭 6시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하였지만 입장은 허락되지 않았다. 주인장은 "만약 6시가 넘었는데도 당신들이 밭에 있는 장면이 경찰에게 발각되면 우리는 벌금을 비롯하여 무거운 벌을 받게 된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농장 입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법적으로 식당과 카페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영업장을 제외한 모든 영업장이 원칙적으로 평일은 오후 6시, 토요일은 오전만 영업을 하도록 돼있다. 그래서 병원이나 약국들조차도 순번을 정하여 시민들의 비상사태를 돕고 있으며, 공무원들이나 사무직에 일하는 사람들의 장보기를 돕기 위해 목요일을 '긴 목요일'이라 하여 상점들은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필자가 생활하던 도시의 사무직 직장인들은 화요일의 경우 조금 더 길게 일하고 목요일에는 오후 4시에 퇴근을 했다.

그렇게 전 국민들이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문화 향유를 위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당연하도록 교육되어 있으며, 매일 아침 7시 반까지 등교하고, 2교시 후 아침식사 시간을 가지며, 정오가 되면 중등교육기관의 모든 공교육시간이 종료된다. 오후 시간은 각자 자기개발 시간으로 활용된다. 음악학교, 미술, 무용, 승마학교 등 모든 자기개발 교육과정도 공교육으로 지원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약간의 규제를 통해 전 국민이 평등하게 저녁시간을 문화 향유의 시간으로 누릴 수 있게 한 점이다. 음악회, 전시회 참석을 비롯한 동호인 모임 등을 통해 토론하고 소통하는 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느꼈다. 연중 5월 정도를 제외하면 늘 날씨가 좋지 않은 것도 토론문화를 확산시키고, 음악회 참석 등의 문화활동을 활발하게 만든 여건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한국이나 미국처럼 개인이 원하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바쁜 사회구조에서는 우선적으로 경제활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문화 향유에 대한 여유가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떤 삶의 환경이 사람을 행복하게 그리고 창의적이며 만족하게 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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