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형의 시시각각] <51> 잠 못드는 흰뺨검둥오리

자정이 넘은 시각, 대구 수성구 범어천의 흰뺨검둥오리 어미가 새끼들을 물속 바윗돌에 올려 잠을 재우고 있다. 한적한 도로를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자동차 굉음과 환한 불빛에 도롯가 아파트 주민도, 흰뺨검둥오리 가족도 편히 쉴 밤을 맞기 힘들어 졌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자정이 넘은 시각, 대구 수성구 범어천의 흰뺨검둥오리 어미가 새끼들을 물속 바윗돌에 올려 잠을 재우고 있다. 한적한 도로를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자동차 굉음과 환한 불빛에 도롯가 아파트 주민도, 흰뺨검둥오리 가족도 편히 쉴 밤을 맞기 힘들어 졌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흰뺨검둥오리 어미가 갓 부화한 새끼에게 물위에 뜬 먹이를 먹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흰뺨검둥오리 어미가 갓 부화한 새끼에게 물위에 뜬 먹이를 먹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범어천에 서식하는 흰뺨검둥오리 어미가 낮잠에 빠진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범어천에 서식하는 흰뺨검둥오리 어미가 낮잠에 빠진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대구 도심 범어천에 밤이 깊었습니다.

별도 달도 졸고 있는 자정이 넘어서야

흰뺨검둥오리 가족은 한숨을 돌립니다.

잠자리는 포근한 숲 대신 물 속 바윗돌.

밤낮 없이 노리는 들짐승, 날짐승에

여차하면 잠수하기 딱 좋은,

노련한 어미가 고르고 고른 명당입니다.

손바닥만 한 돌침대에 새끼를 올려놓고

어미는 물 속에서 뜬눈으로 지셉니다.

" 타타타타!! 투아아아앙~"

고삐 풀린 자동차 배기음이,

귀청을 찌르는 오토바이 굉음이

도롯가 아파트를 타고 올라 창문을 때리더니

고요한 샛강을 냅다 후립니다.

잠들었나 싶더니 또 깼습니다.

어미는 안절부절 속이 탑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눈이 시린 LED 조명에, 훤한 가로등에

밤도 잊은 물갈퀴질로 천방지축 놀아 대는

밤마실 간 새끼를 불러 모아 재우기도 벅찹니다.

환경부 소음진동관리법상

주택가 소음 기준은 65 데시벨(㏈).

자동차관리법에서 오토바이 제한 소음은 105㏈.

잠 좀 자자고 용을 써도 소용없게 됐습니다.

불법 개조한 비행기급(120㏈) 굉음이 신난다지만

창문 너머 무수한 이웃들은 밤잠을 설칩니다.

관측 위성(NPP)이 측정한 지구 빛 밝기에서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2위.

밤이 빛나는 대한민국입니다.

어둠을 밝혀주는 고마운 빛도 넘치면 공해.

소음 못잖게 잠을 쫓는 주범입니다.

전문가들은 수면장애가 만병의 근원이라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2007년)

'빛 공해'를 발암물질로 지정했습니다.

인내심을 시험하는 안전속도 5030.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년 전 서울 종로

시범 구간에서 시속 60㎞를 50㎞로 낮췄더니

보행자 교통사고는 24.1%, 소음은 2.6㏈ 줄었습니다.

'교통체증' 우려와 '거북이 운행' 불만도 많지만

사고는 물론 소음까지 줄일 수 있다니

빵빵 울렸던 경적 소리를 보기 좋게 내다 버린

참한 습관 하나를 이참에 또 들일 일입니다.

잠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주택가 소음·빛 공해를 줄여 고단한 이웃들이

꿀잠에 빠지는 그날을 상상합니다.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잘 자고, 잘 커서

해충도 잡고 재롱도 뽐내는

산책길 귀염둥이로 마주할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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