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생명을 구한 커피 반 잔의 기적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였던 빅터 프랭클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자서전적 체험수기인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는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프랭클 박사의 생생한 체험이 그려져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3년 동안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에서 보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이 책의 비밀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악의를 목도하고 경험했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희망적인 시각,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낙관적으로 대처하고 희망을 찾아내는 등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있으며, 어떤 존재에도 살아가는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하는 점이다.

한 독일 군인이 장교에게 "이왕에 죽을 사람들을 왜 저렇게 비참하게 만듭니까?"라고 물었는데, 장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짐승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쉽다. 소나 돼지를 죽이는 것보다는 더러운 미물을 죽이는 것이 더 쉽다"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3만2천 명을 수용하고 있던 유태인 수용소에는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으며, 하루에 화장실 개방시간은 오전과 오후에 10분씩만 주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포로들은 식기로 사용하는 깡통에 대변을 보고 화장실 개방시간에 대변을 화장실에 버리고 그 깡통에 또한 배식을 받는 등 그들 주변은 온통 오물투성이가 되었고, 그들의 몸도 점점 짐승처럼 비참해지고 말았다.

다행히 오후 4시 30분이면 따뜻한 커피 한 잔씩이 배급되었다. 그 물조차도 악취가 나는 물에 가까웠지만 추위와 굶주림으로 열량을 빼앗기던 그들에게는 몸을 녹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 무리들 중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커피를 반만 마시고 남은 반으로는 옷깃을 찢어서 이를 닦고, 얼굴도 닦고, 몸도 닦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과는 커피 반잔으로 자신의 몸을 가꾼 사람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모두 생존하였다는 기록이다. 온몸이 더럽혀져 있는데 커피 반 잔으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정결하게 할 수 있었을까. 이 사실은 자신의 생명을 살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며 격려하고, 주변에 희망을 주는 기적이었다.

아예 시도도 하지 않은 사람들과 이 일조차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포기한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자신을 짐승처럼 취급받도록 방치하였고, 삶의 의지를 포기한 것이었기 때문에 죽음의 시간을 당겼다고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지금 같은 풍요의 시대에 불필요한 이야기 같을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가 수시로 필자의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과연 커피 반 잔을 아껴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아우슈비츠의 이야기가 현재 우리에게는 어떤 상황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커피 반 잔을 아껴서 나를 살리고 사회를 복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음도 발견하게 된다. 호국의 달을 맞으면서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야 될 일들도 생각하며, 커피 반 잔으로 더 밝아질 수 있는 나눔과 자기관리도 생각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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