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애꿎은 당나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김영필 철학박사
김영필 철학박사

치과의사 슈트루치온이 왕진을 가는데 마침 자기 당나귀가 임신했다. 할 수 없이 안트락스의 당나귀를 빌려 타고 함께 길을 떠난다. 날씨가 더워 의사는 당나귀에서 내려 당나귀의 그림자에 앉아 잠깐 쉰다. 이때 당나귀 주인은 빌려준 것은 당나귀이지, 그림자는 아니라고 하며 그림자를 사용한 돈을 더 내라고 한다.

이렇게 벌어진 싸움이 당사자 간에 잘 마무리될 듯했지만, 치과의사의 변호사는 의사의 돈이 탐나서, 당나귀 주인의 변호사는 당나귀가 탐나 싸움에 개입해 판을 키운다. 급기야 당나귀 주인 편인 당나귀 당과 의사 편인 그림자 당으로 갈라져 더 큰 싸움으로 번진다. 재판이 끝이 안 나자, 증인은 당나귀라 판정하고 애꿎은 당나귀를 죽이고서야 재판이 끝난다. 이 우화는 뷔일란트의 '압데라 사람들 이야기' 4권 중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에 실려 있다.

그리스 압데라는 아테네로부터 북쪽으로 70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프로타고라스가 이곳 출신이다. 말을 잘 해 상대를 설득하는 논쟁술을 가르치고 다녔던 당시 지식인으로 불린 소피스트의 리더가 바로 그였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똑똑한 청년을 보면 "자네는 프로타고라스만큼이나 똑똑하네"라고 칭찬인 듯 아닌 듯한 말을 하곤 했다. 말만 잘 하면 빌린 돈도 갚지 않아도 된다. 아는 것이 많아 흑을 백이라고도 설득할 수 있는 기술자란 뜻으로 궤변가로 불렸다.

이제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각 후보 진영에서 쏟아내는 온갖 공약이 현란하다 못해 궤변스럽기까지 하다. 궤(詭)는 위태로운 말이다. 궤변은 거짓을 참으로 설득하는 위험한 변론이다. 그 궤변으로 압데라의 애꿎은 당나귀가 죽었다.

내 귀에는 후보자들의 토론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똑같아 보이는 공약을 들어야 하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같아 보이는 공약들을 남발하는 것보다는 딱 한 가지만이라도 차이를 생산하는 창의적 발상이 더 필요하다. 왜 'K-정치'는 없는가.

압데라에는 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의 동상이 서 있다. 이곳 출신이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영혼의 원자가 외부 사물에 의해 흔들리지 않을 때 행복하다고.

말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없어 당나귀를 타고 다닌 가난한 선비는 당나귀를 타고 나라 걱정을 한다. 난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 교정에서 '당나귀 등에서 시를 생각하다'(驪背詩思)는 제목의 조형물을 본 적이 있다. 현판에는 "헛된 화려함을 사모하지 말고, 명리를 꾀하지 말며, 겸손하고 공손하게 처세하며, 외부 사물에 초연하라"는 글귀가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국민의힘이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공천 방식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으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공천이 시도되자 지역 정치권에서 '민주정당이...
구미 부동산 시장에서는 비산동 6-2 부지에 최고 46층 규모의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현재 구...
서울중앙지법은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는 동생을 살해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10년과 치료감호를 선고했으며, 동생은 퇴근 후 목욕 중 불평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 한국과 일본을 언급하며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 작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며 파병 압박을 가했으나, 주한..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