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왕가의 무능과 잦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프랑스 국민들은 왕권에 반기를 들었다. 국민의회가 주창한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는 파리를 넘어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다. 혁명을 이끈 민중들은 왕정시대 대신 공화정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희망했다. 마침 고대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처럼 새 시대를 열어줄 영웅이 등장했는데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베토벤은 자신의 나이보다 한 살 많은 나폴레옹을 지지했다. 베토벤은 치열한 삶을 통해 급진적인 공화주의자가 되었고 공화정을 실현할 나폴레옹을 적극 옹호했다. 우울했던 그의 내면에는 유럽을 휩쓴 새로운 희망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는 나폴레옹에게 경의를 담아 헌정하기 위한 교향곡을 작곡했다.
1804년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매우 격분했다. 당장 악보 표지에 써놓은 '보나파르트'(Bonaparte·나폴레옹의 姓)를 지우고 대신 '영웅'(Eroica)이라 고쳤다.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마음을 철회했을 뿐 아니라 단지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작곡한 곡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 곡이 베토벤의 제3번 '영웅교향곡' Op.55이다.
영웅교향곡은 1803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쓴 작품으로 베토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한 투쟁과 승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대 후반에 찾아온 귓병이 점점 악화돼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청력 상실은 치명적이었다. 귓병뿐 아니라 지병의 악화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의사의 권유로 빈 근교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해야만 했다. 서른두 살 나이의 베토벤은 비장한 각오로 유서를 써내려갔다.
"나의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도 전에 벌써 죽음이 찾아왔구나. 내 운명이 그렇다손 치더라도 내겐 죽음이 너무 이르구나. 죽음아, 조금만 더 늦게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대로 죽는다 해도 난 행복할 것이다. 네가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니까. 죽음아, 올 테면 오너라. 그댈 용감하게 맞아줄 테니…."
죽음을 맞을 각오로 베토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 이전에 쓴 교향곡에서 보였던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이전 교향곡보다 더 강한 개성과 어법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총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교향곡은 규모면에서 기존의 교향곡보다 훨씬 크고 독특하다.
제1악장의 시작은 큰 망치로 내리치는 듯하는 두 개의 괴성이 앞으로 펼쳐질 모든 과정을 평정한다. 새 시대에 걸출한 영웅의 출현을 알린다. 무려 200마디가 넘는 전개부의 길이, 파격적인 리듬과 불협화음, 잦은 조바꿈 등은 이전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제2악장에서는 가곡 풍 대신 장송행진곡을 파격적으로 도입했다.
훨씬 빨라진 제3악장 스케르초는 중간부분에서 호른 세 대가 부는 사냥 나팔식 악구의 출현과 피날레의 제4악장은 론도형식 대신 변주형식을 사용해 푸가기법을 도입하거나 소나타형식의 전개원리를 적용했다. 이 시기에 작곡한 피아노소나타 발트슈타인 Op.53과 함께 제3번 교향곡은 획기적인 양식의 전환을 이루었다.
이 곡의 작곡 동기는 외적으로 난세의 영웅 나폴레옹에게 있지만, 내적으로 베토벤 자신에게 있었다. 유서를 써놓을 만큼 죽음의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더 이상 작곡할 수 없었다. 다만 내면의 처절한 소리를 한 음씩 오선보에 써내려갔을 뿐이다. 이 교향곡은 어느 누구를 위한 곡이 아닌 베토벤 자신을 위한 곡이다. 싸움에서 승리한 베토벤이 진정한 '영웅'이다.
대구시합창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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