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정말 여기 책 전부 다 들고 가도 되는 건가요?"
"책상 밑에 더 있는데, 그것도 다 들고 가면 됩니다."
"정말 다 가지고 가도 되는 거예요?"
대프리카의 어느 여름날, 기증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생각보다 도서관으로 기증을 해주는 분들이 많은데, 매달 평균 10건 정도의 문의가 들어오고 실제 기증으로 이어진다. 이 책들은 도서관에 등록되거나 지역에 책이 필요한 다른 기관으로 재기증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날은 전화를 받는 순간 느낌이 달랐다. 도서관 근처 오피스텔인데 실내 가득 책들이 들어차서 정리도 할 겸 기증하고 싶으니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주소를 불려주셨지만 기증도서 수거를 따로 나가진 않고 있던 터였다. "나이도 있고 이동수단도 이제 없어서 꼭 수거를 해주었으면 해요."
도서관에서 5분 거리의 오피스텔.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범어도서관에서 왔습니다." 아무런 답이 없다. "계세요?" 아무런 답이 없어 문을 밀고 들어가자 작업실 끝에서 어르신 한 분이 책상을 등지고 의자에서 책을 읽고 계셨다.
"아~ 내가 몰랐네요"라고 그가 일어났다. 그의 작업실은 가득 채운 책들의 사정은 이랬다. 평소에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퇴직하고 나니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져 더 사서 읽고 하다 보니 오피스텔 작업실 벽장을 책으로 가득 채울 만큼 많아져 정리 좀 해야겠다 싶어서 연락을 주셨다는 것이었다. 팔기도 그렇고 해서 꼭 왔으면 했는데 와줘서 고맙다고 덧붙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 박스는 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가면 산장 살인 사건', '라플라스의 마녀', '용의자X의 헌신'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국내외 유명 미스터리 소설들도 깨끗한 상태로 1천 권 정도 있었다. 믿기지 않아서 정말 기증하시는 거냐고 되물었다.
"좋아서 읽었던 책들인데 이제는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이 잘 봤으면 좋겠네요. 가져 가셔도 됩니다."
책을 정리하면서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책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너무 인기가 많았을 당시에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지나서 읽었다.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어가는 듯한 이야기에 '아! 역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 책이었다. 사람들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었다.
기증자의 뜻을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어 종합자료실에 '미스터리 팝업 서가'를 만들었다.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속 기묘한 편지 대신 감사의 편지를 이 글로 갈음하며 기증자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서보환 범어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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