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숙희 내방가사 작가 "한글 아름다움 가장 잘 보여주는 내방가사…세계기록유산 등재 노력"

조선시대 궁녀들이 쓰던 '궁체', 명맥 잇는 4음보 율문 '가사문학'
사대부 집안 여인 중심 '내방가사'
80대 고령 작가 속 최연소로 "옛 가사가 '여인의 한풀이'라면 이젠 현실 속 우리 이야기 할 때"

내방가사 작가인 권숙희 씨가 자신이 풀이한 정인지서(훈민정음 혜례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를 가사로 풀이한 두루마리 작품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화섭 기자.
내방가사 작가인 권숙희 씨가 자신이 풀이한 정인지서(훈민정음 혜례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를 가사로 풀이한 두루마리 작품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화섭 기자.

지난 9일은 576번째 한글날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한글 또한 전 세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으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한 때는 무시받고 천대받았던 글자였고 일제시대에는 쓰지 못하도록 탄압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그 우수성을 자랑하는 데에는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는 게 한글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의견 중 하나다. 그 증거로 조선시대 궁녀들로부터 비롯된 한글 궁체와 사대부 집안 여인들을 중심으로 전파된 가사문학을 들기도 한다.

내방가사 작가인 권숙희 씨는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파된 '내방가사'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권 작가는 지난 2014년부터 내방가사를 쓰고 연구하고 낭송하며 사람들에게 내방가사를 알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작가의 길을 걷기 전에는 평범한 주부로 살던 권 작가에게 내방가사는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마 10년 전이었을거예요. 30년 지기 고교 동창들끼리 모여서 화전놀이를 하다가 그 날의 감상을 SNS에 써서 공유를 했었어요. 다 쓰고 보니 내용이 가사 '화전가' 처럼 나오더라고요. 친구들도 읽어보니 좋다고 하면서 '아예 제대로 한 번 글쓰기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친구들의 추천과 권유로 2014년 전국 내방가사 창작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했는데 이것이 장려상을 받았다. 그 때 상을 받은 작품이 '세월호 탄식가'다. 이후 권 작가는 본격적으로 영남 지역의 내방가사들을 찾아서 연구하고 창작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내방가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내기도 했다.

권 작가가 말하는 내방가사의 매력은 네 글자씩 짝을 지어 만들어내는 4·4조 운율속에 당시 여성들의 삶의 모습과 전하고자 하는 교훈 등이 모두 담겨있고 그 속에서 한글의 아름다움도 다시금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훤당 김굉필 선생 집안에서 전해오는 가사였던 '만수가'를 풀이한 적이 있어요. 경주 양동마을에서 시집 온 며느리가 10년만에 친정에 갔다 오는 과정을 쓴 내방가사인데요, 자식이 없어서 시름하는 모습부터 친정에서 편히 쉬다가 시댁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는 과정까지 당시의 다양한 풍경이 묘사돼 있어요. 지금 쓰지 않는 표현들도 많다보니 발굴된 가사를 풀이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그러면서 한글의 아름다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지난 5~8월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렸던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특별전에 작품을 전시한 사람들 중 최연소 작가이기도 한 권 작가는 점점 내방가사를 알고 보존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게 아쉽다고 말한다. 대부분 내방가사 작가들이 80세 이상의 고령인 경우가 많다보니 명맥 유지가 쉽지 않다. 그래서 권 작가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내방가사 연구 동아리를 만들어 내방가사를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권 작가는 옛 내방가사의 발굴 만큼 현대적 가사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제가 쓰고 있는 가사 작품들은 소위 '여인의 한풀이'라는 시각으로 보는 내방가사와는 다르게 세월호 사건이나 코로나19처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더 많아요. 이제는 가사 형식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고도 봅니다. 그리고 가사 작품이 문학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것도 방법이라 보고 이에 대한 노력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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