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주사파의 미몽(迷夢)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수립된 공산 체제에 서구 좌파 지식인들은 열광했다. 대공황으로 붕괴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이상 사회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체제는 폴란드 출신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가장 엄청난 규모의 유사 전쟁 행위"라고 표현한 국가 폭력이 자행되는 생지옥이었다. 어떤 기준으로도 '이상 사회'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좌파 지식인들은 이런 사실에 눈을 감았다. 대표적인 예가 1931년 착공해 1933년 완공될 때까지 20만 명의 인명을 갈아 넣은 백해 운하 건설에 대한 찬양이다. 영국의 지식인 시드니 웹·베아트리스 웹 부부는 "인간 갱생이라는 목표를 성공리에 끝마쳤다"고 했다.

좌파 지식인들은 1980년대 공산권 붕괴 후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미몽(迷夢)에서 깨지 못했다. 아니 깨려 하지 않았다.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그 대표 주자라 할 만하다. 공산권 붕괴에도 영국 공산당에 잔류했던 그는 소련이 "약점이 무엇이든 존재 자체로 사회주의가 꿈에 머물지 않았음을 증명했다"고 강변했다. 공산권에 대한 자유세계의 승리에 대해서도 "이 세계는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시한 양자택일에 직면하여 사회주의를 반대하기로 결정했던 것을 조만간 후회할지 모른다"며 시비를 걸었다.

이런 미몽을 영국 역사 저술가 폴 존슨은 '세속적 미신'이라며 "신앙이 필요했다. 그들은 속고 싶어했다"고 질타했다. 영국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영혼을 팔아넘겼다"고 비판했다.

남한 내 '주사파'도 다를 것이 없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아무리 매혹적이라도 현실에서는 이미 폐기 처분됐다. 체체 경쟁에서 북한은 남한에 예전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체사상을 추종한다는 것은 현실과 유리된 '공상유희'(空想遊戲)이다. 그런 점에서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규정'은 정확하다. 미몽에 사로잡힌 정신 지체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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