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타락하는 면책특권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제도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의도를 배반하는 사회적 장애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부나 사법부의 불법·부당한 법 집행이나 탄압으로부터 국회의원을 보호하여 국회의 자주적 입법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면책특권'도 그렇다.

면책특권의 역사는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첫 물꼬를 튼 이는 존 엘리엇 의원이다. 1624년 찰스 1세 국왕에 맞서 '의회의 특권과 자유'를 요구한 데 이어 1626년에는 왕의 최측근으로, '국왕의 총기를 해치는 간신'으로 불린 버킹엄 공작이 이끄는 내각의 실정을 비판했다. 이에 찰스 1세는 엘리엇을 런던탑에 가뒀고 의회는 업무 거부로 맞섰다.

이후 석방된 엘리엇은 왕의 과세권과 시민에 대한 인신구속을 제한하는 권리청원(1628)을 주도했다. 화가 난 왕은 의회를 해산하고 엘리엇을 포함한 '주동자'를 런던탑에 다시 가뒀다. 엘리엇은 감옥에서 사망했으나 투쟁은 계속돼 청교도 혁명(1642), 명예혁명(1688)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의회 안에서 말하고 토론하고 의논한 내용으로 의회 아닌 어떤 곳에서도 고발당하거나 심문당하지 않는다'고 명문(銘文)한 권리장전(1689)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후 면책특권은 미국이 이어받아 1771년 연방헌법에 명기됐고 프랑스도 1789년 혁명 때 국민회의가 공포한 칙령에 명시했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45조에 국회의원의 국회 내 발언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 면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면책특권은 추하게 변질됐다. 근거 없는 폭로로 상대방을 공격해도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비열한 정략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담동 술자리' 설(說)이 바로 그렇다.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모여 술자리를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신문기자 출신이다. 기자 생활도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면책특권의 타락을 김 대변인에게서 또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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