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선한 목자(Good Shepherd)에서 근엄한 예수(Pantocrator)

예수그리스도 모자이크. 지금까지 출토된 가장 오래된 예수 그리스도 관련 천연색 이미지다. 영국 도르셋 지방 출토. 4세기. 대영 박물관
예수그리스도 모자이크. 지금까지 출토된 가장 오래된 예수 그리스도 관련 천연색 이미지다. 영국 도르셋 지방 출토. 4세기. 대영 박물관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햄 마굿간에서 태어난 날이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가장 중요한 축일이다. 우리도 크리스마스를 부처님 오신날과 함께 공휴일로 정해 기린다. 새해부터는 대체 공휴일로도 인정할 전망이다. 크리스마스에 성당이나 교회에 가면 기도를 올린다.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우러른다. 천주교 성당의 십자가에는 피흘리며 박해받는 예수그리스도가 새겨졌다. 예수 그리스도 이미지 변천사를 살펴본다.

하기야 소피아. 537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완공됐다.
하기야 소피아. 537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완공됐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 신의 형상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가보자.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4년 당시 비잔티움으로 불리던 도시를 본격 재개발한다. 이어 330년 자기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바꿔 로마제국의 수도로 삼는다. 폴리스(Polis)가 그리스어로 도시이므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라는 의미다.

이 도시는 1922년 오스만튀르크가 무너질때까지 무려 1600년 가까이 로마제국, 동로마제국, 라틴제국, 오스만튀르크의 수도, 유럽 최고 최대의 도시로 군림했다. 중세 동로마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시는 오직 콘스탄티노폴리스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1453년 오스만튀르크 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러 갈 때 주민들에게 길을 물으면 이스틴폴린(Is Tin Polin, 도시로, to the Polis)라며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이 그리스어가 이스탄불(Istanbul)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이스탄불 최대 유적은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 성스러운 지혜)다.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7년 완공시킨 성당이다. 바닥에서 돔 천장까지 높이가 55m나 된다. 900여년 뒤 완공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돔까지 높이가 44m, 다시 200여년 뒤 1626년 완공된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은 돔까지 높이가 41.47m다.

하기야 소피아 내부 이슬람 문구. 이슬람교 모스크에는 신을 나타내는 그림이나 조각이 없다. 대신 경전 문구를 그리거나 조각한다.
하기야 소피아 내부 이슬람 문구. 이슬람교 모스크에는 신을 나타내는 그림이나 조각이 없다. 대신 경전 문구를 그리거나 조각한다.

기독교 초기에 지은 교회가 가장 크다. 이 성당은 1453년 오스만튀르크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이슬람 모스크로 바뀌었다.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정교분리를 선언하고 하기야 소피아를 박물관으로 바꿨다. 모스크 시절 회반죽으로 가렸던 예수그리스도 이미지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현 튀르키예 정부를 장악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 강화정책으로 하기야 소피아는 2020년 다시 모스크로 바뀌었다. 예수그리스도 이미지는 천막으로 가려졌다. 교회에서 모스크로 여러 번 바뀐 하기야 소피아의 운명 속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가 드러난다.

교회로 사용될 때 신의 모습이 있는 것과 달리 모스크로 사용될 때 신의 모습은 없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둘 다 유일신 신앙이지만, 이슬람교는 신을 그리거나 조각하지 않는다. 유일신 알라는 물론 알라의 예언자 무하마드 역시 죽어 알라의 곁으로 갔을 뿐 부활하지 않았고, 그림이나 조각이 없다. 이슬람교 경전 구절만을 적어 넣는다.

예수 그리스도. 1541년 미켈란 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 가운데가 예수 그리스도. 바티칸 박물관 뜰 전시 사진 촬영.
예수 그리스도. 1541년 미켈란 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 가운데가 예수 그리스도. 바티칸 박물관 뜰 전시 사진 촬영.

◆창조주 야훼, 로마 석관과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바티칸 시티로 가보자. 가톨릭의 총본산 교황청이 자리한다. 이곳 시스티나 에배당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2점의 대작으로 이름 높다. 1512년 완성한 천장화 [천지창조]와 1541년 완성한 벽화 [최후의 심판]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벗어나 바로크 양식의 문을 연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지창조]는 크기가 가로 41.2m, 세로13.2m나 된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탁으로 미켈란젤로가 작업에 들어갔다.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는 천장 바로 밑에 높이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와 허리를 뒤로 젖힌 채 고된 작업을 이어갔다. 이때문에 목과 눈에 병까지 생겼다. 천지창조는 구약 창세기를 9장면으로 나눠 그렸는데 그중 아담의 창조를 보면 야훼 하느님 모습이 생생하다.

흰 수염의 근엄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기독교 초기 석관을 보면 로마 남성 복장 토가 차림의 야훼 하느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담의 창조. 미켈란젤로가 1512년 완성한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지창조 천장화. 가운데 야훼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 오른쪽 흰 수염이 노인 모습의 유일신 야훼다. 바티칸 박물관 뜰 전시 사진 촬영.
아담의 창조. 미켈란젤로가 1512년 완성한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지창조 천장화. 가운데 야훼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 오른쪽 흰 수염이 노인 모습의 유일신 야훼다. 바티칸 박물관 뜰 전시 사진 촬영.

◆기독교 초기 선한 목자(Good Shepherd) 예수

19세기 해가 지지않는 나라를 구가했던 식민 제국주의 상징, 영국의 심장부 런던으로 가보자. 대영박물관에는 영국이 지구촌 각지에서 발굴해오거나 약탈하다시피 가져온 수많은 인류사 문화재가 즐비하다. 그 가운데 영국 땅 안에서 발굴된 독특한 유물이 독보적인 아우라를 자랑한다.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다.

모자이크는 다양한 색상의 대리석이나 색을 입힌 유리를 작게는 1mm, 크게는 3-4mm까지 자른 조각 테세라(tessera)로 만든 예술품이다. 건물 바닥을 파 모르타르를 치고 그 위에 테세라를 원하는 형상으로 붙인 시각예술의 일종이다. 바닥에 먼지가 일지 않고, 물에 질척거리지 말라는 취지의 포장기법이기도 하다.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인들이 발달시켜 로마에도 계승됐다. 대영박물관의 예수그리스도 모자이크는 영국 남서부 도르셋 지방에서 출토됐는데, 4세기에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출토된 가장 오래된 천연색 이미지의 예수 그리스도로 꼽힌다.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딸 갈라 플라키디아 묘소에 표현한 예수 그리스도. 450년 완공. 라벤나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딸 갈라 플라키디아 묘소에 표현한 예수 그리스도. 450년 완공. 라벤나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다. 기독교가 지하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며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조각이나 그림이 나온다. 조각은 주로 기독교도 석관에 새겼다. 로마의 토가를 입은 예수 그리스도를 석관에 새겨 넣었다. 루브르에 가면 여러 점의 로마시대 석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탐방장소를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이던 이탈리아 반도 북서부 라벤나로 가보자. 393년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딸 갈라 플라키디아의 묘소가 이곳에 자리한다. 서로마 제국 최후의 절대 권력자 갈라 플라키디아가 죽던 450년 완공됐다. 이 묘소 벽면에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가 탐방객을 맞이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4세기 영국 도르셋 지방 모자이크처럼 온후하고 자애로운 선한 목자(牧者, Good Shepherd) 이미지다. 4-5세기 로마 석관에 등장하는 조각 속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선한 목자의 모습이다.

◆성상 파괴논쟁과 근엄한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예수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뒤, 기독교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던 동로마 제국 황제 레오3세가 726년 성상(聖像) 금지령을 내린다. 야훼 하느님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자들, 순교자들의 그림이나 조각을 금지하고, 기존 것도 없애라는 성상(聖像) 파괴령이었다. 교회의 반대와 콘스탄티누스 6세 섭정이던 황후 이레네의 해제조치로 1차 성상금지령(726년-787년)은 종료된다.

하기야 소피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 하기야 소피아에 1261년 완성한 예수그리스도. 근엄한 예수 판트크라토르 이미지다.
하기야 소피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 하기야 소피아에 1261년 완성한 예수그리스도. 근엄한 예수 판트크라토르 이미지다.

하지만, 813년 동로마 황제 레오 5세가 2차 성상 금지령을 내린다. 레오 5세가 죽은 뒤 황후 테오도라가 843년 금지령을 철회하면서 이후 이콘(Icon)이라는 그림이나 모자이크 등의 형식을 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이미지는 허용됐다. 2차 성상금지령(813년-843년)이 끝나고 9세기 말부터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들을 이스탄불 하기야 소피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중 1261년 제작된 모자이크 속 예수 그리스도는 황금색 휘황찬란한 색조 아래 근엄한 성자의 모습을 띤다.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Christ Pantocrator)의 전형이다. 근엄한 판토크라토르 예수그리스도 성상은 6세기 라벤나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성상 논쟁이 끝난 9세기 이후 대세를 이룬다.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유럽 사회 기독교도들은 12세기 이후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흘리며 십자가에 못박힌 수난 이미지의 예수 그리스도를 빚어낸다.

선한 목자에서 근엄한 신, 이어 박해받는 수난 이미지로 변화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등장한 개신교(Protestant)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없는 십자가를 예수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삼을뿐, 그림이나 조각으로 예수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지 않는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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