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자 권은실이 선생님께 인사 올립니다.
지난 15일 스승의날은 제게 또 다른 각별한 스승의 날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하늘로 보내드리고 난 뒤 처음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만 해도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님과 함께 저와 다른 제자들이 모여서 지난 추억 떠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말입니다. 올해는 사모님을 모시고 선생님을 추억했는데 선생님의 옛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것대로 재미있긴 했지만 선생님의 빈자리는 어쩔 수 없이 느껴지더군요.
선생님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몇 개 추려봤습니다. 진지함, 성실함, 정직함, 냉철함…. 어찌보면 뭇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가와 어울리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입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제자들은 이 단어들이 선생님을 지역 음악계의 어른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덕목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레슨과 수업을 시작하면 항상 철저함과 엄격함으로 저희들을 가르치셨었죠. 그래서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을 무서워한 부분도 있었고,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성실하지 않으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이름높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냉철하고 진지한 사람'으로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선생님 곁에서 연구실 조교로 일했던 저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따뜻한 면도 너무 많으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스승의 날이나 모임에서 항상 식사비용을 직접 내시면서 제자들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해 주신 점은 어찌보면 작은 부분입니다.
음악인으로 살다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서 음으로 양으로 제자들에게 많이 베푸셨던 모습을 옆에서 자주 봐 왔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저는 선생님의 따뜻한 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영남작곡가협회 결성이라던가 동아시아작곡가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지역 음악계에 저변을 넓히려 노력하셨던 모습에서 선생님의 음악과 지역 음악계를 향한 열정을 보았습니다.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을 작곡하실 때 80대의 고령의 나이에도 매일 10시간 넘게 작업을 하셨고 그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가서 힘들어하셨지요. 그 모습을 보며 '선생님의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따라가려면 난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연로하셨어도 제자들이 찾아가면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맞아주셨는데 이렇게 빨리 저희들 곁을 떠나가실 줄은 예상도 못 했습니다. 아직도 선생님의 제자들은 선생님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선생님의 제자들 중 일부는 스승의 날 때 선생님 묘소를 찾아가기도 했고 어떤 제자들은 사모님을 찾아와서 선생님의 부재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모두 선생님을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라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선생님, 지난 3월부터 대구예술발전소 3층에서 선생님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생전부터 준비해 오던 전시였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선생님과 함께 자료 정리와 보존을 위한 작업을 해 왔던 것이 전시회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준비하면서 선생님이 모아두신 자료를 목록화해 정리해 두신 모습을 보고 선생님의 철두철미한 성격을 다시금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정리된 모습을 모두 보고 전시회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좋아하셨을텐데 이를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제자로써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선생님 돌아가신 뒤에 가족 분들은 "늘 음악만 생각하던 분이니 하늘에서 좋아하는 음악 실컷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선생님, 선생님의 음악에 대한 열정, 철저함 등은 저희 제자들이 본받고 이어나갈테니 이제 하늘에서는 편하게 음악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제자들은 선생님을 늘 마음에 담고 살아가겠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문의 전화: 053-251-1580
▷사연 신청 방법
1.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혹은 매일신문 홈페이지 '매일신문 추모관' 배너 클릭 후 '추모관 신청서' 링크 클릭
2. 이메일 missyou@imaeil.com
3. 카카오톡 플러스채널 '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검색 후 사연 올림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