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 초대석]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지난 세기 경북이 낳은 최고의 영웅은 박정희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 머슴처럼 일하다 간 지도자였다. 그는 객관적이었다. 고향을 의식하지 않고 여건을 갖춘 곳을 선정했기에, 임해(臨海) 지역인 울산과 창원, 광양을 발전시켰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 덕택에 고등교육을 받은 신예들은 그를 매판 독재자라 비난했다. 그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며 외면하고 중화학공업까지 밀어붙인 뒤 드라마틱한 최후를 맞았다.

그의 시절엔 경제가 폭증했기에 TK는 으쓱했으나, 지금의 경북은 인구 감소로 소멸될 군(郡)을 가장 많이(20곳) 가진 지역이 됐다. 사람이 줄면 돈도 적어진다. 박정희는 지리 조건을 따져 산업을 배정했기에 고향엔 포스코와 구미단지, 전국 원전(原電)의 46%만 남겨 주었다. 그래서 경북은 배가 고픈데, '방사능 망령'에 젖어 있다.

1945년 8월 남해에 가까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다. 한여름이었으니 산지사방으로 확산된 방사성 물질은 쏟아지는 비와 함께 지상에 떨어져 바다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그때 남해에서 잡은 꽁치와 고등어를 먹고 방사능에 오염된 우리 국민이 있었던가?

후쿠시마 사고는 원자로 건물이 찢어져 핵 증기가 새어 나간 경우였다. 지난 12년 동안 후쿠시마에도 비가 내려 방사성 물질을 쓸고 바다로 들어갔지만 인근 주민이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보고는 없었다. 인근 숲의 원숭이 무리도 조사했지만 기형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없었다. 생각보다 하늘과 바다는 넓어서 무한 희석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 선거사(史)는 보수와 진보 유권자 비율이 대략 51대 49임을 보여준다. 보수가 분열하거나 대거 기권하지 않는 한, 진보는 선거에서 이기기 못한다. 그래서 '정치공학'이 동원된다. 1.1%포인트만 높이면 그만큼 상대의 표는 줄어드니 이길 수 있다. DJ는 보수의 한 축인 JP와 DJP 연합을 만들어, 노무현은 정몽준과 단일화하는 정치공학으로 성공을 했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에 패한 문재인 캠프는 8대 필승 전략을 마련했다. 우리 원전 단지는 호남에 1곳, 영남에 4곳 있다. 그때는 후쿠시마 사고로 반핵 기운이 높았다. 문재인 진영은 탈핵을 내세우면 영남의 원전 지역 주민들도 일부는 지지해 줄 것으로 보았다. 1천만 명 정도인 애견 인구를 의식해 '개를 사랑한다'고 하면 또 지지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8대 전략으로 1.1%포인트만 긁어모으면 19대 대선은 이긴다고 봤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쉽게 당선됐다.

그리고 높은 지지율을 만들기 위해 탈핵 정책부터 풀어 나갔다. 그렇게 해서 커져간 망령을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으로 겨우 잡았다. 그러나 망령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많다. 후쿠시마 사고는 원폭 폭발보다 훨씬 약한 것이다. 이들은 실전에서 사용된 원폭은 두 발이지만, 대기권 실험으로 터뜨린 '더 센 원·수폭'이 2천여 발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경북이 살아나려면 박정희처럼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46%의 원전이 경북 재건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구석기 이래 초목(草木)으로만 불을 지피던 인류는 청동기 시대를 맞아 돌(석탄), 150여 년 전부터는 액체(석유)도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은 더 나은 에너지원으로 기체(수소)를 사용하고자 한다.

물(H₂O)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를 얻을 수 있다. 우리 땅에는 석탄과 석유, 우라늄은 적지만 물은 풍부하다. 우리는 APR-1400이라는 대형 원전도 갖고 있다. 이 원전은 숱한 안전 검사를 통과했기에 우리와 UAE에 건설됐고 미국과 유럽에도 수출 허가를 받아 놓았다. 물을 분해할 전기를 APR-1400으로 생산해 보자.

SMR이라는 소형 원전이 주목을 끌고 있는데, SMR은 승인은커녕 개발도 하지 못한 것이다. 발전 용량은 APR-1400의 4분의 1 정도이니, 당연히 발전 단가는 비싸다. 그런데도 SMR로 수소를 생산하자는 이상한 아이디어가 힘을 얻고 있다. APR-1400은 위험하다는 망령에 속은 탓이다.

2005년 경주가 주민투표로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해 한수원 본사도 품게 됐다. 경북 동해안에는 원전을 지어도 좋은 부지가 제법 있는데, 울진군이 원전 전기를 이용한 수소 생산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시도가 생각하지 못한 임해산업단지를 만들 수 있다. 박정희를 낳은 경북은 기우(杞憂)에 빠져 있지 말고 담대하게 나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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