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겨울 국민간식 귤, 대구에서도 재배

제주도 과수원에 밀감나무에 황금색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제주도 과수원에 밀감나무에 황금색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꿀꿀 꿀맛 같은 귤

새콤달콤 꿀맛 같은 귤

꿀꿀 꿀맛 같은 귤

동글동글 꿀맛 같은 귤

(반복)

노란 껍질을 벗겨요

맛있게 먹어요

한쪽 두 쪽 나눠서

사이좋게 먹어요(이하 생략)

동요 「귤송」의 가사 일부다. 달콤한 귤을 꿀맛 같은 귤이라고 표현하며 귤과 꿀이 반복되는 노랫말이 재미있다. 바야흐로 12월은 귤이 제철이다. 시장이나 과일가게에 귤 상자가 넘쳐난다. 귤이 겨울철 '국민과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80년대부터 국내 경제 성장기와 맞물려있다. 1970년대 이전에만 해도 귤은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과일이었다. 귤나무가 귀했고 생산지역 또한 제주도로 한정됐을 뿐만 아니라 귤의 생산량이 적어서 서민들이 맛보기에는 값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식량자급이 어려웠던 시절 귤은 쌀보다 비쌌다.

◆귤은 임금님 진상품

맛있는 과일 귤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재배됐을까? 문헌에 귤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다. 백제본기 4편에 "백제 문주(文周)왕 때인 476년 탐라에서 지역 특산물로 헌상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제주도에서 재배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문종 때 제주도에서 세금으로 거둬오던 귤의 양을 늘렸다고 한다. 임금에 진상된 귤은 팔관회 행사나 왕실의 연회, 사신의 접대, 신하들의 선물 등으로 사용됐다.

고려 문장가 이규보가 남긴 『동국이상국집』에는 보광사 스님이 한밤에 내놓은 금귤, 옛날 어전에서 임금이 주시던 귤, 궁중연회에 참여하고 돌아올 때 임금이 하사해준 감귤 등을 경험했다고 나온다. 특히 제주태수 최자(崔滋)가 동정귤을 보내오자 고마운 마음에 세 수의 시로 화답했다. 귤이 제주도에서만 생산되는 귀한 것이어서 문벌가에서도 얻기 어려운데 먼 바다 건너에 있는 자신에게 보내오자 감격해서 고마움을 시로 남겼다.

조선시대에도 임금에게 귤을 보냈다. 해마다 동지가 되면 제주도에서는 귤을 진상했고, 임금은 답례로 제주목사에게 베와 비단 등을 하사했다.

향나무 단의 향기는 유독 코에만 맞고

(檀栴偏宜於鼻 단전편의비)

기름진 고기는 유독 입에만 맞을 뿐

(脂膏偏宜於口 지고편의어구)

동정귤이 가장 사랑스럽나니

(最愛洞庭橘 최애동정귤)

코에도 향기롭고 맛도 달아서 일세

(香鼻又甘口 향비우감구)

세종은 1448년 효령대군이 서울 양화나루 옆에 지은 정자 희우정에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세자 문종을 대동하고 행차했다. 그날 동궁은 동정귤 두 쟁반을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귤을 모두 나눠주자 쟁반 바닥에 쓰여 있었다는 「동정귤」(洞庭橘)이라는 시다. 신하들에게 시를 지어 들이게 하니, 안평대군과 성삼문, 임원준이 각각 시를 지어 올렸고 안평대군은 그때 사연을 서술한 글과 시를 손수 쓰고, 그림 잘 그리는 안견(安堅)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조선시대 야사, 일화, 만록, 수필 등을 모아 엮은 책 『대동야승』(大東野乘)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주 하귤은 3월에 익기 시작하여 여름에 수확한다. 맛은 새콤달콤하지만 뒷맛이 쌉싸름하다.
제주 하귤은 3월에 익기 시작하여 여름에 수확한다. 맛은 새콤달콤하지만 뒷맛이 쌉싸름하다.

◆환서일치(還書一瓻)의 선물, 황귤

요즘도 귤 한 상자를 선물로 받으면 기분이 좋다. 하물며 귤이 귀하던 조선시대에 귤 선물은은 아주 훌륭한 사례 물품이었다.

노란 귤 세 개로 술 한 병 대신하니

(黃橘三枚代一瓻 황귤삼매대일치)

옛날 성현들의 풍범이 이와 같았네

(昔賢風範有如斯 석현풍범유여사)

사문을 세상에 빛내고 어진 이와 친했으니

(斯文赫世親仁契 사문혁세친인계)

우리 양가 사람들이 감히 알지 못하겠는가

(吾兩家人敢不知 오양가인감부지)

조선 중기 문신 유희춘의 문집 『미암집』(眉巖集)에 있는 「지평 성혼에게 답한 편지」[答成持平 渾 書]에 나오는 칠언절구 시다. 옛 선비들은 책을 빌렸다가 읽고 돌려줄 때 술 한 병으로 보답하는 '환서일치(還書一瓻)'의 풍습을 지켰다. 빌린 『대학』을 손수 베끼고 난 뒤에 책을 돌려주면서 술 대신 귀한 귤 세 개로 감사의 정을 표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의 아름다운 관습의 한 단면이다.

명종 때부터 제주도에서 귤을 진상하면 과거를 시행했는데 이른바 '황감제'(黃柑製) 혹은 '감제'(柑製)다. 매년 성균관의 명륜당에 모인 유생들에게 귤을 나눠준 뒤에 열렸고, 이 제도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다산 정약용도 24세 때에 감제의 초시에 수석 합격했다.

제주 하귤은 3월에 익기 시작하여 여름에 수확한다. 맛은 새콤달콤하지만 뒷맛이 쌉싸름하다.
제주 하귤은 3월에 익기 시작하여 여름에 수확한다. 맛은 새콤달콤하지만 뒷맛이 쌉싸름하다.

◆세정 문란에 귤나무도 위기

조선 중기 문신 김상헌이 제주도 백성을 달래기 위해 안무어사로 파견돼 남긴 「남사록」에는 "해마다 7, 8월이면 목사는 촌가의 귤나무를 순시하며 낱낱이 장부에 적어두었다가, 감귤이 익을 때면 장부에 따라 납품할 양을 조사하고, 납품하지 못할 때는 벌을 주었다. 이 때문에 민가에서는 재배를 하지 않으려고 나무를 잘라버렸다"라고 적혀 있다.

제주도 백성의 귤 진상과 관련해 기막힌 사연이 다산 정약용의 「탁라공귤송」(乇羅貢橘頌)에 그대로 들어있다. 어느 해 감귤 꽃이 한창 피었을 때 태풍이 몰아친 탓에 꽃이 모두 떨어져 귤을 수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주도 백성들이 모두 귤나무를 부둥켜안고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임금의 은택을 져버리는 일이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귤만은 달리게 해달라"고 울부짖었다.

백성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놀랍게도 열흘쯤 지나서 세 그루에서 꽃이 피었고 백성들이 잘 보살폈다. 예년보다 수확이 늦어지고 자연히 공물도 늦잡죈 것이었다. 이에 다산은 백성들의 정성과 노력을 후일 징표로 삼으려고 시를 지었다고 밝혔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세정이 문란해지고, 관리의 수탈이 심해지자 제주 귤은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된다. 바람 많은 제주도의 자연재해로 귤이 떨어지거나 상해서 수확량이 줄면 절도죄로 애먼 백성을 처벌했다. 벌을 피하려면 닭, 돼지 등을 바치거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으니 귤 농사를 기피했다. 자칫하면 집안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니 농민 스스로 나무를 베어 버리고 뿌리를 뽑아내는 일도 잦아졌다. 자연히 그들이 키우던 좋은 품종의 귤나무도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게 됐다.

금귤나무에 금귤이 주렁주렁 열려 았다. 금귤은 껍질째 먹을 수 있고 맛은 새콤달콤하다.
금귤나무에 금귤이 주렁주렁 열려 았다. 금귤은 껍질째 먹을 수 있고 맛은 새콤달콤하다.

◆다양한 귤 품종

조선 선조의 손자 이건(李健)은 제주도에서 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긴 『제주풍토기』에 다양한 귤의 품종을 소개하고 있다. "감자(柑子)라는 종류의 이름은 아주 많다. 감자, 유자(柚子), 동정귤(洞庭橘), 금귤(金橘), 당금귤(唐金橘), 황귤(黃橘), 산귤(山橘), 유감(柚柑), 당유자(唐柚子), 청귤(靑橘) 등 모두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조선시대에 제주에는 다양한 품종의 귤나무가 재배됐다.

가혹한 세정 탓에 시들해진 귤 농사가 다시 시작된 때는 개화기다. 제주도의 전통적인 품종은 찾아보기 힘들고 온주(溫州)밀감이 제주를 덮어 버렸다. 온주는 중국 저장성의 원저우(溫州)를 말하는데 이곳의 귤나무를 일본에서 씨가 없는 감귤로 개량했다. 제주도 최초 온주 밀감나무를 들여온 사람은 에밀 타케 신부다. 제주도 왕벚나무 자생지를 처음 발견한 타케 신부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신부들에게 한라산 왕벚나무 몇 그루를 보냈고, 1911년 온주밀감나무 14그루를 답례로 받았다.

제주도에서 감귤재배가 확산되는 계기는 1964년 2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순시에서 감귤을 중점적으로 키우라는 지시다. 귤나무 재배지가 늘었고 귤 농사는 성황을 이뤄 당시 귤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말이 생겨나 '대학나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천혜향
천혜향

요즘 나오는 귤의 품종이 다양하다. 감귤과 다른 품종 간의 인공 수분으로 많은 교잡종을 탄생시켰다.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등이 대표적이다. 한라봉은 일본에서 1980년대 청견과 온주밀감을 교배시켜 육종한 품종으로 1990년대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천혜향은 밀감류와 오렌지류를, 황금향은 한라봉과 천혜향을, 레드향은 온주밀감과 한라봉을 교잡해서 만든 품종이다.

온주밀감은 수확시기에 따라 10월 초순에 수확하는 극조생, 조생, 중생, 만생으로 나뉜다. 감귤 수확이 끝날 쯤 한라봉을 비롯한 다른 품종 출하돼 겨우내 신선한 귤 맛을 즐길 수 있다. 개량종의 특징은 산도가 낮고 단맛이 강하다.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예리 김찬숙 씨의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한라봉.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예리 김찬숙 씨의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한라봉.

◆대구경북서도 본격 재배

귤나무는 상록수로 추위에 약해 제주도에서 잘 자란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귤 재배 지역이 북상해 대구경북에서도 비닐하우스 시설 재배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들 중에는 시설하우스에서 수백 그루를 재배하는 농가도 있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제주도산 밀감과 가격경쟁이 되지 못하지만 체험농업, 관광농업 위주의 6차 산업으로 영농하고 있다.

제주에서 30년가량 밀감나무를 재배하다 경북 고령으로 이주하여 10여 년 동안 한라봉을 재배하는 농민도 있다. 그는 "제주도보다 토질이 살아있고, 일조량이 좋고, 온도 편차가 심해 과일 당도가 매우 좋다"면서 "1월 초부터 수확하면 설 대목에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고 말했다. 처음에 탱자나무에 한라봉 가지를 접목해 시험 삼아 재배했더니 당도가 13브릭스 이상 나와 고령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10여 농가로 구성된 작목반에 재배 노하우를 공유하며 재배 면적을 넓히고 있다.

◆굴원의 강직한 성품 빗댄 「귤송」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절 자신의 당호를 '귤중옥(橘中屋)'이라 짓고 그 뜻을 밝혔다.

매화, 대, 연, 국화는 어디에도 다 있지만 귤에 있어서는 오직 내 고을의 전유물이다. 겉 빛은 깨끗하고 속은 희며 빛깔은 푸르고 누르며 우뚝한 지조와 꽃답고 향기로운 덕은 다른 것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므로 나는 그로써 내 집의 액호(額號)를 삼는다.<『완당전집』 권6, 「귤중옥서」(橘中屋序)>

'겉 빛은 깨끗하고 속은 희며 빛깔은 푸르고 누르며'라는 구절은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이 귤나무를 예찬한 「귤송」(橘頌)에도 나온다.

푸른 것 누런 것이 한데 열려

(靑黃雜糅·청황잡유)

껍질도 눈부시게 빛나네

(文章爛兮·문장란혜)

매끄러운 겉 빛깔에 속이 희어서

(精色內白·정색내백) <『초사』(楚辭) 권4, 「9장」 중에서>

「귤송」은 굽힐 줄 모르는 굴원 자신의 성품을 귤나무에 빗댄 젊은 시절의 작품이다. 굴원은 왕의 신임이 두터워 왕과 국사를 논했지만 강직한 성품 때문에 주위에 정적을 만들었고 결국 간신의 모함을 받아 멀리 강남으로 쫓겨났다. 굴원은 5월 5일 멱라수(汨羅水)에 스스로 투신함으로써 자신의 지조와 충정을 보여줬다. 이후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낸 풍습이 단오가 됐다.

맛있게 먹는 귤 하나에 농민들의 피땀뿐만 아니라 유구한 역사의 자양분이 녹아있다.

이종민 언론인 chunghama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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