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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방희는 천상 글쟁이·경상도 사나이…빙긋한 미소 지금도 그리워"

황인동(전 청도 부군수) 씨의 문인 친구 고(故) 박방희 시인

대구문인협회 활동 당시 동갑내기 삼총사. 왼쪽부터 황인동 시인, 고(故) 박방희 시인, 방종현 수필가. 방종현 제공
대구문인협회 활동 당시 동갑내기 삼총사. 왼쪽부터 황인동 시인, 고(故) 박방희 시인, 방종현 수필가. 방종현 제공

대구문인협회 제13대 회장(2018~2021)을 지낸 고(故) 박방희 시인이 세상을 떠난지 1주기를 맞았다. 박방희 시인은 천상 글쟁이이고 경상도 사나이의 표본이었다.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가슴속 따스하고 애잔한 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많은 지인이 그의 빙긋한 미소를 지금도 그리워한다.

대구문인협회 활동 당시 소위 동갑내기 삼총사라 불렸던 박방희, 방종현, 황인동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했다. 지난해 9월 어느 날 '뭐 할 건데'하고 전화로 물었더니 '지난 밤 소주 한 병 들고 고향 가는 꿈을 꿨다며 추석 전 산소에 한번 갔다올란다'고 했다.

그날 이후 병원에 있다며 소식이 뜸해지고 내가 보낸 안부는 삼킨 채 캄캄한 적막만 되돌아왔다. 그 적막이 길어지면서 박 시인의 지난 병력을 알고 있기에 내 상념 가득히 소독 내음이 묻어나면서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었다.

방희는 성격이 늘 긍정적이고 체력 또한 타고난 체질에다 먹성도 좋고 느긋하여 거뜬히 이겨낼 줄 믿고 있었다. 그런데 2022년 12월 6일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그의 1주기 기일 날인 지난 6일 그와의 추억을 다시금 상기했다. 우리 삼총사는 흉허물없이 지내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삼총사 모두 문인협회 임원을 맡고 있어 문인협회 행사의 대소모임에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어 더욱 그러했다. 우리는 갑자기 서로가 보고 싶을 때 동시에 만나자며 전화를 걸어오고 전화를 걸며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 대구문인협회 협회장(葬)으로 그를 보내면서 애통했던 마음이 다시금 눈물 젖는다.

대구문인협회 활동 당시 동갑내기 삼총사. 왼쪽부터 방종현 수필가, 고(故) 박방희 시인, 황인동 시인. 방종현 제공
대구문인협회 활동 당시 동갑내기 삼총사. 왼쪽부터 방종현 수필가, 고(故) 박방희 시인, 황인동 시인. 방종현 제공

방희야! 니캉 내캉 종현이캉 셋이 도원결의는 안해도 삼총사로 많이 어울렸지. 자네는 마술을 잘 부리니 장막뒤에 숨었다가 인자 고마 숨고 나온나하면 쨘~하고 나타날 것만 같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자네가 하도 보고싶어 억지 소리해보았다. 종현이나 내나 얼마 안있으면 니 있는데로 갈 것이다. 삼총사 어울릴 자리 잘 잡아놔라 방희야! 지금 이곳은 한해 중 가장 차가운 대설 절기다. 자네가 있는 천국은 항상 따듯한 봄날이겠지?

자네와 함께했던 문인협회 내 동갑내기 모임인 '몽돌회'에서는 해마다 봄맞이하러 갔었지. 미나리가 나는 철이면 미나리 먹으러 청도도 가고, 포도가 익어가면 영천도 가고, 자네 고향인 성주도 갔었지. 자네 고향 성주로 갔을 때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가던 자네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생각나네. 자네 시(詩)에 있는 '백내'도 가보았지.

'어느 해 여름 장마에 큰 물이 지고 백내 황톳물이 학교 가는 길을 가로막아/ 그 도도한 흐름 앞에 망연히 서 있을 때/ 함께 건너자며 손 내밀었지요/ 가늘고 긴 팔뚝으로 파르라니 또 다른 강이 흐르는데/ 그 손 잡고 둥둥 허리까지 차오는 물 건넜지요/ 물 다 건너면 잡은 손 놓아야 된다는 생각에/ 아득히 손잡고 떠내려갔으면 했지요/ 우리 20리 등하굣길 둑에 핀 두 떨기 꽃처럼 한정 없이 떠내려가/ 먼먼 바다에 가 닿아도 좋으리라 생각했지요/ 젖은 교복치마 내리며 임은 내게 미소 지어 보이곤 돌아서 갔지요/ 그때 우리가 건넌 게 그저 백내의 냇물뿐 이었는지/ 우리 인연의 한 굽이를 건너거나/ 이승의 한 생을 건넌 것은 아니었는지/ 그 여름 손잡고 내 건너던 때 생각하며 멍하니 오래 서있곤 하지요/ 새하얀 팔뚝에 흐르던 파란 정맥의 강이 내게로 흘러 들어와/ 내 몸은 언제나 임 있는 쪽으로 열리는데/ 임께선 언제 돌아와 이승의 못다 건넌 내마저 건너려는지/ 혼자서는 못 가 닿을 피안으로 임 손잡고 건너 갈 꿈꾸며/ 아직도 까까머리 중학생은 그 냇가에 서있는데….' (박방희 '백내(白川)')

방희야! 까까머리 때 함께 개울을 건넜던 그 여학생은 만났는지? 우리 인생은 유한한 것 아니겠냐. 우리도 곧 자네를 따라갈 것이네, 우리 천국에서 만나 회포를 풀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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