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의사 증원만이 필수의료 해법인가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이준엽이비인후과의원 원장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이준엽이비인후과의원 원장.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이준엽이비인후과의원 원장.

정부는 의사가 부족하여 국민들이 불편하니 의사를 증원하겠다고 한다. 다다익선이라고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아 보이니 덩달아 지지율도 올라간다.

그런데, 의사만 증원하면 필수의료가 살아나고 도서 벽지 의료 공백이 해결될까?

2021년 OECD 통계상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한국과 일본이 2.6명으로 평균보다 적다. 의사가 가장 많은 나라는 그리스로 1천 명당 6.3명이다. 의사 수만 보면 그리스가 의료 선진국이나 실상은 의료 접근성, 수준 모든 면에서 한국이 압도한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의사가 많은 대다수 유럽 국가의 의료 접근성과 수준은 암울하다. 의사를 증원하자는 측 논리대로라면 의사가 많은 나라들의 의료 질이 더 높아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

왜 그럴까? OECD 통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1년간 의사의 진료를 받는 횟수는 15.7회인 반면 그리스인은 2.7회다. 그리스는 의사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 국가이다. 그리스 의사의 연간 진료 횟수는 428회로 하루에 단 2명만 진료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 의사 연간 진료 횟수는 6천113회로 15배 더 많다.

이는 국가별 의료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그리스의 경우 의사가 열심히 진료해 환자를 많이 봐도 근무 강도만 높아지고 급여는 동일하니 환자를 많이 보지 않는다. 최대한 천천히 진료하는 것이 의료사고도 예방하고 근무 강도를 낮추는 법이다 보니 유럽 의사들은 오히려 의사를 더 뽑아 달라고 요구한다.

한국은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해 건강보험하에서 미용 등을 제외한 필수의료 가격을 정부가 통제한다. 진료비도 저렴한데 내원 횟수마저 제한이 없으니 국민들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의료비를 '수가'라는 항목으로 강제 지정한 건 유럽과 유사하나 준공무원인 유럽 의사와 달리 한국 의사는 개인사업자이기에 의사 스스로 투자, 고용, 운영을 한다. 근무 강도를 높여 환자를 열심히 보면 소득이 느니 노동 강도는 올라가도 열심히 진료에 매진한다.

즉 의사가 일을 많이 하니 통계상 의사가 적어도 유럽과는 차원이 다르게 병원에 가기 쉽고 또한 그만큼 진료 및 수술 경험이 쌓이니 의료 수준도 세계 최고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저수가로 인한 문제점이 점점 나타나고 있다. 예로 출산율이 높아 소아가 많을 때는 박리다매 진료로 소아과가 유지되었으나 소아 인구가 줄고 선의의 의료 행위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과도한 형벌을 가하니 위험도 대비 보상이 적은 필수의료는 지원을 기피하고 기존의 필수의료 전문의마저 전공을 변경하는 상황이니 필수의료 부족 사태가 생기고 있다.

지방에는 인구가 적어 환자 수는 적으나 의료수가는 대도시와 동일하게 저렴하다. 인구가 적으니 소아과 박리다매식 진료도 통하지 않고 분만 건수가 적으니 폐업하는 산부인과도 속출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를 증원해 봐야 위험도 낮은 분야로 의사가 빠질 뿐 필수의료를 전공할 의사는 없으며 더 큰 문제는 국가가 건강보험으로 의료비를 정한 대신 일부를 건강보험에서 보조해 주는 현 시스템하에서 의사 공급만 늘리면 전체 의료비 총액이 늘어 건강보험료 인상은 필연적이며 이는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험 대비 보상 많은 직종을 선호할 것이며 의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수의료 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맞추고 선의의 의료 행위에 징벌적 제재만 가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를 떠난 의사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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