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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환상 속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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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지금이야 손쉽게 구하지만 1991년 농산물 수입 자유화 이전까지 고급 과일로 통했던 바나나는 1970~80년대 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환상 속의 과일'이었다. 1977년 바나나 16개 한 송이 가격은 5천500원. 자장면 한 그릇이 200원 정도였으니 서민 가정에서 맛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상상만 하는 맛은 구전되기 마련이다. 백문(百聞)의 바나나 맛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맛의 일반화, 계량화도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체리, 바나나, 멜론 등 수입 과일은 비슷한 향을 낸 사탕으로 대리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다 보면 석류 과자에 환상을 품게 된다. 접대 음식으로 반복해 등장하니 소설판 PPL(간접 광고)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석류를 재료로 한 과자가 없으니 상상만 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당들을 설레게 한 술 중에 '압생트'라는 게 있다. 역시나 환상이 만들어낸 아우라로 배가된 향미와 취기라 볼 수 있다. 30년산 위스키든, 어떤 술이든 과음하면 제정신이 아닌 건 동일하다. 압생트에 만취해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타고 윤색돼 생겨난 환상이다.

맥주 애호가임을 강조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테네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달리다 35㎞ 지점 땡볕 아래에서 맥주 한 모금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42.195㎞를 완주한 뒤 마침내 시원한 맥주를 마셨는데 상상하던 맛이 아니었다고 한다.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건만 외부적 요인에 의해 깨지기도 한다. 장기 회원 계약으로 돈만 챙기고 폐업해 버리는 '먹튀' 영업장이 대표적이다. 다이어트 성공, 몸짱 되기 등의 최면성 환상은 '먹튀'로 물거품이 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만 단단한 생활인마저 의지가 꺾이게 된다. 그러나 쉽게 인생을 얘기하지 않고, 환상을 현실로 만들려던 모든 노력의 시간은 결코 멈추어질 순 없다. 바로 지금이 먹튀 방지 법제화에 나서야 할 순간이다. 무엇을 망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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