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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시대의 창]대한민국의 다음 30년은 숙련인재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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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대한민국은 늘 사람으로 성장한 나라였다. 국토는 좁았고 자원은 부족했다. 석유도 철광석도 없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산업화를 이끈 것도 사람이었고, 반도체를 만든 것도 사람이었으며, 세계 최고의 조선업을 일군 것도 사람이었다. 오늘 AI가 세상의 속도를 바꾸고 있지만,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마지막 변수는 여전히 사람이다. 한마디로 사람에 대한 투자가 최고의 산업정책이다.

오는 9월 9일은 숙련기술인의 날이다. 2023년 숙련기술장려법 개정으로 법정기념일이 된 지 이제 3년째, 해마다 이날을 기리는 행사가 뜻깊게 이어지고 있다.지난 6월 30일에는 입법 3주년 기념행사도 개최됐다. 그러나 기념일 지정이 기능인의 노고를 기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교육·산업정책과 지역균형발전도 결국은 모두 사람을 키우는 정책이라는 하나의 철학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정책의 이름은 서로 달라도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독일에는 마이스터가 있다. 마이스터는 단지 숙련공이 아니라 국가가 인정하는 기술적 권위이자 사회적 존경의 상징이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세계 정상권을 지켜온 것도 이 땅 기능인들의 묵묵한 축적의 힘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공로에 걸맞은 사회적 존중은 늘 한 박자 늦었다.

기능교육은 '차선'으로 밀려났고, 숙련의 가치는 임금과 승진 체계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와 제조업 기피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청년들이 숙련의 길을 선택할 유인은 갈수록 약해졌다.이제 대한민국도 우리만의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K-MEISTER 2035'라는 국가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직업계고와 폴리텍, 대·중소기업 현장과 연구기관, 국가기술자격과 평생직업능력개발까지 분절된 경로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디지털·신산업 교육이 자격으로 인정받고, 그 자격이 기업 간 장벽 없이 현장 경력으로 축적되며, 다시 더 높은 숙련으로 이어지는 끊김 없는 사다리. 대한민국이 반도체와 조선 강국으로 성장한 것도 결국 오랜 시간 축적된 숙련의 힘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숙련기술 정책이 가져야 할 다음 30년의 브랜드다.

그러나 숙련은 교육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사다리를 놓아도 그 끝에 기다리는 보상이 초라하다면 청년들은 선뜻 발을 올려놓지 않는다. 비전이 현실이 되려면 보상과 형평성, 그리고 산업생태계라는 세 층위의 노동시장 구조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

첫째, 근속연수 중심의 호봉제를 직무와 숙련 중심의 임금체계로 점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숙련의 깊이가 임금의 기준이 될 때 청년들은 비로소 기술의 가치를 믿고 숙련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둘째, 업종·지역 단위의 사회적 대화와 교섭을 활성화해야 한다.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숙련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중소기업의 기능인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셋째, 원청과 협력업체가 함께 숙련인재를 육성하고 그 성과를 공정하게 나누는 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숙련은 한 기업만의 자산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숙련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산업 현장을 지탱해온 베이비부머 기능인들이 빠르게 은퇴하고 있지만, 그 자리를 채울 청년의 발걸음은 갈수록 뜸해지고 있다. 조선소와 뿌리산업 현장에서는 숙련공 부족이 이미 생산 차질로 이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술은 문서로 전수되지 않는다. 손끝의 감각과 현장의 경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이어진다. 지금 숙련의 다리를 놓지 않으면, 그 단절은 되돌리기 어려운 산업의 공백으로 남을 것이다.

AI가 산업의 속도를 결정한다면 숙련은 산업의 품질을 결정한다. AI가 계산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로봇이 반복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미래를 만드는 것은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은 자원이 아니라 사람을 키워 선진국이 된 나라다. AI 시대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술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숙련을 존중하고 그에 걸맞은 교육과 노동체계를 갖춘 사회만이 진정한 기술강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다음 30년은 결국 숙련인재를 얼마나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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