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매 父·15년 돌본 아들 숨져…대구서 또 '간병 살인' 비극 (종합)

가족 부담 덜어줄 정책 마련 시급
노인 10명 중 1명, 치매 환자…정부 요양서비스 강화책에도 간병 가족들 돌봄 부담 여전
"개인 삶 병행 가능한 대책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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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돌보던 가족을 해치는 '간병 살인'의 비극이 또다시 반복됐다. 정부가 매년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속에 간병 가족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파격적인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대구 달서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18분쯤 달서구 월성동의 한 아파트에서 치매를 앓는 80대 아버지와 그를 돌보던 5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아들이 집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뒤 본인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아들은 약 15년 전부터 치매를 앓았던 아버지를 극진히 돌봐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고 지자체로부터 이렇다 할 다른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상도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워낙 조용한 집인 탓에 80대 노인이 살고 있는 것도 몰랐다"고 입을 모을 뿐이었다.

간병 살인 사례는 최근 대구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남구 이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아버지가 1급 뇌병변장애를 가진 40대 아들을 살해한 뒤 본인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일이 있었다. 앞서 2022년 3월에는 수성구의 한 주택에서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50대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아들이 징역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매년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가족 간병에 대한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857만 7천830명 중 치매환자 수는 88만 6천173명으로 추산된다. 이미 노인인구 10명 중 1명은 치매 환자인 셈이다.

정부는 전국 256개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해 환자들을 지원하고, 중증치매환자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 관련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특히 장기요양서비스 및 지역사회 노인 돌봄은 국정과제로 두고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반면 간병 가족들은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입장이다. 5년 전부터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50대 박모 씨는 "처음에는 정부 지원을 통해 돌봄 서비스를 이용했었지만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된다. 결국 부담은 가족이 지는 것"이라며 "치매를 전문으로 하는 요양시설이 없고, 일반 요양병원에 모셔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계속 생겨 걱정이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현재 요양서비스 제도로는 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대구광역치매센터장으로 활동하는 김병수 칠곡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행 장기요양시스템이 '요술 지팡이'는 아니다. 방문요양서비스와 주간보호센터 모두 이용시간의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며 "가족들도 어느 정도의 삶을 영위하면서 간병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치매, 뇌병변 장애 등 간병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는 만큼 이를 숨기고 감출 것이 아니라 공론화시켜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며 "단발 사건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배경과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 사건의 경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지역사회 돌봄 체계 강화 등 두루뭉술한 단어들로 귀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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