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사과값 잡으려 미국·뉴질랜드산 수입 검토"…경북 농가 "농민 죽이나"

농식품부 이달 초부터 미·네덜란드와 수입 방안 협의
농경원 "수입 개방 시 농가 피해액 연평균 4천80억원"
농가 "작황부진에 값 뛰고도 매출 적어, 수입으로 해결? 농가 두번 죽이는 일"

지난해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 하루 2만4천박, 480톤(t) 가량의 사과가 입고돼 경매에 붙여졌다. 매일신문 DB
지난해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 하루 2만4천박, 480톤(t) 가량의 사과가 입고돼 경매에 붙여졌다. 매일신문 DB

정부가 과일 물가 안정을 목표로 사과 수입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국내 최대 산지인 경북의 농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농가의 작황 불안을 해소하기는커녕 수입산과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경북 농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초부터 미국 및 뉴질랜드의 사과를 수입하고자 상대국 병충해 현황, 수입 시 검역 절차 등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에 따라 검역상 문제로 사과·배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수입하려면 국내 미발생한 병해충이 유입되지 않도록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역 농가에선 정부가 과일 가운데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가 가장 높은 품목이 사과라는 점을 고려, 그 가격을 떨어뜨려 '소비자물가 상승률 조기 2% 안착'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과는 그 가격 상승률의 0.23%가 물가상승률에 반영될 만큼 소비자물가지수 과일 품목에서 가중치가 가장 크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작황이 나빠 사과값이 전년 대비 11% 뛴 데다, 올해 작황 전망도 불투명하니 수입을 고려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사과와 배 생산량이 전년보다 줄어 가격이 크게 뛰었다.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과일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사과와 배 생산량이 전년보다 줄어 가격이 크게 뛰었다.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과일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실제 정부는 이달 초 '민생경제 1호 정책'으로 농축산물 수입 문턱을 대폭 낮춰 물가를 잡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가 사과를 대체할 다른 수입 과일에 할당관세 등 관세 혜택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정부는 사과·배뿐 아니라 오렌지·망고 등 상대국에서 수입 허용을 요청한 모든 농산물에 대해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물가 안정 등) 다른 요인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사과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로, 오래 전부터 국내 시장에 개방 압박을 해왔다. 한·미 FTA에 따라 미국산 사과 대부분의 관세(45%)가 지난 2021년 철폐됐고, '후지'(15.7%)의 관세도 오는 2031년까지 점차 낮아지다 사라진다. 수입 문만 열리면 시장 잠식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사과 수입을 허용하고 국산·외국산 선호가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국내 농가 피해액은 연평균 4천80억원, 농업 국내총생산(GDP) 피해액은 5천980억원으로 전망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 하루 2만4천박, 480톤(t) 가량의 사과가 입고돼 경매에 붙여졌다. 매일신문 DB
지난해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안동농협농산물공판장에 하루 2만4천박, 480톤(t) 가량의 사과가 입고돼 경매에 붙여졌다. 매일신문 DB

경북 농가들은 "정부가 앞장서서 과일 수입에 나서는 건 사실상 '국내 사과 농가 죽이기'"라고 비판한다.

영주시 과수농 강세구(63) 씨는 "수년 간 나쁘던 사과값이 지난해 작황부진으로 갑자기 올랐는데 정부가 수입으로 해결한다는 건 농가를 두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송군 한 과수농도 "우리 농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작황 안정 대책을 내거나 재해에 강한 사과를 개발·보급하는 데 가장 먼저 힘써야 한다. 탁상공론을 멈추고 농민 목소리를 들어 보라"고 지적했다.

신효광 경북도의원(청송)은 지난 25일 제344회 도의회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사과 시장 개방은 단감과 배 등 다른 과수에도 영향을 미쳐 과수산업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도내 사과 농가들은 지난해 냉해와 과수화상병, 장마와 폭염, 탄저병으로 큰 피해를 봤다. 과수 농가 보호를 위해 사과 수입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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