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민생 외면한 정치 처벌해야

서명수 객원논설위원
서명수 객원논설위원

정치의 본질은 굽은 곳을 살피고 국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보장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민생을 팽개치고 정쟁에 몰두하면서도 갖은 감언이설과 요설(妖說)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정치권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번 총선 출마 후보자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인지, 국리민복을 위해 나선 길인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웬만하면 출마를 접으라고 권하고 싶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국민의 관심사는 '물가'와 '임금' 등 경제다. 대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별다른 걱정이 없겠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불경기를 탓하며 '상여금을 줄 수 없다'는 사장님의 폭탄선언을 걱정하면서 긴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설 연휴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소상공인 사장님들은 빚을 내느라 분주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정쟁 법안 재발의 시점을 두고 유불리를 계산하는 여의도 국회 주변인들에게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의 민생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입으로는 민생을 외치고 있지만 민생은 아예 모르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여의도 사람들의 생리다.

더불어민주당이 며칠 전 민노총 등 양대 노조의 눈치를 보고 처리를 외면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중소상공인들과 서민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중소·영세기업이라도 노동자와 작업장의 안전을 소홀하게 여기는 사업주는 없다.

지난달 27일부터 적용이 확대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소기업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동시에 800여만 명에 이르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시급한 민생 법안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 등이 안전·보건에 관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세사업장까지 산업재해로부터 보호받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법 시행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정부와 산업계도 알고 있었다. 영세사업장의 경우, 전 분야에 걸쳐 사장에 대한 사업장의 의존도가 높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서 사장이 구속되거나 처벌받을 경우, 해당 사업장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거나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여야가 '산업안전보건청' 설치에 합의하면서 극적 돌파구를 마련했다가 민주당이 결국 개정안 처리를 외면한 것은 거대 노조의 표심을 의식한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은 250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거느린 한노총과 민노총 등 조직된 노조를 선택하면서 50인 이하 사업장 83만여 곳에 종사하는 800만 노동자들은 헤아리지 않았다. 800여만 명이 모두 한목소리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요구하지는 않았더라도 중소기업의 어려움 정도는 십분 이해해 줬어야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법안 확대 시행을 앞두고 작업 환경이 열악한 중소·영세기업을 위한 세심한 대책 등 사전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법안 확대 시행 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세 번째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안전관리는 여전히 문제다.

중소·영세사업장의 산업안전관리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강경책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정치권은 외면하고 있다. '진짜 민생'은 외면하는 정치권을 국민들이 총선을 통해 '처벌'해 주기 바란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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