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우영의 새론새평] 위선의 시간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2대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건만 선거제도는 공백이다. 규칙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 관중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참정권을 뭉개는 이 부조리한 현실은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의 원죄에서 기인하였다. 그런데 그 과보를 유권자들이 받고 있으니 정치적 불행도 유전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정의당과 결탁하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민주화 이후 공직선거법 개정에서 집권당이 제1야당의 동의 없이 선거법을 뜯어고친 첫 사례였다.

민주당의 반칙은 계속되었다. 정의당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하여 17석의 비례대표를 거머쥔 것이다. 여기에 열린민주당의 3석을 더하여 183석의 거대 집권당이 탄생하였다. 반면 야합에 편승해서 6석을 얻은 정의당은 이후 몰락의 길을 자초하며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이후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과오를 사과하고 '위성정당 없는 준연동형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또한 악어의 눈물이었다. "멋지게 지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니까.

준연동형제는 본래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촉진하여 다당제의 활로를 개척하는 선거제도이다. 그런데 제도가 우주의 진공 공간에서 홀로 작동할 수는 없는 법이다. 21대 총선에서 경험한 바처럼 준연동형제는 위성정당의 유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 이재명 대표는 또다시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더욱 노골적으로 위성정당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통합비례정당, 조국 신당 등 민주당 계열의 다양한 변종들이 위성정당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돈봉투 사건의 주역이 정치검찰해체당까지 옥중 창당했으니 분노조차 아까운 농간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가증스러운 반칙의 시간이 흐를 것이다. 그 시나리오는 대략 이러하다. 소위 검찰 독재 저지를 위한 반윤연대의 팡파르를 울리며 불나방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자생력 없는 군소 정당들이 비례대표 선순위를 배정받기 위해 암투와 야합을 벌인다. 여기에 자녀 입시와 정치자금 비리의 대명사들도 비례 열차에 편승하여 재기를 엿본다. 이들보다 더 불의한 당 대표도 당당하니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래서 통합비례정당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탄정당 이중대로 자리 잡는다.

국민의힘도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현역 의원을 대거 옮길 것이다. 총선에서 앞자리의 정당 기호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현역 의원 수가 많아야 한다. 그리고 지방선거(2026년)와 대통령선거(2027년)에 이르면 불나방의 한철이 저물며 민주당에 흡수될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 위성정당도 방탄 세력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원대 복귀할 것이다. 이것이 다당제의 열망을 악용하여 위선적으로 양당제를 뿌리내리는 준연동형제의 레퍼토리다.

요컨대 준연동형제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 온갖 잡당의 야합을 부추긴다. 나아가 위장 창당과 탈당 같은 공공연한 반칙을 선거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유권자의 표를 왜곡한다. 유권자들의 다수는 사표를 막기 위해 위성정당에 투표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막기 위해 지역구 입후보를 의무화하고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위성정당 방지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다시 위성정당을 당론으로 채택함으로써 부도덕과 이율배반의 극치를 드러낸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이 위선의 시간을 거스르기는 불가하다. 그래서 위선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더욱 간절하다. 우선 정당이 비례대표 순위를 결정하는 현행 폐쇄식 비례명부제를 폐기해야 한다. 즉 유권자의 선호대로 개방식 명부로 비례대표 순위를 결정한다면 그나마 야합의 여지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정당법을 개정하여 지역정당을 허용해야 한다. 지역정당은 정치 불나방에 맞서 지역 밀착형 비례대표를 배출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다. 이 두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와 양식을 갖춘 세력의 분투가 필요하다. 적어도 위선의 방조자가 되지 않는 것이 이 시간의 막중한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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