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클릭 한번에 고객 다 떠난다" 위기의 쿠팡…中 초저가 공습에 ‘락인 효과’ 사라진 유통시장

극초저가 中 커머스 등장으로 경쟁 최고조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달 트럭들이 모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달 트럭들이 모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쿠팡이 8일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9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한국 제조업체들이 만든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의 구매와 판매를 올해 22조원으로 늘려 중국에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중국발 직구가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상황에서 품질이 좋지 않아도 극초저가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확대로 '락인 효과'(lock-in effect)가 줄어든 상황에서, 품질이 검증된 한국산 제품을 늘리고 무료 로켓배송 등 혜택이 담긴 와우 멤버십 혜택을 확대해 고객 이탈을 막겠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에서는 "극초저가의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는 차이나 커머스에 맞서 쿠팡이 급변하는 유통시장에서 고객을 붙잡기 위한 '생존경영'에 돌입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中 커머스 진출에..소비자들, 클릭 한번에 떠나"..쿠팡, 국산품·고객 투자 맞대응
쿠팡이 8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1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분기 사상 처음으로 매출 9조원을 돌파, 9조450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7조3990억원)과 비교해 28% 늘어난 것이다. 명품 이커머스 파페치 인수로 인해 늘어난 매출(3825억원)을 제외한 매출은 9조680억원이었다.

로켓배송·로켓프레시·로켓그로스·마켓플레이스 등 프로덕트 커머스 활성고객(제품을 분기에 한번이라도 산 고객)은 2150만명으로, 전년(1860만명)과 비교해 16% 늘어났다. 매출은 큰 올랐지만, 영업이익(531억원)은 전년 대비 61% 감소했고, 순이익은 지난 2022년 2분기 적자 이후 첫 당기순손실(318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3분기 첫 흑자 전환 이후 지난해 4분기까지 6분기 연속 증가 추세를 보이던 '흑자 릴레이'가 중단됐다.

당기순이익 적자전환 속에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이날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이례적으로 중국 이커머스 공습에 대한 우려와 여파를 언급했다.

그는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진출은 업계의 진입 장벽이 낮으며, 유통산업은 어떤 산업보다 고객들이 클릭 한번에 쇼핑 옵션을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고객이 구매할 때마다 새롭게 선택하고, 더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소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쿠팡의 와우 멤버십 회원은 지난해 말 1400만명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유료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알리와 테무의 등장으로 유통시장에 '락인 효과'가 사라지는 만큼, 다양한 고객 혜택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산품의 구매와 판매 규모를 지난해 17조원(130억달러)에서 올해 약 22조원(160억달러)으로 늘리겠다"며 "2024년은 한국 제조업과 중소기업 파트너들에게 필수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무료 로켓배송과 전용 할인, 쿠팡플레이 무료시청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와우 멤버십 혜택에도 올해 5조5000억원(40억달러)을 투자하기로 했다. 전년(4조원·30억달러)보다 투자 규모가 40% 가량 늘어난 것이다.

김 의장은 "한국 소매시장 규모가 5600억달러(2027년 예상치)에 이르고, 아직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에 그치는 상황에서 최고의 상품품과 가격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며 "물류 투자 확대로 국내 오지 지역에도 무료배송하겠다"고 했다.

김 의장의 발표에 업계에서는 "차이나 커머스 공습에 따른 쿠팡의 절박함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국 직구는 93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9% 증가하며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규모였다.

지난해 중국 직구금액(3조1000억원)을 올해는 크게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알리와 테무의 지난 2월 월간 사용자 수는 1700만명 이상으로, 이미 쿠팡의 절반을 넘었다. 올해에는 상장을 준비하는 '패션 공룡' 쉬인, 지난해 미국에서만 55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틱톡샵' 등과 함께 국내 사용자 4000만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1000원짜리 슬리퍼, 500원짜리 양말 같은 중국산 초저가 물량 공세를 퍼부은 탓이다.

◇韓 유통시장 15년간 '왕좌 없는 전쟁'..극초저가 中 커머스 등장으로 경쟁 최고조

소비자들은 차이나 커머스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아도 저렴한 가격에 구매가 활발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알리 익스프레스 등 차이나 커머스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3.1%는 "제품 가격이 저렴해서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7명(76.4%)는 국내 유사상품 등과 비교해 판매 가격이 '반값 이하'라고 했고, "다양한 제품을 구입한다(43.5%), '득템하는 쇼핑 재미가 있다(33.8%) 등 응답이 뒤따랐다. 그러나 응답자 10명 중 8명(80.9%)는 이용이 불만이 있었다.

'낮은 품질'(49.6%), '제품 불량'(36.6%), 배송지연(59.5%)이 문제로 뽑혔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 품질이 검증된 국산품을 늘리고 무료 로켓배송과 와우 멤버십 혜택을 늘려 전면으로 맞대응하겠다는 것도 차이나 소비자가 느끼는 차이나 커머스 문제와 비교해 경쟁력을 더 차별화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1년간 중국 커머스 경험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 경험이 더 진화하며 쇼핑업체마다 특성에 맞는 소비 패턴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국내 유통시장이 지난 15년간 '왕좌 없는 전쟁'을 지속해온 상황에서 차이나 커머스의 등장으로 시장이 또다시 변혁기를 맞이했다고 말한다. "한국 유통산업은 그 어떤 산업보다 소비자가 클릭 한번이면 몇 초 만에 다른 쇼핑 옵션을 선택한다"는 김 의장의 발언처럼, 경쟁이 치열한 온라인 쇼핑업계는 아직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절대 강자가 나오지 않았다. 어느 한 쇼핑업체만 소비자들이 콕 찍어 줄곧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만 해도 오픈마켓 1·2위는 지마켓(41.9%)과 옥션(30.6%)이었다. 직매입 모델의 쿠팡을 포함한 온라인 쇼핑 시장은 2019년 네이버(16.7%), 이베이코리아(13.5%), 쿠팡(9.5%) 순으로 재편됐고, 5년이 지난 2023년 현재 쿠팡과 네이버가 20%대 점유율로 양강구도다. JP모건은 최근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2026년 300조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한국 온라인쇼핑 시장 규모는 227조원대다.

오프라인을 포함한 지난해 소매시장(635조원·소매판매액)에서 지난해 점유율은 쿠팡(5%), 신세계·이마트(5.6%) 등으로, 10%를 넘는 사업자가 아직 없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중국 알리와 테무의 국내 매출이나 거래액은 아직 국내 업계 점유율 구도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알리는 지난 10월 한국상품 전문관인 'K-베뉴를 만들어 한국 판매자들 상대로 '수수료 제로' 정책을 펼치며 오픈마켓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들의 한국 시장점유율이 도출될 경우, 한국 유통시장이 '제3의 재편'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11번가는 상품 주문 금액이 100만원에 도달할 때까지 판매 초기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는 '오리지널 셀러 프로그램'을, 지마켓은 신규 셀러에 업계 최대 수준인 인당 180만원 광고료 혜택을 지원하는 등 업계는 차이나 커머스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토종 업체가 중국산 제품의 가격을 절대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쿠팡의 국산품 판매 확대, 와우 멤버십 투자 확대가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업계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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