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이 갈라진 줄도 모르고 여태 끌고 다녔다. 길을 걷다가 신발이 반 쪼가리 나고 나서야 낡은 신발을 버리고 새 신발로 갈아 신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싸돌아다녔으면 구두 밑창이 닳아 뭉그러지도록 모르고 걸었을까. 하루 만 보는 기본이고, 어떤 날은 2만 보 걷다가 이윽고 3만보를 넘어섰을 때,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발바닥이 아파 뒤뚱뒤뚱 오리걸음을 걸으면서도 한동안 신발이 망가져 그리된 줄 모르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 바깥으로 나를 끌고 다닌 정든 신발과 작별하고 새 신발을 얻었으나 마음에는 허전한 구멍이 뚫렸다. 오목한 구멍 속으로 발을 집어넣고 새 신을 신고 걸어보는데 걸음마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길이 낯설다. 신발을 신는 그 순간부터 걸을 때마다 길이 덜커덕거렸다. 휘어진 비탈길이거나 빗물 고인 질펀한 길을 걷는 것 같았다. 길의 가파름과 평탄함에 따라 신발의 각도를 달리해보려 애썼지만 길을 잘못 접어든 것 같아 나를 끌고 다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돌아가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도 든다. 비록 뒤축이 닳은 낡은 신발이지만 가지런히 벗어놓고 가려 한다. 이제 이 길을 또 누군가 신발을 신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벗어놓고 간 오목한 마음일까?"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그리 생각하는 시인이 있었다. "신발이 발이 아닌 흙덩이를 신고 예쁜 채송화가 뿌리내렸으면 한다"라고 버려진 신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 시인도 있다. 또 누군가는 "강물 소리가 묻어있는 신발을 신고 출렁출렁 강을 건너 넓은 바다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즈음 해서 고흐의 '구두 한 켤레'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행을 좋아하는 이는 스페인 피니스테라 '순례자의 신발'을 떠올리고, 책을 좋아하면 신경숙의 소설 '세상 끝의 신발'을 생각하며 머릿속 책장을 넘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신발 한 켤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질곡한 삶의 무게가 실려있다. 나는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에 갈등이 생길 때면 밖으로 나가 걷는다. 비가 와도 걷고 땡볕이 따갑게 내리쬐어도 걷는다.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과 대화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그리고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생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물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고, 그 길이 결국은 나의 스승이고 동반자이고 친구가 된다. 길 위에 풍경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 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일본 교토와 독일 하이델베르크엔 '철학자의 길'이 있다. 철학자가 걸어서 유명해진 길이지만 그 길이야말로 사색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흐의 신발 그림을 보며 신발 주인의 고뇌와 노동의 흔적을 읽어내듯이 신고 다니는 신발은 오목한 사색의 깊이를 보여줄 것만 같다. 새 신발을 신고 또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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