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언행과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무산됐다. '부결당론'에 따라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05명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절체절명(絕體絕命) 상황이다. 상대의 세력이 막강하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때, 열세(劣勢) 측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4가지다. 1안은 항복, 2안은 최후 결전, 3안은 농성(籠城·성문을 굳게 닫고 버팀), 4안은 퇴각하는 것이다. 4안에는 겁에 질려 우왕좌왕 달아나는 퇴각과 상대를 견제하며 물러나는 질서정연한 퇴각이 있다.
▶ '좁은 길목'을 지키며 버틴 조조의 전략
삼국지 하면 사람들은 흔히 조조 군(軍)과 손권·유비 연합군이 격돌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떠올린다. 하지만 적벽대전 이상으로 중요한 전투는 삼국지 전반부에서 나오는 조조와 북방의 강자 원소(元紹)가 겨룬 관도대전(官渡大戰·서기 200년 2월 ~ 10월)이었다. 당시 조조의 군사는 7만, 원소의 군사는 70만으로 10배 차이였다. 전투 초기 조조군은 패배를 거듭했다. 조조는 퇴각을 고민했다. 그때 조조의 '장자방(한나라 고조 유방의 전략가로 중국사에서 대표적인 책략가)'으로 불리는 책사(策士) 순욱(荀彧)이 조언했다.
"지금 후퇴하면 원소에게 천하를 빼앗기고 맙니다. 지금은 목줄기처럼 중요한 곳만 지키면서 원소의 허점이 노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곧 그런 기회가 옵니다."
이에 조조는 원소와 격돌을 피하고, 좁은 길목을 지키며 버텼다. 원소의 대군은 조조군이 지키는 좁은 목을 통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조는 원소의 군량 창고 허점을 발견하고 기습해 군량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후 전세는 뒤집혔고, 마침내 조조가 승리했다.
▶ 우왕좌왕 도망칠 경우 모두 도륙(屠戮)될 것
세력이 약한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무산시킨 것은 조조가 '좁은 길목'을 지키며 버틴 것과 같다.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안 의결에 동의했더라면 그것은 '항복'이거나 겁에 질려 우왕좌왕 도망치는 짓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국민의힘은 기세 등등한 야권에 모두 도륙될 것이 뻔하다. 탄핵안에 동의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자부할 지 모르지만, 결과는 죽을 수밖에 없는(정치생명이 끝남) 것이다.
탄핵 소추안 국회 표결에 앞서 7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신의 임기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여당에 일임한 것은 '질서정연한 후퇴'에 해당한다. 만약 윤 대통령이 '내게 무슨 잘못이 있나'는 입장이었다면 국민과 일전을 벌이자는 행위(무모한 최후 결전)로 곧바로 무너졌을 것이다.
▶ 108석은 적지만 '좁은 길목' 지킬 수 있다
조조는 관도에서 함부로 덤비거나 퇴각하지 않고, '좁은 길목'을 지켜냈기에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세력이 약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으로 앞으로도 '대통령 탄핵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저지할 수 있다. 그렇게 '좁은 길목'을 지키며 버티면 기회는 온다. 짧게는 3개월이면 상대편 진영에 균열이 일어난다. 6개월이면 상대 진영은 걷잡을 수 없는 갈등과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선거법 재판·위증교사 재판)
'시간이 없는' 더불어민주당은 파상공세를 펼 수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무한 반복해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라고 공언한 것, 민주당 의원들이 '2차 계엄 선포가 있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것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민주당 중심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각종 의혹이 계속 터져나올 것이고 장외 집회도 점점 거칠어 질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 탄핵 민심을 결집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 어느 쪽이 더 오래 버티느냐에 달려
국민의힘이 버티기 위해서는 내부 분열과 실수를 차단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에서 실수가 나오면 게임은 끝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의 리더십에 달렸다. 물론 부지런히 탄핵 반대 여론전을 펼쳐야 한다. 그저 국회 본회의 표결 반대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는 힘들 것이다. 5일 리얼미터가 비상계엄과 관련 윤 대통령 탄핵 찬반을 조사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73.6%, '반대한다'는 응답은 24.0%로 집계됐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 "대통령의 정상적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통령의 조기퇴진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입장이 조만간 '탄핵 찬성'을 의미한다면 '투항' 또는 '우왕좌왕 도망치기'에 다름 아니다. 자폭(自爆)인 것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는 자폭 행위였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자폭 길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시간은 한동훈 대표 편이다. 참고 버티면 이기고, 분노를 참지 못하면 패한다. 그 패배는 한 대표의 패배를 넘어 국민의힘과 대한민국 보수의 궤멸(潰滅)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한 대표는 국민의힘 시·도지사 협의회가 6일 발표한 성명(책임 총리제·임기 단축 개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윤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이끌어내고, 헌정중단 사태를 막는 길 만이 국민의힘이 살고, 한동훈 대표가 살고, 보수우파가 사는 길이다.
윤 대통령이 조기 퇴진하더라도 최소 1년의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추진하는 '질서 있는 퇴각'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다음 전투(21대 대통령 선거)'를 해볼 여지라도 생긴다. 국민의힘이 준비 없이 윤 대통령 조기 퇴진을 수용한다면, 보수 궤멸은 물론, 차기 대선 역시 해보나 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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