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강민구] 서낭당의 여전한 존재 이유
성황당(城隍堂)이라는 말이 변한 '서낭당'은 한국 전통 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제단(祭壇)이나 성스러운 공간으로 간주되어,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였다. 이런 이유로 서낭당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지만, 미신(迷信)이라는 께름칙함도 있다. 그러나 서낭당의 본원적 성격을 제대로 알면, 현재에도 서낭당의 존재 이유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성황(城隍)이란 말은 '주역'에서 나왔으니, 성지(城池: 성과 그 주위에 파 놓은 못)를 이르는데, '주역'의 풀이에 황(隍: 성 주위에 빙 둘러 판 못)의 흙을 파서 높이 쌓아 성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성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므로, 그 신에게 제사를 지내 옳게 죽지 못한 귀신들을 통솔하도록 한 것인 듯하다"라고 그 어원을 설명하였다.
한편 이익은 서낭당에서 제사 지내는 글을 고증(考證)하여 그것의 고유 기능을 밝혔다.
"제사를 받을 곳 없는 귀신에게 제사한다. 사람의 죽음과 삶이 만 가지로 같지 않기에, 예부터 지금까지 옳게 죽지 못한 자가 적지 않다. 혹은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죽기도 하고, 혹은 다투다가 구타를 당해 죽기도 하고, 혹은 홍수나 화재, 도적을 만나 죽기도 하고, 혹은 굶주림과 추위, 전염병으로 죽기도 하며, 혹은 담과 집이 엎어져서, 혹은 벌레와 짐승에게 물려서 죽기도 한다. 혹은 죄 없이 사형을 당하고, 혹은 재물로 인해 핍박을 받아 죽으며, 혹은 처첩(妻妾)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혹은 위급하여 스스로 목매어 죽고, 혹은 죽어 자손이 없으며, 혹은 아기를 낳다가도 죽는다. 혹은 벼락을 맞아 죽기도 하고, 혹은 벼랑에서 떨어져 죽기도 한다. 이 같은 부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외로운 혼이 의탁할 곳이 없고 제사도 받아먹지 못하니, 죽은 혼이 흩어지지 않고 맺혀 요망한 짓을 한다. 이러므로 성황에 고하여 귀신들을 불러 모아,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권하니, 너희 귀신들은 이 음식을 잘 먹고 역병(疫病)과 재앙으로 사람의 화기(和氣)를 해치지 말지어다."
여기에서 우리 선조들이 생각한 억울한 죽음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또 그것을 나라 사람들 모두가 잊지 않고 추모(追慕)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기원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억울한 일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정도가 심한 것은 억울한 죽음이니,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결코 그것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거나, 그것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부당한 이유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이는 가장 근본적 권리인 삶조차 부정당한 것이기에 깊은 분노와 슬픔을 남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 요인 중 하나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참사(慘事)'이다. 그런데 대다수 참사는 그 이면에 사회적, 제도적, 정치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 예측이 가능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발생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이 억울하게 죽거나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그 원인으로 안전 관리 부실, 불투명한 책임 구조와 관리 체계, 민주적 절차 부족과 권위주의적 사고, 사회적 불평등과 취약계층의 피해, 정부와 기업의 부정직한 태도, 사회적 관심 부족과 후속 대응의 미비 등을 들 수 있다.
우리 선조가 서낭당에서 억울한 죽음의 사례를 나열하고 추모하던 심정이 지금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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