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의 영상에는 불길이나 혼란보다 더 뇌리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열차 안에서 한 여성이 넘어지며 신발을 잃어버린 채 바닥에 쓰러졌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지나쳐 도망쳤다. 왕자도, 백마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넘어지기 직전, 신데렐라처럼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과 함께, 용의자는 바닥에 뿌린 인화성 액체에 불을 붙이기 위해 웅크린다. 그의 바로 곁에는 체격 좋은 남성들이 있었고, 한 명은 그와 부딪히기까지 했지만, 누구도 막지 않았다. 67세의 느리고 위험한 남성을 마주한 그 짧은 순간, 그들은 맞서기보다는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그 남성들 중 일부는 나중에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었는지 되돌아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부당한 죄책감일까?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영웅들이 있다.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돌아오지 못한 군인, 소방관, 경찰, 시민들 말이다. 그날 우리는 더 많은 희생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방화는 폭력적이고 종종 절망적인 범죄행위이다. 분노, 절망, 재정적 파탄이 동기가 되며, 종종 이 모든 감정이 얽혀 있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 행위가 아니라, 불의나 실패에 대한 상징적인 공격이다. 최근 지하철 사건 역시 이혼 합의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과거의 아픈 기억을 다시 되살린다.
2003년 2월 18일, 56세의 전직 택시기사 김대한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후, 대구 지하철에서 인화성 액체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도 객차의 문이 열려있어 많은 승객들이 탈출하였지만, 희생자는 반대 방향 승강장에 정차한 열차로 불이 옮겨 붙어 대피가 늦어지면서 1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참사는 비상 대응 체계의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고, 교통 당국 관계자들의 형사 처벌로 이어졌다. 그러나 교훈은 남았다. 덕분에 이번 사건에서는 물론, 2014년 서울 3호선 열차 방화 사건에서도 사망자는 없었다. 당시 71세 남성은 재판 결과에 불복해 분노했고, 희석제를 좌석에 뿌려 불을 붙였다.
이 세 가지 지하철 방화 사건—2003년 대구, 2014년 서울, 2025년 서울(2036년에 또 일어날 것인가?)—의 공통점은 모두 56세에서 71세의 고령 남성이 저질렀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랜 불만과 억울함을 품고 있었고,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인화 물질을 사용했고,출근 시간대(오전 8시 45분~10시 55분)에 범행을 저질렀다. 이 시간대는 열차가 가장 붐비고, 역과 도로가 혼잡해 긴급 대응이 지연되기 쉽다. 대중의 공포심과 주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 가해자 모두가 세상에 "나는 들려야 한다"는 같은 메시지를 외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재정적 파탄 특히 상실에서 회복할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노인들 사이에서 방화를 유발할 수 있다. 2023년 한국 방화범 1,081명 중 약 11%가 65세 이상이었으며, 이들 중 99명이 남성이었다. 이는 방화가 반드시 젊고 충동적인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방화 발생률은 한국 사회의 정서적·경제적 온도에 따라 오르내린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회복, 고용 안정, 비교적 차분한 사회 분위기 덕에 방화가 감소했다. 하지만 2017~2018년 사이엔 급격히 증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 경제 둔화, 가계 부채 급증, 치솟는 주거 비용, 노인 빈곤 등이 시민들의 심리적 회복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2019~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제한으로 방화는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2021년에는 다시 증가했다. 팬데믹 이후 피로감, 실직, 사회적 고립이 노년층과 서민층을 중심으로 번지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는 대규모 시위와 경기 침체가 맞물렸다.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가계 부채가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정치적 갈등도 심화됐다. 이런 사회적 긴장은 과거에도 감정적 방화 범죄를 촉발시킨 전례가 있다. 다음 통계에서 유사한 증가세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는 지하 깊숙한 곳, 불붙은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느낀 공포를 담아내지 못한다. 신데렐라처럼 신발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여성을 지나쳐 갈 때, 불길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회가 되어버렸는가'라는 질문도 함께 다가온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말이다.

앤서니 헤가티 범죄심리학자.DSRM 리스크 & 위기관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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