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러시아의 밀착이 동북아 안보 지형을 흔들고 있다. 지난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김정은·시진핑·푸틴 세 정상이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선 장면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회담 이후 66년 만이다. 그러나 그 당시 사회주의 형제임을 과시했던 만남이 불과 몇 년 뒤 중·소 분열로 파탄 났듯이, 이번 회동 역시 표면적 연대 뒤에 숨겨진 코드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역사적 맥락을 잘 살펴보면 그 실체가 분명해진다. 1945년 국공 내전 당시 북한은 중국 공산군을 지원했고, 6·25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하며 서로가 '혈맹'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중국의 제한적 지원과 1970년대 미·중 수교 과정에서의 '거리두기'는 북한의 불신을 키웠다. 소련 또한 북한 건국의 후견자였지만, 휴전 압박과 군사 원조 축소로 '배신'의 기억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은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며 생존을 모색하는 '줄타기 외교'를 체득했고, 이는 김정일·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북한 외교의 핵심 전략이 되었다. 지금의 삼각 구도 또한 이념적 연대라기보다 냉정한 현실적 계산의 산물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완충지대로 삼으려는 의도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북한의 무기 공급망을 활용하고, 그 대가로 군사 기술 제공 등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80주년 행사에선 중국 리창 총리와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외에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까지 참석해 냉전 시기 사회주의 연대를 복원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 구도에도 미묘한 균열이 감지된다. 중국은 북한의 돌발 행보가 자국의 '완충 전략'을 흔들지 않도록 치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러시아 또한 북한의 과도한 요구를 경계하면서 지원 수위를 조절한다. 북한은 어느 한쪽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겉으론 공고한 연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불신과 이해득실이 맞물린 '전략적 삼각관계'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들의 결속이 우리 안보에 주는 현실적 위협은 분명하다. 중국은 서해상 영향력을 확대하며 한반도 주변의 전략 공간을 압박하고, 러시아는 한반도를 미·일 동맹의 전진기지로 간주하며 북한을 끌어들여 반(反)서방 연대의 축을 구축하려 한다. 실제로 노동당 창설 기념 열병식에는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극초음속(하이퍼소닉) 미사일 등 러시아 기술 연관 의혹을 받는 무기들이 대거 선보이면서 한·미·일 방어체계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이재명 정부는 한·미·일 공조가 예전 같지 않은 현실에서 북한이 중·러와 결속을 지렛대로 아세안 우방국으로 외교 지평을 확대하고 있음에도, 그 틈새를 파고들어 파급력을 완화할 전략은 부재하다. 대북 정책 역시 제재와 억제보다 포용과 대화에 매달리는 모습이어서, 북한의 줄타기 외교와 중·러의 실리적 접근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어렵다. 한·중·러 외교 채널을 복원하고, 다자 협력을 통해 북한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완충 외교'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31일부터 개최되는 경주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경제 협력 행사를 넘어서는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중국 시진핑 주석,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러시아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부총리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행사는 사실상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외교의 이해가 정면으로 교차하는 역사적 무대다. 트럼프는 거래를, 시진핑은 영향력 강화를, 러시아는 존재감 회복을 노린다.
그런 만큼 이번 회의를 북·중·러 밀착이 초래한 부담을 덜고, 동아시아 협력의 균형점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선 정교한 외교·안보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트럼프와 시진핑의 방한은 각기 뚜렷한 외교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 구도에 휘말리면 주객이 전도되어 들러리로 전락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APEC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계기로 삼으려 하지만, 북핵 문제의 실질적 해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외교적 부담만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경주 회의가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끝날지, 한국 외교의 전환점으로 기록될지는 이재명 정부의 전략적 결단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24일 취임 후 첫 대구 방문…"재도약 길, 시민 목소리 듣는다"
李대통령, 24일 대구서 타운홀미팅…"다시 도약하는 길 모색"
"이재명 싱가포르 비자금 1조" 전한길 주장에 박지원 "보수 대통령들은 천문학적 비자금, DJ·盧·文·李는 없어"
나경원은 언니가 없는데…최혁진 "羅언니가 김충식에 내연녀 소개"
유시민 '미군 빼도 된다' 발언에…국힘 "위험한 망언, 자해 선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