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 대구 경상감영에는 측우기가 있었다. 이 기기가 놓인 선화당 앞마당은 감영 권력의 중심이었다. 영남 전체의 농사와 세금, 흉년을 좌우하던 강우 기록은 모두 이 자리에서 시작됐다. 관리들은 매일 측우기를 확인했고, 비의 양을 적어 상부로 보고했다. 측우기는 강우량 측정 장비를 넘어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안민' 사상을 실현하는 도구이자, 국왕의 중앙집권적 통치력을 상징하는 왕도 정치의 표상이었다.
경상감영 측우기는 1770년 영조 시대에 설치됐다. 세종 23년(1441년) 최초로 만든 것을 같은 규격으로 영조가 부활시켰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측우기는 분실됐고, 아래 놓인 측우대만이 현존한다. 그마저도 한국전쟁 때 총탄이 남긴 상처가 수두룩하다.
측우대는 현재 서울 국립기상박물관에 있다. 국보 제330호인 이 돌은 어쩌다 타향에 머물게 됐을까? 그 여정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압축돼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야욕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던 1909년 4월, 출세욕에 눈먼 친일파 박중양은 이 조선 과학의 정수를 일본 기상학자 와다 유지에게 뇌물로 바쳤다. 측우대는 그렇게 와다를 따라 인천으로, 또 서울로 옮겨졌다.
집 떠난 유물은 경상감영 측우대만이 아니다. 대구와 경북의 국보급 문화재들은 오래전부터 제 자리를 잃었다. 군위군을 제외하면 현재 대구시 소재 국보 3점은 모두 구미시에서 발견됐다. 대구 도심에서 출토돼 지역에 남아 있는 국보는 단 한 점도 없다.
이는 일제의 약탈과 무분별한 반출이 원인이다. 일본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조선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전시했다. 박람회 전시품으로, 개인 수집품으로, 연구 자료로 포장돼 수많은 유물이 고향을 떠났다.
아울러 해방 이후 지속된 중앙집권적 문화재 관리 시스템도 문제다. 과거 지방의 열악한 박물관 시설과 전문 인력 부족, 보존 환경의 미비함은 '서울로의 집중'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문화재는 발견 즉시 국고에 귀속돼 중앙으로 옮겨졌고, 지역은 자신들의 유물을 간직할 기회를 잃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 최근 경주와 김천 등 각 지역에서 문화유산 환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금관의 경주 귀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천시는 시민 서명을 받아 갈항사지 석탑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문화유산의 '장소성'이 갖는 의미에 대한 각성이자, 지역 정체성 회복을 위한 절박한 외침이다.
그렇다고 무조건적 환수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며 폭넓은 활용의 가치를 강조한다. 현실적 관리 능력과 안전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물 그 자체보다 그것이 담고 있는 지식과 가치를 어떻게 연구하고 전달하느냐다.
새로운 해법을 모색할 때다. 원래 소유지 반환이 어렵다면 장기 대여를 통해 지역민이 상시 접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순회 전시로 여러 지역에서 문화재를 공유할 수도 있다. 공동 소장이나 복제품 제작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소유와 점유를 넘어 공유와 순환이라는 새로운 문화재 철학이 필요하다. 문화유산은 박물관 진열장 속 소장품이 아니라, 그 땅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제 문화재가 본래의 맥락 속에서 그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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