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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단군조선의 발상지는 어디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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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표준 영정.  전통문화포털 제공.
단군 표준 영정.  전통문화포털 제공.
단군의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강화도에 있는 삼랑성 유적, 여기 단군은 후기 단군을 가리킨다.
단군의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강화도에 있는 삼랑성 유적, 여기 단군은 후기 단군을 가리킨다.
북한 평양의 단군릉.
북한 평양의 단군릉.
중국의 발해지도, 북경 동쪽에 발해만이 있다.
중국의 발해지도, 북경 동쪽에 발해만이 있다.

◆'위서(魏書)'와 '고기(古記)'에 최초로 등장하는 단군조선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신라 시조 박혁거세로 첫 페이지를 시작한 것과 달리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조선으로부터 한국사의 첫 장을 열었다. 일연은 고조선이 실재한 나리임을 객관적인 사료로서 입증하기 위해 고조선조항 서두에서 먼저 중국의 '위서'(魏書)에 나오는 "먼 옛날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개국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라는 내용을 인용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고려에 전해져 내려오던 고대 사료인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신선의 나라 신시(神市)를 세우고 웅부족의 따님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으며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일연은 단군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면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전해 들은 이야기를 말하지 않고 중국의 '위서'와 국내의 '고기'를 인용하여 나름대로 철저하게 사료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다만 단군조선 건국부터 한사군까지 2천년의 역사가 짧은 한 페이지 문장에 담기다보니 그 내용이 너무나 빈약하다. 따라서 단군조선이 한반도에서 건국되었는지 대륙에서 건국되었는지, 한사군은 어디에 설치되었는지 등을 놓고 후세에 많은 논란이 야기되게 되었다.

◆누가 한국민족의 상징인 단군에 신화의 굴레를 씌웠는가

'삼국사기'에는 "평양은 선인 단군왕검이 거주하던 곳이다"라고 말했고, '삼국유사'에는 "환웅천왕의 아들 단군이 평양성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는 삼국시대엔 우리민족의 뿌리를 환웅, 단군으로 인식했음을 반영한다.

'고려사'에는 "강화도 마리산에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제천단(祭天壇)이 있다", "삼랑성(三郎城)은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서 쌓았다고 전해진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고려 때까지 단군이 실존 인물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의 '태조실록'에는 "조선의 단군은 동방의 최초의 군주이다"라고 하였고,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단군고기'를 인용하여 "조선, 시라, 고례, 남옥저, 북옥저, 동부여, 북부여, 예, 맥이 다 단군이 다스리던 나라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록을 통해서 단군조선은 9개 제후국을 거느린 동방최초의 연방 국가, 통일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한양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나라가 망하던 순종시대까지 단군을 모시는 사당을 세우고 국가가 제사를 직접 주관하여 단군을 국조로 받들었으며 그러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마디로 단군은 반만년 동안 우리민족의 국조이자 정신적 구심점이었고 우리민족을 하나로 이어주는 동아줄이었음을 고대 정사 자료가 증명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민족의 국조로 모시던 우리의 전통이 단절되고 단군이 신화적인 우상으로 전락 되었는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뒤로부터이다. 국권을 찬탈한 일본은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황국사관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이때 창경궁은 동물을 기르는 창경원으로 만들었고 남산자락에 있던 단군 사당은 허물고 그 자리에 일본의 시조 천조대신을 모시는 신사를 지었다. 우리민족의 상징인 단군조선에 신화의 굴레를 씌운 것은 일본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낳은 결과였다.

광복 후 80년 세월이 흘렀다. 성춘향, 홍길동의 유적은 성역화되어도 단군의 유적은 복원이 안 된다. 단군 사당을 허물고 일본신사를 지었던 남산자락은 여전히 식물원으로 남아 있다. 단군에 덮어 씌워진 신화의 굴레는 지금도 벗겨지지 않고 있다.

◆일본이 단군조선을 신화로 부정하며 내세운 세 가지 이유

고조선 건국 이후 줄곧 민족의 국조로 모셔지던 단군이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일본에 의해서 우상으로 취급되었는데 일본은 과연 무슨 근거로 단군조선을 신화화하였는가.

첫째는 단군에 관한 기록은 정사에는 나오지 않고 야사인 '삼국유사'에만 나온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은 곰이 여인으로 변한 웅녀의 아들인데 곰이 여인으로 변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신화이지 실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는 몽고의 침략을 받고 있던 고려 때 국난을 맞아 민족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려는 의도에서 단군신화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논리는 다 단군조선 말살을 위한 일제의 구실일 뿐이다.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 '단군고기'를 비롯하여 단군에 관한 기록이 무려 100여 군데나 나온다. 따라서 단군 기록은 정사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웅(熊)과 호(虎)는 곰과 호랑이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곰을 토템으로 한 웅부족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한 호부족을 가리킨 것이다. 여기서 웅녀는 당연히 웅부족의 따님을 지칭한 것인데 곰이 여인으로 변한 것으로 본 것은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단군사화를 신화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구당서'에는 "고구려에서는 가한신(可汗神)과 기자신(箕子神)을 섬긴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 기자와 함께 언급된 가한은 우리말 칸으로 단군을 가리킨 것이다. 조선왕조의 '성종실록'에 따르면 고려 7대 목종(997~1009) 시대에 구월산에 단인(檀因), 단웅(檀雄), 단군(檀君) 삼성을 제사 지내는 삼성사(三聖祠)가 있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는 적어도 고려 중기 이전부터 삼성을 모시는 전통이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으로서 항몽기에 민족정신을 고취 시키기 위해 단군신화를 조작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삼국유사'의 단군 기록은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에 일본이 단군조선을 신화라고 주장해도 이를 반박할 결정적인 사료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또한 광복 후 일본 식민지 유산을 계승한 강단사학이 한국 역사학계를 주도하는 바람에 단군을 우상화한 식민사관이 극복되지 못한 채 이를 국사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가슴 아픈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단군조선의 발상지를 보는 남북한 학계의 다섯 가지 시각

정인보는 '시조 단군'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조선의 시조는 단군이시니 단군은 신이 아니요 인간이시라 백두의 고산과 송화의 장강을 터전으로 하여 조선을 만드심에 조선의 민족이 단군으로부터 생기고 조선의 정치 교육이 단군으로 좇아 열리었다"라고 하였다.(담원정인보전집 상,1983)

이병도는 '단군설화의 해석과 아사달 문제'라는 제목의 글에서 "단군이 도읍을 세웠다고 하는 아사달의 지점은 바로 지금의 평양 부근에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한국고대사연구,1979) 이병도가 여기서 단군신화라고 말하지 않고 단군설화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북한의 리지린은 '왕검성의 위치에 대하여'란 글에서 "대능하를 국경선인 패수로 어니하(淤泥河)를 왕검성의 패수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필자는 왕검성을 오늘의 개평으로 비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된다"라고 말했다.(고조선연구,1963) 리지린이 왕검성으로 비정한 개평은 오늘날의 요녕성 요하 동쪽에 있는 개주시(盖州市)를 가리킨다.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실장 장우진은 '평양은 조선민족의 발상지'란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단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고조선을 세우고 문명의 역사를 펼쳤으며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겨레의 통일을 이룩하고 평양을 기지로 하여 광활한 지대에로 국토를 넓혀 민족의 슬기를 떨친 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다. 그것은 오늘의 평양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가 산수 수려한 고장인 것으로 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번성하고 문화가 발전된 인류발상지의 하나이며 인류문화의 발원지에 속하였다는데 있다."(단군과고조선에관한 연구론문집,1994)

한국의 윤내현은 '고조선의 연대와 중심지'에서 고조선은 맨 처음 지금의 북한 평양에 도읍했다가 두 번째 요녕성 본계시(本溪市) 지역으로 천도했고 세 번째 난하 유역으로 천도했으며 네 번째 대능하 유역으로 천도했고 다섯 번째 다시 지금의 평양으로 옮겨왔다고 보았다.(고조선연구,1999)

한국의 노태돈은 '고조선 등장과 변천'에서 "초기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하 동편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 그 구체적인 지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요하 하류 동편 지역으로 상정하는 것이 좀 더 설득력을 지닌다", "연 소왕 때 연의 장수 진개(秦開)가 동호를 공격하여 괴멸시키고 이어 고조선을 공격하여 청천강까지 세력을 뻗쳤다. 연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고조선은 그 중심지를 평양 일대로 옮겼다"라고 말했다.(한국고대사, 2016)

한국의 송호정은 단군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며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단군, 만들어진 신화'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했다.(단군,만들어진신화, 2004)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현재 남북한 학계에는 단군조선의 발상지를 보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큰 흐름이 있다. 첫째는 북한 대동강 유역 평양에 계속 존재했다고 보는 관점이고 둘째는 대륙 만주에 있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셋째는 고조선의 초기중심지는 요녕지었으나 후기에 중국 세력의 확장에 따라 한반도 서북부 평양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관점이고 넷째는 초기에는 북한 평양지역이었으나 차츰 세력을 확장하여 만주로 진출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것이 바로 중심지 이동설이다. 다섯째는 단군조선은 실재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진 신화라고 인식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다섯 가지 기존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산해경'에서 "발해의 모퉁이에 고조선이란 나라가 있다.(北海之嵎 有國 名曰朝鮮)"라고 말했고 좀 더 구체적으로 고조선은 "발해 북쪽 연산燕山 남쪽에 있다.(海北山南)"라는 기록도 보인다. 이는 단군조선은 만들어진 신화가 아니라 상고시대에 중국의 발해 유역에 실재했던 나라임을 동양 최고의 지리서가 증명한 것이다.

그리고 '산해경'에서 "고조선이 발해의 모퉁이에 있다"라고 말하였는데 모퉁이란 모서리와 달리 움푹 들어간 곳을 가리킨다. 발해에서 모퉁이에 해당하는 곳은 발해만, 요동만, 내주만 세 군데가 있다.

고조선과 관련된 유물 유적은 주로 발해만 부근에서 발견된다. 발해만 북쪽의 내몽고 적봉시, 하북성 북경시 일대에서 발굴되는 하가점하층문화는 발해의 모퉁이에 있었던 고조선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한다.

또한 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 '무경총요'는 "북경시 북쪽에 조선의 강, 즉 조선하가 있다"고 말하였고, 낙사가 쓴 '태평환우기'에서는 "하북도 평주 노룡현에 조선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발해의 모퉁이에 조선이 있다"라는 '산해경'의 기록을 문헌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다.

단군조선이 발해만 북쪽 하북성 북경 일대에 있었다는 것이 고고학적 문헌학적으로 모두 증명된다. 아래에서 '사고전서'와 새로 발굴한 단군조선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필자가 보는 단군조선의 발상지가 어디인지를 보다 체계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우리 한민족의 국조는 단군이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 할아버지에 가서 닿는다.

지금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경제적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뿌리 없는 나무처럼 모래 위에 세워진 성처럼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정신에서 나온다. 한국인의 뿌리 단군조선이 바로 설 때 한국역사, 한국정신이 바로 서게 되고 한국인이 변동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다시 웅비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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