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다 잠시 멈출 때가 있다.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정말 맞는 것인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포가 엄습한다. 과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톨스토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년)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쟁과 평화」(1869년), 「안나 카레니나」(1877년) 등이 대표 작품이다.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농민과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를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끝없이 되묻다
'왜 사는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전반에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 한겨울 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살을 기도한다. 그의 나이 오십의 일이다. 이미 소설가로서 이름을 날리고 막대한 부와 명성도 얻었던 때라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땐 행복한 삶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권태와 자살 충동을 느꼈고 죽음만이 헛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느꼈다.
살아가면서 그는 도덕에 매달리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매일 고민했다. 평론가들은 톨스토이의 이런 자기 학대와도 같은 완결성 추구, 도덕성 추구가 그를 지금과 같은 위상으로 올려놓았다고 말한다. 반면 이런 성향은 그를 위기로 밀어 던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방황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
그렇게 고통스러운 밤들이 지나고 톨스토이는 종교에서 삶의 답을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에서 답을 찾았다. 우리 모두는 그물과 같이 엮여 있고 그물 속에서 사랑하며 살아가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생태계라는 그물을 깨지 않고 서로 상호 보완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죽음이 다가올 때 인간의 행동이 추악하게 보이는 까닭은 죽어가는 자와 죽음을 지켜보는 자들 사이에 고통과 분열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와 평론가들은 이 위기를 변곡점으로 톨스토이의 작품세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톨스토이는 인생 전반에서 사랑에 대해 외쳤고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고 행복으로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김형국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어떤 삶을 살아왔나.
▶영남대와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했고 귀국 후 성악가로 활동했다. 생각해보면 과분할 정도로 국내외 많은 오페라 및 음악회 무대에 올랐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예술행정의 길로 접어들었다. 2011년 대구시 동구 아양아트센터(옛 동구문화체육회관) 관장으로 재직한 것이 본격적인 첫 행보다. 당시 존재감이 없던 극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많은 관객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만들었고 내부 조직의 안정화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수성아트피아 관장으로 부임, 대구 최고 공연장으로서의 명성을 잇고자 최고 수준의 공연 유치, 지역 아티스트 육성책 등에 주력했다. 이런 것들이 성과를 이뤄 아트피아 최초의 연임 관장이 됐다.
대구문화예술회관(DAC) 관장 자리로 옮겨가선 '대한민국 제작극장의 중심'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립예술단 중심의 운영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예술단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로 시민들에 다가가려 노력했다. '2021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성공적 추진으로 문체부 공인 그해 최고 등급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 중 본의 아니게 직을 내려놓게 됐고 지금은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여정을 되돌아보며 나름 여유있게 살아가고 있다. 여행도 다니고 내적인 공부도 하면서 말이다.
-무엇이 행복이라 생각하나.
▶여행은 나를 깨어나게 하고 그 여운은 길게 남아 삶의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채색해 준다. 나의 여행은 혼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식이다. 대도시를 여행할 경우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 관람까지 포함된 계획을 꼼꼼히 짜고 지도까지 손으로 그린다.
당초 큰 그림은 나만의 '그랜드 투어'라는 이름으로 인류가 탄생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부터 인류와 문명의 이동 경로를 따라 쭉 여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으로 지금은 형편 닿는 대로 길을 나서고 있다. 건축가들과 함께 떠나는 국내외 건축 캠프, 문화인류학자와 함께하는 독일의 바흐페스티벌 등 단체여행도 적절히 곁들이고 있다. 조만간 크루즈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갖고 있던 중 최근 큰 변곡점이 생겼다. 몽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아내가 한국에 나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갑상선에 작은 결절이 보이고 모양과 위치 등이 좋지 않다는 소견이었다. 그렇다면 예후가 상당히 좋지 않을 진행성 갑상선암으로 판명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전문병원에서 또다시 검사를 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열흘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우리 부부에겐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암일 확률이 거의 없는 가장 좋은 결과(베데스다 2등급)가 나왔다. 건강만큼 소중한 것도 없음을 절실히 깨달은 사건이라 이제 행복을 논할 때 건강을 빼고는 말할 수 없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삶의 방향도 재설정했다. 결론은 '가족끼리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자'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떨어져 지낸다. 아내는 몽골, 나는 한국, 딸은 중국과 호주를 거쳐 지금은 결혼해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그동안 한번씩 만나기는 해왔지만 다른 가족들만큼 매일 부대끼며 살지는 못하니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문제는 아직도 내가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술행정의 경험도 누구 못지않게 쌓았으니 한번 더 역량을 펼쳐보고픈 욕망이 솔직히 있다. 그래도 이제는 좋은 남편, 최고의 아빠가 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최선의 선택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행복한 삶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아들을 먼저 보냈다. 나 보다는 아들과 특히 친했던 아내의 슬픔이 더 컸을 것이다. 이런 아픔을 달래고 많은 사람들이 아들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내는 몽골 현지에서 아들 이름으로 된 장학재단 설립을 꿈꿔왔다. 마침내 때가 돼 마지막 절차를 밟고 있던 중 이 일을 총괄하던 한국 신부님이 갑자기 소천하셨다. 그때 아내의 생각이 변했다. 우리 아이 이름으로 된 장학회 대신 거룩한 삶을 산 신부님도 함께 기리자는 것이었다. 결국엔 아들 이름을 빼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많은 이들이 재단에 기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아내처럼 큰 일은 못 하지만 아직 조금은 쓸만한 내 목소리로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 한때 인생을 걸고 이탈리아 유학을 갈 만큼 음악을 사랑했지만 관장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고자 노래를 접었다는 건 자랑스런 이력인 한편 개인적으론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악가였던 나 자신에게 주는 위로이자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방법의 하나로 노래를 통한 봉사를 꿈꾸고 있다. 이에 더해 과거 합창단에서 지휘한 경험을 살려 초원(몽골)의 아이들과 합창하며 또 다른 꿈을 키우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너무 멋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좋은 칼럼니스트도 되고 싶다. 2017년부터 한 지역신문에 격주로 문화칼럼을 쓰고 있는데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가치 있고 깊이 있는 글을 쓰는 게 꿈이다.
-딸 또는 젊은세대에게 행복과 관련해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라'다. 우리는 내일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오늘의 무언가를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다.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미래만 보며 살아온 것이다. 이는 성취와 노력 만을 강조한 교육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욕심 탓도 있다. 그런데 오늘의 희생이 반드시 다음의 행복과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 살아보니 그렇다. 두 눈은 뜨고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친 것이 너무 많았다는 후회가 남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똑똑하고 지혜로워서 우리 기성세대와 같은 우는 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지난 4월 태어난 나의 손녀에게 한마디 남기자면 '늘 깨어 있어서 지금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딸의 딸(손녀에 대한 소설가 최인호의 표현)에게 사랑과 축복을 듬뿍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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