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는 단순히 거래하기 편한 상품이 아니라 투자자의 자산을 장기적으로 키워주는 도구가 돼야 합니다."
국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이 순자산 500조원을 넘어서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그룹장(사진)은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ETF 본연의 역할을 다시 강조했다. 상품 수와 거래 규모는 빠르게 늘었지만, 투자 문화 역시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중심으로 단기 매매가 과열되는 흐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며 ETF 시장이 이제는 외형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푸르덴셜증권 PB를 거쳐 삼성자산운용에서 12년 넘게 ETF 사업을 이끌었고 지난 2021년 신한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겨 SOL ETF 브랜드를 키워온 김 그룹장은 국내 ETF 시장의 성장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대표적인 전문가다. 20년이 넘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ETF는 오래 들고 갈 상품이어야 한다"는 투자 철학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김 그룹장은 "ETF 사업을 시작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목표는 개인투자자의 연금과 같은 장기 자산 운용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장기 자산 운용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제공해 투자자의 경제적 효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신한자산운용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 "외형보다 본질"…SOL ETF의 생존 전략
신한자산운용은 국내 ETF 시장에서 비교적 늦은 출발을 했다. SOL ETF 브랜드 역시 지난 2021년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이미 시장에는 대형 운용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후발주자가 단기간 점유율 경쟁을 벌이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이 때문에 김 그룹장은 처음부터 외형 경쟁보다 브랜드 정체성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늦게 시작한 만큼 점유율을 단기간 끌어올리는 것은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었다"며 "대신 SOL ETF만의 색깔을 투자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 팬덤으로 이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SOL만의 색깔'이란 장기 성장 산업을 정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단순히 인기 산업을 ETF에 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산업의 밸류체인과 성장 구조를 분석해 투자자가 산업 성장의 과실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상품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그룹장은 "조선 산업이라면 조선 산업의 특성을, 반도체라면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도록 ETF를 만들어야 한다"며 "시장의 중장기 트렌드를 먼저 읽고 산업 특성에 맞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업계에서도 SOL ETF가 시장 트렌드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는 평가를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같은 철학은 최근 SOL ETF의 성장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실제로 'SOL AI반도체TOP2플러스'를 비롯한 대표 상품들은 시장의 메가트렌드를 비교적 이른 시점에 반영하면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단순히 인기 산업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 내 밸류체인과 기업 비중까지 차별화한 전략이 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김 그룹장은 "투자자들이 이제는 브랜드보다 상품 자체를 보고 선택하는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후발주자라도 차별화된 상품이라면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내러티브+넘버스' 갖춰야 오래 간다…메타버스는 반면교사
김 그룹장이 ETF 상품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내러티브 앤드 넘버스(Narrative & Numbers)'다. 성장 스토리와 실제 실적이 함께 뒷받침되는 산업이어야 장기적으로 투자자에게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철학이다.
그는 "새로운 투자 대상이 나타나면 먼저 성장 스토리, 즉 내러티브를 살펴보고 그다음 실제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인지 넘버스를 확인한다"며 "두 가지가 모두 충족돼야 3년, 5년 뒤에도 투자자가 웃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화려한 성장 스토리만으로 투자에 나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메타버스를 꼽았다. 당시 시장에서는 차세대 산업이라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실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고 결국 열풍도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그룹장은 "메타버스는 성장 스토리는 굉장히 강했지만, 실제 돈을 버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며 "반면 최근 AI 반도체는 성장 스토리와 기업 실적이 함께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바이오 산업 역시 성장성만 보고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며 "스토리와 실적이 함께 가는 산업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하반기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했다. 김 그룹장은 특정 산업이 과열됐는지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그는 "지금 시장은 어느 산업이 과대 평가됐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국면이지만, 반도체, 특히 국내 메모리 산업은 내러티브와 넘버스가 모두 살아 있는 대표적인 분야"라며 "올해뿐 아니라 내년, 내후년까지도 실적 가시성이 높은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의 방향성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만큼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그룹장은 "지금은 시장이 어디까지 갈지를 예측하기보다 다음 국면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만약 변동성이 확대된다면 투자자들의 성과를 안정적으로 지켜줄 상품이 무엇인지, 반대로 강세장이 이어진다면 반도체와 함께 시장을 이끌 차기 주도산업이 무엇인지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관심 있게 보는 분야로는 전력과 조선을 꼽았다. 최근 주가 조정을 받았지만, 산업의 성장 스토리와 실적 전망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경우에는 배당형 ETF나 인컴형 상품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 투자는 공부가 전제…'잃지 않는 투자'가 먼저
김 그룹장은 국내 ETF 시장이 여전히 성장 국면에 있지만,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열 경쟁은 업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진단했다.
최근 ETF 시장은 순자산과 상품 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운용사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과거에는 수수료 인하 경쟁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유사 상품 출시와 공격적인 마케팅 경쟁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ETF 시장은 분명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이지만, 그 과정에서 경쟁 과열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며 "다행히 수수료 경쟁은 예전보다 다소 진정됐으나 상품 베끼기나 과장 광고 등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며 이런 성장통을 거치면서 시장도 한 단계 질적으로 성숙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자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거에는 브랜드 인지도만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동일한 반도체 ETF라도 편입 종목과 투자 방식, 밸류체인 구성까지 비교하는 투자자가 크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김 그룹장은 "요즘 투자자들은 상품 하나하나를 비교·분석할 만큼 상당히 스마트해지면서 운용사 브랜드보다 상품 자체의 경쟁력을 보고 선택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여러 운용사가 SOL ETF와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출시했음에도 투자자들이 원조 상품을 알아보고 선택해 준 것은 시장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열풍에 대해서는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ETF는 본래 장기적인 자산 배분을 위한 수단인데, 일부 고위험 상품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단기 투기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자 교육 강화와 함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그룹장은 "높은 변동성 상품을 지나치게 자주 거래하면 장기적인 자산 형성보다 단기 투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며 "투자 위험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고 필요하다면 진입 요건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자산 대부분을 장기투자에 배분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포트폴리오의 최소 90%는 장기투자 관점에서 운용하고 단기 트레이딩은 최대 10% 이내에서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며 "'잃지 않는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변동성을 관리하는 것이 결국 장기 성과를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하반기 SOL ETF 전략도 이 같은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신한자산운용은 시장을 대표하는 지수형·배당형·인컴형 ETF를 장기 보유용 '코어(Core) 자산'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AI, 반도체 등 성장 산업을 빠르게 발굴하는 테마형 ETF를 통해 초과 수익 기회를 제공하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 그룹장은 ETF의 가장 큰 장점은 낮은 비용과 높은 투자 효율성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그만큼 투자자 스스로 공부하고 비교하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ETF는 누구도 대신 선택해 주지 않는 상품"이라며 "브랜드나 낮은 보수만 보고 투자하기보다 상품 구조와 괴리율, 투자 대상 등을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조금 더 공부하고 비교할수록 ETF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익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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