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원이 투입되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을 두고 입지 선정 절차와 전력 인프라 검증이 미흡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반도체 생산공장(팹)은 전력·용수·인력 등 핵심 인프라가 갖춰진 뒤 입지가 결정돼야 하지만, 정부가 서남권을 먼저 낙점한 뒤 전력망 등을 사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핵심 전략산업인 만큼 정치 일정에 맞춘 속도전보다 전력·용수·인력 등 핵심 인프라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력 인프라 부족해…재생에너지 대안 될 수 없어"
9일 국회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대구 수성구갑)과 국민의힘 반도체·AI 첨단산업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반도체 미래와 생존을 위한 연속 토론회' 첫 시간에서는 전력을 중심으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선정 과정의 적정성과 핵심 인프라 검증 여부를 따지는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경기 반도체공학회 수석부회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례를 들어 서남권 사업의 전력 인프라 검증 필요성을 강조했다. 용인의 경우 부지 확정 이후 15GW 전력 수요 중 6GW 공백 문제가 제기됐고, 송전설비 구축 과정에서 주민 반대와 국회 입법조사처의 경고가 뒤따랐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반도체 팹에서의 전력 사고는 곧 생산 차질과 막대한 피해로 이어진다며 전력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했다. 그는 "1GW가 인구 130만명 규모의 대도시가 쓰는 전력인데 서남권 팹 4기에 필요한 전력이 6.3GW로 대형 원전으로도 약 4.5기가 필요한 규모"라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수요와 AI 데이터센터 수요까지 더하면 기존 전력수급계획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꺼내 들었던 재생에너지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는 것과 반도체 팹을 24시간 365일 돌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반도체 팹은 평균 출력이 아니라 최악의 날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파·무풍·야간이 겹치는 날에는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사실상 급감해 이를 보완할 기저전원과 송전망 대책 없이는 팹 가동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송전망 문제도 핵심 변수로 꼽았다. 서남권에서 생산한 전력을 서남권 팹에 투입할 경우 당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하려던 전력을 어디서 보완할 것인지, 반대로 영남권 원전 전력을 서남권으로 보내려 할 경우 장거리 송전망과 주민 수용성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기는 동쪽에서 만들고 팹은 서쪽에서 쓰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현재 원전의 상당수가 집중돼 있는 영남권에서는 발전만 부담하고 왜 팹은 없느냐는 문제 제기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김 부회장은 정부의 서남권 입지 결정 과정에서 '검증 후 결정'의 흔적이 부족하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왜 서남권인가에 대한 자료를 보지 못했다"며 "전력·용수·인력·산업 생태계·물류·거버넌스 등에 가중치를 둔 객관적 평가표를 만들고, 심사 결과와 근거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반도체지원법처럼 공모와 기업 신청, 부지 제안, 평가표 기반 심사, 근거 공개를 거쳐 최종 입지를 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거리 송전을 줄이는 것이 가장 좋아"
이어진 토론에서도 입지 선정 과정과 접근 방식이 부자연스럽다는 의견이 계속됐다. 김형탁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국가가 여러 후보지를 제시하고 기업들이 검토한 뒤 최적지를 선택하는 순서였다면 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입지는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려운 만큼, 다른 옵션이 과연 검토됐는지, 기업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 투명하게 공개돼야 업계 관계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남권에 원전 등 전력 발전소가 집중돼 있는 만큼 지역 간 불균형 문제도 제기됐다. 오세일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본부장은 "생태계 없이 일단 팹을 하겠다는 데 놀랐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팹 하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광주 쪽 입지 선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이 있어야 대구도 대응을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 측에선 서남권 투자가 전국 반도체 생태계 확산 전략의 일부라고 설명하면서 전력 문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안홍상 산업통상부 반도체과장은 "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용인과 서남권에 들어서면 후공정·패키징 시설은 충청권에 필요하고, 소부장 기업이 모여 있는 구미·대구권 인프라도 계속 지원할 것"이라며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연도별 전력·용수 수요를 상세히 파악해 법정 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안 한국전력 계통연계실장은 김 부회장의 전력 우려에 대해 "수요량이 나오면 그 변동량에 맞춰 발전소 수급계획을 세우고, 그 전력을 어떻게 연결할지 송전망 계획을 짠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지역에서 발전해 그 지역에서 소비해 장거리 송전을 줄이는 것"이라면서도 "우리나라 송전망은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어 인근 송전선로나 망에서 연결하면 전력을 받는 데는 대부분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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