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세균성 이질이 영국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 11일 확인됐다.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마저 속속 무력화되면서 보건 당국이 긴급 대응에 나섰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란셋 감염병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성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시겔라균은 해외 여행이나 오염 음식 등 기존 경로로 감염되는 변종보다 연간 15% 빠르게 증가했다.
영국 보건안전청(UKHSA)이 집계한 지난해 성접촉 관련 시겔라균 감염 건수는 2560건에 달한다. 세균성 이질을 일으키는 시겔라균은 보통 오염된 음식이나 환자의 대변이 묻은 물건을 통해 옮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성 동성애자·양성애자 사이의 항문성교 과정에서 대변 물질과 접촉하며 감염되는 경우가 뚜렷이 늘고 있다.
이 균에 감염되면 피 섞인 설사와 극심한 복통, 고열, 구토가 동반된다. 하루 이틀이면 낫는 일반 장염과 달리 일주일 이상 앓아눕는 사례가 많고, 환자 3명 중 1명은 4~5일간 입원 치료가 필요할 만큼 증세가 심각하다.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면 탈수, 장 천공, 영양실조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매년 20만 명 이상이 이 병으로 숨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항생제 내성이다. 연구 기간 말미에는 성접촉으로 전파되는 시겔라균 변종의 70% 이상이 치료에 쓰이는 항생제 중 최소 한 가지에 내성을 보였으며, 비성적 전파 변종(40%)이나 해외 여행 관련 변종(49%)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시프로플록사신·아지트로마이신 등 이질 치료에 주로 쓰이는 항생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구를 이끈 케이트 베이커 케임브리지대 유전학과 교수는 "남성 동성애자 상당수가 성적으로 전파되는 시겔라균의 심각성과 증가하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성적 감염은 이제 영국 내 시겔라균 전파의 고착된 경로가 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현재의 공중보건 대응에 명백한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예방 수칙이 손 씻기와 음식 위생에 집중돼 있어 성적 전파를 통한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영국 보건안전청의 하미시 모하메드 박사는 "성관계 전후로 위생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증상이 있다면 즉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질 진단을 받은 경우 HIV를 비롯한 다른 성병에도 함께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종합적인 성 건강 검진을 받을 것도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복통과 설사 증상을 단순 식중독으로 가볍게 넘기지 말고, 최근 성접촉 여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케임브리지 연구팀은 성접촉 이질을 기존 이질과 구분된 별도의 공중보건 위협으로 간주해 다른 감시·예방·치료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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