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수다]"호텔보다 절이 좋아요"… 팔공산 산사서 하룻밤 보낸 4개국 외국인 교환학생들
새벽 4시. 세상이 아직 어둠에 잠긴 시각, 팔공산 자락 동화사에 목탁 소리가 번졌다. 이국의 청년들이 하나둘 눈을 비비며 법당으로 들어섰다. 미국·영국·칠레·일본에서 온 교환학생들이다. 낯선 예불(禮佛) 앞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 좌선(坐禪)이 이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이내 가라앉았다. 경북대 국제처 썸머스쿨 참가자 15명이 지난 1일부터 1박 2일간 동화사에서 템플스테이를 가졌다. 동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다. 경북대에는 한 학기에 200여 명의 외국인이 교환학생으로 들어온다. 인도·몽골부터 유럽·미국·멕시코·중국까지 국적도 다양하다. 절 문화가 낯선 이방인에게도, 산사의 새벽은 공평하게 찾아왔다. ◆ 수련복 갈아입고 산사의 하루로 템플스테이는 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뉜다. 쉬어 가는 휴식형이 대세지만, 이번 교환학생들은 몸으로 부딪치는 체험형을 골랐다. 편히 쉬기보다 제대로 겪어 보겠다는 선택이었다. 첫날은 단출했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참선당에 모여 오리엔테이션과 입재식을 가졌다. 산길을 걷는 포행으로 마음을 골랐다. 둘째 날은 새벽 4시에 시작됐다. 묵언 속에 예불과 좌선이 45분간 이어졌고, 명상은 그중 10분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초심자에게는 만만치 않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생명공학과 조나단 조셉(Jonathan Joseph·22) 씨는 "스님들이 새벽 일찍 하루를 열고 명상으로 수행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미국의 절에서는 접하기 힘든 한국만의 문화였다"고 했다. ◆ 숲길에서 나눈 삶, 108배로 다진 마음 아침 공양(供養)을 마친 학생들은 동화사 연수원장 혜문 스님과 숲길로 나섰다.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낙엽 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에 호흡을 맡겼다. 걸음이 느려지자 말문이 트였다. '삶에서 죽음까지'를 주제로 문답이 오갔다. 저마다 마음속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 미국 학생은 "양로원에서 일할 때 자기 인생을 후회한다는 어르신을 많이 봤다"며 "나는 후회 없이, 나에게 진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또 칠레 학생은 "지나간 뒤에야 감사할 줄 알게 됐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무거운 주제였지만, 오히려 서로의 속내가 담백하게 오갔다. 말로 마음을 나눴다면, 이번엔 몸으로 마음을 다스릴 차례였다. 학생들은 참선당으로 돌아와 108배를 올렸다. 절 한 번에 염주(念珠) 한 알씩 꿰었다. 80배를 넘기자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무릎이 후들거려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08번, 낮은 자세로 마음을 눌러 담았다. 108알의 염주가 손안에서 하나의 줄로 이어지자 학생들은 감탄했다. 문화의 결은 나라마다 달랐다. 일본 교토대 문학부 사사키 유(Sasaki Yu·20) 씨는 "일본 사찰은 소박한데 한국 절은 화려하다"며 "한옥에서 자는 건 처음인데 옛 문화가 잘 보존돼 있고, 한자(漢字)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영국 허트퍼드셔대 광고마케팅학과 게팅스 모니크(Gettings Monique·23) 씨는 "콘크리트 도심의 소음을 벗어나 보낸 하룻밤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은 회향식(回向式)과 소감문 작성이었다. 학생들은 하룻밤의 소회를 글로 남기며 여정을 맺었다. ◆ 월드컵이 연 산문(山門) 낯선 산사를 찾는 발길은 갈수록 늘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계기였다. 외국인 방문객이 몰려 숙소가 부족해지자 조계종이 산문을 열었다. 대회 기간 30여 일간 외국인 1천여 명, 내국인 1만여 명이 산사에 머물렀고, 그 장면이 세계 언론을 타며 한국 불교가 알려졌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템플스테이를 한국의 대표 문화관광상품으로 꼽았다. 화려한 관광지 대신 조용한 산사를 찾는 외국인은 지금도 늘고 있다. 칠레 출신으로 교토대 경영관리대학원 석사 2년 차인 바리오스 벨렌(Barrios Belen·30)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절에 잠깐 들른 적은 있어도 하룻밤 머문 건 처음"이라며 "한국 사찰은 평화롭고 아늑하다.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혜문 스님은 "해마다 연인원 1만여 명이 동화사 템플스테이를 찾는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부처님의 자비 안에서 세계의 청년은 하나가 된다"며 "이들이 마음의 평화를 안고 돌아가도록 산문을 활짝 열어 두겠다"고 말했다.
2026-08-28 11:50:00
광복 81주년을 맞는 15일, 대구 수성못 상화동산이 경축 무대로 바뀐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민족저항시인 이상화를 기리는 이 언덕에서 시민들이 태극무를 추고 독립선열의 어록을 낭독한다.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대표 이용수)과 대구국학원(원장 신정원)은 이날 오후 5시 상화동산에서 '제81주년 광복절 경축 및 나라사랑 플래시몹'을 연다. 2026년 대구지방보훈청 지원 사업으로 열리며, 전국 17개 광역시·도 국학원이 같은 날 동시에 행사를 진행한다. 슬로건은 'K스피릿 정신광복으로 하나된 대한민국'이다. 행사는 고산농악대의 풍물 공연으로 문을 연다. 이어 전통무예 시범, 청소년 태극무, 플루트 연주, 시민 참여 어록 낭독, 광복절 노래 제창이 이어진다. 올해는 홍암 나철(弘巖 羅喆) 선생 순국 110주년이 되는 해다. 나철 선생은 대종교를 세우고 항일 투쟁을 이끌다 19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정원 대구국학원장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 홍익정신(弘益精神)이었다"며 "광복의 완성은 정신광복이고, 그 뿌리가 K스피릿"이라고 말했다. 신 원장은 "110년 전 나철 선생과 독립선열이 지키려 한 민족정신을 이어가자"고 했다. 두 단체는 해마다 삼일절과 광복절, 개천절 등 3대 국경일에 기념 행사를 열어 홍익정신을 알리고 있다. 행사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2026-08-14 13:11:00
[무지개수다]"수성구 행정 시스템 배우러 왔어요"…독일·일본서 날아온 20대 공무원
매일 아침, 독일과 일본에서 온 두 청년이 대구 수성구청으로 걸어서 출근한다. 관광객도, 유학생도 아니다. 본국에서 공무원증을 지닌 스물다섯, 스물아홉의 현직 공직자다. "안녕하세요, 수성구!" 서툰 한국어 인사에는 독일과 일본 억양이 뒤섞였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했다. 이들이 대구까지 온 이유는 하나다. 한국의 지방행정을 현장에서 배우기 위해서다. 대구 막창에 반한 독일 청년은 미래교육과에, 산낙지 맛을 잊지 못하는 일본 청년은 홍보소통과에 배치됐다. 국적은 달라도 목표는 같다. 수성구가 일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혀 자국 도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 첫날 배운 한국어 '빨리빨리' 독일 카를스루에시청 청소년사업팀장 도미닉 슈텡엘(25) 씨는 한국에 온 첫날을 잊지 못한다. 인천국제공항까지 마중 나온 수성구청 직원들에게서 이미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먼 길을 달려와 준 게 고마웠다.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첫날부터 느꼈다"고 말했다. 슈텡엘 씨는 본국에서 14~27세 청소년·청년을 위한 상담과 맞춤형 사업을 이끈다. 그가 운영하는 '힙합문화센터 콤보'는 브레이킹과 그래피티 같은 거리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는 "이 업무와 관련해 이미 한국과 교류해 왔다. 그래서 수성구 연수가 더 기대됐다"고 했다. 수성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어를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빨리빨리"라고 답했다.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행정 서류 하나를 처리하는 데 몇 주씩 걸린다. 그런데 수성구는 달랐다. 신청하면 곧바로 처리되고 답변도 정확했다. 처음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놀라워했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었다. 정확했다. 그는 "수성구의 행정 시스템은 독일이 배워야 할 모델"이라고 말했다. 음식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불고기와 삼겹살에 먼저 입맛을 빼앗긴 그는 "독일 사람들에게 대구에 오면 막창을 꼭 먹어보라고 권하겠다"며 대구 막창 예찬을 이어갔다. 수성행복드림센터에서 주 2회 한국어를 배우는 그는 "주민을 위한 문화·교육·복지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도심에 공원과 녹지가 많고, 대구간송미술관·대구미술관 같은 문화시설도 풍부해 살기 좋은 도시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4개월 연수를 마치고 카를스루에로 돌아가면 수성구를 롤 모델 삼아 교류 협력 사업에 앞장설 계획이다. ◆ 동사무소 없는 일본…수성구 온라인 민원에 '눈이 번쩍' 일본 이즈미사노시 국제교류과 주무관 하세가와 마사히로(29) 씨는 본국에서 대표단 영접과 의전, 시장의 해외 출장을 맡아온 국제교류 전문가다. 수성구청 홍보소통과에 배치돼 한국식 소통 행정을 꼼꼼히 관찰하고 있다. 그가 먼저 꺼낸 기억은 뜻밖에도 음식과 문화 체험이었다. "수성구청 직원 동호회 '담다' 초청으로 전통요리 모임에 참가했는데, 궁중 방식 호떡 '조호전'과 궁중 떡볶이를 만들어 본 기억이 생생하다" 고 했다. 산낙지에 처음 젓가락을 댔다가 그 맛에 반한 그는 이제 대구 음식 예찬론자가 됐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경기도 잊지 못한다. 직원들과 함께 관람한 그는 "홈 팬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다"고 했다. 행정 현장에서 그가 가장 눈여겨본 것은 온라인 민원 시스템이었다. "일본에는 동사무소가 없다. 민원 서류도 오프라인으로만 발급돼 시청이 늘 붐빈다" 그는 또 "한국은 인터넷으로 신청과 발급이 모두 가능했다. 주민에게 얼마나 편리한지 직접 보고 놀랐다" 고 했다. 마사히로 씨는 귀국 후 이즈미사노시에 이 시스템을 도입하고, 수성구와 예술 분야 교류도 넓히고 싶다고 했다. ◆ 우호 교류 넘어…실질적 '행정 협력 파트너'로 두 사람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가 주관하는 외국공무원 초청 연수 프로그램으로 수성구에 파견됐다. 지난 4월부터 8~10월까지 각각 4~6개월간 수성구청에 머물며 한국의 지방행정을 경험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다. 두 사람의 하루는 단순한 연수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 동료들과 점심을 함께 먹고, 퇴근 후엔 수성구 곳곳을 걸으며 도시를 익힌다. 언어 장벽은 있지만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수성구는 이 프로그램으로 우호 교류를 넘어 실질적인 행정 협력 파트너를 얻고 있다. 막창에 반한 독일 청년, 산낙지에 빠진 일본 청년. 두 사람이 배운 수성구의 방식은 머지않아 카를스루에와 이즈미사노의 행정 현장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2026-08-14 12:00:00
다람쥐·쥐 가죽까지 팔았다… 1977년 12월 22일, 수출 100억 달러 돌파
1977년 12월 22일 대한민국의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64년 1억 달러 고지에 오른 지 13년 만에 규모를 100배로 불렸다. 그해 100억 달러를 넘긴 나라는 전 세계 22개국뿐,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였다. 1960년대까지 원조를 받던 나라가 1970년대 후반 세계 20위권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전쟁의 폐허에서 20여 년 만에 이룬 '한강의 기적'이었다. ◆ 다람쥐와 쥐 가죽에서 시작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가진 것은 사람뿐이었다. 1964년 첫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고 '제1회 수출의 날'을 열었다. 그해 내다 판 것은 머리카락과 다람쥐, 은행잎, 쥐 가죽이었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아 배에 실었다. 쥐 가죽은 변방 품목이 아니었다. 1972년 정부가 잡은 쥐 가죽 가공품 수출 목표는 수십만 달러. 시장 전망이 밝은 효자 상품으로 분류돼 있었다. 품목은 빠르게 갈아탔다. 해태와 오징어, 중석에서 출발해 가발과 합판, 섬유를 거쳐 철강과 전자, 조선과 기계로 옮겨갔다. 1960년대 30%에도 못 미치던 공산품 비중은 100억 달러를 달성하던 해 90%에 이르렀다. 세계 133개 국에 나간 품목은 1,200여 가지였다. 선박과 철도차량만이 아니었다. 깻잎과 고사리, 갯지렁이, 이쑤시개가 같은 목록에 올랐다. 가발을 만들고 남은 머리카락까지 실어 보냈다. 일본이 '걸레에서 미사일까지'를 내세울 때 한국은 '라면에서 유조선까지'라고 했다. 국민 한 사람이 274달러어치씩 판 셈이었다. ◆ 16억 달러 나라가 세운 100억 달러 계획 출발은 무모했다. 수출이 고작 16억 달러이던 1972년, 정부는 100억 달러 계획을 내놨다. 이듬해 제1차 석유파동이 터졌다. 세계 경기는 침체로 돌아섰고 한국 경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정부는 계획을 접지 않았다. 수입대체 공업화에서 수출지향 공업화로 방향을 틀었다. 1973년 발표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분기점이었다. 철강과 조선, 기계, 전자, 석유화학에 투자가 집중됐다. 수출 품목은 다양해지고 부가가치는 높아졌다. 가발과 합판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임금이 조금만 올라도 후발국에 따라잡히는 구조였다. 무거운 산업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100억 달러는커녕 그때의 자리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수출진흥확대회의는 한국형 전투사령부였다. 100억 달러를 달성하기까지 162차례 열렸다. 그사이 수출은 연평균 40% 이상 늘었다. 1971년 10억 달러를 넘어선 지 6년 만에 다시 10배가 됐다. 세계 무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였다. 정부가 잡았던 목표 연도는 1981년이었다. 4년을 앞당겼다. ◆ 세계 6번째 수출 강국...7,000억 달러 돌파 석유파동을 뚫는 방편은 두 가지였다. 중동 건설과 종합무역상사. 최전방에는 현대건설과 정주영 회장이 있었다. 1976년 6월, 현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산업항 공사를 9억3,000만 달러에 따냈다.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해외 언론은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라 불렀다. 문제는 공법이었다. 수심 30m 바다 한가운데에 30만t급 유조선 4척을 동시에 댈 정박시설을 세워야 했다. 현대는 400t짜리 하부구조물 재킷 89기를 울산조선소에서 만들었다. 이를 바지선에 싣고 1만2,000km 떨어진 걸프만까지 끌고 갔다. 편도 35일, 열아홉 차례를 오갔다.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수송이었다. 다른 한 축은 1975년 도입된 종합무역상사였다. 흩어져 있던 수출 창구를 대기업 중심으로 묶은 제도다. 상사들은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판다"는 구호를 걸고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다. 중동에서 들어온 오일머니와 상사가 뚫은 판로가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1977년의 100억 달러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선 계기였다. 구로공단이 수출입국의 꿈을 심었고, 구미공단은 주력 품목을 전자제품으로 바꾸며 반도체 코리아의 초석을 놓았다. 1960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83달러.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65년이 흐른 2025년, 한국의 연간 수출은 7,094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넘어선 세계 여섯 번째 나라가 됐다.
2026-08-07 12:46:00
"늙은 세포의 시계를 되감는다"… 노화, 자연현상에서 '치료 대상'으로
"인체 장기는 계속해서 이식할 수 있고, 오래 살수록 더 젊어지며 불멸도 가능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1952년 10월생) 러시아 대통령의 말이 통역을 거쳐 중국어로 흘러나왔다. 시진핑(1953년 6월생) 중국 국가주석은 "일각에서는 이번 세기 안에 인간이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지난해 9월 3일 중국 베이징. 전승 80주년 기념 열병식 생중계 화면에 두 노(老)지도자의 대화가 잡혔다. 절대 권력자의 불로장생 꿈은 새로울 게 없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신하들을 사방에 풀었지만 끝내 빈손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는 연금술사들에게 '불사의 영약' 엘릭서를 좇게 했지만 역시 헛일이었다. 다만 이번엔 다르다. 그 오랜 꿈의 뒤를, 과학이 받치고 있다. 1900년대 초 40~50세에 머물던 인간의 평균 수명은 한 세기 만에 곱절로 늘었다. 국내 100세 이상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9,000명(올해 6월 30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기준)을 넘어섰다. 공식 세계 최장수 기록은 122세, 1997년 숨진 프랑스인 잔 칼망이다. 지난 6월 9일(현지 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바이오 기업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가 개발한 '역(逆)노화' 유전자 치료제가 인류 최초로 사람 몸에 투여됐다.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되돌리는 약이다.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치료다. 인류는 노화를 '늦추는' 시대를 지나, '되돌리는' 시대로 들어섰다. 이제 물음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젊게 사느냐다. 지난달 미국의 한 병상에 주사기 하나가 들어갔다. 담긴 것은 약이 아니었다. 늙은 세포에게 젊었던 시절을 기억하라고 지시하는 유전자였다. 늙은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역노화(rejuvenation)' 유전자치료가 세계 최초로 사람에게 투여됐다. 미국 바이오기업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가 후성유전학적 리프로그래밍 기술로 만든 'ER-100'이다. 노화 속도를 늦추거나 노화세포를 걷어내는 데 머물던 실험이, 세포의 나이를 되감는 쪽으로 넘어간 첫 순간이었다. 노화는 더 이상 순응해야 할 자연현상이 아니다. 세계의 실험실은 노화를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다시 정의하고 있다. 학문 이름까지 붙었다. 노인의학, 제로사이언스(Geroscience)다. '인간의 수명을 150세까지 연장하는 기술'이 입증된 것은 없지만 노화 자체를 치료하려는 연구는 세계 각국에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몸의 나이를 되감는다… 세포 재프로그래밍 전제가 하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상의 나이와 몸의 나이는 다르다. 유전자에 붙은 화학적 표지를 읽어 몸의 나이를 계산하는 '후성유전학적 시계'가 등장하면서, 노화는 측정되는 수치가 됐다. 측정할 수 있으면 개입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 노화 연구는 이 한 줄에 올라타 있다. 연구는 크게 다섯 갈래로 갈린다. 가장 앞선 축은 세포 재프로그래밍이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찾아낸 '야마나카 인자(OSKM)' 네 가지 유전자를 늙은 세포에 넣으면, 세포가 젊은 상태의 일부를 회복한다. 문제는 강도다. 완전히 초기화된 세포는 종양으로 자란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스위치를 잠깐만 켜는 '부분 리프로그래밍'에 집중한다. 이번에 사람에게 투여된 ER-100도 초기화 인자 일부만 전달하는 방식이다. 자본은 이미 이동했다. 구글 창업자 등이 참여한 알토스랩스, 오픈AI 창업자가 투자한 레트로바이오사이언스가 조(兆) 단위 자금을 이 기술에 쏟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세포 리프로그래밍을 주력 파이프라인으로 삼은 대형 기업이 사실상 없다. 서울대·동국대 등 대학 연구실이 원천기술을 붙들고 있는 단계다. ◆좀비세포와 텔로미어… 젊음과 암은 같은 문을 쓴다 두 번째 축은 노화세포 제거, 이른바 세놀리틱스다. 죽지도 않고 제 기능도 하지 않는 노화세포는 '좀비세포'로 불린다. 이들은 염증 물질을 뿜어내며 각종 노인성 질환의 원인이 된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연구진은 좀비세포를 제거한 생쥐에서 건강수명이 늘고 수명도 연장되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도 일부 진행되고 있다. 노화를 늦추는 대신 '노화한 것만 골라 버린다'는 접근이다. 세 번째는 텔로미어다. 염색체 끝을 감싼 이 보호막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고, 텔로미어가 닳으면 노화가 진행된다. 이를 복원하거나 유지하는 유전자 치료는 동물실험에서 수명 연장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세포에 분열의 여지를 되돌려주는 일은 암세포에도 같은 문턱을 낮춘다. 사람 대상 연구가 아직 제한적인 이유다. 노화 정복 연구가 번번이 부딪히는 벽이 여기에 있다. 젊음과 암은 같은 문을 쓴다. ◆알약에서 국가 경쟁으로 네 번째는 장수 유전자와 약물이다. 당뇨약 메트포르민, 면역억제제 라파마이신, NAD+ 관련 물질인 NMN·NR이 대표 후보다. 목표는 수명 연장이 아니라 노화 속도를 늦춰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있다. 다만 이들이 150세를 가능하게 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 가운데 메트포르민은 미국에서 수천 명 규모의 노화 지연 임상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수십 년간 처방된 값싼 약이 노화 자체를 늦출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결과가 나와도 문턱은 남는다. 현재 각국 규제 체계에서 노화는 질병 코드가 없다. 질병이 아니니 치료제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는 인공지능이다. 미국·영국·중국에서는 AI로 노화 원인을 분석해 신약 후보를 찾는 프로젝트가 급증했다. 수십만 개 후보 물질을 사람 대신 알고리즘이 걸러낸다. 실험실의 시간표가 달라졌다. 국가도 뛰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노화 연구에 연간 10억달러 규모를 투입하는 재단을 세웠고, 영국은 국가 연구기구에 노화 프로그램을 넣었다. 중국은 세포 치료와 유전자 편집을 국가 전략 과제로 묶었다. 노화 연구는 학문에서 산업으로, 다시 국가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에 100세를 넘긴 이는 9,041명. 사상 처음 9,000명을 넘어섰다. 대구에 307명, 경북에 587명이 산다.100세 시대는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사람들은 그다음, 150세를 이야기한다.
2026-08-01 08:00:00
낡은 장기 갈아끼우는 시대도 '성큼'… 포항선 '인공 간·심장' 찍어낸다
지난 5월 프랑스 기업 카르마의 인공심장 '에이손'이 유럽 일부 시장에서 판매를 재개했다. 사람의 심장 박동을 모사하는 이 장치는 기증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생산 라인에서 나온다. 의학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닳은 장기를 고치는 단계에서, 새로 만들어 갈아끼우는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전 세계 인공장기·생체공학 시장은 올해 483억9,000만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 442억3,000만달러에서 1년 만에 40억달러 이상 늘어났다. 2034년에는 992억8,000만달러, 연평균 9.4% 성장이 예상된다. ◆기계식·이종장기·바이오프린팅… 세 갈래 경쟁 경쟁은 세 갈래로 갈린다. 첫째는 기계식이다. 마찰을 없앤 자기부상 회전형 인공심장이 주류가 됐고, 집에서 착용하는 웨어러블 인공신장(WAK)도 필터 기술 혁신으로 상용화 문턱에 닿았다. 미국 바이바코의 완전 인공심장은 올해 3월 임상 진전을 발표했다. 이 분야는 이미 규제 승인의 궤도에 올라 있다. 둘째는 유전자 편집 이종장기다. 미국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편집한 돼지 신장과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을 가속하고 있다. 동물 장기를 사람 몸이 공격하지 않도록 유전자를 미리 손보는 방식이다. 셋째는 3D 바이오프린팅이다. 환자 본인의 줄기세포와 바이오잉크를 섞어 장기를 출력한다. 최근에는 세포를 층층이 쌓는 수준을 넘어, 실제 장기처럼 혈관 내벽을 만들고 산소를 공급하는 범용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라마다 무기가 다르다. 미국은 재생의학 전 분야와 세계 최대 시장을 쥐었다. 유럽은 카르마를 앞세운 생체모사 기계식 장기와 정밀한 규제 체계로 다국적 연구를 끌고 간다. 일본은 iPS 세포(역분화줄기세포)로 망막과 심장 근육 시트 임상을 선도한다. ◆혈관·면역·규정, 넘지 못한 세 개의 벽… 대기 4년, 신장은 7년 9개월 기술은 아직 문턱 앞에 있다. 첫 번째 벽은 혈관이다. 간이나 신장 같은 큰 장기는 미세혈관 끝까지 산소와 영양분이 닿아야 살아 있다. 이 혈관망을 구현하는 것이 현재 최대 난제다. 완전한 기능을 갖춘 3D 프린팅 장기가 여전히 '몇 년 뒤'로 남아 있는 이유다. 두 번째 벽은 면역이다. 인공 재료든 동물 세포든 몸에 들어오면 면역계가 공격한다. 크리스퍼가 선택이 아닌 필수 도구로 붙는 지점이다. 세 번째 벽은 규정이다. 살아 있는 생체 인공장기를 같은 품질로 반복 생산할 수 있는지, 그것을 누가 어떻게 검증할지에 대한 국제 기준은 아직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꿈은 세포 단위로 달리는데, 현실에선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숨지는 환자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장기이식 대기자는 5만4789명, 평균 대기 기간은 4년이다. 신장이식은 평균 7년 9개월을 기다린다. 그사이 하루 평균 8.5명이 차례를 기다리다 숨진다. 기증은 오히려 줄었다. 뇌사기증자는 2023년 483명을 정점으로 2024년 397명, 2025년 370명으로 내려앉았다. 기증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이 격차가 메워지지 않는다. ◆한국의 승부수'3D 바이오프린팅'… 포항서 자라는 인공 간·심장 방향을 먼저 튼 쪽은 국내 연구진이다. 고치는 대신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 포스텍 기계공학과 장진아 교수다. 지난해 젊은과학자상을 받은 그는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를 이끌며 인공 간과 심장을 만들고 있다. 연구팀이 다루는 장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장과 혈관, 폐·위·췌장·각막·기관·식도·장까지 사람 몸속 주요 조직과 장기 모델을 동시에 붙들고 있다. 장 교수는 바이오프린팅을 "살아있는 세포와 생체 재료를 층층이 적층해 기능성 인체 장기를 제작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손상된 조직을 겉에서 보완하는 데 머물렀던 기존 의료기술과 달리, 실제 인체 조직과 똑같은 구조와 기능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구상이 자라나는 곳은 경북 포항 흥해읍의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다. 포항테크노파크가 운영을 맡은 이곳은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인공 간·심장 같은 맞춤형 장기 제작 기술의 상용화를 돕는다. 핵심은 '작게 만들어 크게 키우는' 전략이다. 연구팀은 먼저 간이나 심장 근육세포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 구조를 작은 조직 단위로 찍어낸다. 이를 배양하고 조립해 실제 간 크기까지 불려 나간다. 목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전 과정을 자동화해 인공장기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장 교수는 "미래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단순 조직 제작을 넘어 인간의 장기 대체 시대를 여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바이오소재 기술이 결합되면 의료 패러다임 자체가 크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낡은 장기를 갈아끼우는 시대가 더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2026-08-01 06:30:00
[르포]병과 함께 사는 10년… 80~90대는 돌봄으로, 3040은 쇳덩이로 줄여
◆놀이가 치료가 되는 곳… 요양재활타운 지난 9일 오후 대구 수성구 연호동의 한 요양재활타운센터. 프로그램실 문을 열자 노랫소리가 먼저 새어 나왔다. 강사의 율동에 맞춰 어르신들이 손뼉을 쳤고,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도 어깨를 들썩였다.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80~90대 어르신 100여 명이 생활하는 이곳에서 놀이는 여흥이 아니다.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우울감을 낮추는 치료다. 문제는 오래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대수명은 83.7세까지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72~74세에 머문다. 평균 10년 이상을 병과 함께 산다. 이 센터의 무기는 시설이 아니라 프로그램이다. 재활실에서는 편마비 어르신들이 로봇 장갑을 끼고 굳은 팔을 펴는 상지(上肢) 재활에 몰두했다. 인지치료실에서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오목을 두고 두더지 게임을 하며 두뇌를 깨웠다. 옥상 치유공원에서는 계절 식물을 가꾸고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다. 가을엔 텃밭 배추로 물김치를 담그고 추석엔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다. 일상의 리듬을 되살리는 것 자체가 재활이다. 정해명 내부모요양재활타운 원장은 "집에서 식사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해 가족이 마음의 준비까지 했던 78세 어르신이 입소 후 재활을 꾸준히 받아 기력을 회복해 8년을 더 사신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의료와 돌봄이 손을 맞잡을 때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살 빼러 온 게 아니다"… 헬스장 3040 지난 20일 오후 7시 수성구 범어동의 한 헬스클럽. 문을 열자 경쾌한 음악과 거친 숨소리가 쏟아졌다. 데드리프트와 스쿼트 랙마다 회원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상당수가 3040세대다. 살을 빼러 온 게 아니다. 늙는 속도를 늦추러 왔다. 안동병원 안과 전문의 강선희(42)씨는 대구와 안동을 오가는 왕복 3시간 운전에 허리와 어깨 통증이 시작됐다. 그는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나중이 힘들겠다 싶어 곧장 헬스장에 등록했다"고 했다. 헬스 경력 6년 차인 법무법인 효현 김민정(32) 변호사는 서른 살부터 주 5일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습관으로 들였다. 그는 "힘든 날엔 30분이라도 움직이자는 마음"이라며 "건강은 일상 속 꾸준함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젊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이 배경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30세 미만 2형 당뇨 환자는 13년 새 2.2배로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로 5대 암 진료를 받은 20대 환자는 2014~2018년 5년간 44.5% 늘었다. 박준익 스페셜바디 대표트레이너(38)는 "예전에는 몸을 보여주기 위해 단기 다이어트로 찾았다면, 지금은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 평생 운동 습관을 만들려는 회원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오후 9시, 마지막 세트를 끝낸 강씨가 바벨을 내려놓았다. "100세까지 살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래 살 거라면, 아프지 않게 살고 싶다." 이들이 저녁마다 쇳덩이를 드는 이유는 하나였다. 오래가 아니라, 젊게. [박스] 100세 하재호 씨 "장수는 신에 대한 도전… 순리대로 산다" 지난 23일 오전 11시 수성구 황금동 대구노인종합복지관. 로비와 강좌실마다 고령의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다가가 장수 비결을 물었다.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소식(小食)하고, 이웃과 웃는 거지" 답은 화려하지 않았다. 2층 서예 교실에서 붓을 잡은 하재호(100·수성구 황금동)씨는 1927년생이다. 공무원으로 20년, 건축사로 20년을 일했다. 친동생도 95세다. 그는 "100세 이상을 더 산다는 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라며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순리대로 살고 있다"고 했다.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 "삼시 세끼를 꼭 챙겨 먹는다. 라면을 먹을 때도 있다"고 했다. 비결을 묻자 답은 뜻밖에 단순했다. "욕심 안 부리고, 책을 손에서 안 놓아요. 시간을 허투루 안 쓰지" 그는 "공부하고 자기를 계발하면 사람은 젊어진다"고 했다. 규칙적인 움직임, 거르지 않는 식사, 관계 속의 삶. 수명을 늘린 것은 첨단 약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그러나 달성공원에서 만난 김기수(87·서구 비산동)씨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오래 살면 뭐 하나. 친구들이 다 먼저 갔는데" 장수(長壽)가 곧 행복은 아니었다.
2026-07-31 15:04:00
"몇 살까지 사느냐가 아니라, 몇 살까지 스스로 움직이느냐"
"150세까지 살아도 70년을 병상에서 보낸다면, 그건 축복이 아닙니다" 지난 13일 대구 방촌든든한정형외과 진료실에서 만난 박지은 대표원장은 이렇게 잘라 말했다. 60세에 정년을 맞아도 그 뒤로 90년이 남는다. 그 90년을 어떤 몸으로 버티느냐, 이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박 원장은 연간 4만여 명의 60세 이상 노인 환자를 진료해온 정형외과 전문의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외래교수와 임상자문의를 지냈다. 노년의 몸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본 그에게 물었다. - 인간이 정말 150세까지 살 수 있나? ▶ 이론상 가능하다. 15년 전과 비교해 평균 수명이 5~10년 늘었다. 지금 70대 중반은 젊은 축에 든다. 기대수명 연장과 의료기술 발달로 장수 인구는 계속 급증할 것이다. - 기술은 어디까지 왔나? ▶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실험이 사람에게 시작됐다. 10년 전엔 상상이던 게 지금은 임상이다. 속도가 놀랍다. 다만 아직 초기 단계다. 안전성 검증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 암이다. 세포를 되돌리는 힘은 세포를 폭주시키는 힘과 종이 한 장 차이다. 브레이크 없이 액셀만 밟으면 사고가 난다. 그 경계를 찾는 게 관건이다. - 비용은 어떤가? ▶ 비용도 벽이다. 유전자치료는 한 번에 수억 원이 들 수 있다. 자칫 '부자만 오래 사는 시대'가 될 수 있다. -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는 무엇인가? ▶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사는 것'을 혼동한다. 목표는 수명이 아니라 건강수명이어야 한다. 젊게, 오래. 그게 핵심이다. - 누워 지내는 시간이 왜 그렇게 위험한가? ▶ 와상으로 병상에 누워 지내면 근감소가 빠르게 진행된다. 근손실이 오면 몸의 움직임이 줄고, 이로 인해 위장과 내장 기능이 떨어지고, 사망 위험이 치솟는다. 오래 사는 것 자체는 목표가 될 수 없다. 즉 수명(lifespan)이 아니라 건강수명(healthspan)이다. - 나이 드는 몸의 변화는 어떻게 봐야 하나? ▶ 노화를 그저 받아들일 자연현상이 아니라, 관리할 '건강 신호'로 봐야 한다. 눈이 침침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변화를 나이 탓으로만 넘기면 치료와 관리 시기를 놓친다. 과거엔 늙는 것을 순리로 봤지만, 지금은 노화에 원인이 있고 손댈 수 있는 생물학적 과정으로 본다. '노화는 질병'이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 왜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지고 피부 탄력이 주나? ▶ 주민등록상 나이와 몸의 나이는 다르다. 노화의 핵심 열쇠가 텔로미어(telomere)다. 흔히 운동화 끈 끝의 플라스틱 캡에 비유된다. 끈이 풀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캡처럼 텔로미어는 유전 정보가 담긴 염색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 그 캡이 닳으면 어떻게 되나? ▶ 백혈구 텔로미어는 보통 염기쌍 7,000~1만1,600개를 갖는데 5,000개로 줄면 알츠하이머·심혈관질환·암 등 사망 위험이 커진다. 흥미롭게도 100세를 넘긴 일부 장수인은 오히려 텔로미어가 길어진다. - 회복력은 나이에 따라 얼마나 떨어지나? ▶ 시간표가 뚜렷하다. 뼈가 부러져 완치될 때까지 어린이는 2~4주, 성인은 4~6주, 중장년층은 6~8주가 걸린다. 건강한 40세는 병에서 낫는 데 2주, 80세는 6주가 걸린다. 그리고 120~150세엔 회복력이 사실상 '0'이 된다. 이 벽을 넘어서는 것이 곧 150세의 관문이다. -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 답은 소박하다. 잘 움직이고, 잘 자고, 덜 먹고,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어떤 신약도 이 기본을 못 이긴다. 첨단 기술은 그 위에 얹는 것이다. 활성산소와 만성염증을 일으키는 탄수화물·당 섭취 같은 생활 습관부터 끊어야 한다. - 특별히 챙겨야 할 부위가 있나? ▶ 하체 근육이 건강수명의 출발점이다. 걷고 서고 균형 잡는 힘이 유지돼야 노년에도 스스로 생활한다. 한 발 서기 같은 간단한 동작으로 몸 상태를 자주 점검하라. - 식습관은 어떻게 해야 하나? ▶ 혈당 관리가 핵심이다. 회식·음주가 잦은 중장년일수록 단백질을 먼저 먹고 식사 순서를 조절하라. 작은 습관이 혈당 급등과 근육 손실을 늦춘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도 나이 탓이 아니라 관리할 질환이다. ※ 박지은 원장의 건강수명 늘리기 5원칙 ① 움직여라 - 규칙적 운동이 가장 강력한 항노화제다. 근육이 줄면 노화가 빨라진다. ② 덜 먹어라 - 소식과 절제. 과식은 노화의 스위치를 켠다. ③ 잘 자라 - 수면 중 몸은 손상을 복구한다. 잠이 곧 회복이다. ④ 사람과의 관계를 지켜라 - 외로움은 병이다. 이웃과 웃는 노인이 오래 산다. ⑤ 덜 태우고 덜 마셔라 - 흡연·과음은 세포를 늙힌다. 끊는 것이 가장 확실한 투자다.
2026-07-31 15:01:00
[무지개 수다]성서공단 외국인 근로자들, 전통 다과상 만들기 체험…K-컬쳐에 흠뻑 빠져
"편백나무 향이 고향 냄새 같아요" 지난달 14일 대구 달서목재체험관 2층 목재 체험실. 안으로 들어서자 '콩닥콩닥,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치마를 두른 외국인 근로자들이 나무 조각을 맞추고 못을 박으며 전통 다과상을 만들고 있었다. 서툰 솜씨였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했다. 완성된 다과상을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 편백 다과상에 담긴 '한국의 정' 외국인 주민의 지역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마련한 한국 역사·문화 체험 프로그램 '러브 인 달서'(Love in Dalseo) 행사가 열렸다. 인도네시아·네팔·캄보디아·미얀마·베트남·방글라데시 등 6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 23명이 참여했다. 성서산업단지 제조업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다. 평일에는 자동차 부품 공장과 의류업체, 열처리 공장에서 일하지만 이날만큼은 모두 목수가 됐다. 이날 목공 체험은 편백나무로 만드는 전통 다과상이었다. 노병일(45) 목재교육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참가자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편백나무 재료를 조립하고 장구 망치와 못, 목공 풀로 이음 작업을 했다. 나뭇결 방향으로 사포를 문질러 표면을 다듬고, 마지막으로 자연에서 추출한 천연오일로 마감재를 도포했다. 손끝으로 나무를 느끼는 과정은 말이 필요 없었다. ◆ "월급 대부분은 고향으로"… 성서공단 외국인들의 삶 대구에 온 지 4년째인 미얀마 출신 쩌쩌아웅(32) 씨의 사연은 뭉클했다. 성서공단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월급 250만 원 중 200만 원을 고향 부모님에게 송금한다. 나머지 50만 원으로 생활을 꾸린다. "미얀마 대졸 초임이 월 30만 원 수준이에요. 여기서 번 돈으로 고향에 집도 사고 땅도 샀어요." 그의 얼굴에 뿌듯함이 번졌다. 그는 또 "고향에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요. 더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같이 살 거예요"라며 웃었다. 캄보디아 출신 초지와(33) 씨는 대구에 온 지 13년째다. 성서산단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한다. 완성된 다과상을 어루만지던 그가 조용히 말했다. "편백나무 향이 고향 냄새 같아요. 이 냄새를 맡으니까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웃으며 덧붙였다. "대구 사람들은 친절하고 착해요.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줬어요." 그는 주말마다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통역 봉사를 하며 후배 이주민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네팔 출신 파우델(33) 씨는 대구에 온 지 2년이 됐다. "네팔에도 다과상이 있는데 모서리 턱이 없이 평평해요. 한국 것은 모양이 더 정교하고 예쁘네요." 그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돼지국밥과 순대국밥을 먹으러 나간다. "삼겹살도 좋아해요. 한국 음식이 이제 더 친숙해요." 라고 말했다. 대구에 온 지 10년째인 인도네시아 출신 드리완디(40) 씨는 성서산단 열처리 업체에서 일한다. "인도네시아에도 나무가 많고 다과상이 있는데, 한국 것보다 훨씬 무거워요." 10년의 세월이 쌓인 눈으로 다과상을 바라보는 그의 손길이 능숙했다. ◆ 긴급구호비부터 가이드북까지…"달서구는 우리 동네" '러브 인 달서'는 달서구가 2014년부터 해마다 운영해온 프로그램이다. 외국인 주민이 지역 문화를 직접 몸으로 익히고, 지역 사회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10년 넘게 이어온 만큼 내용도 해마다 한층 다듬어졌다. 현재 달서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만2천595명이다. 이들 없이는 지역 제조업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달서구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역할은 크다. 숫자가 늘어난 만큼 이들의 정착을 돕는 행정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달서구는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긴급 상황에 처한 외국인 주민에게 긴급구호비를 지원하고, 생활 정보를 여러 언어로 번역해 제공한다. '슬기로운 달서생활' 가이드북은 낯선 땅에서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이주민에게 실질적인 길잡이가 된다. 교류 행사도 연중 이어진다. 달서 다문화축제, 이웃나라 문화체험, 한글 백일장, 행복한 명절 보내기까지. 언어도, 음식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아가기 위한 공통분모를 만드는 작업이다. 김덕환 대구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장은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고립감을 덜어주는 데 문화 행사가 큰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도 이들이 대구에서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026-07-31 11:15:00
대구 소방관 출신 67세 조기현 씨, 석촌호수 헤엄쳐 롯데월드타워 123층 계단 올라
대구 소방관 출신 조기현(67·북구 매천동) 씨가 지난 12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일대에서 대한철인3종협회 주최로 열린 '제5회 롯데 아쿠아슬론' 65~69세 남자부 정상에 올랐다. 이날 조 씨는 송파구 석촌호수 1.5㎞ 수영과 롯데월드타워 123층(2천917계단) 스카이런을 1시간 10분 55초에 완주하며 연령별 1위를 차지했다. 아쿠아슬론은 오픈워터 수영과 수직마라톤 '스카이런'을 하나로 묶은 종목이다. 수영으로 체력을 소진한 뒤 곧바로 계단에 오르는 구조여서, 순위 경쟁에 앞서 완주 자체가 관문으로 꼽힌다. 조 씨에게 계단은 낯선 무대가 아니다. 그는 1995년 상인동 가스폭발사고와 2003년 중앙로역 지하철 화재 등 재난 현장에 8천600여 차례 출동해 500여 명을 구조한 베테랑 소방관이다. 2010년 8월 대구에서 열린 제11회 세계소방관경기대회에서는 수영 종목에 출전해 금2·은3·동6 등 메달 11개를 따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두 달 전부터 매천동 아파트 37층 계단 600개를 하루 6차례, 주 3회 올랐다. 하루 3천600개꼴이다. 지난해 4회 대회에 이어 2년 연속 출전했다. 칠순을 앞둔 조 씨는 "요즘 70세는 청춘이다. 나이가 많다고 운동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꾸준히 하면 체력은 충분히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2022년 시작해 올해 5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에는 약 1,000명이 출전했다. 5월 28일 시작된 참가 접수는 10분 만에 마감됐고, 2년 연속 참가한 인원도 203명에 달했다.
2026-07-28 15:55:30
제11회 팔공산 천제단복원 달빛천제문화 학술대회가 25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에서 열린다. 대구국학운동시민연합과 대구국학원이 공동 주최하고 대구시가 후원한다. 올해는 광주국학원이 처음 손을 잡았다. 팔공산(八公山)과 무등산(無等山)의 하늘 제사를 한자리에 올려놓는다. 주제 발표는 두 갈래다. 최전일 광주국학원장이 '무등산 천제단의 역사적 고찰'을, 한승용 글로벌사이버대 교수가 '팔공산 중악(中岳)과 지리산 남악(南岳)의 국가제사적 위상과 문화기억'을 맡는다. 토론에는 박귀선 국학원 전문위원과 정인열 전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부교수가 나선다. 좌장은 김광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명예교수다. 대구국학원 관계자는 "천제문화에 담긴 시원적(始原的) 가치를 조명해 사회 통합과 지역 갈등 해소의 과제를 끌어내려는 것"이라고 했다. 팔공산 천제단의 뿌리는 깊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신라가 삼산오악(三山五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 기록을 남겼다. 오악 가운데 중악이 팔공산이다. 통일신라 이전부터 고려 때까지 국왕과 수령이 이곳에 올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제사는 고려 이후 끊겼다. 그리고 700여 년, 기록 속에만 남았다. 불씨를 되살린 것은 2003년이다. 대구국학원 등은 그해부터 매년 개천절에 팔공산에서 천제의식 재현 행사를 열어왔다. 이번 학술대회는 단기 4359년 개천문화대축제의 첫 행사다. 10월에는 문화 행사와 함께 팔공산 천제단에서 개천절 기념식과 천제의식 재현 행사가 이어진다. 대구국학원은 팔공산 천제단 복원을 대구·경북의 역사적·정신적 자산으로 보고 있다.
2026-07-24 15:01:54
[무지개 수다]"아시아 치킨의 왕은 대구"… 두류공원 달군 '2026 대구치맥페스티벌'
"아시아에서 대구는 치킨의 왕입니다." 지난 1일 대구 두류공원. 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은 미 공군 군수계획관 랜디(25·위스콘신)씨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구 K2 공군기지에 주둔 중인 그는 "매콤한 양념부터 후라이드까지 맛이 이렇게 다양할 줄 몰랐다. 이런 치킨은 처음"이라고 했다. ◆ 외국인 입맛 사로잡은 '겉바속촉' '치맥의 성지'는 올해도 건재했다. 2026 대구치맥페스티벌이 1일부터 5일까지 닷새간 두류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올해로 14회째. 전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인파가 몰렸다. 한국식 치킨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은 단순하다. 닭을 두 번 튀기는 조리법이다. 두꺼운 튀김옷으로 거친 식감을 내는 미국식과 달리, 얇은 튀김옷으로 바삭함과 육즙을 동시에 살린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이른바 '겉바속촉' 식감이 그렇게 완성된다. 고추장 양념부터 간장·마늘·허니까지 소스의 다양성도 강점이다. 최근에는 마라·사워크림 등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메뉴까지 등장했다. 축제장에서 만난 외국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미 공군 제8물자정비대대 소속 캐롤린 라일리(39·미국 조지아주)씨는 대구 생활 2년째다. 그는 "치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데, 대구 치킨은 차원이 다르다"며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킨과 맥주를 나누는 이 활기가 인상적"이라고 했다. K2 기지 비행대 선임부사관 타이(37·뉴욕)씨는 이날 한국 치킨을 처음 제대로 맛봤다. 그는 "김치와 소주도 좋아하지만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며 "기지에서 차로 30분 거리이니 내년에도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일본 오사카 출신 이쿠타 호시(25)씨는 대구에 온 지 6개월 만에 처음 축제를 찾았다. 그는 "일본 가라아게와는 완전히 다르다. 겉이 이렇게 바삭한 치킨은 처음"이라며 "내년에도 대구에 있으면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고 했다. 홍콩에서 온 관광객 메이링(28)씨는 "이 바삭한 맛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세바스티안(35)씨는 "어떻게 튀겼는지 몰라도 대단한 맛"이라고 놀라워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온 소피아(41)씨는 "뜨거운 태양 아래 시원한 맥주와 치킨, 음악이 흐르는 두류공원에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고 웃었다. ◆ 외국인 전용석에 글로벌 라운지… 문화외교의 장으로 올해 축제의 슬로건은 '치맥26(이륙)'. 대형 지구본 퍼포먼스와 참여형 콘텐츠, 인공지능(AI) 기반 운영 시스템을 도입해 글로벌 축제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외국인 전용 좌석이었다. 4인 테이블 이용객에게 맥주 4캔과 치킨 1박스, 응원봉과 머리띠가 제공됐다. 2·28 자유광장 전망대는 외국인 전용 '글로벌 라운지'로 운영됐다. 자매도시인 베트남 다낭시가 직접 참여했고, 해외 인플루언서와 자매도시 대학생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단순한 좌석 판매를 넘어 K푸드와 K관광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외교의 장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류공원 전체가 축제장이 됐다. 메인 무대가 선 2·28자유광장부터 야외음악당, 관광정보센터 주변까지 콘셉트가 다른 치맥존이 곳곳에 들어섰다.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와 개성 있는 수제 맥주 브루어리가 한자리에 모였고, 최정상급 아티스트의 라이브 공연이 여름밤을 달궜다. ◆ 경제효과 952억원… OED에 오른 'K치맥' 2013년 첫발을 뗀 대구치맥페스티벌은 5년 연속 관광객 100만명을 넘겼다. 지난해에는 84개 업체, 250여 개 부스가 참여해 방문객 115만명을 모았고 952억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냈다. 지역 축제를 넘어 대구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치맥' 확산의 배경에는 K콘텐츠가 있다. 회식 자리의 치맥, 스포츠 중계와 함께하는 치킨과 맥주는 K드라마의 단골 장면이다. 그 결과 '치맥(Chimaek)'은 2021년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정식 등재됐다. OED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이 조합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고 설명한다. 치킨무와 김치까지 무료로 내주는 한국 식당의 넉넉한 인심도 외국인들에게는 '신세계'다. 닷새간의 뜨거운 여름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갓 튀겨낸 치킨의 바삭한 소리와 차가운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7월의 불볕더위를 밀어냈다. 치킨과 맥주라는 친숙한 음식에 한국 특유의 열정과 응원 문화를 얹은 대구치맥페스티벌은 이제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글로벌 문화축제로 이륙하고 있다.
2026-07-17 13:26:00
[창간 80년,격동 80년]한국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된 포항제철 신화 탄생
1973년 6월 9일 포항 영일만. 한국 역사상 최초의 대형 고로(高爐)에서 쇳물이 터져 나왔다. 그 쇳물 한 줄기가 한국 중화학공업의 시대를 열었다. 1958년부터 다섯 차례 무산됐던 꿈이었다. 세계은행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국제 차관단은 등을 돌렸다. 선조들의 핏값으로 쌓아 올린 영일만의 용광로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 됐다. ◆ 영일만의 기적 한 달 뒤인 7월 3일 포항종합제철 준공식이 거행됐다. 박정희 대통령과 3부 요인, 내외 귀빈이 참석했다. 준공식이 열리는 날, 포항보다 오히려 서울이 더 떠들썩했다. 광화문 네거리에는 '慶祝 포항종합제철 준공'이라고 쓴 초대형 아치가 세워졌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특별열차가 운행됐다. 포항종합제철소 전경과 최초의 대형 고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오는 순간을 담은 10원권 기념우표도 발행됐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포항제철 건설 구상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 피츠버그 철강공업 지대 시찰에서 비롯됐다. 거대한 용광로와 끝없이 이어지는 생산 라인 앞에서 그는 확신했다. 철강 없이는 중화학공업도 없다는 판단이었다. 건설의 중책은 박태준에게 맡겨졌다. 만성 적자와 부패에 시달리던 대한중석을 부임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은 인물이었다. 박 대통령이 그를 낙점한 이유였다.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창립됐다. ◆ "실패하면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박태준의 제철보국(製鐵報國)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세계은행(IBRD)은 "채산성이 없다"며 자금 지원을 거절했다. 차관을 약속했던 국제제철차관단(KISA)도 등을 돌렸다. 후진국이 제철업에 뛰어드는 것 자체를 세계가 비웃었다. 박태준은 벼랑 끝에 섰다. 낙담한 채 귀국길에 오른 박태준은 하와이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확보한 대일청구권(對日請求權) 자금을 포항제철 건설에 전용하자는 것이었다. 원래 농수산 지원 용도로 책정된 자금이었다. 국내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박태준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 정계와 철강업계 지도자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끈질긴 로비 끝에 일본 제철업계의 기술 지원까지 확보했다. 1970년 4월 1일, 착공이 시작됐다. 대일청구권 자금과 일본 상업은행 차관을 합쳐 총 1억 2,370만 달러를 조달했다. 공사비만 1,200억 원.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3배였다. 39개월간 연인원 315만 명이 동원된 단군이래 단일사업으로 가장 큰 규모의 공사였다. 250만 평의 습지를 항만 준설로 퍼 올린 모래로 메웠다. 해일과 싸워가며 10개 공장, 12개의 부대시설이 세워졌다. 전쟁이었다. 박태준은 제철소를 건설할 당시 "선조들의 핏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만큼,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 하여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잘 알려진 포스코의 '우향우 정신'이다. 현장의 직원과 건설 요원들은 밤낮없이 돌관공사를 강행했다. 예정 공기를 한 달이나 단축했다. ◆ 세계가 비웃던 나라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준공 첫해, 포항제철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가동 첫해부터 242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투입된 외자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규모였다. 세계 최초로 제철소 가동 첫해에 흑자를 낸 사례였다. "한국이 철강 산업을 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비웃던 세계은행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비결은 세 가지였다. 건설요원들이 공기를 단축해 건설비를 낮췄다. 설비와 원료를 최저 가격에 구매했다. 해외 연수로 훈련된 자체 기술진이 1기 설비를 직접 가동했다. 무엇보다 모든 포스코인이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사명감으로 뭉쳤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포항 1기 설비 준공은 한국 산업사의 분수령이었다. 조강 연산 103만 톤으로 시작한 쇳물은 반세기 만에 3,500만 톤으로 불어났다. 한국의 산업 구조가 바뀌었다. 경공업 중심의 나라가 중화학공업 강국으로 탈바꿈했다. '산업의 쌀'인 철강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자 조선·자동차·건설·기계 등 주력 산업이 일제히 도약했다. 한강의 기적은 영일만의 용광로에서 시작됐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단 한 차례의 적자도 없이 흑자 전통을 이어갔다.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나라가, 세계가 주목하는 철강 강국이 됐다.
2026-07-10 11:50:00
"대~한민국!" 함성이 탄식으로…영남이공대 10개국 유학생들, 월드컵 '한국 승리' 응원
전반 8분이었다. 이강인의 왼발 슛이 골대를 살짝 비켜갔다. "아~" 탄식이 터졌다. 후반전 실점 순간에는 시청각실 전체가 숨을 죽였다. 경기 막판 기다리던 동점골은 나오지 않았다. 멕시코, 잠비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학생도 같은 표정이었다. 국적도, 언어도, 피부색도 달랐지만 그 아쉬움만큼은 하나였다. 지난달 25일 오전 10시 대구 남구 영남이공대학교 천마스퀘어 시청각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 대 남아프리카공화국 경기를 함께 보기 위해 1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멕시코·네팔·몽골·미얀마·베트남·잠비아·라이베리아·콩고민주공화국·키르기스스탄 등 10개국 외국인 유학생과 한국인 재학생, 교직원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시청각실은 순식간에 '작은 월드컵 경기장'이 됐다. ◆ 10개국 외국인 유학생들, '한국 승리' 응원 경기 시작 전부터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학생들은 자국 축구 문화와 역대 월드컵에서 기억에 남는 경기들을 꺼내며 서로의 추억을 나눴다. 쉬는 시간에는 후반전 전망을 두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한국어학당에 다니는 유학생들은 서로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경기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김승규 골키퍼가 공을 잡을 때마다 환호가 터졌다. 또 골문 앞 위기 장면이 펼쳐질 때마다 다 함께 숨을 멈췄다. 상대 수비를 제치는 장면이 나오자 박수가 쏟아졌다. 국적은 10개였지만, 모두가 한국의 승리를 바랐다. 전반전은 0대 0으로 끝났다. 그러나 후반 18분, 남아공 타펠로 마세코에게 선제 실점을 허용하자 강의실 안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그래도 학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동점과 역전을 기대하는 눈빛이 화면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0대 1 패배. 1승 2패(승점 3)로 조 3위로 추락하며 32강 진출을 자력으로 확정하지 못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시청각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 "체코전 같은 역전 기대했는데" 아쉬움을 가장 먼저 털어놓은 것은 잠비아에서 온 두 친구였다. 모실리(19) 씨는 "체코전처럼 짜릿한 역전승을 기대했는데 정말 아쉽다"고 했다. 같은 나라에서 온 나이베르(20) 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한국 특유의 투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더 아쉬웠다"고 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나짐(26) 씨는 "솔직히 남아공을 어렵지 않게 이길 줄 알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질 줄은 몰랐다"고 허탈한 표정이었다. 같은 나라에서 온 아자르(20) 씨는 "손흥민·이강인·김민재 모두 끝까지 열심히 싸웠다. 자력으로 32강을 확정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선수들을 감쌌다. 그러나 라이베리아 출신 샤무(20) 씨의 표정은 달랐다. 아쉬움 속에서도 웃음이 번졌다. "평소 학과 수업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다른 나라 친구들과 함께 응원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즐거웠어요. 이강인이 슛을 날릴 때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함께 껴안았거든요. 축구가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진 경기였지만 그 말만큼은 사실이었다. 이날 대구 곳곳에서도 응원 열기가 뜨거웠다. 북구 고성동 iM뱅크파크와 칠곡시장, 도심 대형 극장에서도 크고 작은 응원전이 열렸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시민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의 32강 진출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 유학생이 지역과 함께 성장하도록... 이날 행사는 영남이공대 국제처가 기획한 '외국인 유학생 문화체험 월드컵 응원 행사'의 일환이었다.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지내는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교직원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였다. 평소 학과가 달라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던 학생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장면에 환호성을 터뜨리고 함께 박수를 쳤다. 영남이공대는 현재 문화체험·봉사활동·체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교류 행사를 운영하며 외국인 유학생의 대학 생활 적응과 지역사회 정주 기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강경우 국제처장은 "타국에서 홀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이곳에서 외롭지 않도록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갈 것"이라며 "유학생들이 학교와 지역사회 안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2026-07-03 12:30:00
[마약과의 전쟁]현장르포 "10년을 마약으로 살았다"…중독자에서 마약퇴치 재활강사로
어머니는 국어교사, 아버지는 영어교사였다. 꿈은 판사였다. 그 소년이 스물여섯에 필로폰을 손에 댔다. 10년을 마약으로 살았다. 소년원. 교도소. 재범. 또 교도소.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었다. 나올 때마다 갈 곳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 교도소 강단에 선다. 신종목(56) 씨. 10년 중독, 단약 20년 차. "마약요? 그건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지는 겁니다. 열 명이면 열 명 다 인생이 무너집니다. '한 번 해보고 중독까지야 되겠나' 하는 그 생각 한 번에 이미 멸망의 감옥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의 인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 예방 교재다. ◆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 10년을 삼킨 필로폰 열네 살 소년이 집을 나왔다. 맨발이었다. 4형제 중 막내였다.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겉으로는 반듯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소년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부모의 기대는 버거웠다.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였다. 어느 날 심하게 맞은 뒤 그는 더는 집에 머물 수 없었다. 집 밖의 세상은 더 차가웠다. 소매치기로 붙잡혔다. 칠곡소년원 1년 6개월. 김천소년교도소 3년 6개월. 대구교도소 1년 6개월. 원주교도소 1년. 청소년 시절 대부분이 법무부 시설 안에서 흘러갔다. 그곳에서 한 선배를 만났다. 마약상이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경찰에 쫓기다 급성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죽었다. 충격이었다. 공허했다. 그 공허함을 채우려던 순간, 마약이 손안에 들어왔다. 스물여섯 살이었다. "처음 필로폰을 했을 때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했습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수퍼맨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2~3개월에 한 번이었다. 이른바 '분기 투약'. 매일 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중독자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참 어리석은 착각이었습니다." 착각은 길었다. 대가는 혹독했다. 우울과 피해망상, 집착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평범한 안부조차 공격처럼 들렸다. 세상은 자신을 겨냥한 적대적 공간으로 변했다. "그때부터 창살 없는 감옥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에 붙잡혔다. 징역을 산 후 출소했다. 그러나 사회 어느곳에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시 마약이었다. 재범이었다. 또 잡혔다. 또 징역을 살았다. "교도소에서 나와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결국 마약을 하던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 사람들밖에 없으니까요." 최근 5년간 마약 사범 평균 재범률 45.6%. 두 명 중 한 명꼴로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 그 냉혹한 숫자 뒤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 "중독의 반대는 성공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신 씨가 마약을 끊게 된 계기는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와의 만남이었다. 단약을 위한 라파교정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회복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환청이 들리며 환시도 보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뇌가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약이 남긴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그 흔적을 안고 산다. "머릿속에는 마약이 남긴 스크래치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기억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위를 훌쩍 넘어갈 힘이 조금 생긴 겁니다." 단약 20년 차가 된 지금,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약물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던 몸과 마음이 이제는 멈춰 설 수 있게 됐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회복 이후 신학교에 진학했다. 중·고교 졸업장도 없던 그가 신학대학교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깨어진 삶을 수리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걸음이었다. 지금 신 씨는 대구·경북·경남 지역 교도소 10여 곳을 다닌다. 14년째 재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 강의 시간은 5시간. 강행군이다. 회복 상담도 병행한다. 회복 공동체 '파란우산'도 운영하고 있다. 신 씨는 "제가 교도소 안에 있을 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나오면 갈 곳이 없었고, 결국 다시 마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손 하나가 사람 하나를 살린다는 것을. 저는 그 손이 되려고 합니다."고 말했다. 오늘도 그의 발걸음은 교도소로 향한다. 한때 그 문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이제는 그 문 앞에 서서 손을 내밀고 있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2026-06-19 14:30:00
[마약과의 전쟁]필로폰은 기본, 케타민은 옵션… '칵테일 마약' 시대
"신발 벗고 주머니에 있는 거 다 빼 주세요." 지난 3월 11일 오후, 대구국제공항 입국장. 일본 도쿄발 여객기가 착륙한 직후였다. 예고 없던 검색대가 놓였다. 승객 180명이 일제히 멈칫했다. 항공사에도 알리지 않은 불시 검사였다. 세관은 중국·대만·일본 노선을 중심으로 무작위 단속을 벌인다. 세관 직원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수하물 하나하나가 X선을 통과했다. 통합판독실에서는 전문판독관이 '매의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은닉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이중·삼중 교차 판독은 일상이 됐다. 약품도 표적이었다. "약 가진 거 있어요? 마약 성분이 든 약품도 단속 대상입니다." 가방 속 다량의 약품이 포착되면 그 자리에서 개봉해 확인했다. 이날 30대 남성이 걸렸다. 우범여행자로 분류돼 밀리미터파 신변 검색기 앞에 섰다. 쇼핑백 안에 휴지로 둘둘 만 합성 마약 엑스터시(MDMA) 10정이 들어 있었다. 현행범으로 긴급체포됐다. 지난 14일에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30대 여성이 약에 취해 누워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여성이 넘어지면서 함께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는 프로포폴 병과 주사기가 쏟아졌다.이 여성은 인근 병원에서 근무하는 걸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과거 특정 계층의 일탈로 여겨지던 마약 범죄는 이제 평범한 직장인, 주부, 그리고 10대 청소년의 일상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이미 통제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순 투약'을 넘어 유통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SNS와 다크웹, 가상화폐를 이용한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누구나 쉽게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단속과 처벌뿐만 아니라, 중독자를 환자로 인식하고 치료·재활을 돕는 통합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마약 팬데믹'이라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국 하수도에 필로폰이 흐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하수처리장 34곳을 조사한 결과, 단 한 곳의 예외도 없이 2020년 이후 5년 연속 필로폰이 검출됐다. 특정 지역의 일탈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는 뜻이다. ◆ 감정 건수 7년 새 3배 행정안전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지난 4일 발간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5'에 따르면, 2025년 마약류 감정 건수는 소변 2만 6,350건, 모발 3만 5,993건, 압수품 7만 8,432건 등 모두 14만 775건. 역대 최다 기록이다. 2018년 약 4만 3,000건이었던 감정 건수가 2024년 약 12만 건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14만 건을 넘어섰다. 7년 사이 3배를 훌쩍 넘긴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마약 사범을 잡아 수사하면서 국과수에 보내는 감정 의뢰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마약 단속이 강해진 게 아니다. 마약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수사의 초점도 바뀌었다. 투약자 적발 시 이뤄지는 소변·모발 감정 비중은 2018년 71%에서 지난해 55%로 줄었다. 반면 유통책 검거 때 의뢰되는 압수품 감정은 29%에서 45%로 뛰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단순 투약자를 넘어 유통책 검거와 공급 경로 차단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 중 신종 마약류 비율은 2019년 10% 미만에서 2024년 35%로 5년 만에 3.5배 이상 뛰었다. 여전히 압수품의 52.7%는 필로폰이지만, 환각 효과가 강한 합성대마류(15.1%)와 케타민(10.6%)이 주요 남용 물질로 떠올랐다. ◆ 전자담배인 줄 알았는데, 합성대마였다 합성대마를 담은 전자담배 카트리지는 일반 니코틴 전자담배와 겉모습이 똑같다. 냄새도, 연기 색깔도 다르지 않다. 속칭 '브액'으로 불리는 이 액상형 합성대마가 청소년 마약 유입의 관문이 됐다. 지난해 10대의 합성대마 남용은 364건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10대 압수 마약 중 합성대마 비율(37.8%)은 필로폰(40.4%)에 육박했다. 10대 청소년에게 합성대마는 이미 필로폰만큼 가까운 마약이다. 20~30대는 더 위험하다. 필로폰을 기본으로 깔고 MDMA(엑스터시)·케타민·합성대마를 섞어 쓰는 중복 투약이 늘고 있다. 중독 속도가 빠르고 부작용이 예측하기 어렵다. 치료도 훨씬 복잡해진다. 지난해 필로폰 중독 사망은 33건. 중복 투약에 따른 복합 독성 사망도 잇따른다. 수면마취제 규제가 강화되자 동물용 마취제 '메데토미딘'이 불법 유통되는 풍선효과까지 확인됐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마약 사범은 2014년 1,378명에서 지난해 6,463명으로 10년 새 4.7배 늘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3.8%에서 28.1%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처음엔 병원에서 시작됐다. 성형수술 마취제 프로포폴, ADHD 치료제 오남용. 합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강한 마약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여성 중독자 급증의 경로다. 한 중독 치료 전문가는 "여성 마약은 음지에 숨습니다. 가족에게 들킬까 봐 혼자 견디다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발견됩니다. 발견이 늦으면 치료도 늦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마약이 강력범죄로 이어져 더 센 마약이 들어오고 있다. 코카인, 합성 아편류(플루오로펜타닐 등) 등 고위험 약물 적발이 늘고 있다. 수술실 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도 의료계 밖으로 흘러나와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국과수 감정에서 포착되고 있다. 플루오로펜타닐은 미국에서 수만 명을 사망으로 몰아넣은 펜타닐의 유사체다. 분자 구조를 미세하게 변형해 규제를 피한다. 극소량으로도 치명적이다. 일반 마약 검사에서 검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약은 강력범죄로 연결된다. 필로폰을 투약하고 교통사고를 낸 사례, 합성대마를 흡입한 채 항공기에서 난동을 부린 사례, 마약 환각 상태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수사 기록에 쌓이고 있다. 투약 후 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예측하기 어렵다. 반응 시간과 판단 능력의 손상이 알코올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약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북·제주·강원·충북·충남·대전·세종·전남·광주·울산 등 전국 12개 시도 경찰청은 일선 경찰서에 마약 수사 전담팀을 단 한 곳도 운영하지 않는다. 광역 경찰청 단위의 마약 수사팀이 있지만 일선 경찰서 전담팀 부재는 지역 단위 대응력의 공백이다. 대구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마약팀은 없다. 하지만 단순 사건은 일반 형사팀이 처리하고, 큰 건은 시경 마약범죄수사계와 협력한다"고 했다.
2026-06-19 14:30:00
"오카에리나사이(おかえりなさい·다녀오셨어요)~" 퇴근한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일본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이렇게 일본어로 인사하면 남편이 꼭 따라 해줘요. 그게 또 귀엽고요." 미야기현과 사이타마현에서 각각 대구로 시집 온 두 여성의 입에서 남편 칭찬이 쏟아졌다. "같이 걸을 때 남편은 항상 차도 쪽으로 걷고, 저를 안쪽으로 걷게 해요.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나서 정말 감동받았어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남편이 돌아오는 저녁이라는 두 사람. 대구 남자와 결혼한 일본 아내들의 달콤한 수다가 시작됐다. ◆ "연애할 때랑 하나도 변함없어요" 15년 전 일본 동북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3살 연상 대구 남자를 만나 결혼한 유카리(46) 씨는 남편 자랑이 끝이 없었다. "연애할 때랑 지금까지 하나도 변함없이 자상하게 잘해줘요. 세월이 흘러도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에게 늘 든든함을 느껴요." 처음엔 몇 마디 한국어밖에 몰랐던 그는 이제 한국어능력시험(TOPIK) 6급(최고 등급) 실력자다. 길에서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거의 한국인이 다 됐다. 9년 전 사이타마현에서 대구로 시집 온 도모미(49) 씨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한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세, 가족을 지키려는 힘과 책임감을 결혼하고 나서 발견했어요." 잠시 멈추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남편은 5살 연하인데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귀여워요. 출근하기 전에 '자기야 사랑해, 갔다 올게' 인사를 꼭 하거든요."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성에게 끌리는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초식남으로 불리는 일본 남성에 비해 따뜻하고 자상하다. 연애를 적극적으로 리드한다. 가족과 부모님을 중요하게 여기고 배려심도 깊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벤트와 선물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이미지도 한 몫한다. 군 복무를 통해 형성된 건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 역시 빠지지 않는 매력 포인트다. 한국 남성들이 일본 여성에게 끌리는 이유도 분명했다. 결혼 3년차인 김성호(34·가명) 씨는 "집안 배경이나 연봉보다 나를 평생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봤다"며 "가정적이고 절약 정신이 몸에 배었고, 애교도 많아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고 말했다. 화려함보다 내실을 중시하는 일본 여성의 생활 방식이 한국 남성의 마음을 움직인 것. 다만 최근 일본 여성의 결혼관은 달라지고 있다. 일방적인 헌신보다 서로의 사생활과 개인 공간을 존중하는 파트너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한국 남성에게 기대하는 것도 드라마 속 낭만만이 아니다. 존중과 신뢰, 그리고 대등한 관계다. ◆ 한국 男·일본 女 혼인 2년 연속 급증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혼인 건수는 1천483건이다. 전년(1천176건) 대비 26.1% 급증했다. 전년도에 이미 40%를 넘어 1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데 이어 2년 연속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 여성과 일본 남성의 혼인도 190건으로 전년(147건) 대비 29.3% 뛰었다. 한일 양방향 혼인이 동시에 늘고 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체 국제결혼은 2만1천 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외국인 아내의 국적은 베트남(30.5%)·중국(16.1%)·태국(12.5%) 순이었다. 그 안에서 일본인과의 혼인만 유독 증가세가 가파르다. 한일 관계의 변화가 혼인 통계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 일본인, 한국 호감도 7년 만에 두 배…K컬처가 사랑을 불렀다 혼인 증가의 배경에는 양국 간 호감도 상승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도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한국 호감도는 42.2%다. 2018년 20.0%에 불과했던 수치가 7년 만에 두 배를 넘어섰다. K팝·K드라마·K푸드로 이어지는 한류 열풍이 문화적 호감을 넘어 삶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취업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국가별 해외 취업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일본 취업자는 2천257명으로 전년(1천531명)보다 47.0% 증가했다. 취업·유학·결혼으로 이어지는 한일 간 인적 교류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냉랭했던 한일 관계가 민간 차원에서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호상 인연애 반하다 대표는 "한일 사랑의 오작교를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켜 지금까지 17쌍의 커플이 탄생했다"며 "결혼에 이른 성혼자들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단체·개별 미팅 프로그램으로 만나 평균 3개월에서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한 이들을 위해 대구에서 연 1~2회 성혼자 모임도 이어가고 있다.
2026-06-19 13:26:00
[마약과의 전쟁]"처벌이 끝난 뒤, 누가 중독자의 손을 잡나"
"중독은 약을 끊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무너진 삶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이정훈 대구함께한걸음센터장은 회복을 '끝까지 곁을 지키는 동행'이라고 정의했다. 회복의 핵심은 시간이다. 이 센터장은 "병원 치료가 끝났다고 중독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단약 기간이 길어지고 좋은 사람, 좋은 경험이 쌓이면서 약물의 기억이 서서히 흐려지는 겁니다"고 말했다. 정부도 같은 판단이다. 처벌만으로는 재범을 막을 수 없다. 보호관찰·기소유예 대상자와 출소자를 센터로 연결해 상담과 재활이 끊기지 않도록 잇는 이유다. 전국 17개 함께한걸음센터가 그 거점이고, 대구센터도 예방교육에서 사회복귀까지 역할을 넓히고 있다. 센터의 핵심 사업은 '한걸음약국'이다. 동네 약국을 마약류 오남용 고위험군 조기 발견 거점으로 삼는다. 발견하면 연결한다. 선별검사부터 상담·재활 연계까지 한 흐름이다. 강제가 아니다. 약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약사이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를 이끄는 류민정 지부장은 "약국은 위험신호를 가장 빨리 잡아낼 수 있는 접점"이라며 "먼저 발견하고, 먼저 연결하고, 먼저 회복으로 안내하는 체계"라고 했다.
2026-06-19 13:15:00
[마약과의 전쟁]마약과의 전쟁, 우리는 이기고 있는가…전문가 진단과 해법
◆ "처벌만으로는 마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재규 세계중독예방협회 이사장은 마약 중독을 의지 부족의 문제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독은 뇌 질환이다. 처벌이 아니라 치료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그는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마약과의 전쟁'이 단속 중심 접근의 한계를 증명했다는 것이다. 잡고, 가두고, 내보냈다. 그러나 마약은 줄지 않았다. 재범률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마약 확산의 배경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성과 중심 사회의 극심한 스트레스. 과도한 미디어 노출. 경제적 불안.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사람들이 마약으로 내몰린다는 분석이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현실도 같은 맥락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그는 예방·치료·재활의 연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치료 공동체'가 필요하다. 중독자를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마약의 위험성보다 그들을 품지 못하는 사회가 더 위험하다"고 했다. ◆ "단순 1회 구매자라도 반드시 검거된다" 전자상거래에 익숙한 청년층 마약 사범이 늘고 있다. "SNS 한 번 클릭이면 된다. 텔레그램 채널에 접속하고 가상화폐로 결제하면 마약이 배달된다. 얼굴을 마주칠 필요도 없다" 장웅기 대구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장이 말하는 지금 대한민국 마약 유통의 현주소다. 지난해 대구경찰은 해외에서 필로폰을 밀수해 국내에 유통한 마약 조직을 적발했다. 142명 검거. 23명 구속. 약 5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류 30㎏과 범죄수익금 34억 원을 압수했다. 올해 3월에는 합성대마 전자담배를 제조·판매한 신종 마약 조직도 추적했다. 운영자·제조판매책·운반책 8명을 검거하고 매수자 16명도 끝까지 쫓아 검거했다. 수사 범위도 달라졌다. 장 계장은 "과거에는 국내 피의자 검거에 그쳤다. 이제는 다르다" 고 말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인터폴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 해외 총책 검거 작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마약 조직의 뿌리를 원천에서 와해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장 계장은 "단순 1회 구매자라도 반드시 검거된다. 호기심에라도 SNS로 마약을 접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경찰이 마약 청정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재범률 45.6%, 초범에겐 치료·교육이 먼저다" 다수의 마약 사건을 변호해 온 법무법인 가나다 송승우 변호사는 특히 초범의 경우 처벌보다 치료와 교육이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마약이 긴장과 사고를 돕는 자율신경계의 억제 기능을 파괴한다"고 짚으며, "실제로 미결수용자들이 구속 직후 말이 어눌하고 안색이 나쁘다가 차츰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처벌 강화가 해법은 아니라고 봤다. 범죄와 형벌은 균형을 이뤄야 하며, 45.6%에 이르는 높은 재범률은 단순한 격리가 답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 사는 30대 남성 초범의 사례를 들었다. 이 초범은 젖먹이 아들을 도맡아 키우고 있었다. 그 점이 참작돼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이후 그는 2주마다 소변 검사 결과를 검찰에 제출하고, 매주 단약 자조모임(NA)에 참석했다. 단약 다큐멘터리 촬영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그는 끝내 단약에 성공했다. 기소가 1년 넘게 늦어진 것이 오히려 회복에 도움이 됐다. 송 변호사는 "초범을 곧바로 엄벌하기보다 교육 경과를 장기간 지켜본 뒤 기소 여부를 정하는 방식이 재범률을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 "마약류 공급·유통 범죄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 우희준 대구지검 마약전담 검사는 "텔레그램을 통한 마약 거래는 총책·드라퍼로 역할이 철저히 분업화돼 있습니다. 마약이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곳곳에 은닉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생활 터전이 마약 거래 장소가 된 겁니다"고 현재 마약 유통의 실태를 진단했다. 대구지검의 대응 원칙은 명확하다. 공급·유통 사범에게는 무관용. 단순 투약자에게는 치료와 재활이다. 우 검사는 "마약류 공급·유통 범죄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한다. 불법수익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한다. 범죄의 유인과 동기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단순 투약자에게는 다른 접근을 택한다. 집행유예 선고 시 치료·재활 프로그램 수강명령을 빠짐없이 부과한다. 2024년 4월 전국으로 확대 시행된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도 적극 활용한다. 중독 수준에 따라 맞춤형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부여해 건강한 사회 복귀를 돕는 제도다. 우 검사는 "대가를 받고 자신 명의 계좌나 유심을 타인에게 건네는 순간 그 자체로 처벌 대상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약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6-06-19 13:14:00
방이 없다. 전국 교정시설 수용자는 지난 4월 2일 기준 6만 3,060명. 정원은 5만 614명이다. 1만 2,400여 명이 정원을 초과해 수용돼 있다. 그 과밀한 공간 안에 마약 범죄자들이 섞여 있다. 교정시설 내 마약류 범죄 수용자는 7,429명(2025년 12월 31일 기준)이다. 전체 수용자의 11.8%, 10명 중 1명꼴이다. 증가세는 가파르다. 2021년 3,314명에서 2024년 6,628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7,429명을 기록했다. 4년 만에 2배 이상 불어났다. 전체 수용자 중 마약 사범 비율도 2019년 6.6%에서 매년 올라 2024년 처음으로 두 자릿수(10.5%)를 기록하더니, 지난해 11.8%까지 치솟았다. ◆ 의무 재활교육, 적용 대상은 '기결 투약사범' 마약류 수용자라고 모두 같은 처지는 아니다. 재활교육 적용 구조부터 갈린다. 직접 약물을 투약한 '투약사범'이 있고, 매매·밀수 등으로 들어온 수용자가 있다. 형이 확정된 기결수와 재판이 진행 중인 미결수의 처지도 다르다. 법무부에 따르면 교정시설 내 마약류 수용자 7,429명 가운데 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약 4,900명이다. 이 중 투약사범은 약 2,900명으로 집계됐다. 의무 재활교육인 '이수명령 병과'는 바로 이 기결 투약사범에게 적용된다. 법원이 형과 함께 이수명령을 부과하면 교정시설에서 의무적으로 재활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투약사범 2,900여 명 중 이수명령이 병과된 수용자는 2,440여 명이다. 나머지 470여 명은 단기형이거나 건강 문제 등으로 이수명령이 병과되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수명령이 종료됐거나 처음부터 병과되지 않은 투약사범을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별도 재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자체 연구·개발한 자기주도적 재활프로그램과 개별 메타인지 상담이 활용된다. 문제는 그물 바깥에 남는 영역이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미결수는 무죄 추정 원칙상 이수명령 대상이 될 수 없어 의무교육에서 빠진다. 미병과 투약사범과 이수 종료자에 대한 교육은 본인 희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동기가 없는 수용자에게는 닿지 못한다. ◆ 과밀이 막는 '분리 수용' 마약류 수용자는 일반 수용자보다 의료·상담·치료 등 개별 관리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교도관의 업무 부담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충분한 관리는 어려운 상황이다. 분리 수용도 필요하지만 방이 없다. 이재규 전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은 "마약류 수용자는 다른 수용자에게 마약 복용 방법이나 구입 경로를 알려줄 수 있어 분리 수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방이 없어 다른 수용자들과 섞여 지내는 게 현실입니다"라고 말했다. 연간 마약 단속 인원이 2년 연속 2만 명을 넘은 점을 고려하면 과밀화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마약 사범은 2021년 1만 6,153명에서 2023년 2만 7,611명으로 급증했다. 2년 사이 70% 이상 늘었다. 2024년에도 2만 3,022명으로 2년 연속 2만 명을 넘겼다. 잡는 속도는 빠르다. 수용 공간은 그대로다. 재활은 일부는 의무로, 일부는 본인의 의지에 기대 굴러간다. 과밀한 방 안에서 마약 범죄자들은 오늘도 다음 출소를 기다린다.
2026-06-19 1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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