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현장르포 "10년을 마약으로 살았다"…중독자에서 마약퇴치 재활강사로
어머니는 국어교사, 아버지는 영어교사였다. 꿈은 판사였다. 그 소년이 스물여섯에 필로폰을 손에 댔다. 10년을 마약으로 살았다. 소년원. 교도소. 재범. 또 교도소.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었다. 나올 때마다 갈 곳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 교도소 강단에 선다. 신종목(56) 씨. 10년 중독, 단약 20년 차. "마약요? 그건 백 번 싸워서 백 번 다 지는 겁니다. 열 명이면 열 명 다 인생이 무너집니다. '한 번 해보고 중독까지야 되겠나' 하는 그 생각 한 번에 이미 멸망의 감옥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의 인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 예방 교재다. ◆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 10년을 삼킨 필로폰 열네 살 소년이 집을 나왔다. 맨발이었다. 4형제 중 막내였다.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겉으로는 반듯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소년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부모의 기대는 버거웠다.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였다. 어느 날 심하게 맞은 뒤 그는 더는 집에 머물 수 없었다. 집 밖의 세상은 더 차가웠다. 소매치기로 붙잡혔다. 칠곡소년원 1년 6개월. 김천소년교도소 3년 6개월. 대구교도소 1년 6개월. 원주교도소 1년. 청소년 시절 대부분이 법무부 시설 안에서 흘러갔다. 그곳에서 한 선배를 만났다. 마약상이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경찰에 쫓기다 급성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죽었다. 충격이었다. 공허했다. 그 공허함을 채우려던 순간, 마약이 손안에 들어왔다. 스물여섯 살이었다. "처음 필로폰을 했을 때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했습니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수퍼맨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2~3개월에 한 번이었다. 이른바 '분기 투약'. 매일 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중독자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참 어리석은 착각이었습니다." 착각은 길었다. 대가는 혹독했다. 우울과 피해망상, 집착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평범한 안부조차 공격처럼 들렸다. 세상은 자신을 겨냥한 적대적 공간으로 변했다. "그때부터 창살 없는 감옥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에 붙잡혔다. 징역을 산 후 출소했다. 그러나 사회 어느곳에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시 마약이었다. 재범이었다. 또 잡혔다. 또 징역을 살았다. "교도소에서 나와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결국 마약을 하던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그 사람들밖에 없으니까요." 최근 5년간 마약 사범 평균 재범률 45.6%. 두 명 중 한 명꼴로 다시 마약에 손을 댄다. 그 냉혹한 숫자 뒤에는 이런 현실이 있다. ◆ "중독의 반대는 성공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신 씨가 마약을 끊게 된 계기는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와의 만남이었다. 단약을 위한 라파교정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회복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환청이 들리며 환시도 보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뇌가 고장 난 상태였습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약이 남긴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그 흔적을 안고 산다. "머릿속에는 마약이 남긴 스크래치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기억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위를 훌쩍 넘어갈 힘이 조금 생긴 겁니다." 단약 20년 차가 된 지금,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약물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던 몸과 마음이 이제는 멈춰 설 수 있게 됐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회복 이후 신학교에 진학했다. 중·고교 졸업장도 없던 그가 신학대학교 학사·석사 과정을 마치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깨어진 삶을 수리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걸음이었다. 지금 신 씨는 대구·경북·경남 지역 교도소 10여 곳을 다닌다. 14년째 재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 강의 시간은 5시간. 강행군이다. 회복 상담도 병행한다. 회복 공동체 '파란우산'도 운영하고 있다. 신 씨는 "제가 교도소 안에 있을 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나오면 갈 곳이 없었고, 결국 다시 마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손 하나가 사람 하나를 살린다는 것을. 저는 그 손이 되려고 합니다."고 말했다. 오늘도 그의 발걸음은 교도소로 향한다. 한때 그 문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이제는 그 문 앞에 서서 손을 내밀고 있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2026-06-19 14:30:00
[마약과의 전쟁]필로폰은 기본, 케타민은 옵션… '칵테일 마약' 시대
"신발 벗고 주머니에 있는 거 다 빼 주세요." 지난 3월 11일 오후, 대구국제공항 입국장. 일본 도쿄발 여객기가 착륙한 직후였다. 예고 없던 검색대가 놓였다. 승객 180명이 일제히 멈칫했다. 항공사에도 알리지 않은 불시 검사였다. 세관은 중국·대만·일본 노선을 중심으로 무작위 단속을 벌인다. 세관 직원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수하물 하나하나가 X선을 통과했다. 통합판독실에서는 전문판독관이 '매의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은닉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이중·삼중 교차 판독은 일상이 됐다. 약품도 표적이었다. "약 가진 거 있어요? 마약 성분이 든 약품도 단속 대상입니다." 가방 속 다량의 약품이 포착되면 그 자리에서 개봉해 확인했다. 이날 30대 남성이 걸렸다. 우범여행자로 분류돼 밀리미터파 신변 검색기 앞에 섰다. 쇼핑백 안에 휴지로 둘둘 만 합성 마약 엑스터시(MDMA) 10정이 들어 있었다. 현행범으로 긴급체포됐다. 지난 14일에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30대 여성이 약에 취해 누워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여성이 넘어지면서 함께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는 프로포폴 병과 주사기가 쏟아졌다.이 여성은 인근 병원에서 근무하는 걸로 알려졌다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과거 특정 계층의 일탈로 여겨지던 마약 범죄는 이제 평범한 직장인, 주부, 그리고 10대 청소년의 일상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이미 통제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순 투약'을 넘어 유통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SNS와 다크웹, 가상화폐를 이용한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누구나 쉽게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단속과 처벌뿐만 아니라, 중독자를 환자로 인식하고 치료·재활을 돕는 통합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마약 팬데믹'이라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전국 하수도에 필로폰이 흐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하수처리장 34곳을 조사한 결과, 단 한 곳의 예외도 없이 2020년 이후 5년 연속 필로폰이 검출됐다. 특정 지역의 일탈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는 뜻이다. ◆ 감정 건수 7년 새 3배 행정안전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지난 4일 발간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5'에 따르면, 2025년 마약류 감정 건수는 소변 2만 6,350건, 모발 3만 5,993건, 압수품 7만 8,432건 등 모두 14만 775건. 역대 최다 기록이다. 2018년 약 4만 3,000건이었던 감정 건수가 2024년 약 12만 건으로 늘었고, 2025년에는 14만 건을 넘어섰다. 7년 사이 3배를 훌쩍 넘긴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마약 사범을 잡아 수사하면서 국과수에 보내는 감정 의뢰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마약 단속이 강해진 게 아니다. 마약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수사의 초점도 바뀌었다. 투약자 적발 시 이뤄지는 소변·모발 감정 비중은 2018년 71%에서 지난해 55%로 줄었다. 반면 유통책 검거 때 의뢰되는 압수품 감정은 29%에서 45%로 뛰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단순 투약자를 넘어 유통책 검거와 공급 경로 차단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 중 신종 마약류 비율은 2019년 10% 미만에서 2024년 35%로 5년 만에 3.5배 이상 뛰었다. 여전히 압수품의 52.7%는 필로폰이지만, 환각 효과가 강한 합성대마류(15.1%)와 케타민(10.6%)이 주요 남용 물질로 떠올랐다. ◆ 전자담배인 줄 알았는데, 합성대마였다 합성대마를 담은 전자담배 카트리지는 일반 니코틴 전자담배와 겉모습이 똑같다. 냄새도, 연기 색깔도 다르지 않다. 속칭 '브액'으로 불리는 이 액상형 합성대마가 청소년 마약 유입의 관문이 됐다. 지난해 10대의 합성대마 남용은 364건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10대 압수 마약 중 합성대마 비율(37.8%)은 필로폰(40.4%)에 육박했다. 10대 청소년에게 합성대마는 이미 필로폰만큼 가까운 마약이다. 20~30대는 더 위험하다. 필로폰을 기본으로 깔고 MDMA(엑스터시)·케타민·합성대마를 섞어 쓰는 중복 투약이 늘고 있다. 중독 속도가 빠르고 부작용이 예측하기 어렵다. 치료도 훨씬 복잡해진다. 지난해 필로폰 중독 사망은 33건. 중복 투약에 따른 복합 독성 사망도 잇따른다. 수면마취제 규제가 강화되자 동물용 마취제 '메데토미딘'이 불법 유통되는 풍선효과까지 확인됐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 마약 사범은 2014년 1,378명에서 지난해 6,463명으로 10년 새 4.7배 늘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3.8%에서 28.1%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처음엔 병원에서 시작됐다. 성형수술 마취제 프로포폴, ADHD 치료제 오남용. 합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강한 마약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여성 중독자 급증의 경로다. 한 중독 치료 전문가는 "여성 마약은 음지에 숨습니다. 가족에게 들킬까 봐 혼자 견디다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발견됩니다. 발견이 늦으면 치료도 늦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마약이 강력범죄로 이어져 더 센 마약이 들어오고 있다. 코카인, 합성 아편류(플루오로펜타닐 등) 등 고위험 약물 적발이 늘고 있다. 수술실 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도 의료계 밖으로 흘러나와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국과수 감정에서 포착되고 있다. 플루오로펜타닐은 미국에서 수만 명을 사망으로 몰아넣은 펜타닐의 유사체다. 분자 구조를 미세하게 변형해 규제를 피한다. 극소량으로도 치명적이다. 일반 마약 검사에서 검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약은 강력범죄로 연결된다. 필로폰을 투약하고 교통사고를 낸 사례, 합성대마를 흡입한 채 항공기에서 난동을 부린 사례, 마약 환각 상태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수사 기록에 쌓이고 있다. 투약 후 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예측하기 어렵다. 반응 시간과 판단 능력의 손상이 알코올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약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북·제주·강원·충북·충남·대전·세종·전남·광주·울산 등 전국 12개 시도 경찰청은 일선 경찰서에 마약 수사 전담팀을 단 한 곳도 운영하지 않는다. 광역 경찰청 단위의 마약 수사팀이 있지만 일선 경찰서 전담팀 부재는 지역 단위 대응력의 공백이다. 대구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마약팀은 없다. 하지만 단순 사건은 일반 형사팀이 처리하고, 큰 건은 시경 마약범죄수사계와 협력한다"고 했다.
2026-06-19 14:30:00
"오카에리나사이(おかえりなさい·다녀오셨어요)~" 퇴근한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일본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이렇게 일본어로 인사하면 남편이 꼭 따라 해줘요. 그게 또 귀엽고요." 미야기현과 사이타마현에서 각각 대구로 시집 온 두 여성의 입에서 남편 칭찬이 쏟아졌다. "같이 걸을 때 남편은 항상 차도 쪽으로 걷고, 저를 안쪽으로 걷게 해요.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나서 정말 감동받았어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남편이 돌아오는 저녁이라는 두 사람. 대구 남자와 결혼한 일본 아내들의 달콤한 수다가 시작됐다. ◆ "연애할 때랑 하나도 변함없어요" 15년 전 일본 동북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3살 연상 대구 남자를 만나 결혼한 유카리(46) 씨는 남편 자랑이 끝이 없었다. "연애할 때랑 지금까지 하나도 변함없이 자상하게 잘해줘요. 세월이 흘러도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에게 늘 든든함을 느껴요." 처음엔 몇 마디 한국어밖에 몰랐던 그는 이제 한국어능력시험(TOPIK) 6급(최고 등급) 실력자다. 길에서 일본인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 거의 한국인이 다 됐다. 9년 전 사이타마현에서 대구로 시집 온 도모미(49) 씨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한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세, 가족을 지키려는 힘과 책임감을 결혼하고 나서 발견했어요." 잠시 멈추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남편은 5살 연하인데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귀여워요. 출근하기 전에 '자기야 사랑해, 갔다 올게' 인사를 꼭 하거든요."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성에게 끌리는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초식남으로 불리는 일본 남성에 비해 따뜻하고 자상하다. 연애를 적극적으로 리드한다. 가족과 부모님을 중요하게 여기고 배려심도 깊다.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벤트와 선물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이미지도 한 몫한다. 군 복무를 통해 형성된 건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 역시 빠지지 않는 매력 포인트다. 한국 남성들이 일본 여성에게 끌리는 이유도 분명했다. 결혼 3년차인 김성호(34·가명) 씨는 "집안 배경이나 연봉보다 나를 평생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봤다"며 "가정적이고 절약 정신이 몸에 배었고, 애교도 많아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고 말했다. 화려함보다 내실을 중시하는 일본 여성의 생활 방식이 한국 남성의 마음을 움직인 것. 다만 최근 일본 여성의 결혼관은 달라지고 있다. 일방적인 헌신보다 서로의 사생활과 개인 공간을 존중하는 파트너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한국 남성에게 기대하는 것도 드라마 속 낭만만이 아니다. 존중과 신뢰, 그리고 대등한 관계다. ◆ 한국 男·일본 女 혼인 2년 연속 급증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혼인 건수는 1천483건이다. 전년(1천176건) 대비 26.1% 급증했다. 전년도에 이미 40%를 넘어 1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데 이어 2년 연속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 여성과 일본 남성의 혼인도 190건으로 전년(147건) 대비 29.3% 뛰었다. 한일 양방향 혼인이 동시에 늘고 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체 국제결혼은 2만1천 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외국인 아내의 국적은 베트남(30.5%)·중국(16.1%)·태국(12.5%) 순이었다. 그 안에서 일본인과의 혼인만 유독 증가세가 가파르다. 한일 관계의 변화가 혼인 통계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 일본인, 한국 호감도 7년 만에 두 배…K컬처가 사랑을 불렀다 혼인 증가의 배경에는 양국 간 호감도 상승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도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한국 호감도는 42.2%다. 2018년 20.0%에 불과했던 수치가 7년 만에 두 배를 넘어섰다. K팝·K드라마·K푸드로 이어지는 한류 열풍이 문화적 호감을 넘어 삶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취업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국가별 해외 취업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일본 취업자는 2천257명으로 전년(1천531명)보다 47.0% 증가했다. 취업·유학·결혼으로 이어지는 한일 간 인적 교류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냉랭했던 한일 관계가 민간 차원에서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호상 인연애 반하다 대표는 "한일 사랑의 오작교를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켜 지금까지 17쌍의 커플이 탄생했다"며 "결혼에 이른 성혼자들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단체·개별 미팅 프로그램으로 만나 평균 3개월에서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한 이들을 위해 대구에서 연 1~2회 성혼자 모임도 이어가고 있다.
2026-06-19 13:26:00
[마약과의 전쟁]"처벌이 끝난 뒤, 누가 중독자의 손을 잡나"
"중독은 약을 끊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무너진 삶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이정훈 대구함께한걸음센터장은 회복을 '끝까지 곁을 지키는 동행'이라고 정의했다. 회복의 핵심은 시간이다. 이 센터장은 "병원 치료가 끝났다고 중독이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단약 기간이 길어지고 좋은 사람, 좋은 경험이 쌓이면서 약물의 기억이 서서히 흐려지는 겁니다"고 말했다. 정부도 같은 판단이다. 처벌만으로는 재범을 막을 수 없다. 보호관찰·기소유예 대상자와 출소자를 센터로 연결해 상담과 재활이 끊기지 않도록 잇는 이유다. 전국 17개 함께한걸음센터가 그 거점이고, 대구센터도 예방교육에서 사회복귀까지 역할을 넓히고 있다. 센터의 핵심 사업은 '한걸음약국'이다. 동네 약국을 마약류 오남용 고위험군 조기 발견 거점으로 삼는다. 발견하면 연결한다. 선별검사부터 상담·재활 연계까지 한 흐름이다. 강제가 아니다. 약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약사이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를 이끄는 류민정 지부장은 "약국은 위험신호를 가장 빨리 잡아낼 수 있는 접점"이라며 "먼저 발견하고, 먼저 연결하고, 먼저 회복으로 안내하는 체계"라고 했다.
2026-06-19 13:15:00
[마약과의 전쟁]마약과의 전쟁, 우리는 이기고 있는가…전문가 진단과 해법
◆ "처벌만으로는 마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재규 세계중독예방협회 이사장은 마약 중독을 의지 부족의 문제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독은 뇌 질환이다. 처벌이 아니라 치료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그는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마약과의 전쟁'이 단속 중심 접근의 한계를 증명했다는 것이다. 잡고, 가두고, 내보냈다. 그러나 마약은 줄지 않았다. 재범률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마약 확산의 배경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성과 중심 사회의 극심한 스트레스. 과도한 미디어 노출. 경제적 불안.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사람들이 마약으로 내몰린다는 분석이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현실도 같은 맥락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그는 예방·치료·재활의 연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치료 공동체'가 필요하다. 중독자를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마약의 위험성보다 그들을 품지 못하는 사회가 더 위험하다"고 했다. ◆ "단순 1회 구매자라도 반드시 검거된다" 전자상거래에 익숙한 청년층 마약 사범이 늘고 있다. "SNS 한 번 클릭이면 된다. 텔레그램 채널에 접속하고 가상화폐로 결제하면 마약이 배달된다. 얼굴을 마주칠 필요도 없다" 장웅기 대구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장이 말하는 지금 대한민국 마약 유통의 현주소다. 지난해 대구경찰은 해외에서 필로폰을 밀수해 국내에 유통한 마약 조직을 적발했다. 142명 검거. 23명 구속. 약 5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류 30㎏과 범죄수익금 34억 원을 압수했다. 올해 3월에는 합성대마 전자담배를 제조·판매한 신종 마약 조직도 추적했다. 운영자·제조판매책·운반책 8명을 검거하고 매수자 16명도 끝까지 쫓아 검거했다. 수사 범위도 달라졌다. 장 계장은 "과거에는 국내 피의자 검거에 그쳤다. 이제는 다르다" 고 말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인터폴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 해외 총책 검거 작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마약 조직의 뿌리를 원천에서 와해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장 계장은 "단순 1회 구매자라도 반드시 검거된다. 호기심에라도 SNS로 마약을 접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경찰이 마약 청정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재범률 45.6%, 초범에겐 치료·교육이 먼저다" 다수의 마약 사건을 변호해 온 법무법인 가나다 송승우 변호사는 특히 초범의 경우 처벌보다 치료와 교육이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마약이 긴장과 사고를 돕는 자율신경계의 억제 기능을 파괴한다"고 짚으며, "실제로 미결수용자들이 구속 직후 말이 어눌하고 안색이 나쁘다가 차츰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처벌 강화가 해법은 아니라고 봤다. 범죄와 형벌은 균형을 이뤄야 하며, 45.6%에 이르는 높은 재범률은 단순한 격리가 답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 사는 30대 남성 초범의 사례를 들었다. 이 초범은 젖먹이 아들을 도맡아 키우고 있었다. 그 점이 참작돼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이후 그는 2주마다 소변 검사 결과를 검찰에 제출하고, 매주 단약 자조모임(NA)에 참석했다. 단약 다큐멘터리 촬영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그는 끝내 단약에 성공했다. 기소가 1년 넘게 늦어진 것이 오히려 회복에 도움이 됐다. 송 변호사는 "초범을 곧바로 엄벌하기보다 교육 경과를 장기간 지켜본 뒤 기소 여부를 정하는 방식이 재범률을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 "마약류 공급·유통 범죄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 우희준 대구지검 마약전담 검사는 "텔레그램을 통한 마약 거래는 총책·드라퍼로 역할이 철저히 분업화돼 있습니다. 마약이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곳곳에 은닉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생활 터전이 마약 거래 장소가 된 겁니다"고 현재 마약 유통의 실태를 진단했다. 대구지검의 대응 원칙은 명확하다. 공급·유통 사범에게는 무관용. 단순 투약자에게는 치료와 재활이다. 우 검사는 "마약류 공급·유통 범죄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한다. 불법수익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한다. 범죄의 유인과 동기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단순 투약자에게는 다른 접근을 택한다. 집행유예 선고 시 치료·재활 프로그램 수강명령을 빠짐없이 부과한다. 2024년 4월 전국으로 확대 시행된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도 적극 활용한다. 중독 수준에 따라 맞춤형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부여해 건강한 사회 복귀를 돕는 제도다. 우 검사는 "대가를 받고 자신 명의 계좌나 유심을 타인에게 건네는 순간 그 자체로 처벌 대상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약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6-06-19 13:14:00
방이 없다. 전국 교정시설 수용자는 지난 4월 2일 기준 6만 3,060명. 정원은 5만 614명이다. 1만 2,400여 명이 정원을 초과해 수용돼 있다. 그 과밀한 공간 안에 마약 범죄자들이 섞여 있다. 교정시설 내 마약류 범죄 수용자는 7,429명(2025년 12월 31일 기준)이다. 전체 수용자의 11.8%, 10명 중 1명꼴이다. 증가세는 가파르다. 2021년 3,314명에서 2024년 6,628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7,429명을 기록했다. 4년 만에 2배 이상 불어났다. 전체 수용자 중 마약 사범 비율도 2019년 6.6%에서 매년 올라 2024년 처음으로 두 자릿수(10.5%)를 기록하더니, 지난해 11.8%까지 치솟았다. ◆ 의무 재활교육, 적용 대상은 '기결 투약사범' 마약류 수용자라고 모두 같은 처지는 아니다. 재활교육 적용 구조부터 갈린다. 직접 약물을 투약한 '투약사범'이 있고, 매매·밀수 등으로 들어온 수용자가 있다. 형이 확정된 기결수와 재판이 진행 중인 미결수의 처지도 다르다. 법무부에 따르면 교정시설 내 마약류 수용자 7,429명 가운데 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약 4,900명이다. 이 중 투약사범은 약 2,900명으로 집계됐다. 의무 재활교육인 '이수명령 병과'는 바로 이 기결 투약사범에게 적용된다. 법원이 형과 함께 이수명령을 부과하면 교정시설에서 의무적으로 재활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투약사범 2,900여 명 중 이수명령이 병과된 수용자는 2,440여 명이다. 나머지 470여 명은 단기형이거나 건강 문제 등으로 이수명령이 병과되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수명령이 종료됐거나 처음부터 병과되지 않은 투약사범을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별도 재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자체 연구·개발한 자기주도적 재활프로그램과 개별 메타인지 상담이 활용된다. 문제는 그물 바깥에 남는 영역이다. 재판이 끝나지 않은 미결수는 무죄 추정 원칙상 이수명령 대상이 될 수 없어 의무교육에서 빠진다. 미병과 투약사범과 이수 종료자에 대한 교육은 본인 희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동기가 없는 수용자에게는 닿지 못한다. ◆ 과밀이 막는 '분리 수용' 마약류 수용자는 일반 수용자보다 의료·상담·치료 등 개별 관리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교도관의 업무 부담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충분한 관리는 어려운 상황이다. 분리 수용도 필요하지만 방이 없다. 이재규 전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은 "마약류 수용자는 다른 수용자에게 마약 복용 방법이나 구입 경로를 알려줄 수 있어 분리 수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방이 없어 다른 수용자들과 섞여 지내는 게 현실입니다"라고 말했다. 연간 마약 단속 인원이 2년 연속 2만 명을 넘은 점을 고려하면 과밀화는 더 심해질 전망이다. 마약 사범은 2021년 1만 6,153명에서 2023년 2만 7,611명으로 급증했다. 2년 사이 70% 이상 늘었다. 2024년에도 2만 3,022명으로 2년 연속 2만 명을 넘겼다. 잡는 속도는 빠르다. 수용 공간은 그대로다. 재활은 일부는 의무로, 일부는 본인의 의지에 기대 굴러간다. 과밀한 방 안에서 마약 범죄자들은 오늘도 다음 출소를 기다린다.
2026-06-19 13:10:00
[마약과의 전쟁]국내 마약 불법 투약자, 최대 46만 명 추정… 정부, 5년 전쟁 선포
"우편으로 마약을 구입하면 반드시 적발돼 처벌됩니다. 공연히 돈 쓰면서 교도소 가지 마시고, 일찍 치료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마약 사범을 향해 직접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 겸 제11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며, 자신의 엑스(X)에 정부 출범 이후 1년간의 범정부 마약 대응 성과를 담은 기사를 공유했다. 이 대통령은 "사회악인 마약을 단속하기 위해 전국 모든 우편 집중국에 단속요원을 배치하고, 탐지견과 인조 코 등 탐지 장비도 설치하겠다"고 덧붙였다. 경고는 빈말이 아니었다. 하루 앞선 1일, 관계부처는 지난해 마약류 사범 2만 3,403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 불법 투약자 최대 46만 명…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정부의 '제1차(2025~2029) 마약류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불법 투약자 추정 규모는 31만~46만 명. 드러난 마약 사범 수의 최대 20배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마약 사범 증가율은 99%로 세계 평균(20%)의 약 5배다. 정부가 처음으로 중장기 대책을 내놨다. 지금까지는 부처별로 따로따로 대책을 세웠다. 이번엔 다르다.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9개 부처가 110개 과제를 함께 추진한다. 비전은 하나다. '마약류로부터 안전한 국민.' 잡는 방법부터 달라진다. 텔레그램·다크웹 감시 채널을 기존 10여 개에서 1만 3,000개로 대폭 확대한다. 마약 거래 광고를 걸러내는 데 지금은 평균 35일이 걸린다. 서면심사 제도를 도입해 1~2일로 단축한다. 수사관이 신분을 숨기고 거래에 침투하는 잠입수사도 새로 도입된다. CCTV에 AI를 적용해 '던지기' 수법을 자동 탐지하고, 마약 거래 계좌는 즉시 지급정지한다. 해외 공급망은 원점에서 막는다. 공항에서는 AI가 여행객 이력을 분석해 밀반입 고위험자를 가려낸다. 선박 바닥은 수중드론으로 훑는다. 2027년에는 국제우편 전용 세관검사장도 신설된다. ◆ 재범률 45.6%… 잡아도 또 한다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 5년간 마약 사범 평균 재범률은 45.6%다. 교도소 출소 이후 연결이 끊기는 구조가 재범의 핵심 원인이다. "치료받으시라"는 대통령의 당부가 가리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 공백을 '사법-치료-재활 연계 모델'로 메운다. 처벌이 끝나도 전국 17개 함께한걸음센터와 연결이 유지된다. 5년 후 목표는 중독 치료 환자를 1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재활 성공률은 60%까지 높이는 것이다. 여성 마약 사범 급증을 반영해 여성 전용 숙식형 재활센터도 우선 설치한다. 예방도 전면 확대된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학교 급별 표준 교육 지도서가 만들어지고, 교원은 3년 주기로 예방교육을 의무 이수해야 한다. 군 훈련소 입소 때와 휴가 전에도 예방교육이 의무화된다. 하지만 계획은 거창하다. 현실은 냉혹하다. 대구의 마약 재활 전담 인력은 지금 3명이다. 그 3명이 감당해야 할 수요는 2024년 936명에서 지난해 1,535명으로 1년 새 64% 늘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중독자는 쏟아진다. 계획이 현장으로 내려오는 속도. 그것이 이 전쟁의 진짜 관건이다.
2026-06-19 13:00:00
[창간 80년,격동 80년]한국 최초의 추기경 탄생…한국 가톨릭 200년 만의 경사
1969년 4월 28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김수환 추기경 서임식. 한국 천주교 2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47세, 전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었다. 박해와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 교회가 마침내 세계 가톨릭의 중심에 섰다. ◆한국 가톨릭 2세기 만의 경사 1969년 3월 28일, 바티칸. 교황 바오로 6세가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를 추기경에 임명했다. 한국 가톨릭 2세기 만의 첫 추기경 탄생이었다. 아시아인으로는 다섯 번째였다. 발표 당일 김 추기경은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이튿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공항에는 환호 인파가 가득했다. 일제강점과 분단,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제 막 일어서던 나라에 날아든 소식이었다. 종교계를 넘어 온 나라가 들썩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날 김 추기경을 포함해 35명을 동시에 서임했다. 가톨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제3세계 추기경 수를 18명에서 29명으로 대폭 늘린 것은 가톨릭의 세계화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한국 교회에는 겹경사였다. 전년도 병인박해(丙寅迫害,1866년) 순교자 24명을 포함한 103위 복자(福者) 탄생에 이어, 첫 추기경까지 배출했다. ◆ 낮은 곳을 향한 평생의 발걸음 1922년 대구. 김수환은 가난한 옹기장수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베푸는 사랑을, 일본 상지대학(上智大學) 유학 시절 스승 게페르트(Geppert) 신부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향한 더 큰 사랑을 배웠다. 그 두 가지가 그의 평생을 이끈 뿌리였다. 1951년 사제 서품. 1956년 독일 뮌스터(Münster) 대학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 시기 접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그의 사제관을 결정적으로 바꿨다.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시대 변화에 응답하는 교회의 쇄신 정신, 그것이 훗날 추기경으로서 그가 걸어갈 길의 나침반이 됐다. 교회 안팎에서 맡은 소임도 막중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1970년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 위원장으로 선출됐고, 1967년 이후 한국 대표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여섯 차례 참석했다. 1975년 6월부터는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며 분단된 땅의 교회를 함께 품었다. 1998년 5월 29일,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을 내려놓았다. 서울대교구장 재임 30년, 목자의 길을 걸은 지 47년 만이었다. ◆한국 가톨릭의 급성장 그가 서울대교구장으로 활동한 30년, 한국 가톨릭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취임 당시인 1968년 본당 48개·신자 14만 명이었던 서울대교구는 1998년 본당 203개·신자 125만 명으로 불어났다. 신자 수만 9배 증가였다. 종교 전문가들은 이 시기 한국 가톨릭 성장의 동력을 네 가지로 분석한다. 조직력·청렴도·결속력·개방성이다. ▷군사정권 시절 사회적 문제에 정면 대응한 조직력 ▷교황청과 교구에 귀속된 인사·재산권으로 부패 여지가 적은 청렴도 ▷관혼상제에서 발휘된 헌신적 결속력 ▷다른 종교를 향한 열린 개방성 등 이 네 가지가 맞물렸다. 가장 권위적으로 보이던 종교가 가장 평등하고 개방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김 추기경의 이름이 역사에 깊이 새겨진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었다.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학생들이 명동성당으로 몸을 피했다. 공권력 투입이 예상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는 경찰의 강제 진입을 막기 위해 "나를 밟고, 그 뒤에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고 선언하며 시민과 학생을 지켜낸 일화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아있다. 매년 크리스마스, 그가 찾은 곳은 화려한 성당이 아니었다. 빈민촌, 외국인 노동자 숙소, 버려진 아이들이 있는 좁고 누추한 공간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이다" 그 말 그대로를 살았다. 2009년 2월 16일, 향년 87세로 선종(善終)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각막을 기증했다. 눈을 감으면서도 세상에 빛을 남겼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짧았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가난한 옹기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오른 사람. 평생 낮은 곳을 향해 걸어간 사람. '바보 김수환'이 남긴 유산은 지금도 이 나라 안에 살아 있다.
2026-06-12 12:25:00
[무지개 수다]"K-뷰티 배우고, 미용사 자격증 따고, 내 일자리 만들어요"
"손이 떨려요~ 어렵지만 잘 따라해 보겠습니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여성이 가위와 빗을 쥔 채 마네킹 앞에서 잠시 멈췄다. 머리카락 끝자락을 일직선으로 맞추고, 머릿결을 살리며 커트를 완성해 나갔다. 완성된 헤어컷을 바라보며 웃었다. "제 실력 어때요. 이 정도면 나쁘진 않죠" ◆ 3대 1 경쟁 뚫은 16명 지난달 1일 오전 대구 중구 교동의 한 뷰티아카데미 교육실. 베트남·캄보디아·중국·일본·대만 출신 결혼이민여성 16명이 헤어 커트 실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들은 약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됐다. 지난 4월부터 오는 9월 말까지 5개월 일정으로 헤어·피부미용 국가자격증 취득 과정에 입문한 이들이다. 매주 월·수·목요일,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1시까지 주 3회 실습 강의를 받는다. 교육실 안에는 머리카락 냄새와 집중하는 숨소리가 가득했다. 이 프로그램의 정식 명칭은 '2026년 결혼이민여성 취·창업 역량강화 특화 사업'이다. 대구 중구가족센터가 운영한다. 한국 거주 2년 이상의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며 수강료는 전액 무료다. 헤어 커트·펌·염색부터 피부 관리·네일아트·메이크업까지 미용 전반을 아우르는 커리큘럼이다. 단순한 취미 교육이 아니다. 국가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한 실질적인 취업 준비 과정이다. 임시아 중구가족센터장은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격증 취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결혼이민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025년 말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는 18만8,105명이다.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 중 결혼이민자는 5,838명이다. 이들이 한국 적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교육으로 한국어 교육·한국 음식 강좌와 함께 취업 교육을 꼽는다. 이날 실습 주제는 헤어 커트의 기본기였다. 강사는 "이마와 귀를 덮는 커트를 적절히 활용하면 화사하면서도 어려 보이고 표정도 밝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머리카락을 둥글게 정리하면 귀여운 느낌과 함께 긴 얼굴의 단점도 보완된다. 교육생들은 강사의 말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고정한 채 손을 움직였다. ◆ "자격증 따서 6명 가족의 머리는 제가 책임집니다" 참가자들의 꿈은 저마다 구체적이었다. 14년째 대구에 살고 있는 중국 출신 차연매(42) 씨는 "자격증을 따서 노후 대비를 하려 한다"며 "고물가시대에 6명 가족의 헤어 미용도 제가 직접 책임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득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미용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술을 생계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나눔의 도구로도 그리고 있었다. 계명문화대 뷰티스킨테라피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중국 출신 김춘녀(45) 씨는 "수업도 무료이고 선생님도 전문가라서 좋다"고 강조했다. 웃음 속에 담긴 말이었지만, 경제적 부담 없이 전문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기회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대구에 온 지 10년째인 베트남 출신 딘티타인냐(33) 씨의 눈은 이미 한국 너머를 향해 있었다. "한국에서 큰 가게를 차려 베트남에도 알리고 싶어요. 가게를 예쁘게 꾸미고 돈도 많이 벌고 싶습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었다. 벌써 가게 인테리어까지 머릿속에 그려놓았다. 베트남 출신 노성은(32) 씨는 "헤어 커트와 펌이 화려하고 예쁘고 재미있었다"며 "배운 대로 잘 따라하고 있다"고 했다. 어색하게 시작한 손놀림이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제법 능숙해져 있었다. ◆ 1기생은 이미 달서구에서 미용실 운영 중 결혼이민여성들이 헤어 미용 분야를 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용업은 자격증만 있으면 비교적 낮은 창업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다. 한국어 능력의 한계를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이어지면서 K-뷰티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자국 커뮤니티를 겨냥한 미용실이나 뷰티숍 창업에 유리한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성과는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의 1기 수료생인 중국 출신 왕웨이옌(38) 씨는 자격증 취득 후 곧바로 달서구에 미용실을 열었다. 현재 성업 중이다. 2·3기 수료생들도 미용업계에 취업해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구가족센터 관계자는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자신감을 회복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교육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서로의 헤어 커트 작품 앞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었다. 오늘 배운 것을 기록해 두려는 것이었다. 마네킹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던 손들이 이제 셔터를 누르며 웃고 있었다. 5개월 뒤 자격증을 쥐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2026-06-05 13:30:00
[무지개 수다]갓 쓰고, 비녀 꽂고…외국인 유학생들 "대구 와서 어른 됐어요"
"바이자코바 아르우케의 새로운 이름은 '류은'이니라. 균형을 맞추며 은은하게 빛나는 삶을 사는 커뮤니케이터가 되어라." 주례자의 목소리가 서원 마당에 울려 퍼졌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키르기스스탄 출신 여학생 아르우케(20·영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학년)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새 이름을 받은 순간, 어엿한 성인으로 인정받았다. 옆에서는 이집트에서 온 청년이 상투를 틀고 갓을 썼다. 도포 자락을 여미는 손이 살짝 떨렸다. 피부색도, 모국어도 달랐지만 한복을 갖춰 입은 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의젓했다. 모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어른이 된 날이었다. ◆ 2001년부터 이어온 전통…외국인 참가자만 200여 명 지난 11일 오전 경산 영남대학교 민속촌 내 구계서원. 우즈베키스탄·방글라데시·이집트·키르기스스탄·부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복을 갖춰 입고 마당에 들어섰다. 제54회 성년의 날을 맞아 한국의 전통 성인 의례인 관례(冠禮)와 계례(笄禮)를 직접 체험하는 자리였다. 아직 앳된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의식이 시작되자 표정이 달라졌다. 여학생들은 머리에 족두리를 얹고 비녀를 꽂았다. 남학생들은 도포를 갖춰 입고 갓을 썼다. 관례는 15세에서 20세 사이의 남성에게 상투를 틀고 관(冠)을 씌워주는 성년 의식이다. 학식과 덕을 갖춘 어른을 빈(賓)으로 모시고, 세 차례 옷을 갈아입는 삼가례(三加禮)를 행한 뒤 성인 이름인 자(字)를 부여받는다. 계례는 여성에게 땋은 머리를 풀어 쪽을 짓고 비녀를 꽂아 성인이 되었음을 공인하는 의례다. 이날 참가자들은 평상복·외출복·관복을 차례로 갈아입고 술을 마시는 예절까지 익히며 의식의 전 과정을 몸으로 배웠다. 영남대는 2001년부터 매년 5월 성년의 날마다 이 행사를 이어왔다. 지금까지 관례와 계례를 체험한 외국인 유학생만 200여 명이 넘는다. 국내 대학 중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전통 성년 의례를 정례 행사로 운영하는 사례는 드물다. ◆ "방글라데시·부탄엔 이런 의식이 없어요" 참가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놀라움, 그리고 감동이었다. 계례에 참가한 부탄 출신 유학생 데마타시(31·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사 1기)는 "한국에 이런 의식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는데, 비녀를 꽂는 순간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출신 파르하나(23·생명공학과 2학년)는 "방글라데시에는 이런 형식의 성년 의식이 없다"며 "의식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 문화를 오늘 다시 봤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스마토브 굴럼(24·경제금융학부 3학년)은 "책에서 읽는 것과 직접 입고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며 "이 경험이 유학 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특별한 기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크마르 이슬라모브(20·시각디자인학과 3학년)는 "의식을 직접 치러보고 나서야 한국 전통문화 안에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 한복을 입으면 피부색이 달라도 잘 어우러져 한복은 이날 의식의 중심이었다. 처음 입어보는 한복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외국인 유학생들은 옷고름을 여미고 자리에 앉는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 화려한 색감의 당의와 도포는 단순한 의상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의 첫 관문이었다. 전통적인 색감과 선(線)이 살아 있는 한복은 피부색이 다른 이들의 몸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한복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 고궁과 전통 마을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의 사진이 SNS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한복 체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날 구계서원에서 한복의 의미는 달랐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입은 옷이 아니었다. 수백 년 된 예법 안에서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갖춰 입은 옷이었다. 이병준 영남대 부총장은 "K컬처 열풍과 한국에 대한 높은 호감도가 대구 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한복을 입고, 절을 하고, 이름을 받는 과정을 직접 겪고 나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 부총장은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어른이 되는 날, 수백 년 된 한국의 예법이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이 행사의 의미"라고 덧붙였다.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한복을 입은 채 서원 마당에 나란히 섰다. 갓을 쓴 청년 옆에 비녀를 꽂은 여학생이 어깨를 맞댔다. 저마다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표정만큼은 한결같았다. 카메라 앞에서 웃음이 터졌다. 어색하게 여몄던 도포 자락도, 처음 얹어본 족두리도 이제 조금은 익숙한 듯 보였다. 이날 외국인 유학생들은 대구에서 어른이 된 첫날을 잊지 못했다.
2026-05-22 14:11:00
[창간 80년,격동 80년]1965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 최초 전투부대 해외 파병
1965년 8월 13일, 제52회 임시국회 본회의장. 전투부대 파병동의안이 통과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전투부대를 해외에 파병하는 역사적 결정이었다. 육군 수도사단 맹호부대를 제1진으로 선정해 두 달 뒤인 10월 12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결단 및 환송식이 거행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우리 국군은 조국을 떠나 해외로 간다. 가서 잘 싸우고 부디 살아서 돌아오라"고 말했다. ◆ 귀신 잡는 해병, 정글의 맹호…베트남 장악 1965년 10월 9일,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가 월남 캄란만(Cam Ranh)에 상륙했다. 같은 해 10월 22일에는 육군 수도사단 맹호부대 제1연대가 퀴논(Qui Nhơn)에 상륙하며 뒤를 이었다. 청룡부대는 투아호아·추라이·호아안 등 격전지를 전전하며 수많은 작전을 수행했다. 그 중 1967년 2월 14일 밤부터 15일까지 사투를 벌인 짜빈동(Tra Binh Dong) 전투는 세계 전사(戰史)에 기록될 신화였다. 프랑스군·미군도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공산군의 요새를 한국 해병대가 단 두 시간 만에 점령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12년간 수백만 발의 포탄을 쏟아낸 연합군이 실패한 요새를 한국 해병이 두 시간 만에 점령했다. 대체 우리 연합군에게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라고 썼다. 맹호부대의 전공(戰功)도 눈부셨다. 1966년 8월 캄보디아 국경 인근 둑코(Duc Co) 전투. 맹호 9중대는 증강된 월맹군 1개 대대의 야간 기습을 받아 6시간의 격전 끝에 적을 격퇴했다. '중대 전술기지' 운용 개념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입증한 대승이었다. 자유우방 각국의 지휘관과 전술 전문가들이 맹호부대를 직접 방문해 교훈을 얻어 갔다. '무서운 한국군'이라는 대명사가 붙었다. 북베트남 호치민(Ho Chi Minh)은 "한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 특히 맹호를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라"고 자국 군에 명령했다. ◆ 박정희의 승부수 파병은 처음부터 한국이 먼저 제안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가 절실했다. 군사 정권의 정당성, 그리고 미국의 군사·경제 지원이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거절했다. 여러 차례 파병 의사를 전달했지만 케네디 재임 중에는 성사되지 않았다. 전환점은 1963년 케네디 암살 이후였다. 제36대 린든 존슨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협상 물꼬가 트였다. 첫 파병은 비전투부대였다. 6·25전쟁 참전 우방국에 보답한다는 명분이었다. 전투부대 파병은 달랐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국제 여론이 팽배했다. UN 가입을 준비하던 한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1965년 5월 22일,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전용기를 보내 박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한미관계 역사상 전례 없는 파격적 예우였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전투부대 1개 사단 파병을 공식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조건을 제시했다. 주한미군 유지, 경제·재정적 지원, 국군 장비 현대화였다. 이른바 '브라운 각서'로 불리는 협상의 골격이었다. ◆ 월남 파병…대한민국의 산업화 앞당겨 베트남 파병은 한국 경제의 전환점이 됐다. 한국 정부는 파병 대가로 약 2억 3,0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하역·건설 등 민간 부문의 외화 유입까지 합산하면 규모는 더 컸다. 1965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 103달러. 베트남 파병이 본격화된 이후 541달러로 치솟았다. 5배 이상의 증가였다. 미국에서 들여온 차관은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어졌다. 경제 인프라가 깔렸고, 산업화의 물적 토대가 이 시기에 마련됐다. 군(軍)도 변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확보한 재원은 국군 장비 현대화의 종잣돈이 됐다. 실전 경험을 쌓은 장병들은 귀국 후 한국군의 전투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파병의 대가는 경제 성장 그 이상이었다. 8년 5개월간 연인원 32만 4,000여 명이 참전했다. 전사자 5,000명, 부상자 1만여 명.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남의 나라 전쟁에서 흘린 피가 고속도로를 놓았고, 공장을 세웠고,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앞당겼다. 파병 용사들의 헌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놓은 것이다.
2026-05-15 13:30:00
[무지개 수다]대구의 '아시아 거리'…북부시외버스터미널 외국인 상점가
대구 서구 비산7동 북부시외버스터미널(2만9천736㎡·이하 북부정류장) 앞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글 간판보다 중국어·우즈베크어·베트남어 간판이 먼저 눈에 띈다. 베트남 쌀국수집 옆에 인도 레스토랑과 카자흐스탄 식료품점이 붙어 있고, 그 사이로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흘러나온다. 시민들이 '대구의 아시아'라고 부르는 북부정류장 다문화 거리다. ◆ 염색공단 '외국인 근로자 동네'에서 '아시아 거리'로 북부정류장 주변이 다문화 거리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인근 서대구산업단지와 비산염색산단, 칠곡·구미 지역 공장을 오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면서 상권이 형성됐다. 비산동은 원래 섬유·봉제 공장이 밀집한 산업 지역이었다. 1990~2000년대 공장 인력난이 심화되자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크게 늘었다. 값싼 월세, 공장 접근성, 시외버스 정류장이 맞닿은 지리적 조건이 이주민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지금 이 거리에는 케밥과 타코, 인도 커리 등 세계 각국 음식점과 수입 식료품점, 외국인 전용 휴대폰 가게 등 50여 곳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한국인 사장이 외국인 직원을 통역으로 두는 가게가 흔하고, 외국인이 직접 사장인 곳도 적지 않다. 한국 속 작은 외국이다. 비산동에서 2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예전엔 거의 모두가 섬유 공장 내국인 노동자들이었는데, 지금은 손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라며 "언제부턴가 이 골목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우즈베키스탄 청년 라힘(28) 씨는 "일 끝나고 친구들과 여기 오면 고향 냄새가 나서 좋다"며 "대구는 서울보다 조용하고 방값도 싸서 살기 편하다"고 말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만평역이 바로 붙어 있고, 시외 이동이 잦은 노동자들에게 북부정류장은 사실상 고향으로 가는 관문이다. 정류장 주변 20만~30만 원대 원룸은 단기 거주자로 늘 채워져 있다. ◆ 북부정류장 앞, 국적이 50여 개 넘는 상점들 이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게 중 하나가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 '올튼 워디(oltin vodiy)'다. '황금계곡'이라는 뜻이다. 고려인 3세 이보둘라(65)·이마르타(65) 씨 부부가 운영한다. 일제강점기 러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후손이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 차린 식당이다. 샤실릭(양꼬치)·라그만(우즈베키스탄식 우동)·플로브(소고기 볶음밥)가 대표 메뉴다. 한 입 베어 물면 해외여행 온 기분이 든다. 고려인 4세인 딸 김세바라(37) 씨는 바로 옆에서 우즈베키스탄 마트를 운영한다. 대구에 온 지 15년째다. 그는 "코로나 이후 장사가 많이 어렵다"며 "지역 기관에서 축제 같은 행사를 열어 사람들이 북부정류장으로 다시 모여들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출신 칸 나임(34) 씨는 아버지 칸 이스마일(53) 씨와 함께 아시아푸드&폰 마트를 운영한 지 12년째다. 강황가루 베이스의 카레 재료가 가장 잘 팔린다. 역시 파키스탄 출신인 굴나딤(50) 씨는 알라딘 모바일 가게에서 중고폰을 판다. 대구에 온 지 20년이 됐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그는 "3공단 안경 공장들이 대부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수가 확 줄었어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고 한숨을 쉬었다. 자가용 보급과 KTX 확대로 북부정류장을 찾는 발길 자체가 줄어든 것도 상권 침체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 "테마거리로 되살려야"…전문가·상인·행정 한목소리 인구 감소가 가파른 대구에서 비산7동 상권이 버티고 있는 것은 외국인 유입 덕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국인이 없었다면 진즉에 공동화됐을 거리라는 얘기다. 김진엽 계명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북부정류장 아시아 거리는 공공의 계획이 아니라 외국인 주민과 지역 상인의 상호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생적 다문화 공간"이라며 "인구 감소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도시 활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거점이자, 도시구조 변화와 사회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정책적·학문적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박정구(80) 북부정류장 상가번영회장은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간판은 제각각"이라며 "사람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축제와 문화가 있는 테마거리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근 염색업체 관계자도 "출퇴근도 편하고 북부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곳인데, 기반시설이 너무 노후화됐다"고 지적했다. 서구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서구청 관계자는"지난해 상가번영회를 골목상권 공동체로 지정하는 데 협조했으며, 앞으로도 공모사업 지원과 유관부서 협업을 통해 공공 공간 정비와 주민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6-05-08 13:19:00
[무지개 수다]"대구시장은 누굴 뽑아야 될까요"…6·3지방선거 다문화 유권자들 '투표 체험'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외국인 유권자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12월 31일 기준 외국인 선거권자는 15만4천559명으로, 4년 전보다 2만6천 명 늘었다. 외국인 유권자가 처음 투표권을 얻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당시 6천726명에 불과했던 숫자는 20년 만에 20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 "투표용지가 많아서 헷갈려요" 지난 10일 대구 서구가족센터 강의실에 모인 다문화 가족 유권자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대구시선관위가 언어 장벽과 제도 이해 부족으로 참정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선거연수 자리였다. 올 6·3 지방선거는 복잡하다. 시·도지사, 교육감, 구·시·군의 장, 시·도의원(지역구·비례), 구·시·군의원(지역구·비례)까지 한 사람이 7표를 행사해야 한다. 내국인의 경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달 10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개헌안이 의결되면 지방선거와 동시에 헌법 개정 국민투표도 치러져 1인 8표제가 된다. 단, 외국인 선거권자는 국민투표 대상이 아니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7표만 행사한다. 내국인에게도 낯선 절차가 외국인에게는 훨씬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날 연수에서는 선거제도와 투표 절차, 후보자 공약 확인 방법이 소개됐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초빙교수가 투표 준비물부터 기표 방법, 투표소 내 주의사항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론 교육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직접 기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가상 후보가 적힌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는 전 과정을 몸으로 익혔다. 대구시선관위는 서구가족센터를 비롯해 지역 내 다문화가족센터 수강생을 대상으로 선거연수를 이어갈 예정이다. ◆ 역대 최다 15만 명, 외국인 투표율은 '바닥'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는 나라다. 영주 체류자격 취득 후 3년이 경과하고 외국인 등록대장에 등재된 만 18세 이상이면 투표가 가능하다. 다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국민투표에는 참여할 수 없다. 외국인 선거권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전국 기준 제5회(2010년) 1만2천878명이었던 외국인 유권자는 제8회(2022년) 12만7천623명으로 12년 만에 열 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432명에서 1천530명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투표율 추이는 정반대다. 전국 외국인 투표율은 제5회 35.2%로 출발했다.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된 외국인들의 참여 의지가 높았던 시기다. 그러나 제6회(2014년)에는 2.6%로 급전직하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 제7회 13.5%, 제8회 13.3%로 소폭 반등했지만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대구도 흐름은 같았다. 제5회 32.6%에서 제6회 3.5%로 추락한 뒤 제7회 23.7%로 올랐다가, 제8회에는 다시 15.3%로 내려앉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율 하락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투표권 보유 사실 자체를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 영주권 취득 후 3년이라는 조건을 충족하고도 권리를 인식하지 못해 투표소를 찾지 않는 사례가 반복된다. 둘째, 언어 장벽이다. 7장의 투표용지를 각각 다른 선거구 후보자 중에서 골라야 하는 복잡한 제도는 내국인에게도 낯설다. 셋째, 지역 정치에 대한 정보 접근성 부족이다. 후보자 공약을 자국어로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이다. ◆ "꼭 투표할게요" 이번 제9회 지방선거의 전국 외국인 선거권자는 15만4천559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번 제9회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이 반등할지 주목된다. 대구시선관위가 이번에 다문화가족 선거연수를 확대 운영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19년 전 캄보디아에서 대구로 온 셋시보른(39) 씨는 기표소를 나서며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웠는데, 직접 해보니 자신이 생겼어요" 그는 "집에 오는 공약집을 꼭 읽고 투표하겠다"며 "대구시장과 교육감, 의원들은 제 손으로 직접 뽑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2001년 중국에서 온 나월메이(46) 씨도 "막상 해보니 실수할 것 같다는 걱정이 사라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10년 전 결혼해 대구에 정착한 베트남 출신 다오티리엔(43) 씨는 한국 국적은 없다. 그러나 영주권이 있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참가자 모두가 유권자는 아니었다. 대구에 온 지 6개월인 중국 청도 출신 요단(36) 씨는 아직 영주권도 국적도 없다. 이번엔 투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다음엔 귀화해서 반드시 투표할 겁니다. 한국에서 자라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이 권리를 꼭 쓰고 싶어요" 라고 강조했다.
2026-04-24 14:24:00
대구 달성군축구협회(회장 강성곤)와 삼일병원(병원장 김지건)은 지난 16일 달서구 송현동 삼일병원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 기관은 이번 협약을 통해 상호 발전을 도모하고, 달성군축구협회 회원들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2026-04-21 15:24:30
국학기공 전국 1,000명 통영 집결…대구서도 두 동호회 출전
대한국학기공협회는 24~25일 양일간 경남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2026 전국생활체육대축전 국학기공대회'를 개최한다. 대한체육회 주최, 경상남도·경상남도체육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후원을 받는 전국 최대 규모의 생활체육 행사다. 18세 이하부터 64세 이상부까지 전 연령대 선수 686명이 참가하며, 임원·운영진을 합산한 총 참가 인원은 약 1,000명에 달한다. 대구시국학기공협회에서도 이번 대회에 두 팀을 출전시킨다. 64세 이상부에는 대현동주민센터 동호회가, 18세 이하부에는 용지초등학교 동호회가 각각 나서 대구 대표로 기량을 겨룬다. 협회는 이번 대회 운영에서 안전관리 체계 강화와 스포츠 인권 보호를 핵심 원칙으로 내세웠다. 일회용품 사용 최소화, 지역 인력 참여 확대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가치를 대회 전반에 접목해 지역사회와의 상생도 함께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이기우 회장은 "국학기공은 국민의 심신 건강을 증진시키는 전통 생활체육"이라며 "이번 대회가 건강한 운동 문화 확산은 물론, 우리 고유의 정신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6-04-21 11:53:09
[커버 스토리]변호사 4만 명 시대, 소액 법정엔 아무도 없다
"변호사 없이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결국 해냈습니다." 지난해 7월, 대구 남구 대명동 빌라 1층에 사는 김진수(35·가명) 씨의 집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윗층 세대의 누수였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깔아야 했고, 손해는 3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윗집 소유자에게 배상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건 묵묵부답이었다. 변호사를 찾아갔다. 수임료 550만 원(부가세 포함)에 감정 비용 600만~900만 원, 성공보수 5~10%, 승소 후 강제집행 대행 수수료 50만 원까지. 항목을 더하자 총비용이 돌려받아야 할 3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소송에서 이겨도 남는 게 없는 구조였다. 김 씨는 혼자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 포털을 켰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막히면 챗GPT에 물었다. 그렇게 소장을 직접 완성했다. 혹시 모를 오류가 걱정돼 변호사 상담을 통해 감수만 받았다. 전자소송으로 지급명령을 신청하면서 절차가 시작됐다. 채무자 주소보정 명령이 떨어졌고, 청구취지 변경도 했다. 윗집 소유자가 이의신청을 내자 사건은 정식 소송으로 넘어갔다. 두 달 뒤 첫 변론기일이 잡혔다. 피고가 답변서를 내자 김 씨는 준비서면으로 항변을 하나씩 반박했다. 변론기일 당일, 판사 앞에 홀로 선 그는 준비서면의 사실 여부를 직접 진술했다. 이후 법원은 피고가 원고 김 씨에게 손해배상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여섯 달에 걸친 싸움이었다. 법률 용어 하나 이해하는 것도, 소장 한 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해냈다. 김 씨의 경험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변호사 없이 홀로 법정에 서는 '나홀로 소송'이 한국 민사 법정의 일상이 됐다. 나홀로 소송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다. 수성구 범어동 법조타운의 수임료는 통상 550만 원(부가세 포함) 선이다. 같은 사건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에 문의하면 착수금만 700만~800만 원을 부른다. 여기에 성공보수 10%가 붙는다. 대여금 200만 원을 돌려받으려고 변호사를 선임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다. 변호사 기본 상담료도 30분에 10만 원, 이후 10분 초과마다 5만 원이 추가된다. 소액 분쟁 당사자들에게 변호사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다. 변호사는 넘쳐난다. 2025년 기준 등록 변호사 수는 4만 397명이다. 로스쿨이 도입된 2009년 1만 1,016명이던 변호사가 16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다. 매년 1,700명 안팎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법조계 내부에서는 '포화 상태'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급은 넘치는데 소액 민사사건 당사자에게 그 조력은 닿지 않는다. ◆ 나홀로 소송을 키운 법원 포털·유튜브·AI 나홀로 소송이 늘어난 데는 제도적 인프라의 역할도 컸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 포털(ecfs.scourt.go.kr)에 접속해 사용자 등록과 로그인을 마치면 소장 제출부터 진행 상황 확인까지 집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다. 포털은 메인화면부터 나홀로 소송인을 겨냥한 구성이다. 소장·이의신청서·답변서·준비서면·항소장·소 취하서 등 각종 서류 작성법을 단계별로 안내하고, '나홀로 소송' 전용 탭까지 별도로 운영한다. 대여금·약정금 등 소송 유형별 예시 서식도 내려받을 수 있다. 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에서는 소장과 신청서 양식을 받아 인적사항과 청구취지만 바꿔 넣으면 기본 서류가 완성된다. 온라인도 나홀로 소송의 든든한 길잡이가 됐다. 주요 포털 법률 카페와 유튜브 채널에는 '나홀로 소송 완전 정복', '소장 작성 5단계' 같은 콘텐츠가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쌓여 있다. 변호사를 찾지 않아도 소송의 기초를 익히는 데 어렵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 AI가 소장을 써드립니다 나홀로 소송의 풍경을 바꾸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생성형 AI다. 경산에 사는 40대 직장인 박성진 씨는 1,500만 원 규모의 대여금반환청구소송을 준비하면서 변호사 대신 챗GPT를 먼저 켰다. 법률 문서의 형식과 용어를 입력하자 상당히 정교한 소장 초안이 나왔다. 박 씨는 이 초안을 들고 변호사를 찾아가 30분 검토 상담만 받은 뒤 법원에 서류를 냈다. 준비서면도 같은 방식으로 작성했다. 수임료 한 푼 없이, AI와 단기 상담만으로 소송 전 과정을 버텨낸 것이다. 온라인에서 소송 정보를 충분히 익힌 뒤 변호사를 찾아와 핵심만 확인하고 선임은 하지 않는 의뢰인도 늘고 있다. 정보는 온라인에서 무료로 얻고, 변호사는 최소한의 검증 창구로만 활용하는 것이다. ※box기사 ◆AI가 만든 가짜 판례… 법정 안으로 파고든 환각의 역습 챗GPT로 준비서면을 작성하던 나홀로 소송인 박모 씨는 지난해 특정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가 낭패를 봤다. 상대방 변호사가 "그런 판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I가 만들어낸 가짜 판례번호였다. 재판은 불필요하게 한 기일을 더 소비했다. 'AI 환각(hallucination)'이 법정 안으로 파고든 사례다. 전문 법조인들에게 AI는 이미 필수 도구다. 엘박스·슈퍼로이어·챗GPT가 판례 검색부터 초안 작성까지 책상 위에 자리 잡았다. 문제는 법률 지식 없이 AI를 맹신한 채 소송에 뛰어드는 일반인들이다. 법률사무소 더 봄 엄요한 변호사는 "AI가 작성한 서면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 법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주장이 섞여 있다. 당사자는 맞는 줄 알고 제출하지만 오히려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고 했다. 그는 또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AI는 실제 판례의 문구를 교묘히 비틀어 원칙과 예외를 혼동한 법리를 제시하기도 하므로, AI를 활용하더라도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의 적절한 검토와 조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대법원, 처음으로 제재 칼 빼들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AI 활용 허위 주장·증거 제출 대응 TF' 결과를 발표했다. '각급 법원에서 허위 법령·판례 인용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는 공식 확인과 함께, 구체적 제재 방안을 처음으로 내놨다. 즉시 적용 가능한 제재는 세 가지다. ▷허위 법령·판례 인용으로 재판을 지연시킨 당사자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 ▷허위 서면의 진술을 변론에서 제한하고 판결서에 허위임을 적시할 수 있다. ▷검증 없이 허위 내용을 제출한 변호사는 변협에 징계를 의뢰할 수 있다. 다만 시행 여부는 개별 재판부의 재량이다. 입법 차원에서는 AI 활용 사실 고지 의무화와 허위 인용 시 과태료 부과를 담은 소송법 개정안도 제안했다. 이미 일부 조치는 가동 중이다. 또 사법정보공개포털(portal.scourt.go.kr)에는 지난 2월 20일부터 '허위 사건번호 확인' 기능이 추가됐다.
2026-04-18 14:00:00
[커버 스토리]5억 넘으면 변호사, 3천만 원 이하면 나홀로…법조계 전문가 3명의 진단
법원행정처가 해마다 발간하는 '2025 사법연감'은 1,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법원 통계 자료집이다. 그 빼곡한 표와 수치 사이에 아무도 뒤집어 계산하지 않은 숫자가 조용히 묻혀 있었다. 민사 본안사건 변호사 선임 건수를 담은 '표22'다. 원고·피고·쌍방 선임 비율, 세 숫자를 더해 100에서 빼면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 없이 싸운 '완전 나홀로 소송' 비율이 나온다. 2020~2024년 합의·단독·소액사건 수치를 전수 역산했다. 한국 민사 법정의 민낯이 드러났다. ◆ 소액사건 100건 중 81건... 양쪽 다 본인 소송 2024년 처리된 민사 본안사건은 약 87만 건. 이 중 소가(訴價) 3,000만 원 이하 소액사건이 50만 7,80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역산 결과, 이 소액사건에서 원고·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비율은 81.0%다. 100건 중 81건, 약 41만 1,000여 건에서 법정의 양쪽 당사자가 모두 법률 전문가 없이 재판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더 들여다보면 구조는 더 극단적이다. 소액사건 중 소가(訴價) 1,000만 원 이하 사건만 38만 6,430건에 달한다. 원고·피고 중 한쪽만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가 16건, 양쪽 모두 선임한 경우는 고작 2건이다. 결국 원고 또는 피고 가운데 적어도 한쪽이 나홀로인 사건이 100건 중 98건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 5억 넘는 합의는 변호사, 3천만 이하 소액은 나홀로 사건 유형별 선임 구조는 정반대다. 소가 5억 원 초과 합의부 사건(2만 8,907건)에서는 쌍방 모두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55.5%로 절반을 넘는다. 고액·복잡 사건일수록 변호사 선임이 당연하게 이뤄진다. 반면 소액사건의 쌍방 선임 비율은 2.3%. 합의사건과 비교하면 24분의 1 수준이다. 원고만 선임한 비율도 13.8%에 불과하다. 소가가 작을수록 법률 서비스 접근성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단독사건(소가 3,000만~5억 원, 26만 8,655건)에서 양쪽 나홀로 비율은 47.6%지만, 원고만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28.1%다. 원고에게 변호사가 있고 피고는 없는 '비대칭 소송'이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박스기사 ◆ 변호사회·법원·로스쿨…법조계 전문가 세 가지 시선 ▷"AI만 믿고 법정 서면 기울어진 싸움… 민사도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해야" - 이병희 대구지방변호사회장 이병희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은 AI 활용이 나홀로 소송을 늘리는 동시에 당사자의 권리 보호를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AI는 신속성과 효율성 면에서 분명 도움이 되지만, 객관성과 신뢰성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며 "AI 환각이나 오류로 인한 허위 주장, 잘못된 판례 인용은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 지식 없이 AI만 믿고 변호사를 선임한 상대방과 맞붙는 것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세 가지다. ▷민사사건 필수적 변호사 강제주의 단계적 도입 ▷소송구조제도 확대 ▷법률 부조제도 활성화다. 예상되는 반론도 직접 차단했다. "변호사 밥그릇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라며 "법정에서 가장 취약한 당사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개혁의 수혜자는 변호사가 아니라 홀로 법정에 서야 하는 시민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AI·법원 협력으로 소송 문턱 낮추되 허위 주장·남소엔 엄중 대응해야" -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AI와 사법부의 협력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소송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당사자의 법률서비스 이용 편의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법원은 민사소송의 원칙 안에서 당사자의 권리구제가 더욱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AI 활용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낙관론에 선을 그었다. "AI 활용이 확산될수록 불필요한 소송 남발, 허위 주장·증거 제출 같은 부작용도 함께 커질 수 있다"며 "이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위험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진단이다. ▷ "AI 환각이 법정을 오염시킨다… 리걸테크 이해관계 아닌 당사자 보호가 먼저" - 최완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완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AI 활용의 위험성을 정면으로 짚었다. 그는 "범용 AI를 법률 목적으로 아무 제한 없이 쓰면 환각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잘못된 법령을 AI가 그럴듯하게 제시하고, 당사자는 그것을 사실로 믿고 법원에 낸다"고 말했다. "AI가 작성한 소장이 오류투성이여서 당사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가 더 강조한 것은 방향의 문제였다. "AI 활용 논의가 리걸테크 기업의 수익 모델이나 변호사 직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며 "소송 당사자의 실질적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AI 리터러시 교육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론이다.
2026-04-17 13:34:00
[커버 스토리]르포 "청구 취지가 뭔가요"… 답답한 나홀로 소송인의 하루
지난 3일 오전 11시, 대구지방법원 신관 지하 1층 종합민원실 내 사법접근센터. 60대 여성 최모(동구 신암동) 씨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손에는 소송 관련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상담위원 앞에 앉아 한숨부터 내쉬었다. "전자소송을 해야 할지 종이소송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청구취지와 청구원인, 입증 방법은 어떻게 작성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나홀로 소송인들이 법원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사법접근센터 관계자는 "고령층 상담 비중이 높은데, 이분들은 서류 제출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단계마다 헷갈려 하신다"고 했다. 전자소송 포털을 이용하려면 공인인증서나 간편인증이 필요한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이 첫 관문에서부터 막힌다. 복잡한 절차를 홀로 감당하다 포기하는 경우도 나온다. 최 씨는 소장 접수부터 판결까지 소송의 전체 흐름을 설명 들은 뒤 대구지방법원 인근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무료 법률상담과 소송서류 작성 지원을 받았다. 공단 관계자는 "상담 횟수에 제한이 없어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전 과정을 공단과 함께 진행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 "밤새워 쓴 준비서면, 챗GPT한테 물어봤다" 같은 날 변론기일에 참석하러 법정동으로 들어온 50대 여성 이모(서구 비산동) 씨는 임차보증금 2,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을 냈다. "변호사비가 500만 원이라는데, 보증금도 못 받은 상황에서 추가로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 씨는 3주 전 피고 답변서를 받고 반박 준비서면을 직접 쓰느라 밤을 새웠다. "법률 용어가 낯설어 유튜브를 반복해서 봤다. 챗GPT에 이 문장이 맞는지 물어보기도 했다"는 말에 법정 안팎에서 홀로 싸우는 나홀로 소송인의 현실이 담겼다. 민사 소액 법정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파키스탄 출신 무함마드(32) 씨는 2,500만 원의 임금체불 소송을 내고 첫 변론기일에 출석했지만, 판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한국어가 서툴러 재판 진행 자체가 막혔다. 판사는 사법통역사의 도움을 받도록 했다. 나홀로 소송인의 하루는 고단하다. 소장 접수와 송달, 재판부 지정, 답변서 검토, 변론기일 전 준비서면 제출까지 절차 하나하나가 낯설고 두렵다. 법원 전자소송 포털과 법률구조공단이 절차 안내를 제공하지만, 사건의 쟁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가장 큰 위험은 패소다. 법무법인 가나다 송승우 변호사는 나홀로 소송 급증의 부작용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소송은 변론 절차가 지연됨으로써 상대방 당사자뿐 아니라 재판부의 업무 부담까지 가중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변론 내용을 AI에 의존하는 부분에 대하여 "AI가 알려준 내용이라도 법률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법원에 제출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자칫 돌이키기 어려운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 법원의 딜레마…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판사 팁' 논란이 불거졌다. 나홀로 소송인이 재판에서 불리해지자, 판사가 당사자 스스로 주장하지 않은 사실을 슬쩍 알려주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배려처럼 보이지만, 민사소송의 핵심 원칙인 변론주의에 어긋난다. 변론주의란 사실관계와 증거는 당사자가 스스로 주장하고 제출해야 하며, 판사는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내용을 직권으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중립 기관으로서 한쪽을 도울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 그 사이에서 판사도 딜레마를 안고 법정에 선다.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구에서만 나홀로 소액사건 변론기일이 매주 200~300여 건 정도 진행된다"고 했다. 그는 "법률 전문가 눈으로 보면 조금만 보완해도 당사자가 승소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있다"면서도 한계를 분명히 했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의 적절한 석명권(재판장이 주장이나 증거가 불분명한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질문하거나 입증을 촉구하는 소송지휘권) 행사를 넘어 당사자가 스스로 주장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판사가 직접 끌어내 주장하거나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변론주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나홀로 소송, 이렇게 실패한다 — 6가지 유형 ① 소멸시효 놓침 — 청구 가능 기간을 지나 소장 제출, 각하 ② 입증 부족 — 증거 미제출로 패소 ③ 청구취지 오류 — 금액·피고 특정 오류로 보정 명령 반복 ④ 기일 미출석 — 변론기일 불출석으로 의제 자백 또는 기각 ⑤ 항소 기간 도과 — 판결 후 2주 내 항소 미제기로 확정 ⑥ 집행 미비 — 승소 후 강제집행 절차 몰라 채권 회수 실패
2026-04-17 13:30:00
[창간 80년,격동 80년]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육사 8기 세력은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서울에 진입했다. 이들은 주요 국가기관을 신속히 장악하며 제2공화국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는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 혼돈의 제2공화국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그해 8월 윤보선이 대통령에 취임했고, 장면이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신·구파로 갈려 대립했다. 1961년 2월에는 아예 신파가 따로 신민당을 만들었다. 집권여당이 쪼개진 것이었다. 장면 총리는 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통치력은 날로 약화됐다. 4·19 이후 처벌받지 못한 부정선거 관계자들에 대한 민심의 분노 역시 들끓었다. 경제 상황도 악화됐다. 1천만 명 노동인구 중 240만 명이 완전 실업자였고, 200만 명은 잠재 실업자였다. 노동인구의 거의 절반이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장면 총리 정권은 경제발전 계획을 만지작만 거릴 뿐 경제난 수습에 전혀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데모 천국인 상황에서 벌어진 극심한 이념적, 정치적 혼란이었다. 1960년 8월부터 1961년 5월초까지 약 2,000여 건의 시위가 일어났다. 참가 인원은 100만 명에 이르렀다. 거기에다 1960년에만 침투한 간첩이 100명 넘게 체포됐다. 사회 전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 무혈(無血) 군사정변, 완전 성공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군 내부에서는 국가 재건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50년대 미국 유학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단련된 육사 8기 출신 영관급 장교들은 서울 근교 부대와 공수단·해병대·포병 병력을 비밀리에 규합했다. 거사 시도는 세 번 실패했다. 1960년 5월8일 첫 거사계획은 4.19 학생혁명의 발발로 중단됐다. 또 4·19 1주년에 맞춘 첫 계획도 무산됐고, 5월 12일 거사안은 정보 누설로 취소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5월 16일이 최후의 D데이로 확정됐다. 쿠데타설은 이미 군 안팎에 파다했다. 정보기관이 여러차례 첩보를 올렸고, 장면 총리와 국방장관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직접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장도영은 "박정희 소장은 그럴 위인이 못 됩니다"는 취지로 보고했으며, 수뇌부는 안심했다. 그것이 결정적 오판이었다. 당일 새벽, 육군본부가 접수됐다. 주력은 서울시청에 진주했고, 해병대는 치안국과 서울시 경찰국을, 공수단은 중앙방송국을 오전 4시 30분경 각각 장악했다. 장면 총리는 이미 혜화동 칼멜수녀원으로 몸을 숨긴 뒤였다. 이날 오전 5시, 군사혁명위원회는 포고령을 통해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에 국가의 운명을 더는 맡겨둘 수 없다'고 선언했다. ◆ 미국의 방관 속 성공한 군사정변 군사정변의 성패를 가른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군사행동에 반대했지만, 장면 정권의 무능과 허약한 지도력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주한미군 사령관 매그루더 장군은 헌정 수호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으나 실질적 군사 개입은 없었다. 미국은 군부의 불법적인 권력 장악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었지만,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진압 의지를 보인 1군사령관 이한림이 있었지만, 미국의 모호한 태도와 "국군끼리 피를 흘릴 수 없다"는 윤보선 대통령의 입장 속에 진압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 결과 5·16은 사실상 큰 저항 없이 진행됐다. 혁명 이틀째인 18일 육사생도 800명은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했다. 이 광경은 민심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혁명군은 약 60여 시간 만에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 이날 장면 내각은 총사퇴했고, 군사혁명위원회는 곧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돼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다. 이어 6월 10일 중앙정보부가 창설됐으며, 정치활동 정화와 언론 통제가 본격화됐다. 7월3일 장도영마저 축출되면서 박정희는 군정의 실질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5·16 이후 추진된 경제개발 정책은 한국을 절대적 빈곤에서 중진국으로 끌어올린 '한강의 기적'의 물적 토대를 놓았다. 1인당 국민총소득 92달러에 불과했던 1961년의 대한민국이 불과 65년 후 4만 달러를 향해 달리는 선진 산업국가로 변모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판론자들도 성장의 결과는 인정하되, 그것이 민주주의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결국 5·16 군사정변은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키워드 5·16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 였다.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이를 '5·16 군사 혁명'으로 표현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역사 교육 과정과 법적 정의는 5·16을 '군사 정변(쿠데타)'으로 규정하고 있다.
2026-04-17 11:50:00
[무지개 수다]"20년 만에 대한민국 사람 됐어요"…우즈베키스탄·코트디부아르 등 13개국 출신 54명 귀화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대강당에서 '2026년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오른손을 높이 든 54명의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베트남·중국·필리핀 등 13개국 출신의 외국인들은 이날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 드라마 한 편이 바꾼 인생 수여자 대표로 단상 앞에 선 모로코 출신 벤바라힘 하자르(30) 씨가 선서문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유창한 한국어였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던 13개국의 외국인들이 태극기 앞에 하나가 되었다. "드라마 한 편이 인생을 바꾸고, 아이 하나가 귀화를 결심하게 했습니다" 하자르 씨가 처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드라마 한 편 때문이었다. 모로코에서 처음 방영된 '꽃보다 남자'를 보고 한국 문화에 빠져들어 한국어를 독학했고, 이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2007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지 19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어는 능통해졌고, 지역 사회 봉사도 꾸준히 이어왔다. 귀화시험은 단 한 번 응시해 100점을 받았다. 그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리잡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고향에서 오히려 '이방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코발축 마리아(44) 씨는 2006년 1월에 대구에 왔다. 고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한국을 마음속 고향처럼 여겨왔다. 그는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꼭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영주권자(F-5)로 한국에 살던 중 2011년 우즈베키스탄 고향을 찾았다가 뜻밖의 감정과 마주했다. 그는 "거기서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귀화를 결심했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심 뒤 그는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에 등록해 1년여 간 한국어 교육과 한국사회 이해 과정을 빠짐없이 이수했다. 그의 노력은 20년 만에 국적 증서로 돌아왔다. 대구에서 8년째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마리아 씨는 "곧 한국 이름도 만들고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여권도 받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앞으로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 "한국인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어요" 필리핀 출신 람반 라니(37) 씨가 귀화를 결심한 건 아이 때문이었다. 2015년 취업비자로 대구에 온 그는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꾸린 뒤 마음속에 한 가지 바람을 품었다. '이 아이에게 한국인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영천의 자동차부품 회사에 다니는 라니 씨는 "결혼할 때도 서류가 복잡했고, 늘 외국인 등록증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불편했다"며 "이제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내밀 수 있고, 이번 6·3 지방선거에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을 계획인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 영전에 귀화증서를 올리고 싶다고 했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다샤에벵 마리호세(40) 씨의 사연도 닮아 있다. 아프리카에 발전소 기술자로 파견된 한국인 남편을 현지에서 만나 2016년 청도에 정착한 그는 초등학생 딸을 키우며 10년 가까이 한국어와 씨름했다. 마리호세 씨는 "10년 만에 한국 사람이 됐다는 게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또 "2년 전 먼저 떠나신 부모님께 이 귀화증서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워요"라며 그의 눈가가 잠시 붉어졌다. ◆ 베트남부터 모로코까지, 13개국이 품은 '대한민국' 이날 귀화자의 출신국은 베트남(27명)이 가장 많았고, 중국(8명), 필리핀·캄보디아(각 4명), 타이완(3명) 순이었다. 타이·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코트디부아르·몽골·모로코·네팔·미국이 각 1명씩으로 총 13개국이 한자리에 모였다.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같은 국민이 됐다는 사실 앞에 모두가 하나였다. 국적증서 수여식은 2018년 12월 개정 국적법 시행 이후 매월 또는 격월로 열리고 있다. 귀화 허가를 받은 뒤에도 국민선서를 하고 증서를 받아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적이 공식 취득된다. 법무부는 이 수여식을 통해 새 국민에게 소속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사회 통합의 출발점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2025년 한 해 전국 국적취득자는 총 1만 5,381명(귀화자 1만 1,344명·국적회복자 4,037명)으로 집계됐다. 전년(1만 4,615명)보다 5.2% 늘어 2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2026-04-1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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