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년,격동 80년]1965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 최초 전투부대 해외 파병
1965년 8월 13일, 제52회 임시국회 본회의장. 전투부대 파병동의안이 통과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전투부대를 해외에 파병하는 역사적 결정이었다. 육군 수도사단 맹호부대를 제1진으로 선정해 두 달 뒤인 10월 12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결단 및 환송식이 거행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우리 국군은 조국을 떠나 해외로 간다. 가서 잘 싸우고 부디 살아서 돌아오라"고 말했다. ◆ 귀신 잡는 해병, 정글의 맹호…베트남 장악 1965년 10월 9일,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가 월남 캄란만(Cam Ranh)에 상륙했다. 같은 해 10월 22일에는 육군 수도사단 맹호부대 제1연대가 퀴논(Qui Nhơn)에 상륙하며 뒤를 이었다. 청룡부대는 투아호아·추라이·호아안 등 격전지를 전전하며 수많은 작전을 수행했다. 그 중 1967년 2월 14일 밤부터 15일까지 사투를 벌인 짜빈동(Tra Binh Dong) 전투는 세계 전사(戰史)에 기록될 신화였다. 프랑스군·미군도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공산군의 요새를 한국 해병대가 단 두 시간 만에 점령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12년간 수백만 발의 포탄을 쏟아낸 연합군이 실패한 요새를 한국 해병이 두 시간 만에 점령했다. 대체 우리 연합군에게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라고 썼다. 맹호부대의 전공(戰功)도 눈부셨다. 1966년 8월 캄보디아 국경 인근 둑코(Duc Co) 전투. 맹호 9중대는 증강된 월맹군 1개 대대의 야간 기습을 받아 6시간의 격전 끝에 적을 격퇴했다. '중대 전술기지' 운용 개념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입증한 대승이었다. 자유우방 각국의 지휘관과 전술 전문가들이 맹호부대를 직접 방문해 교훈을 얻어 갔다. '무서운 한국군'이라는 대명사가 붙었다. 북베트남 호치민(Ho Chi Minh)은 "한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 특히 맹호를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라"고 자국 군에 명령했다. ◆ 박정희의 승부수 파병은 처음부터 한국이 먼저 제안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가 절실했다. 군사 정권의 정당성, 그리고 미국의 군사·경제 지원이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거절했다. 여러 차례 파병 의사를 전달했지만 케네디 재임 중에는 성사되지 않았다. 전환점은 1963년 케네디 암살 이후였다. 제36대 린든 존슨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협상 물꼬가 트였다. 첫 파병은 비전투부대였다. 6·25전쟁 참전 우방국에 보답한다는 명분이었다. 전투부대 파병은 달랐다.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국제 여론이 팽배했다. UN 가입을 준비하던 한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1965년 5월 22일,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전용기를 보내 박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한미관계 역사상 전례 없는 파격적 예우였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전투부대 1개 사단 파병을 공식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조건을 제시했다. 주한미군 유지, 경제·재정적 지원, 국군 장비 현대화였다. 이른바 '브라운 각서'로 불리는 협상의 골격이었다. ◆ 월남 파병…대한민국의 산업화 앞당겨 베트남 파병은 한국 경제의 전환점이 됐다. 한국 정부는 파병 대가로 약 2억 3,0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하역·건설 등 민간 부문의 외화 유입까지 합산하면 규모는 더 컸다. 1965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 103달러. 베트남 파병이 본격화된 이후 541달러로 치솟았다. 5배 이상의 증가였다. 미국에서 들여온 차관은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어졌다. 경제 인프라가 깔렸고, 산업화의 물적 토대가 이 시기에 마련됐다. 군(軍)도 변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확보한 재원은 국군 장비 현대화의 종잣돈이 됐다. 실전 경험을 쌓은 장병들은 귀국 후 한국군의 전투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파병의 대가는 경제 성장 그 이상이었다. 8년 5개월간 연인원 32만 4,000여 명이 참전했다. 전사자 5,000명, 부상자 1만여 명.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남의 나라 전쟁에서 흘린 피가 고속도로를 놓았고, 공장을 세웠고,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앞당겼다. 파병 용사들의 헌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놓은 것이다.
2026-05-15 13:30:00
[무지개 수다]대구의 '아시아 거리'…북부시외버스터미널 외국인 상점가
대구 서구 비산7동 북부시외버스터미널(2만9천736㎡·이하 북부정류장) 앞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글 간판보다 중국어·우즈베크어·베트남어 간판이 먼저 눈에 띈다. 베트남 쌀국수집 옆에 인도 레스토랑과 카자흐스탄 식료품점이 붙어 있고, 그 사이로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흘러나온다. 시민들이 '대구의 아시아'라고 부르는 북부정류장 다문화 거리다. ◆ 염색공단 '외국인 근로자 동네'에서 '아시아 거리'로 북부정류장 주변이 다문화 거리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인근 서대구산업단지와 비산염색산단, 칠곡·구미 지역 공장을 오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면서 상권이 형성됐다. 비산동은 원래 섬유·봉제 공장이 밀집한 산업 지역이었다. 1990~2000년대 공장 인력난이 심화되자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크게 늘었다. 값싼 월세, 공장 접근성, 시외버스 정류장이 맞닿은 지리적 조건이 이주민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지금 이 거리에는 케밥과 타코, 인도 커리 등 세계 각국 음식점과 수입 식료품점, 외국인 전용 휴대폰 가게 등 50여 곳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한국인 사장이 외국인 직원을 통역으로 두는 가게가 흔하고, 외국인이 직접 사장인 곳도 적지 않다. 한국 속 작은 외국이다. 비산동에서 2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예전엔 거의 모두가 섬유 공장 내국인 노동자들이었는데, 지금은 손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라며 "언제부턴가 이 골목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우즈베키스탄 청년 라힘(28) 씨는 "일 끝나고 친구들과 여기 오면 고향 냄새가 나서 좋다"며 "대구는 서울보다 조용하고 방값도 싸서 살기 편하다"고 말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만평역이 바로 붙어 있고, 시외 이동이 잦은 노동자들에게 북부정류장은 사실상 고향으로 가는 관문이다. 정류장 주변 20만~30만 원대 원룸은 단기 거주자로 늘 채워져 있다. ◆ 북부정류장 앞, 국적이 50여 개 넘는 상점들 이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게 중 하나가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 '올튼 워디(oltin vodiy)'다. '황금계곡'이라는 뜻이다. 고려인 3세 이보둘라(65)·이마르타(65) 씨 부부가 운영한다. 일제강점기 러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후손이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 차린 식당이다. 샤실릭(양꼬치)·라그만(우즈베키스탄식 우동)·플로브(소고기 볶음밥)가 대표 메뉴다. 한 입 베어 물면 해외여행 온 기분이 든다. 고려인 4세인 딸 김세바라(37) 씨는 바로 옆에서 우즈베키스탄 마트를 운영한다. 대구에 온 지 15년째다. 그는 "코로나 이후 장사가 많이 어렵다"며 "지역 기관에서 축제 같은 행사를 열어 사람들이 북부정류장으로 다시 모여들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출신 칸 나임(34) 씨는 아버지 칸 이스마일(53) 씨와 함께 아시아푸드&폰 마트를 운영한 지 12년째다. 강황가루 베이스의 카레 재료가 가장 잘 팔린다. 역시 파키스탄 출신인 굴나딤(50) 씨는 알라딘 모바일 가게에서 중고폰을 판다. 대구에 온 지 20년이 됐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그는 "3공단 안경 공장들이 대부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수가 확 줄었어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고 한숨을 쉬었다. 자가용 보급과 KTX 확대로 북부정류장을 찾는 발길 자체가 줄어든 것도 상권 침체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 "테마거리로 되살려야"…전문가·상인·행정 한목소리 인구 감소가 가파른 대구에서 비산7동 상권이 버티고 있는 것은 외국인 유입 덕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국인이 없었다면 진즉에 공동화됐을 거리라는 얘기다. 김진엽 계명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북부정류장 아시아 거리는 공공의 계획이 아니라 외국인 주민과 지역 상인의 상호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생적 다문화 공간"이라며 "인구 감소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도시 활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거점이자, 도시구조 변화와 사회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정책적·학문적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박정구(80) 북부정류장 상가번영회장은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간판은 제각각"이라며 "사람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축제와 문화가 있는 테마거리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근 염색업체 관계자도 "출퇴근도 편하고 북부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곳인데, 기반시설이 너무 노후화됐다"고 지적했다. 서구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서구청 관계자는"지난해 상가번영회를 골목상권 공동체로 지정하는 데 협조했으며, 앞으로도 공모사업 지원과 유관부서 협업을 통해 공공 공간 정비와 주민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6-05-08 13:19:00
[무지개 수다]"대구시장은 누굴 뽑아야 될까요"…6·3지방선거 다문화 유권자들 '투표 체험'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외국인 유권자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5년 12월 31일 기준 외국인 선거권자는 15만4천559명으로, 4년 전보다 2만6천 명 늘었다. 외국인 유권자가 처음 투표권을 얻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당시 6천726명에 불과했던 숫자는 20년 만에 20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 "투표용지가 많아서 헷갈려요" 지난 10일 대구 서구가족센터 강의실에 모인 다문화 가족 유권자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대구시선관위가 언어 장벽과 제도 이해 부족으로 참정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선거연수 자리였다. 올 6·3 지방선거는 복잡하다. 시·도지사, 교육감, 구·시·군의 장, 시·도의원(지역구·비례), 구·시·군의원(지역구·비례)까지 한 사람이 7표를 행사해야 한다. 내국인의 경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달 10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개헌안이 의결되면 지방선거와 동시에 헌법 개정 국민투표도 치러져 1인 8표제가 된다. 단, 외국인 선거권자는 국민투표 대상이 아니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7표만 행사한다. 내국인에게도 낯선 절차가 외국인에게는 훨씬 높은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날 연수에서는 선거제도와 투표 절차, 후보자 공약 확인 방법이 소개됐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 초빙교수가 투표 준비물부터 기표 방법, 투표소 내 주의사항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론 교육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직접 기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가상 후보가 적힌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는 전 과정을 몸으로 익혔다. 대구시선관위는 서구가족센터를 비롯해 지역 내 다문화가족센터 수강생을 대상으로 선거연수를 이어갈 예정이다. ◆ 역대 최다 15만 명, 외국인 투표율은 '바닥'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는 나라다. 영주 체류자격 취득 후 3년이 경과하고 외국인 등록대장에 등재된 만 18세 이상이면 투표가 가능하다. 다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국민투표에는 참여할 수 없다. 외국인 선거권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전국 기준 제5회(2010년) 1만2천878명이었던 외국인 유권자는 제8회(2022년) 12만7천623명으로 12년 만에 열 배 가까이 증가했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432명에서 1천530명으로 세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투표율 추이는 정반대다. 전국 외국인 투표율은 제5회 35.2%로 출발했다.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된 외국인들의 참여 의지가 높았던 시기다. 그러나 제6회(2014년)에는 2.6%로 급전직하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 제7회 13.5%, 제8회 13.3%로 소폭 반등했지만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대구도 흐름은 같았다. 제5회 32.6%에서 제6회 3.5%로 추락한 뒤 제7회 23.7%로 올랐다가, 제8회에는 다시 15.3%로 내려앉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율 하락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투표권 보유 사실 자체를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 영주권 취득 후 3년이라는 조건을 충족하고도 권리를 인식하지 못해 투표소를 찾지 않는 사례가 반복된다. 둘째, 언어 장벽이다. 7장의 투표용지를 각각 다른 선거구 후보자 중에서 골라야 하는 복잡한 제도는 내국인에게도 낯설다. 셋째, 지역 정치에 대한 정보 접근성 부족이다. 후보자 공약을 자국어로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이다. ◆ "꼭 투표할게요" 이번 제9회 지방선거의 전국 외국인 선거권자는 15만4천559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번 제9회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이 반등할지 주목된다. 대구시선관위가 이번에 다문화가족 선거연수를 확대 운영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19년 전 캄보디아에서 대구로 온 셋시보른(39) 씨는 기표소를 나서며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웠는데, 직접 해보니 자신이 생겼어요" 그는 "집에 오는 공약집을 꼭 읽고 투표하겠다"며 "대구시장과 교육감, 의원들은 제 손으로 직접 뽑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2001년 중국에서 온 나월메이(46) 씨도 "막상 해보니 실수할 것 같다는 걱정이 사라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10년 전 결혼해 대구에 정착한 베트남 출신 다오티리엔(43) 씨는 한국 국적은 없다. 그러나 영주권이 있어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참가자 모두가 유권자는 아니었다. 대구에 온 지 6개월인 중국 청도 출신 요단(36) 씨는 아직 영주권도 국적도 없다. 이번엔 투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다음엔 귀화해서 반드시 투표할 겁니다. 한국에서 자라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이 권리를 꼭 쓰고 싶어요" 라고 강조했다.
2026-04-24 14:24:00
대구 달성군축구협회(회장 강성곤)와 삼일병원(병원장 김지건)은 지난 16일 달서구 송현동 삼일병원에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 기관은 이번 협약을 통해 상호 발전을 도모하고, 달성군축구협회 회원들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2026-04-21 15:24:30
국학기공 전국 1,000명 통영 집결…대구서도 두 동호회 출전
대한국학기공협회는 24~25일 양일간 경남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2026 전국생활체육대축전 국학기공대회'를 개최한다. 대한체육회 주최, 경상남도·경상남도체육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후원을 받는 전국 최대 규모의 생활체육 행사다. 18세 이하부터 64세 이상부까지 전 연령대 선수 686명이 참가하며, 임원·운영진을 합산한 총 참가 인원은 약 1,000명에 달한다. 대구시국학기공협회에서도 이번 대회에 두 팀을 출전시킨다. 64세 이상부에는 대현동주민센터 동호회가, 18세 이하부에는 용지초등학교 동호회가 각각 나서 대구 대표로 기량을 겨룬다. 협회는 이번 대회 운영에서 안전관리 체계 강화와 스포츠 인권 보호를 핵심 원칙으로 내세웠다. 일회용품 사용 최소화, 지역 인력 참여 확대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가치를 대회 전반에 접목해 지역사회와의 상생도 함께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이기우 회장은 "국학기공은 국민의 심신 건강을 증진시키는 전통 생활체육"이라며 "이번 대회가 건강한 운동 문화 확산은 물론, 우리 고유의 정신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6-04-21 11:53:09
[커버 스토리]변호사 4만 명 시대, 소액 법정엔 아무도 없다
"변호사 없이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결국 해냈습니다." 지난해 7월, 대구 남구 대명동 빌라 1층에 사는 김진수(35·가명) 씨의 집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윗층 세대의 누수였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깔아야 했고, 손해는 3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윗집 소유자에게 배상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건 묵묵부답이었다. 변호사를 찾아갔다. 수임료 550만 원(부가세 포함)에 감정 비용 600만~900만 원, 성공보수 5~10%, 승소 후 강제집행 대행 수수료 50만 원까지. 항목을 더하자 총비용이 돌려받아야 할 3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소송에서 이겨도 남는 게 없는 구조였다. 김 씨는 혼자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 포털을 켰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막히면 챗GPT에 물었다. 그렇게 소장을 직접 완성했다. 혹시 모를 오류가 걱정돼 변호사 상담을 통해 감수만 받았다. 전자소송으로 지급명령을 신청하면서 절차가 시작됐다. 채무자 주소보정 명령이 떨어졌고, 청구취지 변경도 했다. 윗집 소유자가 이의신청을 내자 사건은 정식 소송으로 넘어갔다. 두 달 뒤 첫 변론기일이 잡혔다. 피고가 답변서를 내자 김 씨는 준비서면으로 항변을 하나씩 반박했다. 변론기일 당일, 판사 앞에 홀로 선 그는 준비서면의 사실 여부를 직접 진술했다. 이후 법원은 피고가 원고 김 씨에게 손해배상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여섯 달에 걸친 싸움이었다. 법률 용어 하나 이해하는 것도, 소장 한 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해냈다. 김 씨의 경험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변호사 없이 홀로 법정에 서는 '나홀로 소송'이 한국 민사 법정의 일상이 됐다. 나홀로 소송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다. 수성구 범어동 법조타운의 수임료는 통상 550만 원(부가세 포함) 선이다. 같은 사건을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에 문의하면 착수금만 700만~800만 원을 부른다. 여기에 성공보수 10%가 붙는다. 대여금 200만 원을 돌려받으려고 변호사를 선임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다. 변호사 기본 상담료도 30분에 10만 원, 이후 10분 초과마다 5만 원이 추가된다. 소액 분쟁 당사자들에게 변호사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다. 변호사는 넘쳐난다. 2025년 기준 등록 변호사 수는 4만 397명이다. 로스쿨이 도입된 2009년 1만 1,016명이던 변호사가 16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다. 매년 1,700명 안팎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법조계 내부에서는 '포화 상태'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급은 넘치는데 소액 민사사건 당사자에게 그 조력은 닿지 않는다. ◆ 나홀로 소송을 키운 법원 포털·유튜브·AI 나홀로 소송이 늘어난 데는 제도적 인프라의 역할도 컸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 포털(ecfs.scourt.go.kr)에 접속해 사용자 등록과 로그인을 마치면 소장 제출부터 진행 상황 확인까지 집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다. 포털은 메인화면부터 나홀로 소송인을 겨냥한 구성이다. 소장·이의신청서·답변서·준비서면·항소장·소 취하서 등 각종 서류 작성법을 단계별로 안내하고, '나홀로 소송' 전용 탭까지 별도로 운영한다. 대여금·약정금 등 소송 유형별 예시 서식도 내려받을 수 있다. 법률구조공단 홈페이지에서는 소장과 신청서 양식을 받아 인적사항과 청구취지만 바꿔 넣으면 기본 서류가 완성된다. 온라인도 나홀로 소송의 든든한 길잡이가 됐다. 주요 포털 법률 카페와 유튜브 채널에는 '나홀로 소송 완전 정복', '소장 작성 5단계' 같은 콘텐츠가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쌓여 있다. 변호사를 찾지 않아도 소송의 기초를 익히는 데 어렵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 AI가 소장을 써드립니다 나홀로 소송의 풍경을 바꾸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생성형 AI다. 경산에 사는 40대 직장인 박성진 씨는 1,500만 원 규모의 대여금반환청구소송을 준비하면서 변호사 대신 챗GPT를 먼저 켰다. 법률 문서의 형식과 용어를 입력하자 상당히 정교한 소장 초안이 나왔다. 박 씨는 이 초안을 들고 변호사를 찾아가 30분 검토 상담만 받은 뒤 법원에 서류를 냈다. 준비서면도 같은 방식으로 작성했다. 수임료 한 푼 없이, AI와 단기 상담만으로 소송 전 과정을 버텨낸 것이다. 온라인에서 소송 정보를 충분히 익힌 뒤 변호사를 찾아와 핵심만 확인하고 선임은 하지 않는 의뢰인도 늘고 있다. 정보는 온라인에서 무료로 얻고, 변호사는 최소한의 검증 창구로만 활용하는 것이다. ※box기사 ◆AI가 만든 가짜 판례… 법정 안으로 파고든 환각의 역습 챗GPT로 준비서면을 작성하던 나홀로 소송인 박모 씨는 지난해 특정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가 낭패를 봤다. 상대방 변호사가 "그런 판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I가 만들어낸 가짜 판례번호였다. 재판은 불필요하게 한 기일을 더 소비했다. 'AI 환각(hallucination)'이 법정 안으로 파고든 사례다. 전문 법조인들에게 AI는 이미 필수 도구다. 엘박스·슈퍼로이어·챗GPT가 판례 검색부터 초안 작성까지 책상 위에 자리 잡았다. 문제는 법률 지식 없이 AI를 맹신한 채 소송에 뛰어드는 일반인들이다. 법률사무소 더 봄 엄요한 변호사는 "AI가 작성한 서면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 법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주장이 섞여 있다. 당사자는 맞는 줄 알고 제출하지만 오히려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고 했다. 그는 또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AI는 실제 판례의 문구를 교묘히 비틀어 원칙과 예외를 혼동한 법리를 제시하기도 하므로, AI를 활용하더라도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의 적절한 검토와 조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대법원, 처음으로 제재 칼 빼들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AI 활용 허위 주장·증거 제출 대응 TF' 결과를 발표했다. '각급 법원에서 허위 법령·판례 인용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는 공식 확인과 함께, 구체적 제재 방안을 처음으로 내놨다. 즉시 적용 가능한 제재는 세 가지다. ▷허위 법령·판례 인용으로 재판을 지연시킨 당사자에게 소송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 ▷허위 서면의 진술을 변론에서 제한하고 판결서에 허위임을 적시할 수 있다. ▷검증 없이 허위 내용을 제출한 변호사는 변협에 징계를 의뢰할 수 있다. 다만 시행 여부는 개별 재판부의 재량이다. 입법 차원에서는 AI 활용 사실 고지 의무화와 허위 인용 시 과태료 부과를 담은 소송법 개정안도 제안했다. 이미 일부 조치는 가동 중이다. 또 사법정보공개포털(portal.scourt.go.kr)에는 지난 2월 20일부터 '허위 사건번호 확인' 기능이 추가됐다.
2026-04-18 14:00:00
[커버 스토리]5억 넘으면 변호사, 3천만 원 이하면 나홀로…법조계 전문가 3명의 진단
법원행정처가 해마다 발간하는 '2025 사법연감'은 1,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법원 통계 자료집이다. 그 빼곡한 표와 수치 사이에 아무도 뒤집어 계산하지 않은 숫자가 조용히 묻혀 있었다. 민사 본안사건 변호사 선임 건수를 담은 '표22'다. 원고·피고·쌍방 선임 비율, 세 숫자를 더해 100에서 빼면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 없이 싸운 '완전 나홀로 소송' 비율이 나온다. 2020~2024년 합의·단독·소액사건 수치를 전수 역산했다. 한국 민사 법정의 민낯이 드러났다. ◆ 소액사건 100건 중 81건... 양쪽 다 본인 소송 2024년 처리된 민사 본안사건은 약 87만 건. 이 중 소가(訴價) 3,000만 원 이하 소액사건이 50만 7,80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역산 결과, 이 소액사건에서 원고·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비율은 81.0%다. 100건 중 81건, 약 41만 1,000여 건에서 법정의 양쪽 당사자가 모두 법률 전문가 없이 재판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더 들여다보면 구조는 더 극단적이다. 소액사건 중 소가(訴價) 1,000만 원 이하 사건만 38만 6,430건에 달한다. 원고·피고 중 한쪽만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가 16건, 양쪽 모두 선임한 경우는 고작 2건이다. 결국 원고 또는 피고 가운데 적어도 한쪽이 나홀로인 사건이 100건 중 98건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 5억 넘는 합의는 변호사, 3천만 이하 소액은 나홀로 사건 유형별 선임 구조는 정반대다. 소가 5억 원 초과 합의부 사건(2만 8,907건)에서는 쌍방 모두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55.5%로 절반을 넘는다. 고액·복잡 사건일수록 변호사 선임이 당연하게 이뤄진다. 반면 소액사건의 쌍방 선임 비율은 2.3%. 합의사건과 비교하면 24분의 1 수준이다. 원고만 선임한 비율도 13.8%에 불과하다. 소가가 작을수록 법률 서비스 접근성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단독사건(소가 3,000만~5억 원, 26만 8,655건)에서 양쪽 나홀로 비율은 47.6%지만, 원고만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28.1%다. 원고에게 변호사가 있고 피고는 없는 '비대칭 소송'이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박스기사 ◆ 변호사회·법원·로스쿨…법조계 전문가 세 가지 시선 ▷"AI만 믿고 법정 서면 기울어진 싸움… 민사도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해야" - 이병희 대구지방변호사회장 이병희 대구지방변호사회장은 AI 활용이 나홀로 소송을 늘리는 동시에 당사자의 권리 보호를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AI는 신속성과 효율성 면에서 분명 도움이 되지만, 객관성과 신뢰성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며 "AI 환각이나 오류로 인한 허위 주장, 잘못된 판례 인용은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 지식 없이 AI만 믿고 변호사를 선임한 상대방과 맞붙는 것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세 가지다. ▷민사사건 필수적 변호사 강제주의 단계적 도입 ▷소송구조제도 확대 ▷법률 부조제도 활성화다. 예상되는 반론도 직접 차단했다. "변호사 밥그릇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라며 "법정에서 가장 취약한 당사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개혁의 수혜자는 변호사가 아니라 홀로 법정에 서야 하는 시민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AI·법원 협력으로 소송 문턱 낮추되 허위 주장·남소엔 엄중 대응해야" -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AI와 사법부의 협력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소송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당사자의 법률서비스 이용 편의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법원은 민사소송의 원칙 안에서 당사자의 권리구제가 더욱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AI 활용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낙관론에 선을 그었다. "AI 활용이 확산될수록 불필요한 소송 남발, 허위 주장·증거 제출 같은 부작용도 함께 커질 수 있다"며 "이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위험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진단이다. ▷ "AI 환각이 법정을 오염시킨다… 리걸테크 이해관계 아닌 당사자 보호가 먼저" - 최완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완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AI 활용의 위험성을 정면으로 짚었다. 그는 "범용 AI를 법률 목적으로 아무 제한 없이 쓰면 환각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잘못된 법령을 AI가 그럴듯하게 제시하고, 당사자는 그것을 사실로 믿고 법원에 낸다"고 말했다. "AI가 작성한 소장이 오류투성이여서 당사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가 더 강조한 것은 방향의 문제였다. "AI 활용 논의가 리걸테크 기업의 수익 모델이나 변호사 직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며 "소송 당사자의 실질적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AI 리터러시 교육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원칙론이다.
2026-04-17 13:34:00
[커버 스토리]르포 "청구 취지가 뭔가요"… 답답한 나홀로 소송인의 하루
지난 3일 오전 11시, 대구지방법원 신관 지하 1층 종합민원실 내 사법접근센터. 60대 여성 최모(동구 신암동) 씨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손에는 소송 관련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상담위원 앞에 앉아 한숨부터 내쉬었다. "전자소송을 해야 할지 종이소송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청구취지와 청구원인, 입증 방법은 어떻게 작성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나홀로 소송인들이 법원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이다. 사법접근센터 관계자는 "고령층 상담 비중이 높은데, 이분들은 서류 제출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단계마다 헷갈려 하신다"고 했다. 전자소송 포털을 이용하려면 공인인증서나 간편인증이 필요한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이 첫 관문에서부터 막힌다. 복잡한 절차를 홀로 감당하다 포기하는 경우도 나온다. 최 씨는 소장 접수부터 판결까지 소송의 전체 흐름을 설명 들은 뒤 대구지방법원 인근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무료 법률상담과 소송서류 작성 지원을 받았다. 공단 관계자는 "상담 횟수에 제한이 없어 소송이 끝날 때까지 전 과정을 공단과 함께 진행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 "밤새워 쓴 준비서면, 챗GPT한테 물어봤다" 같은 날 변론기일에 참석하러 법정동으로 들어온 50대 여성 이모(서구 비산동) 씨는 임차보증금 2,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을 냈다. "변호사비가 500만 원이라는데, 보증금도 못 받은 상황에서 추가로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 씨는 3주 전 피고 답변서를 받고 반박 준비서면을 직접 쓰느라 밤을 새웠다. "법률 용어가 낯설어 유튜브를 반복해서 봤다. 챗GPT에 이 문장이 맞는지 물어보기도 했다"는 말에 법정 안팎에서 홀로 싸우는 나홀로 소송인의 현실이 담겼다. 민사 소액 법정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파키스탄 출신 무함마드(32) 씨는 2,500만 원의 임금체불 소송을 내고 첫 변론기일에 출석했지만, 판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한국어가 서툴러 재판 진행 자체가 막혔다. 판사는 사법통역사의 도움을 받도록 했다. 나홀로 소송인의 하루는 고단하다. 소장 접수와 송달, 재판부 지정, 답변서 검토, 변론기일 전 준비서면 제출까지 절차 하나하나가 낯설고 두렵다. 법원 전자소송 포털과 법률구조공단이 절차 안내를 제공하지만, 사건의 쟁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가장 큰 위험은 패소다. 법무법인 가나다 송승우 변호사는 나홀로 소송 급증의 부작용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다. 그는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소송은 변론 절차가 지연됨으로써 상대방 당사자뿐 아니라 재판부의 업무 부담까지 가중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변론 내용을 AI에 의존하는 부분에 대하여 "AI가 알려준 내용이라도 법률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법원에 제출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자칫 돌이키기 어려운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 법원의 딜레마…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판사 팁' 논란이 불거졌다. 나홀로 소송인이 재판에서 불리해지자, 판사가 당사자 스스로 주장하지 않은 사실을 슬쩍 알려주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배려처럼 보이지만, 민사소송의 핵심 원칙인 변론주의에 어긋난다. 변론주의란 사실관계와 증거는 당사자가 스스로 주장하고 제출해야 하며, 판사는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내용을 직권으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중립 기관으로서 한쪽을 도울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 그 사이에서 판사도 딜레마를 안고 법정에 선다. 이종민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구에서만 나홀로 소액사건 변론기일이 매주 200~300여 건 정도 진행된다"고 했다. 그는 "법률 전문가 눈으로 보면 조금만 보완해도 당사자가 승소할 수 있는 케이스가 있다"면서도 한계를 분명히 했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의 적절한 석명권(재판장이 주장이나 증거가 불분명한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당사자에게 질문하거나 입증을 촉구하는 소송지휘권) 행사를 넘어 당사자가 스스로 주장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판사가 직접 끌어내 주장하거나 증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변론주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나홀로 소송, 이렇게 실패한다 — 6가지 유형 ① 소멸시효 놓침 — 청구 가능 기간을 지나 소장 제출, 각하 ② 입증 부족 — 증거 미제출로 패소 ③ 청구취지 오류 — 금액·피고 특정 오류로 보정 명령 반복 ④ 기일 미출석 — 변론기일 불출석으로 의제 자백 또는 기각 ⑤ 항소 기간 도과 — 판결 후 2주 내 항소 미제기로 확정 ⑥ 집행 미비 — 승소 후 강제집행 절차 몰라 채권 회수 실패
2026-04-17 13:30:00
[창간 80년,격동 80년]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육사 8기 세력은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서울에 진입했다. 이들은 주요 국가기관을 신속히 장악하며 제2공화국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는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 혼돈의 제2공화국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그해 8월 윤보선이 대통령에 취임했고, 장면이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신·구파로 갈려 대립했다. 1961년 2월에는 아예 신파가 따로 신민당을 만들었다. 집권여당이 쪼개진 것이었다. 장면 총리는 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통치력은 날로 약화됐다. 4·19 이후 처벌받지 못한 부정선거 관계자들에 대한 민심의 분노 역시 들끓었다. 경제 상황도 악화됐다. 1천만 명 노동인구 중 240만 명이 완전 실업자였고, 200만 명은 잠재 실업자였다. 노동인구의 거의 절반이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장면 총리 정권은 경제발전 계획을 만지작만 거릴 뿐 경제난 수습에 전혀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데모 천국인 상황에서 벌어진 극심한 이념적, 정치적 혼란이었다. 1960년 8월부터 1961년 5월초까지 약 2,000여 건의 시위가 일어났다. 참가 인원은 100만 명에 이르렀다. 거기에다 1960년에만 침투한 간첩이 100명 넘게 체포됐다. 사회 전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 무혈(無血) 군사정변, 완전 성공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군 내부에서는 국가 재건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50년대 미국 유학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단련된 육사 8기 출신 영관급 장교들은 서울 근교 부대와 공수단·해병대·포병 병력을 비밀리에 규합했다. 거사 시도는 세 번 실패했다. 1960년 5월8일 첫 거사계획은 4.19 학생혁명의 발발로 중단됐다. 또 4·19 1주년에 맞춘 첫 계획도 무산됐고, 5월 12일 거사안은 정보 누설로 취소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5월 16일이 최후의 D데이로 확정됐다. 쿠데타설은 이미 군 안팎에 파다했다. 정보기관이 여러차례 첩보를 올렸고, 장면 총리와 국방장관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직접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장도영은 "박정희 소장은 그럴 위인이 못 됩니다"는 취지로 보고했으며, 수뇌부는 안심했다. 그것이 결정적 오판이었다. 당일 새벽, 육군본부가 접수됐다. 주력은 서울시청에 진주했고, 해병대는 치안국과 서울시 경찰국을, 공수단은 중앙방송국을 오전 4시 30분경 각각 장악했다. 장면 총리는 이미 혜화동 칼멜수녀원으로 몸을 숨긴 뒤였다. 이날 오전 5시, 군사혁명위원회는 포고령을 통해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에 국가의 운명을 더는 맡겨둘 수 없다'고 선언했다. ◆ 미국의 방관 속 성공한 군사정변 군사정변의 성패를 가른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군사행동에 반대했지만, 장면 정권의 무능과 허약한 지도력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주한미군 사령관 매그루더 장군은 헌정 수호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으나 실질적 군사 개입은 없었다. 미국은 군부의 불법적인 권력 장악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었지만,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진압 의지를 보인 1군사령관 이한림이 있었지만, 미국의 모호한 태도와 "국군끼리 피를 흘릴 수 없다"는 윤보선 대통령의 입장 속에 진압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 결과 5·16은 사실상 큰 저항 없이 진행됐다. 혁명 이틀째인 18일 육사생도 800명은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했다. 이 광경은 민심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게 혁명군은 약 60여 시간 만에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 이날 장면 내각은 총사퇴했고, 군사혁명위원회는 곧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돼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했다. 이어 6월 10일 중앙정보부가 창설됐으며, 정치활동 정화와 언론 통제가 본격화됐다. 7월3일 장도영마저 축출되면서 박정희는 군정의 실질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5·16 이후 추진된 경제개발 정책은 한국을 절대적 빈곤에서 중진국으로 끌어올린 '한강의 기적'의 물적 토대를 놓았다. 1인당 국민총소득 92달러에 불과했던 1961년의 대한민국이 불과 65년 후 4만 달러를 향해 달리는 선진 산업국가로 변모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판론자들도 성장의 결과는 인정하되, 그것이 민주주의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결국 5·16 군사정변은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키워드 5·16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 였다.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이를 '5·16 군사 혁명'으로 표현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역사 교육 과정과 법적 정의는 5·16을 '군사 정변(쿠데타)'으로 규정하고 있다.
2026-04-17 11:50:00
[무지개 수다]"20년 만에 대한민국 사람 됐어요"…우즈베키스탄·코트디부아르 등 13개국 출신 54명 귀화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대강당에서 '2026년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오른손을 높이 든 54명의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베트남·중국·필리핀 등 13개국 출신의 외국인들은 이날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 드라마 한 편이 바꾼 인생 수여자 대표로 단상 앞에 선 모로코 출신 벤바라힘 하자르(30) 씨가 선서문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유창한 한국어였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던 13개국의 외국인들이 태극기 앞에 하나가 되었다. "드라마 한 편이 인생을 바꾸고, 아이 하나가 귀화를 결심하게 했습니다" 하자르 씨가 처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드라마 한 편 때문이었다. 모로코에서 처음 방영된 '꽃보다 남자'를 보고 한국 문화에 빠져들어 한국어를 독학했고, 이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2007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지 19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어는 능통해졌고, 지역 사회 봉사도 꾸준히 이어왔다. 귀화시험은 단 한 번 응시해 100점을 받았다. 그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리잡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고향에서 오히려 '이방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코발축 마리아(44) 씨는 2006년 1월에 대구에 왔다. 고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한국을 마음속 고향처럼 여겨왔다. 그는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꼭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영주권자(F-5)로 한국에 살던 중 2011년 우즈베키스탄 고향을 찾았다가 뜻밖의 감정과 마주했다. 그는 "거기서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귀화를 결심했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심 뒤 그는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에 등록해 1년여 간 한국어 교육과 한국사회 이해 과정을 빠짐없이 이수했다. 그의 노력은 20년 만에 국적 증서로 돌아왔다. 대구에서 8년째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마리아 씨는 "곧 한국 이름도 만들고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여권도 받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앞으로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 "한국인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어요" 필리핀 출신 람반 라니(37) 씨가 귀화를 결심한 건 아이 때문이었다. 2015년 취업비자로 대구에 온 그는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꾸린 뒤 마음속에 한 가지 바람을 품었다. '이 아이에게 한국인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영천의 자동차부품 회사에 다니는 라니 씨는 "결혼할 때도 서류가 복잡했고, 늘 외국인 등록증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불편했다"며 "이제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내밀 수 있고, 이번 6·3 지방선거에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을 계획인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 영전에 귀화증서를 올리고 싶다고 했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다샤에벵 마리호세(40) 씨의 사연도 닮아 있다. 아프리카에 발전소 기술자로 파견된 한국인 남편을 현지에서 만나 2016년 청도에 정착한 그는 초등학생 딸을 키우며 10년 가까이 한국어와 씨름했다. 마리호세 씨는 "10년 만에 한국 사람이 됐다는 게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또 "2년 전 먼저 떠나신 부모님께 이 귀화증서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워요"라며 그의 눈가가 잠시 붉어졌다. ◆ 베트남부터 모로코까지, 13개국이 품은 '대한민국' 이날 귀화자의 출신국은 베트남(27명)이 가장 많았고, 중국(8명), 필리핀·캄보디아(각 4명), 타이완(3명) 순이었다. 타이·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코트디부아르·몽골·모로코·네팔·미국이 각 1명씩으로 총 13개국이 한자리에 모였다.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같은 국민이 됐다는 사실 앞에 모두가 하나였다. 국적증서 수여식은 2018년 12월 개정 국적법 시행 이후 매월 또는 격월로 열리고 있다. 귀화 허가를 받은 뒤에도 국민선서를 하고 증서를 받아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적이 공식 취득된다. 법무부는 이 수여식을 통해 새 국민에게 소속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사회 통합의 출발점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2025년 한 해 전국 국적취득자는 총 1만 5,381명(귀화자 1만 1,344명·국적회복자 4,037명)으로 집계됐다. 전년(1만 4,615명)보다 5.2% 늘어 2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2026-04-10 12:00:00
[창간 80, 격동 80] "보안법은 악법, 즉시 철회하라!" 대구 물들인 민주화 물결
"보안법은 악법이다. 즉시 철회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 1959년 1월 7일, 수천 명의 시위대가 전단을 뿌리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정부는 경찰전문학교 학생과 지방경찰관 500여 명을 동원하고, 장갑차 등 장비까지 투입해 시위를 막았다. 대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958년 12월 25일, 이미 한 차례 집회가 열렸다. 대구 중구 국립극장 앞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민주당 경북도당을 비롯한 '국가보안법개악반대경북투쟁위원회'는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켰고, '국가보안법 개악 반대' 완장을 찬 채 가두 시위를 벌였다. 일주일 뒤, 민주당 경북도당은 다시 대규모 가두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찰이 도로를 봉쇄하며 시위대를 압박했고, 임문석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 등 10여 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이끌었을까. 시계를 1958년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이승만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지난 1956년 대선에서 평화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이 200여만 표를 얻으며 존재감을 드러내서다. 이후에도 조봉암은 활발한 활동을 하며 이승만의 자리를 위협했다. 정치 환경도 여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958년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민주당이 큰 혜택을 봐서다. 민주당은 무소속과 군소정당의 퇴조로 더 많은 의석을 획득했지만, 자유당은 의석의 2/3를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쐐기가 필요한 때였다. 꺼내 든 카드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이었다. 1957년, 이근식 내무부 장관은 "평화통일론자는 국가 주권을 부정한다"며,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듬해 자유당은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등의 언론통제 조항과 이적행위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한다. 반대 세력을 범죄자로 규정할 수 있는 장치였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를 자유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 의원 80여 명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법안 처리는 멈추지 않았다. 여당은 단독으로 법제사법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한 뒤 본회의에 회부했다. 1958년 12월 24일, 국회의사당 주변은 무장경관으로 둘러싸였고 일반인의 접근은 차단됐다. 저항하던 야당 의원들은 지하실에 구금되거나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른바 '2.4 파동'이었다. 반대 세력이 사라진 국회에서 법안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회에 남은 자유당 의원들은 신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킨다. 이어 지방자치법도 개정해 자치단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하고, 이를 선거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했다. 결국 국회 밖으로 밀려난 시민과 지역 정치세력이 거리로 나섰다. 당시 전국 최대 야당 지지 기반이었던 대구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정권의 대응도 강경했다. '국가보안법개악반대경북투쟁위원회' 간판은 강제로 철거됐고, 시위에 나설 경우 대구형무소에 수감하겠다는 경고까지 이어졌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도는 끝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59년 1월 15일,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발효됐다. 이후 불법적 입법 과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한희석 부의장의 사퇴에 그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대구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간 듯 보였다. 그러나 한 번 벌어진 균열은 쉽게 봉합되지 않았다. 정당성을 잃은 입법은 오히려 정권의 기반을 약화시켰고, 이승만 정권은 끝내 민심을 버티지 못했다. 억눌린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2년 뒤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2026-04-03 12:30:00
국제소롭티미스트 '대구 대경클럽' 출범…여성 자립·소녀 교육 지원 본격화
세계 최대 여성 자원봉사 네트워크인 국제소롭티미스트(Soroptimist International) 한국협회 산하 '대구 대경클럽'(DG클럽)이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인준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지역 여성의 권익 신장과 소녀 교육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 클럽은 대구 지역 소롭티미스트 운동의 새로운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인준식에는 한국협회 안진희 총재와 김진선 차기총재, 여남희 부총재, 대구경북 지역 클럽 회장단 및 회원들이 참석해 창립을 축하했다. DG클럽은 대구수성클럽(회장 김상희)을 모클럽으로 삼아 창설됐다. 여남희 부총재의 주도적인 노력과 인적 네트워크가 결성의 토대가 됐다. 초대 회장으로는 내부모요양돌봄타운·내부모요양재활타운센터 원장인 정해명 씨가 추대됐다. 대구 대경클럽은 '여성과 소녀에게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는 소롭티미스트의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활동 방향을 설정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 학업 지속이 어려운 여학생을 위한 장학사업 △ 생계 부양 여성을 대상으로 한 '리브 유어 드림(Live Your Dream)' 캠페인 △ 취약계층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정기 봉사·후원 활동 등이 추진된다. 정해명 초대 회장은 취임사에서 "여성이 행복해야 사회가 밝아진다는 믿음으로 첫걸음을 내딛었다"며 "지역의 소녀와 여성들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안진희 총재는 "대구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대경클럽의 출범을 축하한다"며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지역을 넘어 세계 여성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핵심 클럽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6-03-29 15:25:03
[무지개 수다]"다문화 며느리가 아니라 내 딸입니다"…고부열전
5일 오전 10시쯤 대구 달서시장. 장바구니를 든 두 여성이 채소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시어머니는 시금치 잎을 집어 들어 신선도를 살피며 가격을 물었고, 옆에 선 며느리는 말없이 장바구니를 든 채 상인의 설명을 들었다. 며느리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여성이었다. 한국인 시어머니와 외국인 며느리가 함께 장을 보는 풍경은 이제 전통시장에서 낯설지 않다. ◆ "며느리는 내 딸"… 베트남까지 가 신부 찾은 시어머니 성당동에 사는 양두희(73) 씨는 며느리 레티몽찐(28·한국명 이유리) 씨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지난 2017년 결혼을 미루고 혼자 살겠다는 아들을 데리고 신부감을 찾으러 베트남으로 향했다. 국제결혼상담소를 통해 70여 명의 후보를 만난 끝에 며느리를 선택했다. 양 씨는 며느리가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40년 넘게 해오던 요식업도 접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환경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곁에서 돕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양 씨는 "다른 나라에서 부모와 떨어져 혼자 오는 게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내 자식처럼, 내 딸처럼, 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석 달 동안 직접 미역국을 끓여 먹이며 산후조리를 도왔다. 산모에게 좋다는 미역을 수소문해 준비했다. 며느리는 그때를 떠올리며 지금도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 "깎아주세요"부터 배웠다 결혼 9년 차 레티몽찐 씨는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 두 자녀와 함께 3대가 한집에서 살고 있다. 그의 하루는 오전 7시 부엌 불을 켜는 일로 시작된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남편과 시부모의 아침 식사를 차린다. 전통시장은 시어머니에게 평생의 공간이다. 어느 가게가 싱싱한지, 누구에게서 사야 덤을 더 얹어주는지 몸이 먼저 안다. 시어머니가 장을 보러 나설 때 며느리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말도 시장에서 쓰는 한마디였다. "이건 깎아주세요" 상인이 부르는 가격 그대로 계산하면 안 된다고 했다. 며느리는 처음엔 흥정이 부끄러워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시어머니 옆에서 하나씩 배웠다. 이제는 할인하는 마트를 먼저 확인하고, 전통시장이 더 저렴하면 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 "대구 남자는 무뚝뚝해요"… 시어머니의 재치 레티몽찐 씨는 남편에 대한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구 남자는 무뚝뚝해요. 서프라이즈 할 줄도 모르고, 드라마처럼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화이트 데이에 아내를 기쁘게 해주면 정말 좋겠는데요" 라며 말끝에는 웃음이 섞였지만, 아내로서의 바람도 담겨 있었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시어머니 양 씨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럼 셋째 아이를 낳으면 선물로 금 10돈을 줄게" 분위기는 단숨에 풀렸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며느리는 "엄마, 정말이죠. 약속했어요"라며 되묻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애정 표현이 서툰 남편에 대한 며느리의 한마디는 시어머니의 재치 있는 응답으로 마무리됐다. ◆ 고부 갈등 …5년 만에 건넨 시어머니의 사과 결혼 5년 차 캄보디아 출신 며느리 완낙(32·가명) 씨는 군위에서 살다가 대구로 이사하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고,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살면서 갈등이 잦아졌다. 남편은 "엄마 말 들어라"는 말만 했다. 임신했을 때 고향 음식이 먹고 싶어 캄보디아 지인이 음식을 해주러 왔지만, 시어머니는 "냄새 난다"며 치우라고 했다. 고향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말고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국어를 빨리 배울 수 있다고도 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도 눈치를 줬다. 아침에 늦잠을 자면 "빨리 일어나라"는 말이 돌아왔다. 남편이 출근할 때는 꼭 나가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참고 또 참았다. 2년 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맞벌이를 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집안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줄었다. 전환점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시어머니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얘야, 여행 가서 현지 음식을 먹어봤는데 내 입에 하나도 안 맞더라.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너도 처음에 한국 음식 먹느라 힘들었지? 고향 음식 못 먹게 해서 많이 서운했지? 미안하다" 그 말에 완낙 씨는 오래 묵은 감정이 풀렸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말로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한다. 오해가 생겨도 오래 두지 않는다. "지금은 어머님도 제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대구 사람으로 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em〉말했다.〈/em〉
2026-03-26 11:30:00
[창간 80년,격동 80년]1957년 전후 최대 단일 공사…폭파된 한강 인도교 착공
전후 대한민국이 재건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1950년 6·25 전쟁 중 폭파된 한강 인도교(현 한강대교)는 1957년 전후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재건 착공됐다. 1957년은 정전협정 체결 4년 뒤, 전쟁의 상처를 복구하던 시기였다. 폭파로 끊겼던 수도의 동맥을 다시 잇는 일이 그해의 상징적 과제였다. 그해 착공된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는 전후 최대 규모의 단일 사회간접자본 사업으로 기록된다. ◆ 서울 남북을 잇는 첫 근대식 교량 한강 인도교는 1917년 10월 7일 개통됐다. 한강 위를 사람과 차량이 건널 수 있게 한 최초의 다리였다. 일제 총독부가 제1기 치도사업(治道事業)의 일환으로 1916년 3월 착공해 완공한 한강 위 최초의 근대식 인도교였다. 이 다리는 여러 차례 공사를 통해 규모가 커졌고, 1936년 현재의 타이드 아치(tied arch) 형식으로 개축됐다. 당시 서울의 큰 명물이 되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와 동작구 노량진을 잇는 총연장 1,005m 교량으로 경부선 철도와 영등포 공업지대를 연결하는 간선 교통로였다. 전쟁 이전 서울의 핵심 교통 기반시설이었다. 이후 '한강대교'로 불리게 된다. ◆ 한강 인도교 폭파와 14년 만의 무죄 한국전쟁 발발 사흘째인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서울이 함락 위기에 처해지자 국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다. 교량 일부가 붕괴되면서 한강 횡단 교통은 즉각 차단됐다. 당시 사람과 차량이 건널 수 있는 다리는 사실상 이 다리뿐이어서 피난민과 차량이 몰려 있었다. 갑작스러운 폭파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과 군인, 차량이 폭발에 휩쓸리거나 강물에 빠졌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은 피난길이 막힌 채 서울에 고립됐다. 사망자는 200여 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전쟁 초기의 극심한 혼란 속에 정확한 집계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군은 참사의 책임을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물어 사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1964년 재심에서 그는 육군참모총장이던 채병덕 소장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며, 다리 양편에 병력을 배치해 교통을 통제하려 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상관들의 오판과 혼란스러운 지휘 체계 속에서 희생양이 됐던 그의 억울함은 사건 발생 14년 만에야 풀렸다. ◆ 미국 국제협력처 원조로 1957년 착공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됐다. 그러나 한강 인도교 본격 복구는 휴전 후 만 4년이 지난 1957년에야 착수됐다. 미국 국제협력처(ICA) 원조 계획에 따라 발주된 자재가 1957년 1월부터 반입되면서 공사가 가능해졌다. 1957년 9월 본격 착공된 복구 공사는 폭파된 2·3·5번 경간을 복구하는 사업으로, 교폭 20m, 복구 연장 63.55m 규모였다. 총 계약금액은 2억3천여만 환으로 전후 단일 공사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다. 파괴된 기존 교량을 복구하는 공사여서 신설 교량보다 난도가 높았다. 당시 국가 재정은 미국 대외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사회간접자본 복구는 정부 정책의 우선 과제였다. ◆ 전후 재건의 상징 1957년 10월14일 한강 인도교 서쪽 100m 지점에서 한강 부교 개통식이 열렸다. 한강 부교는 육군공병대가 1957년 10월8일부터 10월 13일에 걸쳐 설치한 것으로 다리의 전체 길이는 400m, 폭은 4.2m에 달했으며 버스 통행도 가능했다. 이어 이듬해 5월 15일 한강 인도교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완전 개통됐다. 복구 공사가 마무리되자 서울 도심과 영등포·노량진 일대의 연결은 다시 이어졌다. 영등포 공업지대의 물류가 정상화됐고, 수도권 교통망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끊겼던 길이 복원되면서 도시의 기능도 함께 살아났다. 한강 인도교의 재건은 단순한 교량 복구를 넘어섰다. 전쟁 초기 폭파의 책임 논란과 수많은 희생의 기억을 안은 채, 폐허 위에서 국가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2026-03-19 11:30:00
이비티에스(EBTS)협동조합 경산중앙지국 경산센터, 영세주유소 봄맞이 대청소
이비티에스(EBTS)협동조합 경산중앙지국 조합원 30여 명은 지난 9일 독도사랑주유소연합회 가맹점 영세주유소, 경산시 용성면 소재 구룡주유소와 경산시 남산면 소재 남산주유소에서 봄맞이 대청소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날 조합원들은 주유기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먼지와 묵은 때를 깨끗하게 닦아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영세주유소가 더욱 깨끗하고 빛나기를, 또 영업이 잘되어 사장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가 정성을 다해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묵은 때가 하나둘 닦여 나갈 때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부부 사장님들은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며 기쁨을 표현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합원들 또한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다. 한편 이비티에스 협동조합은 2019년 경기도 양주에서 설립된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이승원 이사장을 중심으로 전국 약 80여 개의 조합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포항·마산·태안·대구 등 전국 4곳에 연수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시니어 일자리 창출을 주요 목표로 하는 협동조합으로, 시니어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를 꾸준히 발굴하고 있다. 경산센터장 권기혁은 "공간청춘, 주유소, 휴게소 등 다양한 현장에서 시니어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이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개인의 행복과 건강까지 함께 지켜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가맹점 주유소를 대상으로 한 청소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실천해 주유소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사회에 이비티에스를 널리 알리며 상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6-03-12 10:52:34
제107주년 대구 3·8만세운동 기념 '나라사랑 플래시몹' 개최
제107주년 대구 3·8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나라사랑 플래시몹' 행사가 8일 오후 2시 중구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대구국학원(원장 신정원)이 주최하고 대구지방보훈청이 후원하며, 대구국학기공협회가 참여한다. 행사에서는 정치·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깊어지는 현실 속에서 국민 대동단결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시민대표 '신(新) 독립선언문' 낭독이 진행된다. 낭독에는 8명이 참여한다. 참여자는 이대봉 대구시체육회 상임부회장(독립유공자 후손)과 박해율 전 대구향교 의전국장, 이춘희 팔공문화원장, 청소년 대표 이지영·박규태(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구학습관) 씨 등이다. 이와 함께 박다영(뮤에르음악학원)과 소브스 성인피아노 스튜디오가 애국선열을 기리는 헌정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행사 2부에서는 대구시 국학기공협회 공원 발대식이 열린다. 국학기공 동호회원들이 참여해 시민들과 함께 건강 증진과 공동체 화합의 의미를 나눈다. 특히 21일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공연에 맞춰 국학기공 동작을 바탕으로 만든 '아리랑 기공'을 시민들과 함께 배우는 시간도 마련된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으로 구성된 생활 건강 프로그램이다. 행사 마지막에는 대구 9개 구·군 국학기공협회 소개와 결의 구호가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시민 건강 증진과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다짐하며 올해 활동의 시작을 알릴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1919년 대구에서 일어난 3·8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 참여를 통해 나라 사랑과 공동체 정신을 확산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2026-03-06 17:00:38
[무지개 수다]다문화학생 20만 명 시대…12개 국가, 6개 언어 오가는 논공초등학교
국내 다문화·외국인 학생 수가 지난해 2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다를 기록,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다문화 교육 환경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3일 달성군의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서자 한글과 러시아어가 병기된 안내문이 곳곳에 적혀있고, 단계별 한국어 교재가 비치돼 있었다. 출석부에 적힌 이름도 국적도 제각각이었다. 학생 12명 가운데 8명(66.7%)이 다문화 학생이었다. 러시아 3명, 카자흐스탄 2명,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필리핀 각 1명이었다. ◆ '작은 지구촌'이 된 초등학교 논공초교의 전교생은 170명. 이 가운데 다문화 학생은 90명, 부모 모두 외국인 가정 학생은 72명이다. 한국인 가정 학생은 손에 꼽힌다. 학생 국적은 12개국, 학교 안에서 오가는 언어는 6개다. 올해 입학한 1학년 신입생도 25명 중에서 23명이 외국인 가정 출신이다. 이 학교는 지금 '작은 지구촌'이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논공초의 다문화 학생 비율은 2018년 19.3%에서 지난해 52%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학생 수는 212명에서 170명으로 줄었지만, 다문화 학생은 41명에서 9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부모 모두 외국인인 학생의 증가 폭이 크다. 이 변화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논공초가 자리한 달성군 논공읍은 달성산업단지로 알려진 곳이다. 과거 이곳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대구테크노폴리스와 국가산단으로 이동하면서 공단의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단기 체류가 아니라 가족 동반 정착이 늘면서 초등학교가 가장 먼저 변화를 겪었다. ◆ 국적보다 먼저 자라는 꿈 2학년 김밀라나(8·러시아) 양은 또박또박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러시아에서 다섯 살 때 한국에 왔어요. 유치원에서 한국어를 많이 배웠어요" 장래희망을 묻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이어 최알란(카자흐스탄), 얀(우즈베키스탄), 니콜(러시아)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 한국어가 아직 익숙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발음이 서툴러 질문을 망설이다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손을 드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교실 벽에는 그림 자료와 쉬운 한국어 문장이 붙어 있다. 아이들의 말문을 트이게 하는 장치들이다. 5학년 강올레그(12·러시아) 양은 전국소년체전 대구대표 선발전 육상 멀리뛰기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구시 대표 자격은 얻지 못했다. 안상한 교장은 "초등학교 대회만큼은 국적에 따른 장벽을 낮춰 참여 기회를 넓힌다면, 이주배경 학생의 체육 인재 발굴과 함께 긍정적인 롤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아쉬워했다. ◆ 러시아어권 비중, 3년 새 20% 급증 2022년 기준 논공초교의 다문화 학생은 64명이다. 이 가운데 러시아(9명), 카자흐스탄(14명), 우즈베키스탄(10명), 타지키스탄(2명), 키르기스탄(1명) 등 러시아어권 출신 학생이 36명으로 56.2%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다문화 학생이 90명으로 늘었고, 러시아(24명), 카자흐스탄(18명), 우즈베키스탄(19명), 타지키스탄(2명), 키르기스탄(3명), 우크라이나(3명) 등 러시아어권 출신 학생은 69명(76.6%)으로 증가했다. 3년 만에 러시아어권 비중이 약 20% 뛰었다. 교육부는 학생 수 100명 이상이면서 이주배경 학생 비율이 30% 이상인 학교를 '이주배경학생 밀집학교'로 분류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구 지역 초등학교는 신당초·서대구초·남동초를 비롯한 6곳이다. 한 학급에서 다문화 학생이 절반을 넘는 풍경은 더 이상 농촌의 특수 사례가 아니다. ◆ '분리' 대신 '재설계' 논공초의 선택은 '분리'가 아니라 '재설계'였다. 러시아어권 학생 비율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러시아어 이중언어 교실을 운영했다. 모국어가 러시아어인 학생과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수업을 맡은 박타마라 교사는 러시아어에 능통한 결혼이주여성이다. 입학 초기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위한 상담도 병행한다. 교사들의 역할도 달라졌다. '분석하다', '구하다'처럼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낯선 학습 언어를 쉬운 한국어와 모국어로 풀어낸 자료를 직접 만든다. 교실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독음을 붙인 '교실 한-러어' 자료도 제작했다. 또 '다 어울림 동아리'는 다문화 학생과 일반 학생이 1대1로 짝을 지어 활동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경험은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태윤 교사는 "이주배경 학생 유입과 비이주 학생 유출이 동시에 일어나는 학교"라며 "한국어 학급 3개를 운영하고, 방과 후·방학 중에도 한국어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이 언어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앞으로는 '다문화 학교'라는 표현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26-03-05 12:30:00
김태현 대구시웅변협회 회장, 3·1절 '민족정신계승 나의 주장 문화대전' 참석
김태현 대구시웅변협회 회장은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1 민족정신 계승·나라사랑과 평화통일 염원을 위한 '제28회 전국 나의 주장 문화대전'에 참석했다.
2026-03-01 14:23:40
대구시웅변협회, '제28회 나라사랑 웅변스피치 발표대회'
대구시웅변협회(회장 김태현)는 지난달 28일 대구 남구 대백프라자 프라임홀에서 초·중·고·대학생 연사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28회 나라사랑 웅변스피치 발표대회'를 열었다. 이날 참가 학생들은 '나라사랑'을 주제로 통일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청중들에게 전달했다. 대구시웅변협회 제공
2026-03-01 14:22:59
글로벌사이버대, 美 뉴멕시코주 상원 표창…뇌교육 공교육 성과 인정
글로벌사이버대학교가 미국 뉴멕시코주 상원으로부터 공식 표창을 받았다. 뇌교육 특성화 대학으로 알려진 글로벌사이버대는 지난 19일, 뉴멕시코주 의회 상원이 제57회 정기 회기 결의안을 통해 본교의 뇌교육 프로그램을 치하했다고 밝혔다. 상원은 결의안에서 뇌교육이 지역 사회의 교육 발전과 주민 웰빙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신경과학에 기반한 전인적 교육 모델로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정서 조절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뉴멕시코주에서는 2012년부터 지역 아동·청소년과 교사를 대상으로 뇌교육 프로그램이 보급됐다. 그 공헌을 기려 2017년 2월 27일을 '뇌교육의 날'로 제정하는 법안이 주 하원의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 내 확산도 이어져 워싱턴DC와 뉴욕시 등 27개 도시에서 'Brain Education Day'가 지정된 상태다. 글로벌사이버대는 이번 표창이 한국에서 출발한 뇌교육이 미국 주 정부 입법부로부터 학술적 근거와 사회적 영향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이 석·박사 과정을 도입했고, 2010년 글로벌사이버대가 학사과정을 신설하면서 학사·석사·박사 체계를 완성했다. 공병영 총장은 "뉴멕시코주 상원의 표창은 뇌교육의 학문적 가치가 현지 공교육 현장에서 성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며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고유 역량을 계발하는 K-교육 모델을 세계에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글로벌사이버대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다수가 졸업한 대학으로도 알려져 있다.
2026-02-24 17: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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