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수능40점과 학교체육

대입체육특기자의 수내기준을 40점으로 설정하자 체육계가 시끌시끌했었다.수백만원.수천만원을 주고 다 뽑아놨는데 지금와서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고아우성이다.결국 왜곡된 학교체육을 바로잡아보려던 교육부도 어쩔수 없는지 내년만은봐주겠다고 한 모양이다.

체육특기자의 최저학력시비이전에 우리교육, 학교체육이 어쩌다 이지경이 됐느냐 되씹어 볼 수밖에 없다.

차제에 우리교육도 정신차려 후세들을 반쪽인간 절름발이 인간으로 키워선안되겠다는 반성이 있어야겠다.

수내성적이 40점이라면 2백점만점에 5지선다형만 연필을 굴려도 웬만하면 맞춰낼 점수다.

그런데도 경북대등 지역5개대의 내년입학예정 체육특기자 1백50명 가운데40여명인 27%가 이점수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까막눈들이란 것이다.수업팽개치고 운동만 결국 상당수 학생선수들이 학교수업은 팽개치고 운동만했다는 얘기다.

3공이후 군사정부가 계속되면서 체육은 특정인의 엘리트화정책으로 일관돼왔었다.

국민들의 눈을 한군데로 묶어 두는데는 스포츠이상은 없었기 때문이다.전국체전은 시장.도지사들이 중앙에 잘 보이기위한 경연장을 방불케했다.화려한 카드섹션, 매스게임은 갈수록 규모가 커졌고 각시도는 전년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천지라도 개벽되는 줄 알았다.

이같은 풍토는 체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체육에도 파급, 교기는운동선수만 하는 엘리트화 전문화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등 스포츠프로화와 아시안게임, 올림픽유치에다 한술더 떠남북스포츠대결이 마치 국력의 우열을 가리는 {스포츠는 바로 국력}으로 미화됐다.

이시대는 웬만한 기업체 경우 체육성금이 거둬질때면 알아서 했고 시장지사가 [이번에 좀더 내주시오]하면 거절조차 못하던 때였다.

그래서 아시안게임 2위, 올림픽 12위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는 했다.정말 조그만 반쪽나라서 깜짝놀랄 성적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체육으로 국위를 선양한들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기껏 [아 그 운동잘하는 나라] 정도였지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엘리트체육의 그림자 그러나 그 {국위선양} 그늘에는 일부인기종목을 제외하고 많은 선수들이 까막눈으로 사회적응을 하느라 곤욕을 치르는 희생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내로라하는 야구선수가 제이름조차 한문으로 쓰지못하는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초창기 학생선수는 대부분 가난한 가정의 자녀였다. 공부하고 싶어도 등록금낼 형편이 못돼 [에라 운동선수나 되자]고 발을 들여놓은 것.이들은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전국체전에 입상하느냐가 목표의 전부였다.특히 72년부터 대입특기생제도가 생겨 전국규모대회4강에만 들면 공부를 전혀 못해도 진학할수 있게돼 학교체육은 더욱 파행을 걷게 됐다.공부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경북대등 일부국립대는 그래도 입학후 학점을 따야했기 때문에 스포츠계선한때 이대학에 진학하면 운동기량은 끝이다고 기피할 정도였다.이같은 학생선수의 반프로화는 대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이 걸어온 스포츠정책이다.

대구에 고교축구팀이 4-5개뿐인데 비해 일본{시즈오카}현경우 2백여개나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두 정상수업후 {특활}로 운동을 즐기고 시합때도 오전수업후 오후에 하는게 상례다.

절름발이 교육 개혁을 80년대 일본초고교급 투수였던 {에가와}가 대입성적에못미쳐 재수한것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미국대학도 체육특기생을 뽑지만 운동능력외에 진학 적성시험을 치러야하고진학후도 일정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퇴학당한다.

그래서 고교때는 한국선수가 이들보다 기량이 월등하다가도 대학.일반으로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하고 싶어하는것}과 {마지못해 하는것}의 차이때문.우리교육제도는 운동선수는 운동,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밖에 모르는 반쪽기계인간만 키우고 있다.

젊은 학생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활짝 펴게할 교육개혁은 언제 이뤄질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