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주 순흥 기행-고구려 양식 벽화서 조선조 서원까지

태백산과 소백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경북 영주. 그중에서도 순흥면은 선사시대 고인돌에서부터 삼국시대 벽화고분, 부석사에다 조선조 소수서원과 척화비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산교육장이다. 또 올곧은 선비들의 산같은 기상뿐 아니라 백성들의 밑바닥 애환까지 골고루 배어있는 문화마을이다. 장마속 폭염이 심술을 부리는 요즘, 도심의 뜨거운 열기는 사람들을 지치고 짜증나게 한다. 학교와 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자녀들은 더욱이 한학기 동안의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을 때다. 이럴때 빠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온가족이 재충전의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하루나들이로 영주시 순흥면 일대 기행은 볼거리·들을거리·먹을거리까지 갖춘 테마여행지로 제격이다.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빠져나온 순흥기행의 들머리는 순흥면사무소 못미처 자리한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에서 시작된다. 얌전하게 엎드리고 있는 이 고분의 둘레는 어른 걸음으로 50보 가량이다. 그러나 이 고분은 모형관이다. 진짜 무덤은 모형고분에서 500m쯤 떨어져 있는 비봉산 등성이에 있다. 입구 철문이 굳게 잠겨 있어 고구려 양식을 띄는 이 벽화고분은 순흥면사무소 옆 향토유물관에서 사진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순흥면 향토유물관은 나막신, 손다리미 등 109종 260점이 전시돼 있는 조그만 박물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일 듯 싶다. 그런데 유물관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면사무소 뜰에는 뿌리가 다른 적송 2그루가 한몸을 이루고 있는 연리지송(連理枝松)이 있다. 특히 부부간에 정이 없을 때 이곳에서 지성으로 기원하면 금슬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젊은 연인들의 사진 배경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수령 300년의 흔치않은 이 적송은 '금슬송''부부수' 등으로도 불린다.

또 유물관 옆에는 고려 공민왕이 '흥주도호부(興州都護府)'라는 현판을 직접 써 걸었다는 봉서루가 고려·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순흥이 이 지역 중심지였음을 대변해준다. 연리지송 옆에는 수령 수백년의 느티나무와 석불, 인왕상, 척화비도 자리하고 있다. 면사무소(054-633-3003) 당직근무자에게 요청하면 주말에도 관람이 가능하다.

유물관에서 나와 한국 최초의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소수서원(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초기 이름은 백운동서원)으로 향한다. 사실 유적답사는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원의 건물들은 말할것도 없고 빽빽히 자리한 소나무와 대숲, 그 옆을 흐르는 죽계천까지 각각의 사연을 알고나면 새롭게 보인다.

'서원내 금연'. 표지판을 숙지하고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서원으로서는 파격적인 당간지주 한쌍이 눈에 띈다. 바로 숙수사지 당간지주. 이곳이 예전엔 절터이자 곧 명당자리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조선조에 들어와 땅위의 통치원리가 바뀌자 힘이 약해진 불교가 서원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선생이 절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서원을 건립했다.

정문 못미처 거대한 은행나무가 먼저 반긴다. "해거름 없이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처럼 이곳 소수서원도 많은 인재들을 길러 내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며 "대숲은 선비의 절개요, 여러 이름이 있는 소나무는 여기선 학자지수(學者之樹)로 불린다"고 관광안내 봉사를 맡고 있는 송순화(39·영주시 가흥동)씨가 설명해 준다.죽계천 너머에는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이 세웠다는 정자 '취한대'와 '백운동'(白雲洞) '경'(敬)자바위가 눈길을 끈다. 백운동은 퇴계선생의 글씨이고 붉은 색의 경자는 주세붕선생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정문 홍전문으로 들어서면 건물의 배치를 눈여겨 봐야한다. 유교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올 때의 예법은 '전학후묘(前學後廟)'. 그러나 소수서원은 특이하게 동학서묘(東學西廟)의 배치방식이다. 소수서원 학예연구사 박석홍씨는 "우리식의 방향잡기인 이서위상(以西爲上)에 따라 동쪽에 학교, 으뜸이 되는 서쪽에 사당을 지은 독특한 공간배치를 보이고 있다"며 "우리 성현을 모시고 있어 민족 자긍심을 높인 계기도 되었다"고 말한다.

또 학문의 공간 강학당(명륜당)뒤편에 직방재와 일신재(스승숙소), 학구재와 지락재(학생기숙사)는 동쪽끝에 있다. 학생기숙사는 행여 스승의 그림자마저 밟지 않는다 해서 뒤로 물려 지었고, 대청과 방바닥도 한 자(약 30㎝)정도 낮췄다. 건물입면은 공부 잘 하라는 뜻에서 한자인 공(工)자로 배열돼 있다. 학문뿐 아니라 삶의 자세까지 가르친 인격수양의 도장이었다는 설명이다.

서원내 사료 전시관에는 퇴계선생의 역범도병풍, 학생들의 강학 성적부와 요즘 학적부인 입원록 등이 눈길을 끈다. 문의 054)634-3310.

소수서원 지척에 있는 금성단은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을 제사지내는 곳.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돼 귀양을 와서도 복위운동을 꾀하다 다른 선비들과 함께 희생된 인물이다.

순흥기행의 종착은 부석사.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특명을 받고 창건했다는 호국사찰이다. 무량수전 등 국보 5점이 있다. 부석사의 가장 큰 멋은 뭐니뭐니해도 부석사가 앉은 자리. 유물과 어우러진 절집의 조화, 거기다 소백산 연봉을 내려다보는 탁트인 시야가 일품이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가는 길=대구에서 중앙고속도 풍기IC까지 2시간이면 넉넉. 소수서원은 지방도 931번 도로를 타고 부석사표지판을 이정표삼아 30분쯤 달리면 나온다. 소수서원에서 다시 20분을 달리면 부석사에 닿는다.

▨맛집=순흥면 초입에 전통묵집(054-634-4614)이 있다. 메밀묵을 만 육수에다 밥을 말아 먹는다. 1인분 3천500원. 금성단 옆 소삼식당(054-633-2360)은 헛제사밥 전문이다. 1인분 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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