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공여성축구단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2002 한.일 월드컵 열기는 여성들에게도 축구에 대한 관심을 드높였다.

남편과 아이들의 공 차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던 주부들이 용기를 내 직접 축구의 짜릿한 묘미를 경험하겠다고 나섰다.

전통적인 남성 스포츠로 알려져 있는 축구에 이처럼 여성들의 참여가 확대되자 지역에도 행정기관의 지원 속에 주부들이 주축이 된 아마추어 축구단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대구시 동구 팔공 여성축구단은 축구를 해보고 싶은 열정을 참지 못해 스스로 찾아온 주부들로 창단된 케이스. 이들은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벌써 축구공을 차기 시작했다.

팔공 여성축구단은 2001년 12월 창단됐다.

선수는 모두 25명. 누가 권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만큼 선수들의 열의와 결속력, 유대감은 남다르다.

모두 30, 40대 주부인 선수들은 언니, 동생으로 부르며 서로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마치 친자매들처럼 친밀감과 정겨움이 넘친다.

선수들 숫자만큼이나 축구단 가입 동기도 다양하다.

송분다(45.동구 신기동)씨는 반야월초교와 동부여고에서 축구선수로 활동중인 남매의 선수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가입했다.

운동장을 돌고 축구장에서 공을 따라 몸을 움직여 보니 축구가 예사 힘든 운동이 아니란 것을 경험한 그는 이제 아이들에게 잘하느니 못하느니 하는 잔소리 대신 열심히 하라는 당부만 하는 엄마로 변했다.

이희옥(41)씨는 대학시절 축제 때 참가한 축구경기에서 한 골을 넣은 적이 있는 20년 전 경험을 잊지 못해 축구를 시작했다.

효성여고 농구선수 출신인 김수경(32.대구시 방촌동)씨는 구청 소식지에 선수모집 안내를 보고 서민들이 부담없이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론 축구가 적격인 것 같아 단숨에 입단 원서를 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축구를 시작한 후 건강이 좋아진 것은 물론 서로 어울릴 기회가 적은 도시생활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등 삶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자랑했다.

안심여중 축구선수들의 식사를 도맡고 있는 송화숙(42)씨는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자신도 그 재미를 맛보고 싶어 가입했다.

팀내에서 철벽수비수로 통하는 그는 젊은 선수들도 놀랄 정도로 가장 적극적으로 연습에 참여하고 경기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제일 부지런히 뛴다.

선수들은 그러나 무엇보다 세월이 흘러 60, 70대 할머니가 된 뒤 되돌아 볼 수 있는 추억과 우정을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가 돼 만들고 있다는 데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팔공 여성축구단은 일주일에 3일(월, 수, 금)씩 대구시 동구 동촌 둔치축구장에 모여 동구 생활체육협의회 소속 정현진(30)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오전동안 2시간씩 연습을 한다.

처음엔 운동장을 한 바퀴도 제대로 못 뛰던 선수들은 그동안 꾸준한 연습덕분에 이제 운동장 10바퀴를 거뜬히 달려내는 지구력과 전.후반 각 20분씩인 경기를 3경기나 소화해내고도 힘이 남는 체력으로 몸을 다졌다.

정현진 코치는 "선수들이 추운 겨울날에도 버스를 타고 정거장에서 내린 뒤 강바람이 매서운 이곳까지 걸어와 연습을 할 정도로 축구를 배우려는 자세가 매우 진지하다"고 말했다.

연습이 끝나면 선수들은 월 1만원씩 내어 모은 회비로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하거나 사놓은 쌀과 반찬으로 밥을 해먹으며 서로 집과 아이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습의 피로를 푼다.

또 생일을 맞은 선수에게는 작으나마 회비로 구입한 축구 스타킹을 전달하고 축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선수들의 경조사는 단체로 찾아가 도와준다.

이경옥(35)씨는 지난해 1월말 입단을 했을 때 선배들이 노래방에서 환영식을 해준 게 너무 기억에 남는다며, 내숭을 떨 줄 모르는 성격이어서 그때 함께 어울려 화끈하게 놀면서 팔공축구단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선수들간의 유대가 잘되다 보니 남편들도 동참하게 됐다.

지방선거가 있던 지난해 6월 13일 선수와 선수가족 등 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부부대항 친선축구대회는 팔공 여성축구단의 이런 응집력을 짐작케 해주는 행사.

아내와 남편이 서로 편을 갈라 경기를 치른 후 남자들도 서로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월드컵열기가 달아오를 때 선수들은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단체응원을 벌인 데 이어 한국전이 열릴 때마다 정병림(42) 단장이 운영하는 동촌의 레스토랑에 모여 목이 터져라 한국팀을 응원했다.

선수들의 축구사랑은 시민축구단인 대구FC 출범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대구FC 시민주를 모두 10주 이상 청약했으며 아이들 것까지 합하면 대부분 20주가 넘는다고 한다.

송분다, 이순기, 김숙희씨 등 5명의 팔공 여성축구단 소속 선수들은 대구 연합팀이 지난해 4월말 청주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할 때 주전으로 뛰며 맹활약했다.

짧은 기간에 팔공 여성축구단 선수들의 기량이 발전한 데는 임대윤 동구청장과 이동현 동구생활체육협의회 회장 등 관련기관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내년 봄쯤 전국대회 우승을 목표로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직장과 자영업에 종사하다 보니 연습때 참가 선수가 두 팀이 되지 못해 경기를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축구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팔공 여성축구단(741-0393)의 문을 지금 당장 두드려 줄 것을 당부했다.

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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