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월 호국인물' 윤길병대위 아들 창기씨

"6.25전쟁 때 돌아가신 이름 없는 군인 중 한 분인 줄로만 알았지요. 이처럼 훌륭한 분이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구 서구청 윤창기(52) 총무과장은 그 아버지 윤길병(1931∼1953)씨가 호국보훈의 달인 이달의 '호국의 인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 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잇따라 어머니조차 여읜 후 조부모 밑에서 자라 전쟁 고아처럼 외롭게 살아 왔더니 50년이나 흐른 뒤끝 어느날 갑자기 "네 아버지는 영웅이느니라"는 통보가 왔다는 것.

"전쟁기념관측이 5일 현양 행사가 열린다며 참석하라고 통보해 왔습니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행사에도 가지 않으려 했지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훌륭한 군인이었던 줄조차 모르고 돌아가신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국가는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원망만 생겼습니다".

이제 그 자신도 중년에 접어 들어버린 윤 과장이 뒤늦게 알게된 아버지 윤길병 육군대위의 발자취는 그야 말로 존귀했다.

1951년에 이미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적 있는 윤 대위는 12사단 중대장으로 1953년 강원도 인제 전투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812고지 사수를 위해 북한군과 5일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포위되자 부하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투항을 거부해 권총 자결했다.

당시 증언들을 토대로 전쟁기념관이 정리한 역사. 이에 국가는 1953년 충무무공훈장을 다시 바쳐 고인의 충정을 기렸다.

그런 윤 대위는 22세 때 한 살 아래의 아내와 결혼, 신혼 생활을 일년쯤 하다 전쟁터로 달려간 참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세살 되던 무렵 한줌의 유골로 돌아왔다.

화병이 난 아내도 그 3년 뒤 세상을 떴다.

그 때문에 외아들로 남겨져 조부모 손에 자란 윤 과장은 아버지가 전쟁 영웅이었다는 것도,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얼굴은 아예 기억조차 없고 어머니 모습도 아련할 뿐. 아버지 사진이 두 장 남아 있었으나 그마저 10여년 전 국가가 참전자 기록을 만든다며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았다.

지난 날의 상처를 회상하면서도 윤 과장은 "6.25 전몰 유가족들이 겪은 일상을 그대로 겪은 셈일 뿐"이라며 덤덤해 했다.

남은 것은 오직 회한.

하지만 윤 과장은 점차 마음을 정리해 가는 듯 했다.

"인터넷에 뜬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와 똑같다, 할아버지가 강재구 소령처럼 위대한 분이라 너무 자랑스럽다고 딸(28)이 좋아 합니다.

50년 가까이 음력 4월26일로 알고 지내 왔던 제삿날도 4월24일로 고치기로 했습니다.

먼저 아버지에게 내려졌다는 훈장을 되찾아 제사상에 올릴 것입니다".

윤 과장은 경주 고향 사람들이 '문중의 영광'이라며 설득해 전쟁기념관의 5일 현양 행사에는 참석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