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새벽. 세상 한켠에서 불을 환하게 켜두고 커피 한잔에 잠시 여유를 찾는 대구 수협공판장(대구 신암동)의 중매상인들. 최근 계속되는 경기불황은 이곳 상인들의 하루 장사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워놨다.
6월의 첫째 토요일 찾아본 신암동 수협 공판장은 해마다 매출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지난 7일 새벽 4시. 평소 같으면 새로 들어온 상품경매로 시끌벅적해야 할 수협 공판장이지만, 연휴가 끼인 토요일 새벽 공판장의 모습은 한산하기만 했다.
1시간 전 끝났다는 경매서 나온 고등어, 갈치 상자가 주로 바닥에 쌓여있었다.
중매인들은 아직은 서늘한 새벽의 기운을 떨쳐내려는 듯 한손에 따끈한 커피 한 잔, 다른 손에 담배 한개비를 들고 있었다.
"이쪽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한 거야. 10년이 넘었지만 요즘 같진 않았어". 30년째 중매업을 하고 있다는 강창부(60)씨는 지금의 불황이 사뭇 심각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는 불황이라도 선어(鮮魚, 비냉동 생선)는 그런대로 팔렸는데, 요즘엔 그것도 잘 안 팔려. 재래시장에서 판매를 받쳐줘야 하는데 재래시장도 엄청난 불황을 맞고 있으니…"
백화점과 대형할인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5년전부터 공판장의 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깔끔하고 다양한 물품을 구할 수 있는 대형할인점으로 몰리면서 재래시장에서 수산물 판매가 줄어든 것. 식당업자들의 수요가 감소한 것도 판매부진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5년 경력의 중매인 김찬수(50)씨는 "판매량이 매년 10∼20%가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름이 오면 상황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해 수산물 판매 감소세가 상당히 심각함을 나타냈다.
서모씨는 "대구에 새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백화점간 경쟁으로 할인행사를 많이 벌이고 있다.
그 추세에 대형할인점도 따라가게 되니 재래시장에서 판매가 더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년간 1월부터 5월까지 거래현황을 살펴봐도, 2001년 22만여건 72억여원이던 것이, 2003년 21만여건, 71억여원으로, 작년에는 17만여건에 63억여원으로 줄어들었다.
판매부진으로 수입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자 중매인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다.
그나마 남은 중매인들도 휴업하는 날이 늘어났다.
강창부씨는 "현재 등록된 중매인 46명 가운데 실제로 장사하는 사람은 하루 15명 정도"라고 했다.
류건식(58)씨는 "공판장 이전 얘기가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부지선정 문제 등으로 무산된 걸로 알고 있다.
현재 시설 투자나 보수가 이뤄지지 않는 걸로 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해 수협 공판장의 미래가 상당히 암울함을 반영했다.
오전 6시나 7시쯤 손님이 없으면 파장 분위기가 되는 냉동생선 거래장과 달리 선어 거래장은 그래도 선어를 사러 온 사람들로 그나마 생기가 돌아왔다.
멸치젓담그기 최적기라 멸치를 사러 온 주부들을 끌어들이려는 상인들의 외침도 커졌다.
주부 박미숙씨는 "집에서 직접 젓갈을 만들어 먹기 위해 매년 찾고 있는데, 작년보다 가격이 싸졌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경기가 안좋아 가격이 내린 것"이라고 귀띔했다.
ㅇ수산의 한 아주머니는 "마진을 최소화해서 남해산 멸치 2.7㎏ 한 상자를 2만3천원에 팔고 있다.
생선이라는 것이 신선도가 중요하다 보니 그렇게 해서라도 남기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밝혔다.
한쪽에 몰려있는 생선가게. 고등어, 꽁치에 전복, 문어 등 다양한 생선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보통 오전 6시에서 8시 사이에 판매가 이루어진다.
부모님 가게를 돕고 있다는 서모씨는 "예전엔 도매업만으로 장사가 됐지만, 요즘엔 소매를 겸하지 않으면 힘들다.
그나마 제수나 잔칫상 재료를 찾는 단골 구매가 위주"라고 말해 공판장 전체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전용옥 수협 대구공판장 판매과장은 △동해안의 어획고 감소 △사람들의 생활양식 변화 △가공처리 수산물 제품증가 등을 판매부진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해 전부터 멸치를 염장처리해 주는 것이 주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고등어도 같은 형태로 판매하고 있는데, 앞으로 좀더 많은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혀 자체적으로 불황탈출을 위해 고심하고 있음을 밝혔다.
동녘 하늘이 벌써 밝아버린 오전 7시. 신선한 생선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러 온 손님을 누구보다 먼저 확보하려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아침하늘에 계속 울려 퍼졌다.
하지만, 공판장으로 새로 들어가는 손님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김규형(48)씨는 "이번 불경기로 외국 상품 판매도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불경기가 서민뿐만 아니라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불황이 개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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