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포럼-한·미 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최근 스크린쿼터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스크린쿼터제란 국내 영화관들이 일년에 146일 이상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는 외국영화에 비해 수준이 낮은 국산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1966년에 도입되어 현재까지 37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이 제도의 폐지 내지는 대폭 축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영화계 입장을 대변하는 문화관광부의 반대로 이에 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투자협정은 협의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나도록 체결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의 투자협정이 체결되면 우리나라의 투자환경과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서 외국 기업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를 증대시킬 수 있다.

또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가 높아져서 우리 정부나 기업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종전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받게 되는 등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한·미투자협정이 체결될 경우 1.38%p 내지 3.0%p의 GDP 증대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경제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오는 한·미투자협정이 스크린쿼터 때문에 체결되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도 한국영화의 국내시장점유율이 45.2%로써 프랑스(41%), 독일(18%), 이태리(18%) 등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영화계 인사들은 스크린쿼터제가 폐지되면 미국영화들이 밀려들어와 한국의 영화산업은 고사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수년동안 한국의 영화산업이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98년 25.1%에 불과하던 국산영화 시장점유율이 4년후인 2002년에 45.2%로 크게 늘어난 것은 그만큼 한국영화의 수준이 높아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친구' 등 수백만의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들은 그 당시 상영되었던 우수한 외국영화들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았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1999년 이후 최근까지 국내 영화관에서 가장 관객을 많이 동원한 영화 10개중 8개가 한국영화라는 사실과 최근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자주 수상하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영화의 수준이 국제적으로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우리영화의 수준을 감안할 때 이제는 스크린쿼터제가 없더라도 미국영화에 밀려 한국영화가 고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국내시장에서 외국영화와 치열한 경쟁을 함으로써 우리영화의 수준이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산업이나 기업이든지 경쟁에 노출되지 않고 보호막에 안주하게 되면 그 산업이나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되고 결국 쇠퇴하게 된다.

스크린쿼터제를 존속시키는 것은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예술에 경제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문화든 예술이든 그것이 돈과 연결되는 산업으로 존재하는 이상 거기에는 경제논리가 적용되어야 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그러한 논리가 맞다면 우리음악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기 위하여 모든 음악 공연장에서 국악을 40%이상 공연하도록 의무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영화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은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받도록 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몇일동안 상영할지는 정부규제가 아닌 관객의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이다.

김병일(공정거래위원회 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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