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꽃과 잡초

도시에 살면 계절의 변화는 텔레비전에서부터 온다.

일기예보에서 봄이 왔다고 하면 봄인줄로 여기고 옷을 가볍게 입을 준비를 하고, 장마가 진다고 하면 이제 여름으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뿐이다.

아파트에, 혹은 사무실에 갇혀서 산과 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한 채.

시골에 사는 즐거움은 계절의 변화를 직접 몸으로 느낀다는데 있다.

무엇보다도 산과 들의 꽃과 나무가 늘 옆에서 철이 바뀌고 있음을 속삭여 준다.

생강나무, 산수유, 개나리로 노랗게 시작된 삼월은 사월에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벚꽃으로 분홍빛 잔치를 연다.

오월에는 불두화, 찔레꽃, 아카시아꽃으로 하얀 색 향기를 뿌린다 싶더니 어느덧 짙은 푸른 녹음 사이로 접시꽃, 백일홍, 산딸기가 붉은 정열의 여름을 드러내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런데 꽃들의 아름다움에 열중하다보면 주변에 잡초가 널려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실은 꽃이 아름답게 돋보일 수 있는 것은 그 언저리 여기저기에서 소리 없이 피고 지는 소박한 잡초 때문인데. 한 존재의 가치는 다른 존재와의 차이에서 생기는 법. 알고 보면 우리가 잡초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풀에도 다 각기 고유한 이름이 있다.

질경이, 바랭이, 애기똥풀, 새콩, 며느리밑씻개 등.

소리없이 숨어있는 잡초처럼 강의 시간에 나의 눈에 전혀 띄지 않는 학생이 있다.

이 녀석은 영어로 말을 건네기라도 하면 얼굴부터 빨개지며 말을 더듬고 고개를 떨군다.

아무리 봐도 숫기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세계화 시대에 저 정도의 영어로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던 그 녀석이 축제 때 운동장에서 열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축구공을 쉴 새 없이 몰고 다닐 때는 모든 여학생을 황홀하게 만든다.

영어에 주눅이 들어 수업 시간에 목소리가 다 기어 들어가는 녀석이 노래방에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며 모두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때는 도무지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꽃이 된다.

잡초처럼 보이는 녀석을 통해 나는 쓸모 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있음을 배운다.

꽃도 잡초도 모두 아름답기만 한 계절이다.

허정애 상주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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