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노조 만듭시다".
아침밥을 먹고 있던 어느 중년의 마누라님이 불쑥 한마디 던진다.
"웬 노조는?"남편이 뭔소리냐는 얼굴로 되묻는다.
"요즘 노조 만들어서 파업하고 밀어붙이면 뭐든지 손오공 여의봉처럼 안되는 게 없어 보이니까요".
"우리 둘이 노조 만든다고 무슨 수가 나나?"
"며느리 한테 용돈 인상하라며 머리띠 두르고 아들네 안방에 드러 누우면 혹시 아나요. 정부가 나서 줄지".
아들 딸 출가 시키고 단둘이 남은 어느 '오륙도'세대의 아침 밥상 풍경이다.
그 부인 말마따나 요즘 일부 강성노조나 각종 이익단체들의 불법파업이나 과격시위가 '부부노조 만들자'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도를 넘어서고 있다.
줄줄이 이어지는 파업 등으로 나라의 신인도(信認度) 하락을 걱정하고 당장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어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파업 다툼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거기다 오락가락 원칙이 없어 보이는 정부의 대응은 국민들을 더위 먹게 만들고 있다.
어제 타결된 모 은행의 파업 협상 역시 타결에 따른 평화 대신 재계의 반발이라는 또다른 분쟁과 불안한 선례를 하나 더 덧붙였다.
'불법파업'이라며 강경대응 한다고 큰소리 쳤던 정부가 '시위에 밀려 내줄 것 거의다 내줌으로써 또한번 불법파업을 용인해준 무원칙한 정부임을 드러냈다'는 야당과 재계의 비판도 드세다.
노조측도 충분한 만족과 이해를 얻어낸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이 정부가 즐겨쓰는 진정한 타협과 화합은 이뤄내지 못한 셈이다.
내일부터는 지하철.철도.버스노조도 파업에 들어갈 것 같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은행 하나 며칠파업하는데 500만 고객이 불편을 겪는 국가시스템에 운송부문이 마비되면 국민들이 겪어야할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머리띠 매고 삭발하면 주모자 처벌하겠다던 부총리급의 엄포까지도 그냥 해본소리가 되는걸 빤히 보여줬으니 앞으로 노동계가 정부를 참새가 허수아비 보듯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노동계의 파업이 반드시, 또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하기 나름이다.
세계 인간개발지수(HDI)보고서에서 삶의 질이 상위권에 속하는 유럽의 잘사는 나라들의 노동자들도 파업일수는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훨씬 많다.
지난 10년간 파업 횟수만 봐도 덴마크.프랑스.핀란드 등은 80일에서 많게는 207일이나 되는 경우도 있었다.
파업은 많이 하면서도 잘사는 비결은 무엇인가. 일단 유럽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인식과 사고는 파업을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로 본다는 당당한 자신감이 있다.
따라서 파업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한다.
다시말해 당당하지 못한 물리적 불법파업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법을 무시하고 이익집단의 제 권익만 챙기다 보면 법과 원칙이 무너지게 되고 언젠가 무너지고 허약해진 그 법이 정작 약한 자신들(노동자)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때 버림받고 이익이 침해되는 날이 올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가 지니는 힘이 어떤 것인가를 지혜롭게 내다볼 줄 아는 지성과 혜안이 있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 노조도 전산망을 위태롭게 하고 국민의 발을 볼모로 묶고 도로를 막는 식의 비이성적 파업방식은 벗어던질때가 됐다.
정부나 재계도 노동계의 주장과 요구를 귀담아 들어주고 어차피 챙겨줘야 할 것은 미리미리 챙겨주면서 마찰을 줄일줄 알아야 한다.
조용조용 호소할때는 소귀에 경 읽듯 무시하고 있다가 파업을 벌이면 허둥지둥 안줘도 될 것까지 떠밀려서 뺏기는 듯한 자세로는 유럽식의 선진화된 파업문화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살펴보면 조그만 영세기업이나 가내공업 수준의 노동현장에는 머리띠 살돈도 없을 만큼 노동권익을 다툴 힘이 없는 열악한 근로자가 수없이 많다.
숫자 많고 노조 회비 많아서 큰 싸움을 할 수 있는 대기업 노조의 권익만이 노동자 권익이 아니다.
힘없고 열악한 노동자의 권익쯤은 안떠든다고(사실은 못떠들지만) 팽개쳐 두고 큰 노조에만 무릎 꿇는 노동정책이나 기업자세라면 비겁하기까지 하다.
바로 그런 것이 노동자로 하여금 사납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하나 더 크게 눈떠봐야 할 것이 있다
파업이 순수한 노동자 권익투쟁을 벗어나 사회적 정치적 혼란과 갈등을 일으킬때는 반드시 그 틈새를 악용하고 파고드려는 '불순 세력'이 숨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만은 철저히 국민과 정부 노동계 모두가 경계하고 유의해야 한다.
그것이 허술해지거나 좀먹게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세력이란 정치적 적대관계인 북한 공작조직일 수도 있고 경제적 경쟁관계에 있는 강대국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울기만 하면 젖주는 듯 하는 '파업공화국'에서 파업으로 길 막히고 은행문 닫혀도 그나마 사는건 이승엽의 300호 홈런맛 때문이라고.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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