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조선 초기 청화백자 보상문 접시가 당시 세계 최고가인 40억 원 상당에 낙찰됐다. 2년 후, 조선백자 철화용문 항아리가 130억 원에 낙찰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듯 세계인들이 최고로 인정해주는 우리 도자기의 가치에 대해 정작 우리 자신들은 잘 모르고 있다.
'우리 사발 이야기'는 사기장의 눈으로 우리 도자기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주체적인 시각에서 읽어낸 책이다. 일본이 경제 부국이 되기까지 우리 사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자기를 탐내서 일으켰다 해서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고, 도자기 중에서 특히 찻사발이 목적이었으므로 일본에선 임진왜란을 '찻사발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히데요시의 칙령 1호는 조선 사기장과 장인들을 납치해오라는 것이었고, 이때 납치됐던 이참평이라는 조선 사기장이 백자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일본에 자기 시대를 열었다. 이참평은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은 백자를 만들지 못했다. 일본은 그 후 백자를 세계 각국에 수출해 경제대국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이 대량생산한 왜(倭)자기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 전통 도자기의 맥이 점차 희미해지게 된다.
임진왜란은 분명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었지만 그들이 가장 원했던 찻사발 전쟁은 그들이 이긴 것이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우리 사발은 지금까지 '막사발'로 불려왔다. 일본인들은 찻사발을 두고 '밥공기로 쓰이던 막사발'이라고 폄훼해 왔으며 '더러운 조선의 잡기(雜器)에서 미를 발견한 일본인의 심미안은 위대하다'고 말해 왔다. 우리나라 학자들조차 이에 대해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막사발이 아닌 당시 진주부 일대 민가에서 사용되던 제기(祭器)라고 밝혀낸다. 제기는 사용한 후 무덤에 묻지도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깨어버리는 풍습 때문에 이 사발이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막사발', '이도 자완'이라고 부르는 명품 사발을 '황태옥'(黃台玉)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일본에서 '이도 자완'이라 불리는 사발들은 노란 때깔을 기본으로 굽 부분에 유방울이 매달려 있는 형태적 공통점들을 함축한 이름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극찬하는 조선 사발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도자기를 빚을 때 장인들의 정신적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 장인들은 수출하고 팔기 위해서 대량생산을 전제로 획일적인 도자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공예품은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기 위해 만들었다. 또 만드는 자의 즐거움을 인정했기 때문에 팔기 위한 억지 아름다움이 아닌 건강하고 순수한 자연미가 흘러넘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공예품엔 우리만의 너그러움과 해학, 개성 있는 자연미가 표현돼 있다. 일본의 차회에서 인기있던 중국 천목다완을 대신해 조선 사발이 찻사발의 황제로 인정받았던 것은 심오한 철학이 담긴 소박미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신한균(45)씨는 경남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는 사기장. 우리 전통의 조선 사발을 최초로 재현해낸 도예가 신정희 옹의 장남이다. 그는 일본에 의해 왜곡된 도자기의 본질을 바로잡기 위해 10여 년간 외국에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우리 사발을 찾아 직접 차를 마시고 손으로 만지면서 확인해오고 있다.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도자기들을 만나면서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 국보 사발을 직접 만져보기 위해선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할 뿐 아니라 판권을 그들이 가지고 있어, 이 책에 사진을 실을 때도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약탈당한 우리 사발을 만나기 위해선 험난한 과정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일본의 개인소장품을 비롯한 명품 사발 400여 점을 싣고 있어 눈으로나마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다. 또 흙, 유약, 도자기의 역사, 사기장 이야기 등 우리 사발에 관련된 모든 것을 쉽게 풀어 쓴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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