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들짐승 대책 안 세우나" 북부지역 농민들 피해 호소

문경시 농암면 선곡리 신명희(73)씨는 요즘 새벽 4시30분이면 밭에 나간다.

신씨가 꼭두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것은 멧돼지, 고라니, 토끼, 산비둘기 등 들짐승들이 밭에 내려와 자기 밭의 농작물을 뜯어먹지 못하도록 지키기 위해서다.

밭 농사래야 270평에 콩과 옥수수를 조금 심었을 뿐이지만 신씨 부부에게는 논 2마지기와 함께 너무도 중요한 생계터전이다.

신씨는 새벽 시간에 약한 불부터 피운다.

야생 조수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언제나 사람이 밭에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깡통과 의류, 종이박스 등 잡다한 물건들을 밭 이곳저곳에 줄을 쳐 매달아 놨다.

집에 헌옷도 흔치 않아 몇 년 전 선물받은 실크 잠옷 상의도 꺼내 내걸었다.

'새옷인데 아깝지 않으냐'는 물음에 "한평생 농사꾼이 옷은 아무렇게나 입고 지내도 되지만 들짐승 때문에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는 없어 좋은 잠옷이지만 밭에 내다 걸었다"고 했다.

신씨는 "요즘은 야생조수가 크게 늘어 산간지 농민들이 농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당국에서 적절한 포획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북부지역 산간 오지마을마다 크고 작은 산짐승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안동시 일직면 용각리 한섭이(67)씨도 최근 들짐승 피해를 입었다.

콩을 심은 400여 평의 밭에 꿩떼가 내려와 갓 돋아난 떡잎 등 콩싹을 모조리 뜯어먹다시피한 것.

산 중턱에 위치한 그의 콩밭은 매년 봄철마다 꿩과 산비둘기, 노루, 고라니 때문에 피해를 입어왔지만 올해처럼 밭 전체를 다시 파종해야 할 정도로 심한 피해를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씨는 하소연했다.

인근 마을 이상용(50)씨도 지난 주말 하룻밤 사이에 올 봄 새로 부화시켜 기르던 병아리와 토종닭을 모조리 잃었다.

이씨는 밤중에 족제비가 병아리와 닭을 닥치는 대로 물어 죽였다며 허탈해 했다.

이씨는 "야생짐승 피해가 잦아 닭장 울타리를 2중으로 치고 하얀색 천까지 둘러 두었는데 지난 주말 비가 내리면서 단단한 흙이 부드러워지자 족제비가 땅을 파고 닭장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경·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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